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강요된 구원의 길이 아니라, 설득하고 초청하는 인격적인 구원의 길이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자발적인 반응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강제적인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력하거나 조건적인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격적이면서 동시에 강력한 것이다. 어떤 세력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신자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는다. 따라서 신자의 배교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자의 견인은 운명적이고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논리적 결론은 아니다. 신자들은 믿음 안에 계속 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고, 하나님은 그런 신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을 “강권적으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멀린스는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은혜를 위험한 절벽에서 놀고 있는 아이에 대한 부모의 교육에 비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아이의 위험을 방지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 담을 쌓아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의 의지와 자제력을 증진시켜 위험을 피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강권적 은혜는 두 번째 방법과 같다. 멀린스는 바로 이런 강권적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이 믿는 자를 끝까지 보존하신다고 믿었다. 다시 말해서 성도의 견인은 “불가항력적 은혜”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적 은혜”에 의한 것임을 확신했던 것이다. 멀린스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를 짓밟는 무엇인가를 통해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우리를 보존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를 협력케 하는 강권적 은혜로 보존하신다. 하나님은 범죄와 타락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보존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죄와 타락에서 회개하고 돌아서서 새롭게 하심으로 보존하신다.
밀러드 에릭슨(Millard J. Erickson)도 다음과 같이 이 문제를 정리했다: 히브리서 6장은 참 신자도 타락할 수 있다고 지적하지만 요한복음 10장은 그들이 믿음에서 떨어지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친다. 배교라는 사실은 하나의 “논리적 가능성을 띠고 있으나 [실제로는] 신자에게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선택의 가능성을 제거함으로써 배교를 불가능하게 만드시는 분이 아니다. 그보다는 성서에 있는 경고들을 포함하여 은혜의 모든 가능한 수단을 사용하여 우리를 그분에게 남아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신다.”물론 그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저버리고 히브리서 6장에서 언급된 그 운명으로 떨어질 수는 있으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들이 그렇게 타락하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보호하시되, 신자들이 타락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원천봉쇄하는 것은 아니다. 타락할 수는 있으나 타락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리의 논리는 일견 비논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신자들은 그들의 믿음을 포기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결코 포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멀린스의 말을 인용한다면, 견인과 배교에 대한 성경의 결론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모든 신자들이 자신들을 방치한다면 실제로 [은혜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다고 간곡한 권고와 경고를 통해서 말하고 있다; 둘째, 하나님은 사람들이 구원받도록 의도하고 보존하신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행동과 무관하게 일어나는 하나의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사역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인 반응을 포함하는 과정이다; 셋째, 한편으로 하나님의 목적과 은혜와 능력을 무시하거나, 혹은 다른 한 편으로 인간의 반응과 협동을 무시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잘못된 것이다. 물론 궁극적으로 결정적인 요소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지 인간의 약함이 아니다. 그 은혜와 능력을 통하여 인간은 약함을 극복할 수 있다.
주제의 난해함 때문에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지만, 처음의 문제제기, 즉 “신자도 배교할 수 있는가?”의 답은 다음과 같이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배교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지만, 하나님의 강권적 은혜로 인해 신자가 실제로 배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어주시지만, 우리도 견인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성화(聖化)에 실패한 견인은 없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구원의 확신은 언제나 ‘진행형의 믿음’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다. “신자들은 미래에 견인된다”는 말보다 “신자들은 미래에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성경적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가 언제나 견인된다고 말할 수 있다.
신자의 배교 문제를 지나치게 한 방향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그것은 논리적 차원에서만 접근될 문제도 아니다. 신자의 견인과 배교는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인격적이고 역동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일하신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46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