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라임열(羅林烈) - 나는 아버지와 함께 울었다
2. 하나님의 뜻을 따라
1 1960년 7월 20일, 통일교회는 전국 일제히 ‘원리 선포’의 횃불을 밝혔다. 이때를 분수령으로 새시대의 광명을 찾아서 감격하는 생명들과 인습적인 전통 교리에 얽매여서 하나님의 새로운 섭리 앞에 눈을 뜰 줄 모르는 기성 교단의 핍박의 와중에서 통일교회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크게 부상하고 있었다.
2 이 해의 벽두 선생님께서는 제1차 7년노정이 시작되는 1960년은 “생애노정에서 최고의 실적을 세우는 해가 되게 하자”라는 표어를 주시었다. 이 말씀을 듣고 나는 크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3 그때 나는 제1회 협회 40일 전도사 수련을 받고서 경기도 파주군 금촌교회 전도사로 시무하고 있었다. 서울과는 근접된 지리적 이점으로 본부의 대•소집회는 거의 빠짐없이 참석할 수 있었고, 교회 아랫방에서 밤을 새우시며 말씀을 내려주시던 귀한 자리에도 동참할 수 있는 영광을 입었었다.
4 그럴 때마다 말씀의 흐름 가운데서 절감할 수 있었던 것은 잠자는 기성 교단에게 새시대의 이념을 알려 주기 위한 40일 전도의 중요성이었다. 이에 대한 깊은 의의를 느낄수록 마음의 조급함과 함께 안으로는 통일교회를 대신할 수 있는 인격 양성과 밖으로는 전후편 원리의 무장 및 전도를 나갈 수 있는 준비를 미리 단계적으로 해 두는 일이었다.
5 선생님으로부터 “세상에서 공부할 때엔 밤을 새워가면서 하고 원리 공부를 위해선 그렇게 못했다면 조건에 걸린다”라는 말씀을 듣고 냉수 목욕을 하면서 원리 공부를 하기도 했었다.
6 나는 여기서 이왕 전도를 떠날 바엔 40일이란 기간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반드시 교회를 세우고야 돌아오리라는 생각에서 겨울을 날 수 있는 의복 준비와 소혹판 및 탁상시계까지도 갖추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7월 18일, 유효원 협회장님으로부터 급히 상경하라는 전문이 왔다.
7 나는 스스로 결심을 굳히고 교회 식구들의 전송을 받으면서 무거운 보따리와 흑판과 가방을 들고 상경하였다. 유 협회장님을 뵙고 보니 “지방에 가서 교회를 하나 세우는 일보다 중요한 일을 임렬 씨가 맡아 주어야겠다”라고 하셔서 대답을 하고 나오기는 했으나, 40일 성전(聖戰)에 참여하고 싶은 충동감을 억제할 수 없어서 모두 전도를 떠나버린 본부 2층의 빈 방에 가서 뜨거운 눈물로 기도하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8 그런데 22일경 사정이 달라져서 전도를 다녀온 뒤에도 그 일을 볼 수가 있으니 늦었지만 전도 출발을 하라는 말씀이었다. 순간 나의 기쁨은 표현할 수 없으나 주요 읍 단위 전도지가 다 배정된 뒤여서 아쉬움 속에 고심하던 중 옆에 있던 송도욱 장로님이 “그러면 어디 갈 만한 큰 섬이 없겠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9 제주도엔 이미 다른 분들이 나갔다고 하자 조금 후에 “그러면 울릉도가 있지 않는가” 하였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울릉도에서 나를 오라고 손짓하는 것을 느끼면서 마음이 일시에 기쁨과 감격으로 가득 찼다. 지도상으로 보니 울릉도는 포항에서 배를 타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울러 추가해서 준비할 것도 있어서 날짜를 늦추어 7월 27일 오후 5시가 조금 지나서 포항 부두에 도착하게 되었다.
10 이윽고 선표를 사는 곳에 들어가서야 나는 비로소 울릉도 왕복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정기여객선이 왕래하고 있지만 그 무렵만 해도 선장이 가고 싶을 때에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울릉도 배는 ‘내일 배’라고 하는 별명이 붙어 있다고 한다. 하물며 일기가 불순한 여름철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매표소에 모인 사람들은 5일 혹은 7일이 되었다고 아우성이었다.
11 어찌 된 일인지 그날도 잔뜩 찌푸린 날씨에 빗방울마저 떨어지고 있는데 선장이 “오늘도 출항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가다가 돌아오는 한이 있어도 떠나보자”라고 해서 항구에 온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금파호’라는 목조 화물선을 탈 수 있었다.
12 하늘의 보살펴 주심에 감사하면서 우선 갑판 밑창의 한 쪽에다가 짐을 들여놓고 신선한 공기도 마실 겸 갑판 위로 나왔다. 이 배는 화물 운송을 위주로 하는 배이기 때문에 승객이 들어갈 객실은 형식에 불과하며 시설은 엉망이었다.
13 나는 망망한 동해를 향해 배가 미끄러질 때 뱃길의 무사함과 하늘의 뜻을 품고 들어가는 소자를 하늘에서 지켜 주실 것을 간곡히 기도하고, 점점 거칠어지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동산의 노래를 부르고서야 비좁은 객실로 내려갔다.
14 옆에서 뱃멀미를 하는 사람, 찌든 기름에서 풍기는 악취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지만 말로만 듣던 미지의 섬을 밟는 보람과 그 땅의 생명들 앞에 믿음의 조상이 되는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나의 가슴은 벅차 있었다.
15 그런데 점점 배가 심한 요동을 하는 것을 보니 벌써 기상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때부터 나는 아버님께 기도로써 매어 달렸다. 기도 중에 잠이 들어서 얼마를 지났는지 새벽에 가서는 쾌청한 날씨로 변해 있을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처럼 배가 풍랑에 시달리면서 조금만 더 기상이 나빠지면 육지로 돌아간다는 배가 얼음에 미끄러져가듯 가고 있는 것이었다.
16 아버님의 은사 앞에 감사를 올렸다. 그러자 누군가가 멀리 울릉도 섬이 보인다고 일러 주었다. 아득한 수평선 너머 밝아오는 동녘 하늘을 바라보며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 쳐진 울릉도를 향해 배는 순조롭게 들어가고 있었다. 장엄한 풍경에 다시금 하나님의 오묘하신 솜씨를 절감하고 감사하였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