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The Vanishing Red
He is said to have been the last Red Man
In Acton. And the Miller is said to have laughed―
If you like to call such a sound a laugh.
But he gave no one else a laugher's license.
For he turned suddenly grave as if to say,
"Whose business―if I take it on myself,
Whose business―but why talk round the barn?―
When it's just that I hold with getting a thing done with."
You can't get back and see it as he saw it.
It's too long a story to go into now.
You'd have to have been there and lived it.
Then you wouldn't have looked on it as just a matter
Of who began it between the two races.
Some guttural exclamation of surprise
The Red Man gave in poking about the mill,
Over the great big thumping, shuffling millstone,
Disgusted the Miller physically as coming
From one who had no right to be heard from.
guttural : 목구멍의 목쉰소리의
"Come, John," he said, "you want to see the wheel pit?"
He took him down below a cramping rafter,
And showed him, through a manhole in the floor,
The water in desperate straits like frantic fish,
Salmon and sturgeon, lashing with their tails.
Then he shut down the trap door with a ring in it
That jangled even above the general noise,
And came upstairs alone―and gave that laugh,
And said something to a man with a meal sack
That the man with the meal sack didn't catch―then.
Oh, yes, he showed John the wheel pit all right.
cramping :
rafter : 서까래
sturgeon : 철갑상어
jangle : 땡그렁거리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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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인디언
그는 액턴의 마지막 인디언이었단다.
그리고 그 방앗간 주인은 크게 웃었단다―
그런 소리도 웃음이라 부르고 싶다면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누구도 웃을 자유가 없었다.
그가 갑자기 심각해지는 것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상관하지 마,―
내가 책임져, 상관하지 마―한 놈 깨끗이 해치웠는데,
곳간 언저리서 주둥이 놀릴 이유라도 있나?”
그 사건을 그 사람의 관점으로 볼 수는 없다.
지금 들여다보기엔 너무 오래된 이야기다.
그곳에 살면서 현장에 있었어야 할 게다.
그랬다면 그것을 두 인종 간에 먼저 시비 건 쪽이
어느 쪽이냐의 문제로만 보지는 않았을 게다.
그 인디언이 제분기 속을 쑤석이다가,
깜짝 놀라 탄성을 지르는 후두음이 밀을 쿵쿵
찧고, 뒤섞는 큰 맷돌 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그럴 권리가 없는 자에게서 나온 탄성은
방앗간 주인의 물리적 혐오감을 일으켰다.
그는 말했다, "이봐, 존. 휠피트를 보고 싶은가?"
그는 큰 바퀴를 돌리는 서까래 밑으로 그를 데려갔다.
그리고 바닥의 맨홀을 통해 그가 들여다보게 한 것은
미친 물고기들처럼 좁은 공간에서 날뛰는 물이었다.
물은 연어와 철갑상어처럼 꼬리를 세차게 치고 있었다.
그 다음 그는 고리 손잡이의 맨홀 뚜껑을 닫아버렸다.
뚜껑이 쾅 닫히는 소리가 일반 소음을 압도했다.
그리고 그는 혼자 이층으로 와서―크게 웃었다.
그리고 밀가루 부대를 진 사람에게 무언가를 말했지만
밀가루 부대를 진 사람은 알아듣지 못했다―그 당시는.
오, 그래, 그는 존에게 휠피트를 제대로 보여줬다.
-신재실 옮김-
단상(斷想): 적자생존(適者生存)이란 말이 있다. 생존경쟁에서 환경에 잘 적응하는 개체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개체는 점차 사라진다는 것이다. 아메리칸 인디언은 그 개체수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말하자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적자(不適者)인 셈이다. 매사추세츠 주, 미들섹스 카운티의 액턴 마을의 어느 인디언 종족도 1810년대에 그 최후의 일인인 존이 사라짐으로써 지상에서 사라졌다. 그럼 존은 환경의 적자가 아니었기에 사라졌는가?
밀러는 물방앗간 주인이고 존은 고용인이다. 아마도 존은 방앗간의 조업(操業) 방식을 찬성하지 않거나 불만을 토로하거나, 무엇인가를 꼬치꼬치 캐물은 것 같다. 존의 태도에 화가 치민 밀러는 그를 아래층으로 데려가서, 맨홀 뚜껑을 열고 그에게 물레방아 바퀴에서 떨어진 물이 날뛰는 휠피트를 보여준 다음, 존을 휠피트에 던져버리고, 맨홀 뚜껑을 쾅 닫아버렸다. 쾅! 울리는 소리가 곧 존의 진혼곡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존이 밀러와 같은 종족이었더라도 같은 운명이었을까? 3자인 우리가 “지금 들여다보기엔 너무 오래된 이야기다./ 그곳에 살면서 현장에 있었어야 할 게다./ 그랬다면 그것을 두 인종 간에 먼저 시비 건 쪽이/ 어느 쪽이냐의 문제로만 보지는 않았을 게다.”종족 간의 불화가 빚은 비극으로만 볼 수 없는 사건이겠지만, 개인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도 무엇인가 석연치 못하다.
존은 적자생존의 부적자(不適者)이기에 사라졌는가? 밀러는 적자생존의 적자(適者)란 말인가? 답을 찾기 어렵다. 적자생존은 끊임없이 논란 꺼리를 제공할 것이다.
-신재실 씀-
출처 : http://blog.naver.com/PostList.nhn?from=postList&blogId=js9660&categoryNo=31¤tPage=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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