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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머나 먼 국민주권
헌법 제1조 제2항 :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자생적 정당성(Autonome Legitimation)의 역사
느닷없는 윤석렬의 쿠테타에 놀랐다. 엄중한 비상계엄을 자기 이익을 위해 행사하고도 뻔뻔하기 그지없는 강변에 놀라울 따름이다. 윤석렬 대통령의 비상계엄 발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뇌에 뿌리 박힌 생각은 무엇일까? 하나는 정신이상이고 또 하나는 자생적 정당성이다.
대통령의 권력은 어디에서 온 걸까? 헌법 제2조 제1항은 단순히 국가권력 행사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였다고 하여 정당화될 수는 없고 그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왔으므로 국민에 의해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더 깊은 의미를 가진다. 오로지 국가권력으로 국민에 의해서 비로소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것이 민주적 정당성이다.
민주적 정당성(Demokratische Legitimation)과 대립하는 정당성은 자생적 정당성(Autonome Legitimation)이다. ‘자생적’은 스스로에게 있다는 의미이니 자생적 정당성은 국가권력의 보유와 행사의 정당성이 국민에 의해 부여된 것이 아니라 자기의 고유한 정체성에서 연유한다고 한다. 초월적인 존재를 믿었던 시대에는 초월적인 존재와의 관계에서 나온다고 한다. 자생적 정당성은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제2항에 명백히 위반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재에도 자생적 정당성이 유령처럼 다시 나타나곤 한다.
중국의 천자는 말 그대로 하늘의 아들이라는 의미이다. 천자는 하늘과의 혈연적 관계 또는 하늘의 선택으로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삼국유사에서 환웅은 천제 환인의 서자이다. 그가 곡식과 생명과 질병과 형벌과 선악을 주관하고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에 살면서 교화를 베풀었다고 하는데 이는 국가권력을 선하게 행사했다는 의미이다. 환웅은 선거를 통해, 그게 불가하면 여론조사를 통해서 왕이 된 것은 아니다. 환웅의 정당성은 천제 환인과의 혈연적 관계에서 나온다.
성경에 따르면 여호와의 기름 부은 받은 자가 왕이 된다. 백성과 무관하게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 선택받은 자가 왕이 된다. 더 나아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라고 한다. 국가권력을 행사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폭정을 일삼아도 백성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내치는 저항권 행사는 신에 대한 저항이므로 용납될 수 없다.
이러한 자생적 정당성은 근대시대가 태동되기 전에 필머( Robert Filmer,1558-1653)의 왕권신수설(Divine Right of Kings)로 정립된다.
그는 저서 Patriarcha에서 아담의 후예론( (Patriarchal Theory)을 주장하며, 정치적 권위는 성경 속 아담에게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아담은 신의 명령에 따라 인류를 다스릴 권위를 부여받았으며, 그의 후손인 왕들이 이 권위를 계승했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왕은 아담의 직계 후손이므로 그가 가지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은 인정된다.
이러한 자생적 정당성의 패러다임은 홉스(Thomas Hobbes)의 사회계약론을 통해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왕권이 신이 부여한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한 것이라는 사회계약론은 신에서 정당성을 찾는 왕권신수설, 자생적 정당성에 의문을 갖게 하였다.
존 로크(John Locke)는 이런 사화계약이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 보장을 목적으로 한다고 한다. 계약의 목적에 반하는 국가권력 행사에 대해 시민들이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고 그의 주장은 자생적 정당성에 결정타인 셈이다
그러나 로크의 사회계약론도 능동적 시민(지역 영주와 자산가)의 자유와 권리에 맞추어져 그들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무산자를 억압하는 국가권력 행사에 대해서는 침묵하였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드러낸다.
2. 자생적 정당성의 마력
왜 자생적 정당성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아니하고 남아있는 걸까? 자생적 정당성이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자생적 정당성은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문화적 DNA로 우리 피 속에서 남아있다. 과학의 발전과는 무관하게도 도참설, 점집, 무속신앙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
과학이 발전이 안 되었던 시대에 홍수나 전염병이 발생하면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신의 노여움을 포장하고 신의 대리인으로 내가 신을 달래볼 테니 나만 믿고 따르면 된다는 구라는 제사장들의 클리셰(cliché)였다. 이런 구라는 많은 복잡한 문제를 단일 원인으로 이해하게 도움을 주었다. 편하게 세상 문제를 이해하는 패러다임을 제공한 셈이다. 초월적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편안한 문제 해결방법의 대가로 인류는 자유를 포기하고 굴종을 수용하였다.
앞으로 신에게 제사 잘 지내고 제사장의 지배를 수용하면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믿으면 된다. 이로 인해 제사장은 백성들에게 신의 대리인으로 명령할 권력을 가지게 되고 신민은 지배와 복종을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게 된다. 이로 인해 인류는 길고 긴 착취와 노예의 길을 선택하였다.
과학이 발전했으나 여전히 경로를 알 수 없는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한 문제를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정보의 수집에 드는 시간, 판단의 오류에 따르는 위험을 감안하면 나 대신 나보다 뛰어난 능력 또는 경력을 가진 자가 이런 문제를 해결 해주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직접 투자 대신 펀드 가입 예측할 수 없는 주식시장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유사하다. 주식펀드야 펀의 성과를 보고 선택할 수 있으나 정치권력에서 성과를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위험을 헷지하기 위해 기존 유명 정치인인 아나운서, 고시합격한 고위 관료, 판검사를 대표자로 선택하고 안도를 한다.
윤석렬 대통령 뿐 아니라 대선 후보자로 거론되는 한동훈 대표, 이재명 대표, 오세훈 시장, 홍준표시장은 모두 사시출신자들이다. 국회의원들을 보아도 압도적으로 사시출신자 또는 변시 출신자가 많다. 이는 아직도 나보다 나은 나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고시합격자들이 더 유능하고 우리를 위할 국가권력을 행사하리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이다.
3. 현대판 자생적 정당성으로서의 고시정당성
이런 자들은 대다수가 자생적 정당성을 신봉한다. 자기들이 똑똑하기 때문에 당연히 권력을 가지고 있고 또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겉으로야 국민주권이고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부여받았고 말은 한다. 이때 이들은 신을 국민으로 바꾼다. 국민은 신처럼 존재하는지 증명하기도 힘들다. 이들에게 국민은 존재하지 않는 이념적 추상적 국민이다. 그리고 국민을 뜻을 받는다는 말은 신의 계시를 받아 정치한다와 같은 의미이다. 신의 계시를 받아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제사장이 무제한의 권력을 가졌듯이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아담의 직계후손이라는 구라는 통할 수 없으므로 국민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것처럼 연기만 하면 된다.
허울좋은 국민주권이다. 이들은 신의 뜻을 받들어 대신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민을 위해라는 말을 달고 산다.
그러나 제사장에게 신이 있으면 곤란하듯이 이들에게도 국민이 실존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이들에게 국민은 실존하지 않는 이념적 국민이어야 한다. 그래야 이래라 저래라하는 주권자의 간섭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국민의 2% 남짓 차지하였던 유산자계급은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주권자인 국민을 이념적 추상적으로 보는 형식적 국민주권론이 자리를 잡게 도니다. 말로는 실질적 국민주권이 현대의 주권론이라고 하나 이 또한 허구이다. 실질적 국민주권이 주권자로서 국민이 국가의사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주권론이다. 필자도 이제껏 국가의사를 결정해 본적이 없다. 고작 선거를 했을 뿐이다. 선거는 국가기관을 선임하는 합성행위일 뿐이다. 루소의 말처럼 꾸민은 선거가 끝나면 노예로 전락한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사회계약론(The Social Contract)에서 이렇게 말한다.
영국 국민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커다란 착각이다. 그들은 단지 의회 의원을 선출할 때만 자유로우며, 의원들이 선출된 순간 그들은 노예가 되고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The people of England regard themselves as free; but they are grossly mistaken. They are free only during the election of members of parliament; as soon as they are elected, they are enslaved, and they are nothing."
(Jean-Jacques Rousseau, The Social Contract, Book III, Chapter XV)
윤석렬 대통령은 "지지율 1%가 나오더라도 (나라를 위해) 할 일은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2023년 3월 7일 머니투데이).
선거때는 간이라도 빼 줄 듯이 국민에게 온갖 아양을 떨더니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차라리 그게 소신이면 선거 때 당당히 그렇게 말을 해야 했을 것이다.
플라톤는 그의 저서 『국가』(The Republic)에서 올바른 국가를 위해 가장 지혜롭고 도덕적으로 우수한 자, 즉 철학자가 통치해야 한다는 철인정치론(Philosopher-King Theory)을 주장한 바 있다.
윤석렬 대통령은 어설픈 철인정치론에 빠져 있다. 자기는 서울대 법대를 나오고 사시를 합격하고 검찰총장, 대통령까지 되었으니 나 보다 뛰어난 자가 없을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주변 참모, 장관들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한다. 자기 보다 뛰어난 자가 없으니 그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철인군주로서 자기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분노의 대상이 될 뿐이다.
지혜를 가진 철인들이 통치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현대판 자생적 정당성의 원류이다. 자기의 인격적, 정신적 능력이 탁월하므로 국가권력을 자기 생각대로 행사하면 그뿐이다. 개돼지 같은 국민이 지지를 안 해도 상관없다. 내 길을 갈 뿐이다. 철인정치는 독재로 나아가는 징검다리일 뿐이다. 게다가 윤 대통령은 지적 능력조차 의심받는 사람이 자생적 정당성으로 무장하고 있으니 우둔한 폭군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를 더 없이 똑똑한 사람으로 믿는 다는 점에서 문제점은 더 심각하다.
현대판 자생적 정당성으로서의 고시정당성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그들이 진짜 전문가인지, 우리를 위해 부여된 권력을 행사할 것인지 문제이다.
이번 윤석렬 대통령의 쿠테타 시도를 보면 이들이 진짜 나보다 나은 자들인지 의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무슨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비상계엄을 발동했는지 국민이 준 권력을 국민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또한 우리를 위해 계엄을 발동했다고 믿는 국민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다음 포고령을 보면 법의 기본도 없는 자들이 일기장에 쓰는 것도 부끄러운 말을 국민에게 명령하고 복종을 강요하고 있다.
2024. 12. 3. 계엄포고령 제1호를 보면 포고령의 헌법우위 사상을 가진 시대착오적 인물이 작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헌법과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그 광오함과 흉폭함은 야만 그자체이다. 이런 야만적인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들은 대화와 타협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윤대통령은 국회 개회식 참가도 안 하고 국정연설도 마다하고 이유도 참 이해하기 힘들다. 아니 유치하다. 국회에서 자기를 환영하지 않는다나.
3년이 다 되어 가는 마당에 야당 대표와 영수회담은 단 한 차례하고 여당 대표인 한동훈과도 만남을 회피하려고 한다. 그들은 대화 상대방을 원하지 않는다. 명령받는 자만 필요할 뿐이다. 그러니 국정이 원활히 돌아갈리 만무하다.
4. 국민주권을 다시 말한다.
헌법 제1조 제2항에 따르면 모든 국가권력은 국민으로 나오고 국민에 의해서 정당화되지 않는 모든 국가권력행사는 불법이다.
그들은 살아있는 구체적인 국민은 무지하고 변덕스러워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니 전문가로서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자기들이 국민을 위해 의사결정 하니 이에 복종하라고 한다.
국민들의 변덕스러움을, 무지를 탓하지 마라. 역사에서 너희들의 변덕스러움과 무지를 봐라. 너희들이 야기한 수많은 전쟁, 부패, 무능력은 역사책을 보면 넘친다. 굳이 증명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는 군대 가고 세금내고 신호위반를 한차례라도 하면 가슴이 덜컹거리는 미미한 사람들이다. 너희들은 군대 나가고 비상계엄을 권력장악을 위해 사익을 위해 국회를 마비시키고 국민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개도 주인을 물지 않는데 너희들은 주인을 무는 개만도 못한 놈들이다.
너희들과 자식들은 군면제 받고 미국에서 유학가서 집사고 부릉거리는 스포츠카 다닐 때 우리 아들 딸들은 시루같은 지하철에서 피곤함에 서서 자는 그런 하챦은 존재이다. 너희들은 우리를 위해 무슨 희생을 했는가? 오지랄 넘게 우리의 무지와 변덕스러움을 탓하는 자들아! 너희들은 국민주권의 배신자요. 헌법의 배신자들이다.
너희들을 지지한 대가가 우리를 개돼지로 보는 너희들의 눈초리임을 익히 안다. 다 우리의 탓이다. 주인이나 주인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너희를 숭배하고 종복이 되길 자원했으니 다 우리 탓이다.
그래서 이제는 주인이 아닌 지지자로 살지 않겠다. 윤석렬이 되었든 이재명이 되었든 너희들의 주인이 우리임을 잊지 않게 하겠다. 윤석렬이 오늘 2차 계엄한다는 소리도 있는데 오늘은 여의도에 나가서 주인임을 보여주겠다.
너희들을 지지할 수는 있다. 그러나 노비로서가 아니라 주인으로서 너희들을 칭찬하겠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너희들의 권력은 너희들의 잘남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