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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八十九回 武乡侯四番用计 南蛮王五次遭擒
재89회: 무향후(제갈량)가 네 번째 계책을 쓰고, 남만 왕이 다섯 번 잡히다.
却说孔明自驾小车,引数百骑前来探路。前有一河,名曰西洱河,水势虽慢,并无一只船筏。孔明令伐木为筏而渡,其木到水皆沉。孔明遂问吕凯,凯曰:“闻西洱河上流有一山,其山多竹,大者数围。可令人伐之,于河上搭起竹桥,以渡军马。”孔明即调三万人入山,伐竹数十万根,顺水放下,于河面狭处,搭起竹桥,阔十余丈。乃调大军于河北岸一字儿下寨,便以河为壕堑,以浮桥为门,垒土为城;过桥南岸,一字下三个大营,以待蛮兵。
각설, 공명이 스스로 작은 수레를 타고, 수백 기를 이끌고 길을 정탐하러 왔다. 앞에 강이 하나 흐르니, 이름하여 서이하인데 물살이 느리지만, 배나 뗏목이 전혀 없었다. 공명이 나무를 베어 뗏목을 만들어 건너라 명령했지만, 나무가 물에 닿자마자 모두 가라앉았다. 그래서 공명이 여개에게 물으니, 여개가 말하기를,“듣기에 서이하 상류에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에 대나무가 많아서 큰 것은 몇 아름입니다. 그것을 베어와서 물 위에 대나무 다리를 놓으면, 군마들을 건넬 수 있습니다.”했다. 공명이 즉시 3만 명을 산으로 들여보내서 대나무 수십만 그루를 베어, 물을 따라 흘러보내어 물길이 좁아지는 곳에 대나무 다리를 놓으니, 너비가 열 길이 넘었다. 이에 대군을 서이하 북쪽 물가에 보내어 일(一)자 모양으로 영채를 세우니, 강물을 참호로 삼고 부교를 문으로 삼으며, 흙을 쌓아 성을 만들었다. 다리를 지나 남쪽 물가에 일자로 큰 영채를 세 곳 세우고 남만병들을 기다렸다.
却说孟获引数十万蛮兵,恨怒而来。将近西洱河,孟获引前部一万刀牌獠丁,直扣前寨搦战。孔明头戴纶巾,身披鹤氅,手执羽扇,乘驷马车,左右众将簇拥而出。孔明见孟获身穿犀皮甲,头顶朱红盔,左手挽牌,右手执刀,骑赤毛牛,口中辱骂;手下万余洞丁,各舞刀牌,往来冲突。孔明急令退回本寨,四面紧闭,不许出战。蛮兵皆裸衣赤身,直到寨门前叫骂。诸将大怒,皆来禀孔明曰:“某等情愿出寨决一死战!”孔明不许。诸将再三欲战,孔明止曰:“蛮方之人,不遵王化,今此一来,狂恶正盛,不可迎也;且宜坚守数日,待其猖獗少懈,吾自有妙计破之。” 于是蜀兵坚守数日。
한편, 맹획은 남만병 수십만을 이끌고, 원한과 분노를 품고 달려왔다. 서이하에 가까워지자, 맹획이 선두의 오랑캐 도패수(칼과 방패를 든 병사) 1만 명을 이끌고, 곧바로 앞쪽 영채를 공격하며 싸움을 걸었다. 공명이 머리에 윤건(푸른 실로 만든 두건)을 쓰고, 몸에 학창의(소매가 넓고 뒷솔기가 갈라진 웃옷)를 입고, 손에 우선(깃털 부채)를 들고,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좌우 여러 장수의 호위를 받아 나왔다. 공명이 보니, 맹획은 몸에 무소 가죽 갑옷을 입고 머리에 주홍색 투구를 쓰고, 왼손에 방패를 들고 오른손에 칼을 잡고, 털이 붉은 소를 타고, 입으로 욕을 퍼부었다. 부하들 만여 장정이 각자 칼과 방패를 들고 달려들었다. 공명이 급히 영을 내려 본채로 되돌아가서, 사방을 굳게 지키고 출전을 불허했다. 남만병 모두 옷을 벗고 벌거숭이로 영채 앞까지 와서 욕을 퍼부었다. 장수들이 크게 노해 모두 몰려와서 공명에게 말하기를,“저희들이 영채를 나가서 한바탕 죽기로 싸우기를 바랍니다!”했으나, 공명이 허락하지 않았다. 장수들이 거듭 싸우려 하자, 공명이 제지하며 말하기를,“오랑캐 나라의 사람들이 천자의 교화를 입지 못해, 지금 이렇게 몰려와 미쳐 날뛰고 있으니, 맞아 싸울 수는 없소. 일단 며칠 굳게 지키며, 저들의 미쳐 날뜀이 조금 느슨해지기를 기다려, 내가 묘책을 내서 격파하겠소.”하니, 이에 촉병들이 며칠을 굳게 지켰다.
孔明在高阜处探之,窥见蛮兵已多懈怠,乃聚诸将曰:“汝等敢出战否?”众将欣然要出。孔明先唤赵云、魏延入帐,向耳畔低言,分付如此如此。二人受了计策先进。却唤王平、马忠入帐,受计去了。又唤马岱分付曰:“吾今弃此三寨,退过河北;吾军一退,汝可便拆浮桥,移于下流,却渡赵云、魏延军马过河来接应。”岱受计而去。又唤张翼曰:“吾军退去,寨中多设灯火。孟获知之,必来追赶,汝却断其后。”张翼受计而退。孔明只教关索护车。众军退去,寨中多设灯火。蛮兵望见,不敢冲突。
공명이 높은 언덕 위에서 엿보니, 남만병들이 벌써 많이 해이해졌다. 이에 장수들을 불러모아 말하기를,“그대들이 용감하게 출전하지 않겠소?”하니, 여러 장수들이 흔연히 출전하려고 했다. 공명이 먼저 조운과 위연을 군막 안으로 불러들여 귀에 대고 낮은 소리로 이러이러하게 하라고 분부했다. 두 사람이 계책을 받고 먼저 갔다. 다시 왕평과 마충을 군막 안으로 불러들이니 그들도 계책을 받아서 떠났다. 다시, 마대를 불러 분부하기를,“내가 이제 여기 세 곳의 영채를 버리고, 강 북쪽으로 물러나겠소. 아군이 일단 물러나면, 그대는 곧 부교를 끊고, 하류로 옮겨가서 거기에서 조운과 위연의 군마를 건네어 주고, 지원하러 오시오.”하니, 마대가 계책을 받고 떠났다. 다시, 장익을 불러 말하기를,“아군이 물러나거든, 영채 안에 등불을 많이 다시오. 맹획이 알면 반드시 추격할 테니, 그대는 그 뒤를 끊으시오.”했다. 장익이 계책을 받고 물러갔다. 공명이, 관색에게 수레를 호위하라 지시했다. 여러 군사가 물러나며, 영채 안에 등불을 많이 설치했다. 남만병들이 멀리서 바라보고도, 감히 쳐들어오지 못했다.
次日平明,孟获引大队蛮兵径到蜀寨之时,只见三个大寨,皆无人马,于内弃下粮草车仗数百余辆。孟优曰:“诸葛弃寨而走,莫非有计否?”孟获曰:“吾料诸葛亮弃辎重而去,必因国中有紧急之事:若非吴侵,定是魏伐。故虚张灯火以为疑兵,弃车仗而去也。可速追之,不可错过。”于是孟获自驱前部,直到西洱河边。望见河北岸上,寨中旗帜整齐如故,灿若云锦;沿河一带,又设锦城。蛮兵哨见,皆不敢进。获谓优曰:“此是诸葛亮惧吾追赶,故就河北岸少住,不二日必走矣。”遂将蛮兵屯于河岸;又使人去山上砍竹为筏,以备渡河;却将敢战之兵,皆移于寨前面。却不知蜀兵早已入自己之境。
다음날 해 뜰 무렵, 맹획이 대규모 남만병을 이끌고, 촉나라 영채에 이르니, 세 곳의 커다란 영채에 아무 인마가 없고, 그 안에 군량과 사료와 수레 수백여 량을 버려두고 갔다. 맹우가 말하기를,“제갈량이 영채를 버리고 가다니, 아무래도 무슨 계략이 있지 않겠습니까?”하니, 맹획이 말하기를,“내가 보기에, 제갈량이 치중(군수물자)을 버리고 간 것은 틀림없이 나라에 긴급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오나라가 침범했거나 아니면, 위나라가 쳐들어 왔겠지. 그러므로 허장성세로 등불을 피워 의심스런 군사로 삼고, 수레를 버리고 달아난 것이다. 빨리 추격해야지,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했다. 이에 맹획이 스스로 선두 부대를 몰아, 곧바로 서이하 물가에 이르렀다. 멀리 북쪽 물가를 바라보니, 영채 안에 기치가 예전처럼 나란하고 아름다운 무늬의 비단처럼 찬란했다. 물가 가까운 일대에 또한 비단으로 성을 세운 듯했다. 남만병들이 순찰하고 모두 감히 전진하지 못했다. 맹획이 맹우에게 말하기를,“이것은 제갈량이 내가 추격하는 것이 두려워서, 일부러 북쪽 물가에 잠시 머문 것이니, 이틀이 안 돼 달아나고 말 것이다.”하고, 곧 남만병들을 물가에 주둔시켰다. 또 사람들을 산 위로 보내어, 대나무를 베어다 뗏목을 만들어, 물을 건널 준비를 했다. 또한 용감히 싸울 병사들을 모조리 영채 앞쪽으로 옮겼다. 그러나, 촉병들이 벌써 자기 경내로 침입한 것을 몰랐다.
是日,狂风大起。四壁厢火明鼓响,蜀兵杀到。蛮兵獠丁,自相冲突,孟获大惊,急引宗族洞丁杀开条路,径奔旧寨。忽一彪军从寨中杀出,乃是赵云。获慌忙回西洱河,望山僻处而走。又一彪军杀出,乃是马岱。孟获只剩得数十个败残兵,望山谷中而逃。见南、北、西三处尘头火光,因此不敢前进,只得望东奔走,方才转过山口,见一大林之前,数十从人,引一辆小车;车上端坐孔明,呵呵大笑曰:“蛮王孟获!天败至此,吾已等候多时也!”
이날, 바람이 미친 듯이 크게 불었다. 사방에서 불이 켜지고 북소리를 울리며, 촉병들이 쏟아져 나왔다. 남만병들과 오랑캐 사내들이 서로 부딪히니, 맹획이 크게 놀라서 서둘러 자신의 종족 사내들을 이끌고 한 줄기 길을 뚫어, 이전 영채로 달아났다. 홀연 한 무리 군사가 그 영채 안에서 튀어나오니 바로 조운이었다. 맹획이 황망히 서이하로 돌아가서 산속 외진 곳으로 달아났다. 그런데 또다시 한 무리 군사가 튀어나오니 바로 마대였다. 맹획이 겨우 패잔병 수십 명을 데리고 산골짜기로 도주했다. 남쪽과 북쪽과 서쪽 세곳에서 먼지와 불길이이 일어나니, 감히 전진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동쪽으로 달아났다. 산어귀를 돌자마자, 큰 숲 앞에서 종자 수십 명이 작은 수레 하나를 끌고 있는데, 수레 위에 공명이 단정히 앉아서, 껄껄 웃으며 말하기를,“만왕 맹획아! 하늘이 이토록 너를 패하게 하니, 내가 기다린지 오래다!”했다.
获大怒,回顾左右曰:“吾遭此人诡计!受辱三次;今幸得这里相遇。汝等奋力前去,连人带车砍为粉碎!”数骑蛮兵,猛力向前。孟获当先呐喊,抢到大林之前,趷踏一声,踏了陷坑,一齐塌倒。大林之内,转出魏延,引数百军来,一个个拖出,用索缚定。孔明先到寨中,招安蛮兵,并诸甸酋长洞丁, 此时大半皆归本乡去了。除死伤外,其余尽皆归降。孔明以酒肉相待,以好言抚慰,尽令放回。蛮兵皆感叹而去。少顷,张翼解孟优至。孔明诲之曰:“汝兄愚迷,汝当谏之。今被吾擒了四番,有何面目再见人耶!”孟优羞惭满面。伏地告求免死。孔明曰:“吾杀汝不在今日。吾且饶汝性命,劝谕汝兄。”令武士解其绳索,放起孟优。优泣拜而去。
맹획이 크게 노해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내가 이 사람의 속임수에 빠져, 세 차례나 모욕을 당했다! 이제 다행히 여기서 만났으니, 너희는 힘을 떨쳐 나아가서, 사람과 수레를 모두 베고 가루로 만들어라!”하니, 남만 기병 몇몇이 맹렬히 돌진했다. 맹획이 앞장서 고함지르며, 큰 숲 앞까지 몰려가지만, 덜커덕 소리와 함께 구덩이를 밟아서 일제히 굴러떨어졌다. 큰 숲 속에서 위연이 돌아나와 수백 군사를 이끌고 와서, 하나하나 끌어내어 밧줄로 묶었다. 공명이 먼저 영채 안에 도착하여 남만병들과 여러 곳 추장과 오랑캐 장정들을 타이르고 항복을 권유했다. 이때 태반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갔고, 죽고 다친 이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투항했다. 공명이 술과 고기로 먹이고, 좋은 말로 달래더니, 모두 풀어주라고 명령했다. 남만병 모두 감격해서 떠났다. 잠시 뒤에 장익이 맹우를 압송해 오니, 공명이 그를 깨우치기를,“네 형이 어리석으면, 네가 당연히 간언했어야 했다. 지금 나에게 네 번이나 잡히고도, 무슨 면목으로 또 보러 왔느냐!”하니, 맹우가 얼굴 가득 부끄러워하며 땅에 엎드려 목숨을 살려달라고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는 않겠다. 내가 또 네 목숨을 살려줄 테니 네 형을 깨우치거라.”하고, 무사들에게 명하여 포박을 풀어, 맹우를 놓아주었다. 맹우가 눈물을 흘리며 절하고 떠나갔다.
不一时,魏延解孟获至。孔明大怒曰:“你今番又被吾擒了,有何理说!”获曰:“吾今误中诡计,死不瞑目!”孔明叱武士推出斩之。获全无惧色,回顾孔明曰:“若敢再放吾回去,必然报四番之恨!”孔明大笑,令左右去其缚,赐酒压惊,就坐于帐中。孔明问曰:“吾今四次以礼相待,汝尚然不服,何也?”获曰:“吾虽是化外之人,不似丞相专施诡计,吾如何肯服?”孔明曰:“吾再放汝回去,复能战乎?”获曰:“丞相若再拿住吾,吾那时倾心降服,尽献本洞之物犒军,誓不反乱。”
얼마 안 되어, 위연이 맹획을 압송해 왔다. 공명이 크게 노해 말하기를,“너는 이번에도 나에게 잡혔으니, 무슨 변명을 하겠느냐!”하니, 맹획이 말하기를,“내가 이번에도 속임수에 빠졌으니, 죽더라도 눈을 감지 못하겠소!”했다. 공명이 무사들에게 소리쳐서 그를 끌어내어 베라고 했다. 맹획이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이, 공명을 돌아보며 말하기를,“만약 나를 다시 풀어줘 돌아가게 한다면, 반드시 네 번 잡힌 한을 풀겠소!”했다. 공명이 크게 웃으며 좌우 사람들에게 명하여 그 포박을 풀게 하고, 술을 내려 진정시키고 군막 안에 같이 앉았다. 공명이 묻기를,“내가 지금까지 네 차례나 그대를 예우했거늘, 아직도 승복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오?”하니, 맹획이 말하기를,“내가 비록 천자의 교화를 받지 못한 땅의 사람이지만, 같지 않게 승상께서 오로지 속임수를 썼으니, 내가 어떻게 기꺼이 승복하겠소?”했다. 공명이 말하기를,“내가 다시 그대를 풀어줘서 돌아가게 한다면, 다시 싸울 수 있겠소?”하니, 맹획이 말하기를,“승상께서 다시 나를 붙잡는다면, 그때 마음을 다해 항복하고, 고을의 물자를 모두 바쳐 군사들을 호궤하고, 맹세코 반란하지 않겠소.”했다.
孔明即笑而遣之。获忻然拜谢而去。于是聚得诸洞壮丁数千人,望南迤逦而行。早望见尘头起处,一队兵到;乃是兄弟孟优,重整残兵,来与兄报仇。兄弟二人,抱头相哭,诉说前事。优曰:“我兵屡败,蜀兵屡胜,难以抵当。只可就山阴洞中,退避不出。蜀兵受不过暑气,自然退矣。”获问曰:“何处可避?”优曰:“此去西南有一洞,名曰秃龙洞。洞主朵思大王,与弟甚厚,可投之。”
공명이 즉시 웃으며 그를 보내주니, 맹획이 기쁜 마음으로 절을 올려 사례하고 떠났다. 이에 여러 고을의 장정 수천 인을 모아서 남쪽으로 구불구불 갔다. 멀리 보니 먼지가 일어나는 곳에, 한 무리 병력이 이르니 동생 맹우가 패잔병을 다시 정돈해서, 형과 함께 복수하러 온 것이었다. 형제 두 사람이 서로 껴안고 통곡하고, 앞서 일어난 일들을 감동적으로 이야기했다. 맹우가 말하기를,“아군이 여러번 패전하고, 촉군이 여러번 이겼으니, 막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산속 으슥한 고을로 찾아가 숨어서, 나오지 않는 수밖에 없습니다. 촉병이 더위를 이기지 못해, 자연히 물러갈 것입니다.”하니, 맹획이 묻기를,“어디로 피해야겠느냐?”했다. 맹우가 말하기를,“여기에서 서남쪽으로 한 고을이 있으니, 이름하여 독룡동이라고 합니다. 고을 주인은 타사대왕인데 저와 교분이 아주 두터우니 가볼 만합니다.”했다.
于是孟获先教孟优到秃龙洞,见了朵思大王。朵思慌引洞兵出迎,孟获入洞,礼毕,诉说前事。朵思曰:“大王宽心。若蜀兵到来,令他一人一骑不得还乡,与诸葛亮皆死于此处!”获大喜,问计于朵思。朵思曰:“此洞中止有两条路:东北上一路,就是大王所来之路,地势平坦,土厚水甜,人马可行;若以木石垒断洞口,虽有百万之众,不能进也。西北上有一条路,山险岭恶,道路窄狭;其中虽有小路,多藏毒蛇恶蝎;黄昏时分,烟瘴大起,直至巳,午时方收,惟未、申、酉三时,可以往来;水不可饮,人马难行。
이에, 맹획이 먼저 맹우를 독룡동으로 보내어 타사대왕을 만나게 했다. 타사가 황급히 병력을 이끌고 맞이하러 나와서, 맹획이 고을로 들어가 예를 마치고, 앞서 일어난 일들을 하소연했다. 타사가 말하기를,“대왕은 마음을 놓으시오. 만약 촉병이 이곳으로 온다면 그들을 사람 한 명, 말 한 마리를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어서, 제갈량과 더불어 모조리 이곳에서 죽게 만들겠소!”했다. 맹획이 크게 기뻐하며, 타사에게 계책을 물으니, 타사가 말하기를,“이 고을에 길이 두 갈래 있는데, 동북쪽으로 난 길은 바로 대왕께서 오신 길이니, 지세가 평탄하고 땅이 기름지고 물이 달아서, 사람과 말이 다닐 수 있소. 만약 나무와 돌로써 보루를 쌓아, 고을 어귀를 가로막으면, 비록 백만대군이라도 나아가지 못하오. 서북쪽으로 난 길은 산과 고개가 험악한데 도로가 좁소. 그쪽에 좁은 길이 있기는 하지만, 독사와 전갈들이 우글거리오. 황혼 무렵이면 독기가 크게 피어올라, 바로 사시(오전 열시쯤)에 이르고 오시(정오 무렵)에야 비로소 수그러지고, 오로지 미시(오후 2시쯤) 신시(오후 4시쯤) 유시(오후 6시쯤)에만 왕래할 수 있소. 물도 마실 수 없으니, 인마들이 행군하기 어렵소.
此处更有四个毒泉:一名哑泉,其水颇甜,人若饮之,则不能言,不过旬日必死;二曰灭泉,此水与汤无异,人若沐浴,则皮肉皆烂,见骨必死;三曰黑泉,其水微清,人若溅之在身,则手足皆黑而死;四曰柔泉,其水如冰,人若饮之,咽喉无暖气,身躯软弱如绵而死。此处虫鸟皆无,惟有汉伏波将军曾到;自此以后,更无一人到此。今垒断东北大路,令大王稳居敝洞,若蜀兵见东路截断,必从西路而入;于路无水,若见此四泉,定然饮水,虽百万之众,皆无归矣。何用刀兵耶!”孟获大喜,以手加额曰:“今日方有容身之地!”又望北指曰:“任诸葛神机妙算,难以施设!四泉之水,足以报败兵之恨也!”自此,孟获、孟优终日与朵思大王筵宴。
이곳에 네 군데 독샘이 있소. 첫째는 이름하여 아천이니, 물맛이 아주 달지만 사람이 마시면, 말을 하지 못하고 열흘이 못 돼 반드시 죽소. 둘째는 이름하여 멸천이니, 이 물은 온천과 다르지 않지만, 사람이 목욕을 하면 피부와 살이 문드러지고, 뼈가 드러나 반드시 죽소. 셋째는 이름하여 흑천이니, 물이 조금 맑지만, 몸에 그 물을 뿌리면 손발이 모두 검게 되면서 죽소. 넷째는 이름하여 유천이니, 그 물이 얼음 같은데, 사람이 마시면 따뜻한 것을 삼키지 못하고, 몸뚱이가 솜처럼 연약해져서 죽소. 이들 샘에는 벌레나 새도 없고, 오로지 한나라 복파장군(마원)이 일찍이 온 적이 있으나, 그 후로 다시는 아무도 오지 못했소. 이제 동북쪽 큰길에 보루를 쌓아 막고, 대왕께서 이곳에 은거하시면, 촉병들이 동쪽 길이 끊긴 것을 보고, 틀림없이 서쪽 길로 들어올 것이오. 그 길에는 물이 없어, 이들 네 군데 샘물을 발견하면, 반드시 그 물을 마실 테니, 비록 백만대군이라도, 아무도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오. 어찌 창칼을 쓸 필요가 있겠소!”했다. 맹획이 크게 기뻐하며 손을 이마에 얹고 말하기를,“오늘에야 바야흐로 몸을 편히 둘 땅을 찾았소이다!”했다. 그리고 북쪽을 가리키며 말하기를,“제갈량이 신기묘산을 가졌더라도 쓰기 어렵겠구나! 네 군데 샘물이라면 패전의 원한을 갚을 수 있겠구나!”했다. 이에 맹획과 맹우가 하루종일 타사대왕과 잔치를 벌였다.
却说孔明连日不见孟获兵出,遂传号令教大军离西洱河,望南进发。此时正当六月炎天,其热如火。有后人咏南方苦热诗曰:“山泽欲焦枯,火光覆太虚。不知天地外,暑气更何如!”又有诗曰:“赤帝施权柄,阴云不敢生。云蒸孤鹤喘,海热巨鳌惊。忍舍溪边坐?慵抛竹里行。如何沙塞客,擐甲复长征!”
한편, 공명은 맹획이 연일 출병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마침내 명령을 전하여 대군을 서이하 건너서 남쪽으로 진군시켰다. 이때가 마침 6월 불볕더위라 그 열기가 마치 불과 같았다. 뒷사람이 남쪽 지방의 심한 무더움을 시로 읊기를,“ 산천이 타는 듯이 마르고, 불볕이 하늘을 뒤덮었네. 하늘과 땅의 바깥은 모르겠지만, 더운 기운이 어찌 이보다 더하랴!”했다. 또 시를 지어 이르기를,“남쪽 신이 권력을 잡으니, 먹구름도 감히 생기지 못하네. 구름이 찌는 듯하니 외로운 학도 헐떡이고, 바다가 뜨거우니 큰 자라도 놀라네. 시냇가에 앉아 차마 떠나지 못하고, 게을리 던져버리고 대숲으로 들어가네. 그러나 변방의 군사들은 갑옷 입고 다시 먼 정벌을 어떻게 떠날까!”했다.
孔明统领大军,正行之际,忽哨马飞报:“孟获退往秃龙洞中不出,将洞口要路垒断,内有兵把守;山恶岭峻,不能前进。”孔明请吕凯问之,凯曰:“某曾闻此洞有条路,实不知详细。”蒋琬曰:“孟获四次遭擒,既已丧胆,安敢再出?况今天气炎热,军马疲乏,征之无益;不如班师回国。”孔明曰:“若如此,正中孟获之计也。吾军一退,彼必乘势追之。今已到此,安有复回之理!”遂令王平领数百军为前部;却教新降蛮兵引路,寻西北小径而入。
공명이 대군을 거느리고 행군하고 있을 때, 문득 정찰 기병이 급히 알리기를,“맹획이 독룡동 속으로 물러나서 나오지 않고, 그 고을 어귀 길목마다 보루를 쌓아 가로막았으며, 안에서 병사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산은 험하고 고개는 높아서 전진할 수가 없습니다.”했다. 공명이 여개를 불러 물으니, 여개가 말하기를,“제가 일찍이 듣자니, 이 고을에 몇 갈래 길이 있지만, 사실 상세한 것을 모릅니다.”했다. 장완이 말하기를,“맹획이 네 번이나 잡혀서 이미 간담이 떨어졌는데, 어찌 감히 다시 나오겠습니까? 하물며 지금 날씨가 불 같이 뜨거워서 군마들이 피로하고, 정벌해도 이익이 없습니다. 군사를 거둬 나라로 돌아가는 것만 못합니다.”했다. 공명이 말하기를,“그렇게 한다면 바로 맹획의 계책에 빠지는 것이오. 아군이 한번 물러나면, 그가 틀림없이 그 틈을 노려 추격할 것이오. 이제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어찌 되돌아갈 수가 있겠소!”하고, 마침내 왕평을 시켜 수백 군마를 거느려서 선봉을 맡게 하고, 새로 항복한 남만 병사를 길잡이로 삼아, 서북쪽 좁은 길을 찾아 들어갔다.
前到一泉,人马皆渴,争饮此水。王平探有此路,回报孔明。比及到大寨之时,皆不能言,但指口而已。孔明大惊,知是中毒,遂自驾小车,引数十人前来看时,见一潭清水,深不见底,水气凛凛,军不敢试。孔明下车,登高望之,四壁峰岭,鸟雀不闻,心中大疑。忽望见远远山冈之上,有一古庙。孔明攀藤附葛而到,见一石屋之中,塑一将军端坐,旁有石碑,乃汉伏波将军马援之庙:因平蛮到此,土人立庙祀之。孔明再拜曰:“亮受先帝托孤之重,今承圣旨,到此平蛮;欲待蛮方既平,然后伐魏吞吴,重安汉室。今军士不识地理,误饮毒水,不能出声。万望尊神,念本朝恩义,通灵显圣,护佑三军!”
먼저 첫째 샘에 이르러 인마들이 모두 목이 말라서 앞다퉈 그 물을 마셨다. 왕평이 이 길을 찾아낸 것을 공명에게 알리러 돌아갔다. 본부 영채에 이를 즈음, 모두 말을 하지 못하고 오로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킬 뿐이었다. 공명이 크게 놀라 중독된 것임을 알고, 곧 스스로 작은 수레를 타고, 몇십 명을 이끌고 앞으로 가서 살피보았다. 연못 하나가 물이 맑고, 바닥이 안 보이게 깊은데, 물 기운이 늠름해서 군사들이 감히 마시려 하지 않았다. 공명이 수레에서 내려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니, 사방이 높은 고개이고 까막까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마음 속으로 크게 의심했다. 그런데 먼 산등성이 위를 바라보니 오래된 사당이 하나 있었다. 공명이 등나무와 칡을 붙잡으며 올라 도착하니, 돌로 쌓은 집 안에, 한 장군의 조각 상이 단정히 앉아 있고, 그 곁에 비석이 있으니, 바로 한나라 복파장군 마원의 사당이었다. 남만을 평정하러 이곳에 왔기에 원주민들이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낸 것이었다. 공명이 두 번 절하고 말하기를,“제가 선제(유현덕)의 고아 유선을 맡긴 중대한 임무를 받고, 이제 천자의 교지를 받들어 남만을 평정하러 이곳에 왔습니다. 먼저 남만을 평정한 뒤에 위나라를 정벌하고 오나라를 병탄해서, 한나라 황실을 다시 안정시키려 합니다. 지금 군사들이 지리를 알지 못해서 독이 든 물을 잘못 마셔서 말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존경하는 신께 만번 바라옵건대, 한나라 왕조의 은의를 생각하시어, 신령께서 감응하여 모습을 드러내어 3군을 도와주소서!”했다.
祈祷已毕,出庙寻土人问之。隐隐望见对山一老叟扶杖而来,形容甚异。孔明请老叟入庙,礼毕,对坐于石上。孔明问曰:“丈者高姓?”老叟曰:“老夫久闻大国丞相隆名,幸得拜见。蛮方之人,多蒙丞相活命,皆感恩不浅。”孔明问泉水之故,老叟答曰:“军所饮水,乃哑泉之水也,饮之难言,数日而死。此泉之外,又有三泉:东南有一泉,其水至冷,人若饮之,咽喉无暖气,身躯软弱而死,名曰柔泉;正南有一泉,人若溅之在身,手足皆黑而死,名曰黑泉;西南有一泉,沸如热汤,人若浴之,皮肉尽脱而死,名曰灭泉。敝处有此四泉,毒气所聚,无药可治,又烟瘴甚起,惟未、申、酉三个时辰可往来;余者时辰,皆瘴气密布,触之即死。”
기도를 마치고, 사당을 나와 원주민을 찾아 물어보려 했다. 은은히 건너편 산을 바라보니,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오는데, 그 모습이 몹시 기이했다. 공명이 노인을 사당으로 청해서, 인사를 마치고 돌 위에 마주 앉았다. 공명이 묻기를,“어르신의 높은 성명은 어찌 되십니까?”하니, 그 노인이 말하기를,“이 늙은이도 큰 나라 승상의 높은 명성을 들은지 오래인데, 다행히 만나뵙고 인사 드립니다. 오랑캐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승상께서 목숨을 살려주신 은혜를 입어, 모두 은혜를 고맙게 여김이 적지 않습니다.”했다. 공명이 그 샘물이 어찌된 까닭인지 묻자, 노인이 대답하기를,“군사들이 마신 물은 바로‘아천'의 물인데, 마시면 말을 하기 어렵고, 며칠 안에 죽고 맙니다. 이 샘 외에도, 샘이 셋 더 있는데, 동남쪽의 샘은 그 물이 지극히 차갑고. 사람이 마시면 뜨거운 것을 삼키지 못하고, 몸뚱이가 연약해져 죽고 마니, 이름하여 ‘유천’입니다. 정남쪽에 있는 샘은 사람이 만약 그 물을 몸에 뿌리면, 손발이 모두 거멓게 변하며 죽고 마니, 이름하여 ‘흑천'입니다. 서남쪽에 있는 샘은 열탕처럼 끓는데, 사람이 만약 목욕하면 피부와 살이 모두 벗겨지며 죽고 마니, 이름하여 ‘멸천'입니다. 이곳에 이렇게 샘이 넷 있으니 독기가 쌓여 어떤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습니다. 또한 독한 기운이 심하게 솟아올라, 오로지 미시(오후 2시쯤) 신시(오후 4시쯤) 유시(오후 6시쯤) 세 개 시간에만 왕래할 수 있습니다. 다른 시간에는 모두 독한 기운이 짙어서 닿는 즉시 죽습니다.”했다.
孔明曰:“如此则蛮方不可平矣。蛮方不平,安能并吞吴、魏,再兴汉室?有负先帝托孤之重,生不如死也!”老叟曰:“丞相勿忧。老夫指引一处,可以解之。”孔明曰:“老丈有何高见,望乞指教。”老叟曰:“此去正西数里,有一山谷,入内行二十里,有一溪名曰万安溪。上有一高士,号为万安隐者;此人不出溪有数十余年矣。其草庵后有一泉,名安乐泉。人若中毒,汲其水饮之即愈。有人或生疥癞,或感瘴气,于万安溪内浴之,自然无事,更兼庵前有一等草,名曰薤叶芸香。人若口含一叶,则瘴气不染。丞相可速往求之。”孔明拜谢,问曰:“承丈者如此活命之德,感刻不胜。愿闻高姓。”
공명이 말하기를,“이렇다면 남만은 평정할 수 없게 됩니다. 남만을 평정하지 못하면, 어찌 오나라와 위나라를 병탄해서 한실을 중흥하겠습니까? 선제의 탁고지중(고아를 맡긴 중요한 임무)을 저버린다면, 살아도 죽은 것보다 못합니다!”하니, 노인이 말하기를,“승상께서는 걱정하시 마십시오. 이 늙은이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시면, 해결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했다. 공명이 말하기를,“어르신께서 어떤 의견이 있으시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하니, 노인이 말하기를,“여기에서 정서쪽으로 몇 리 가면, 산골짜기가 하나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 2십 리를 가면, 만안계라는 시냇물이 있습니다. 그 상류에 은거해 사는 선비가 한 분 계시는데, 호를 만안은자라고 합니다. 그 분은 그 골짜기를 나오지 않은 지 수십 년입니다. 그의 암자 뒤에 샘이 하나 있으니, 이름하여 안락천입니다. 사람이 중독되더라도, 그 샘물을 길어서 마시면 즉시 낫습니다. 누구라도 나병이 생기거나, 열대의 풍토병에 걸리더라도, 만안계 안에서 목욕을 하면, 자연히 무사하게 됩니다. 아울러 암자 앞에 한가지 풀이 있으니, 이름하여 해엽운향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그 잎을 입에 머금으면, 열대 풍토병에 걸리지 않게 됩니다. 승상께서 어서 가서 구하시기 바랍니다.”했다. 공명이 고개 숙여 고마워하며 묻기를,“어르신 덕분에 이렇게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됐으니, 감격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바라옵건대, 높으신 성명을 알고 싶습니다.”했다.
老叟入庙曰:“吾乃本处山神,奉伏波将军之命,特来指引。”言讫、喝开庙后石壁而入。孔明惊讶不已,再拜庙神,寻旧路上车,回到大寨。次日,孔明备信香、礼物,引王平及众哑军,连夜望山神所言去处,迤逦而进。入山谷小径,约行二十余里,但见长松大柏,茂竹奇花,环绕一庄;篱落之中,有数间茅屋,闻得馨香喷鼻。孔明大喜,到庄前扣户,有一小童出。孔明方欲通姓名,早有一人,竹冠草履,白袍皂绦,碧眼黄发,忻然出曰:“来者莫非汉丞相否?”孔明笑曰:“高士何以知之?”
노인이 사당으로 들어가며 말하기를,“저는 원래 이곳의 산신인데, 복파장군의 명을 받들어 특별히 알려 드리러 왔습니다.”하고 말을 마치자, 소리를 쳐서 사당 뒤의 석벽을 열고 들어갔다. 공명이 놀라워하기를 마지않으며, 사당의 신에게 재배하고, 원래 왔던 길을 찾아 수레를 타고 본부 영채로 돌아왔다. 다음날, 공명이 향과 예물을 마련하여, 왕평과 벙어리 군사들을 이끌고 밤낮없이, 산신이 알려준 거처 쪽으로 줄줄이 달려갔다. 산골짜기 좁은 길로 들어가서, 약 2십여 리를 가자, 큰 소나무와 잣나무, 우거진 대나무와 기이한 꽃들이, 한 집을 둘러싼 것을 보았다. 울타리 안에, 몇 간의 초가집 있는데, 좋은 향기가 코를 찔렀다. 공명이 크게 기뻐하며, 그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니, 작은 아이가 나왔다. 공명이 막 성명을 알리려는데 이미 한 사람이 나타났다. 대나무 갓을 쓰고 짚신을 신고, 하얀 도포에 검은 끈 띠를 두른 차림으로, 눈은 파랗고 머리카락은 노랬다. 그가 흔쾌히 나와서 말하기를,“오신 분은 한나라 승상이 아니십니까?”했다. 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고사(뜻이 크고 세속에 물들지 아니한 사람)께서 어찌 아셨습니까?”했다.
隐者曰:“久闻丞相大纛南征,安得不知!”遂邀孔明入草堂。礼毕,分宾主坐定。孔明告曰:“亮受昭烈皇帝托孤之重,今承嗣君圣旨,领大军至此,欲服蛮邦,使归王化。不期孟获潜入洞中,军士误饮哑泉之水。夜来蒙伏波将军显圣,言高士有药泉,可以治之。望乞矜念,赐神水以救众兵残生。”隐者曰:“量老夫山野废人,何劳丞相枉驾。此泉就在庵后。”教取来饮。于是童子引王平等一起哑军,来到溪边,汲水饮之;随即吐出恶涎,便能言语。童子又引众军到万安溪中沐浴。隐者于庵中进柏子茶、松花菜,以待孔明。
그 은자가 말하기를,“승상께서 큰 깃발을 휘날리며 남쪽을 정벌하신다고 들은지 오래인데, 어찌 모르겠습니까!”하고, 곧 공명을 초당으로 불러들였다. 인사를 마치고 손님과 주인으로 나눠 자리잡았다. 공명이 고하기를,“저는 소열황제(유현덕)의 탁고지중(고아를 맡긴 중요한 임무)을 받아, 이제 사군(뒤를 이은 왕)의 성지를 받들어, 대군을 거느리고 이곳에 와서, 남만을 복속시켜 천자의 교화를 펴고자 합니다. 뜻밖에 맹획이 고을 속에 숨어들고, 군사들이 아천(벙어리가 되는 샘)의 물을 잘못 마셨습니다. 밤사이 복파장군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고사께서 계신 곳에 약샘이 있는데, 그 물로 나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바라건대 불쌍히 여기시어, 그 신령스러운 물을 내려주시어, 병사들의 남은 목숨을 구해주십시오.”하니, 은자가 말하기를,“이 늙은이는 산과 들에 사는 쓸모없는 사람인데, 어찌 승상께서 힘들게 왕림하셨습니까? 그 샘은 바로 암자 뒤에 있습니다.”하고, 물을 마시러 가라고 했다. 이에 동자가 왕평과 벙어리 군사들을 이끌고 시냇가에 도착하여 물을 길어 마시게 했다. 그러자 곧 나쁜 침을 토해 내고 바로 말을 할 수가 있었다. 동자가 다시 군사들을 이끌고‘만안계’로 가서 목욕을 하게 했다. 은자가 암자 안에서 잣차와 송화단(오리알이나 계란을 삭힌 것)을 내어 공명을 대접했다.
隐者告曰:“此间蛮洞多毒蛇恶蝎,柳花飘入溪泉之间,水不可饮;但掘地为泉,汲水饮之方可。”孔明求“薤叶芸香”,隐者令众军尽意采取:“各人口含一叶,自然瘴气不侵。”孔明拜求隐者姓名,隐者笑曰:“某乃孟获之兄孟节是也。”孔明愕然。隐者又曰:“丞相休疑,容伸片言:某一父母所生三人:长即老夫孟节,次孟获,又次孟优。父母皆亡。二弟强恶,不归王化。某屡谏不从,故更名改姓,隐居于此。今辱弟造反,又劳丞相深入不毛之地,如此生受,孟节合该万死,故先于丞相之前请罪。”
은자가 고하기를,“이곳 남만 고을에는 독사와 전갈이 많고, 버들개지가 흩날려 시내와 샘물에 떨어지니 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다만, 땅을 파서 샘물이 나오면, 비로소 물을 길어서 마실 수 있습니다.”했다. 공명이 ‘해엽운향’을 구하니 은자가 군사들에게 마음껏 채취하라고 했다. (말하기를)“각자 입에 한 잎씩 머금으면 자연히 열대의 전염병이 침범하지 않습니다.”했다, 공명이 고개숙여 은자의 성명을 묻자, 은자가 웃으며 말하기를,“저는 바로 맹획의 형 맹절입니다.”했다. 공명이 악하고 놀라니, 은자가 다시 말하기를,“승상은 의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한 말씀 드리게 해주십시오. 저희 부모님께서 세 사람을 낳으셨습니다. 맏이는 바로 이 늙은이 맹절이고, 둘째가 맹획, 막내가 맹우입니다. 부모님 모두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둘째가 억세고 모질어서 천자의 교화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여러 번 충고했으나 따르지 않기에, 성명을 고쳐서 이곳에 은거했습니다. 이제 못난 아우가 반란을 일으키고, 또한 승상을 수고롭게 이 불모의 땅으로 깊이 들어오시게 만들어, 이렇게 수고를 끼쳤으니, 이 맹절은 만번 죽어 마땅합니다. 이러므로, 먼저 승상 앞에 죄를 청합니다.”했다.
孔明叹曰:“方信盗跖、下惠之事,今亦有之。”遂与孟节曰:“吾申奏天子,立公为王,可乎?”节曰:“为嫌功名而逃于此,岂复有贪富贵之意!”孔明乃具金帛赠之。孟节坚辞不受。孔明嗟叹不已,拜别而回。后人有诗曰:“高士幽栖独闭关,武侯曾此破诸蛮。至今古木无人境,犹有寒烟锁旧山。”孔明回到大寨之中,令军士掘地取水。掘下二十余丈,并无滴水;凡掘十余处,皆是如此。军心惊慌。孔明夜半焚香告天曰:“臣亮不才,仰承大汉之福,受命平蛮。今途中乏水,军马枯渴。倘上天不绝大汉,即赐甘泉!若气运已终,臣亮等愿死于此处!”是夜祝罢,平明视之,皆得满井甘泉。后人有诗曰:“为国平蛮统大兵,心存正道合神明。耿恭拜井甘泉出,诸葛虔诚水夜生。”
공명이 탄식하기를,“이제야 비로소 도척(춘추시대의 큰 도적)과 유하혜(도척의 동생으로 현인)의 일을 믿을 수 있겠습니다. 지금도 그런 일이 있군요.”하고, 곧 맹절에게 말하기를,“제가 천자께 상주하여, 공을 남만왕으로 세워도 좋겠습니까?”하니, 맹절이 말하기를,“부귀공명을 싫어해서 이곳으로 도피했거늘, 어찌 다시 부귀를 탐할 마음이 있겠습니까!”했다. 공명이 황금과 비단을 맹절에게 주었으나 맹절이 굳게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공명이 감탄해 마지않으며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고사가 문을 닫고 조용히 머물던 곳에, 무후가 일찍이 여기에서 오랑캐들을 깨뜨렸네. 이제는 오래된 나무뿐이고 사람은 살지 않는데, 다만 차가운 안개만이 옛 산을 감도네.”했다. 공명이 본부 영채 안으로 돌아와서, 군사들을 시켜 땅을 파서 물을 얻게 했다. 아래로 스무 길 남짓 파들어가도, 한 방울의 물도 없다. 무릇 열 군데 넘게 팠지만, 모두가 그랬다. 군사들의 마음이 놀라고 당황했다. 공명이 한밤에 향을 불사르며 하늘에 고하기를,“신 제갈량이 재주가 없으나, 한나라의 복을 우러러 받들고, 천자의 명을 받아 남만을 평정하고자 하옵니다. 지금 도중에 마실 물이 없으니, 군마들이 고갈에 시달립니다. 하느님께서 한나라를 끊지 않으실 것이라면, 어서 샘물을 내려주소서! 한나라의 운명이 이미 끝났다면, 신 제갈량 등은 바라옵건대 이곳에서 죽기를 바랍니다!”했다. 이날 밤 기도를 마치고, 해뜰 무렵에 보니, 모든 우물에 샘물이 가득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나라를 위해 남만을 평정할 큰 병력을 이끌고, 마음은 바른 도리에 머물고 천지신명과 함께 하네. 한나라 경공이 우물에 기도하자 감천이 솟아올랐고, 제갈공명이 정성을 다하자 밤새 샘물이 솟아올랐네.”했다.
孔明军马既得甘泉,遂安然由小径直入秃龙洞前下寨。蛮兵探知,来报孟获曰:“蜀兵不染瘴疫之气,又无枯渴之患,诸泉皆不应。”朵思大王闻知不信,自与孟获来高山望之。只见蜀兵安然无事,大桶小担,搬运水浆,饮马造饭。朵思见之,毛发耸然,回顾孟获曰:“此乃神兵也!”获曰:“吾兄弟二人与蜀兵决一死战,就殒于军前,安肯束手受缚!”朵思曰:“若大王兵败,吾妻子亦休矣。当杀牛宰马,大赏洞丁,不避水火,直冲蜀寨,方可得胜。”于是大赏蛮兵。
공명의 군마들이 감천을 얻은 뒤, 곧 편안히 좁은 길을 따라 독룡동 앞으로 들어가서 영채를 세웠다. 남만 병사들이 탐지하여 맹획에게 와서 알리기를,“촉병들이 유행성 열병에도 걸리지 않고, 물이 고갈되는 환란도 겪지 않았을 뿐더러, 모든 독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했다. 타사대왕이 듣고도 믿지 못해, 맹획과 더불어 높은 산으로 가서 바라보았다. 그런데 촉병들이 편안하고 무사하며 크고 작은 통으로 물을 운반해서 말에게 먹이고 밥을 지었다. 타사가 이것을 보더니, 온몸의 털이 쭈뼛 서서, 맹획을 돌아보며 말하기를,“이것은 신이 보낸 군사요!”했다. 맹획이 말하기를,“우리 형제 두 사람은 촉병과 한바탕 죽기로 싸워서 싸움터에서 죽을지언정, 어찌 기꺼이 속수무책으로 오라줄을 받겠소!”하니, 타사가 말하기를,“만약 대왕께서 패전하면 내 처자식도 끝장이오. 마땅히 소와 말을 잡아, 고을의 사내들에게 크게 음식을 주어 위로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곧장 촉나라 영채에 돌격해야 비로소 이길 수 있소.”했다. 이에 남만 병사들을 크게 음식을 주어 위로했다.
正欲起程,忽报洞后迤西银冶洞二十一洞主杨锋引三万兵来助战。孟获大喜曰:“邻兵助我,我必胜矣!”即与朵思大王出洞迎接。杨锋引兵入曰:“吾有精兵三万,皆披铁甲,能飞山越岭,足以敌蜀兵百万;我有五子,皆武艺足备。愿助大王。”锋令五子入拜,皆彪躯虎体,威风抖擞。孟获大喜,遂设席相待杨锋父子。酒至半酣,锋曰:“军中少乐,吾随军有蛮姑,善舞刀牌,以助一笑。”获忻然从之。
막 길을 떠나려는데, 갑자기 보고하기를, 독룡동 뒤 약간 서쪽 은야동의 우두머리이자, 남만의 21개 고을의 우두머리인 양봉이 3만 병력을 이끌고 싸움을 도우러 왔다고 했다. 맹획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이웃의 병력도 나를 도우니, 내가 반드시 이길 것이오!”하고, 즉시 타사대왕과 더불어 독룡동을 나가서 영접했다. 양봉이 병력을 이끌고 들어와서 말하기를,“나에게 정예병 3만이 있고 모두 철갑을 입은데다 능히 산과 고개를 나는 듯이 넘으니, 촉병을 백만 명이라도 대적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나에게 아들이 다섯 있는데 모두 무예를 잘 갖추었습니다. 바라건대 대왕을 돕고 싶습니다.”하고, 양봉이 다섯 아들을 불러 인사를 시키니, 모두가 몸이 표범이나 호랑이 같고 위풍당당했다. 맹획이 크게 기뻐하며, 곧 연회를 베풀어 양봉 부자를 대접했다. 술이 거나해지자, 양봉이 말하기를,“군중에 작은 즐길 거리가 있습니다. 저를 따르는 군사 중에 칼과 방패로 춤을 잘 추는 여인들이 있는데, 이로써 한번 웃어볼 수 있습니다.”하니, 맹획이 흔쾌히 따랐다.
须臾,数十蛮姑,皆披发跣足,从帐外舞跳而入,群蛮拍手以歌和之。杨锋令二子把盏。二子举杯诣孟获、孟优前。二人接杯,方欲饮酒,锋大喝一声,二子早将孟获、孟优执下座来。朵思大王却待要走,已被杨锋擒了。蛮姑横截于帐上,谁敢近前。获曰:“‘兔死狐悲,物伤其类’。吾与汝皆是各洞之主,往日无冤,何故害我?”锋曰:“吾兄弟子侄皆感诸葛丞相活命之恩,无可以报。今汝反叛,何不擒献!”
잠시 뒤, 수십 명의 남만 여인들이 모두 머리를 풀어헤치고 맨발로 장막 밖에서 춤추며 들어오니, 오랑캐들이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불러 어울렸다. 양봉이 두 아들에게 술을 따르라고 하니, 두 아들이 술잔을 들어 맹획과 맹우 앞으로 갔다. 두 사람이 술잔을 받아, 막 술을 마시려는데, 양봉이 크게 소리를 지르니, 두 아들이 재빨리 맹획과 맹우를 붙잡아 자리 아래로 끌어 내렸다. 타사대왕이 이를 보고 달아나려는 것을 양봉이 벌써 붙잡았다. 남만 여인들이 위에서 가로막으니 누가 감히 접근하겠는가? 맹획이 말하기를,“옛말에,‘토끼가 죽으면 여우도 슬퍼하고, 짐승도 같은 무리의 불행을 슬퍼한다.’고 했소. 나와 그대는 모두 각 고을의 주인이고, 지난날 아무 원한도 없었는데, 무슨 까닭으로 나를 해치는 것이오?”하니, 양봉이 말하기를,“우리 형제와 아들과 조카 모두가 제갈 승상께서 목숨을 살려주신 은혜에 감격했지만, 보답할 길이 없었다. 이제 네가 반란하는데, 어찌 사로잡아 바치지 않겠느냐!”했다.
于是各洞蛮兵,皆走回本乡。杨锋将孟获、孟优、朵思等解赴孔明寨来。孔明令入,杨锋等拜于帐下曰:“某等子侄皆感丞相恩德,故擒孟获、孟优等呈献。”孔明重赏之,令驱孟获入。孔明笑曰:“汝今番心服乎?”获曰:“非汝之能,乃吾洞中之人,自相残害,以致如此。要杀便杀,只是不服!”孔明曰:“汝赚吾入无水之地,更以哑泉、灭泉、黑泉、柔泉如此之毒,吾军无恙,岂非天意乎?汝何如此执迷?”
이에 각 고을의 남만병들이 모두 고향으로 달아나 되돌아갔다. 양봉이 맹획, 맹우, 타사대왕을 공명의 영채로 압송해 왔다. 공명이 불러들이니 양봉 등이 군막 아래에서 절을 올리며 말하기를,“저희 아들과 조카 모두가 승상의 은덕을 입었기에, 맹획과 맹우 등을 사로잡아 바치옵니다.”했다. 공명이 그에게 크게 상을 내리고 맹획을 끌고 오게 했다. 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그대가 이번에는 마음으로 복종하겠소?”하니, 맹획이 말하기를,“그대가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 고을 사람이 스스로 나를 모질게 해쳐서, 이렇게 된 것이오. 죽일 테면 죽이시오! 그러나 승복하지는 못하겠소!”했다. 공명이 말하기를,“그대는 우리를 마실 물이 없는 곳으로 꾀어서, 아천, 멸천, 흑천, 유천 이렇게 독이 든 샘물로 해치려 했으나 우리 군사는 아무 탈이 없었으니,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겠소? 그대가 어찌하여 어리석게 고집을 부리오?”했다.
获又曰:“吾祖居银坑山中,有三江之险,重关之固。汝若就彼擒之,吾当子子孙孙,倾心服事。”孔明曰:“吾再放汝回去,重整兵马,与吾共决胜负;如那时擒住,汝再不服,当灭九族。”叱左右去其缚,放起孟获。获再拜而去。孔明又将孟优并朵思大王皆释其缚,赐酒食压惊。二人悚惧,不敢正视。孔明令鞍马送回。正是:深临险地非容易,更展奇谋岂偶然!
맹획이 또 말하기를,“내게는 조상대대로 살아온 은갱산이 있는데, 삼강이 험준하고 요새가 겹쳐서 견고하오. 그대가 만약 그곳으로 가서도 나를 잡는다면, 나는 마땅히 자자손손 마음을 다해 복종하겠소.”하니, 공명이 말하기를,“내가 다시 그대를 풀어주어 돌아가게 할 테니, 병마들을 엄중히 정비해서 나와 더불어 승부를 겨뤄보시오. 만약 그때 사로잡히고도 그대가 복종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그대의 구족을 멸하겠소.”했다. 좌우의 사람들에게 소리쳐서 맹획의 포박을 풀어주고 일으켜 세우게 했다. 맹획이 재배하고 떠났다. 공명이 또한 맹우와 타사대왕 둘 다 포박을 풀어주고, 술과 밥을 내리며 안심시켰다. 두 사람이 송구스러워서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공명이 영을 내려서 말과 안장을 내어주어 돌아가게 했다. 이야말로, 험한 땅에 깊이 들어옴도 쉬운 일이 아닌데, 다시 기발한 계책을 펼치니 어찌 우연이랴!
未知孟获整兵再来,胜负如何,且看下文分解。
맹획이 병력을 정돈해 다시 오면, 승부가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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