6. 기기도(敧器圖)와 무일도(無逸圖)
정종이 위에 오름에 평양부윤 성석린(成石璘)이 기기도(敧器圖)를 드리니 왕이 기뻐 하사 그 그림을 군신에게 보이시니 그 뜻은 그 그릇이 삐뚤어진 것은 넘어지기 쉬운 것을 보임이니 대개 인군이 교만할 때 넘어지기 쉽다는 뜻이요 임금뿐 아니라 누구든지 교만하면 넘어진다. 또 그릇에 물을 반만 부으면 그냥 서 있으나 물을 가득 담으면 곧 넘어진다.
대개 교만이란 것은 그릇에 물을 가득 담은 것 같다.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가득 담으면 교만하여진다. 재물을 가득 담든지 학문을 가득 담든지 지위를 가득 담든지 무엇이든지 가득하면 넘친다. 넘는 것은 교만이요 곧 넘어짐이다. 성석린은 임금을 사랑하여 넘어질까 염려함으로 이 그림을 드리었다.
또 동시에 관찰사 최유경(崔有慶)이 무일도(無逸圖)를 드리니 그 뜻은 상서(尙書) 무일편(無逸篇)에서 나온 뜻이니 농사가 가난함으로 백성들이 편한 날이 없이 항상 일하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어 그 고생하는 것을 보임이니 임군이 되어 마땅히 이것을 생각하고 항상 부지런히 일하여 백성을 잘 보호하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정종은 각 도의 선군(船軍)을 파하고 또 가병(家兵)을 파하다. 각 해방(海防)에 선군을 두어 해방을 지키게 함이 백성들의 크게 괴로워함으로 이것을 파하여 백성들의 무거운 짐을 면케 하고 또 그때 유여한 집과 높은 사람들의 집에 사사로 군사를 두어 집을 지키게 하니 이것도 국가에 별로 유익이 없고 백성들의 괴로워함으로 파하다.
건국 초에 이 도덕을 잘 지키었더라면 형제 살육과 왕위쟁탈문제가 나지 않을 것을 욕심이 마음에 가득차서 넘어질 뻔하였다. 정종이 위에 있음에 정종의 부인이 말하되 시동생의 눈이 무섭다 하였으니 시동생은 곧 방원이다. 그 형의 지위를 엿봄으로 그 부인은 그 남편 정종을 대하여 이런 말을 한 것 보면 왕위를 가지고 있지 말고 동생에게 전하라는 말이다.
그리하여 정종은 2년에 그 동생 방원에게 위를 사양하니 이가 곧 태종이다. 태종은 그 아버지 태조 창립 시에 군공이 많다 하여 일반이 숭배도 하거니와 자기 자신도 욕심이 많았던 것이다. 자기 말이 나는 당(唐)의 태종 같다고 자랑한 것 보면 영웅주의가 있는 사람이요 자기는 국가위하여 공신 정도전 박포 같은 사람을 죽이고 동생 방번 방석을 죽이고 또 형 방간을 죽였으니 몰인정 무자비한 야심가라 하겠다. 그리하여 이씨 오백년 역사는 살육의 역사이요 하나도 볼만한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