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고 쉬운 가톨릭 안내 - 089 기적 (奇蹟 miracle)
네 나라의 의사들이 모여서 저마다 자기 나라의 의술이 가장 발달했다고
뻥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의사가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장암 환자가 아무나의 신장을 이식 받은 뒤
6 주일이면 새 일을 찾기 시작합니다.’
독일 의사가 응대했다.
‘그거 별거 아니요. 우리는 폐암 환자에게 다른 이의 폐 한 쪽을 이식시킨 뒤
4주면 구직을 시작하게 하지요.’
소련 의사도 지지 않고 한 마디 했다.
‘우리는 심장 이식을 할 때 반쪽만 떼어서 환자에게 이식합니다.
떼 준 이나 받은 이나 2주 이내에 새로운 직장을 찾으러 다닙니다.’
텍사스에서 온 미국 의사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 그런 걸 다 의술이라고!
우리 텍사스에서는 얼마 전에 무뇌증 환자를 백악관에 보냈지요.
그 환자가 거기에 4년 정도 있으니까
전 국민의 반이 새 일자리를 찾아 나섰지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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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ing is believing.’ 이라는 말을 믿지 못하게 된 경험이 있다.
필리핀에는 믿음의 치료사(Faith Healer)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이가 하계 휴양 도시 바기오의 시장까지 역임한 바 있는
‘준 라보’였다.
그는 앉은뱅이를 일으켰고, 뱃속의 암 덩어리를 손으로 끄집어내기도 했단다.
그의 명성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자 한국에서도 많은 환자가 치료를 받으러
바기오로 달려갔다.
누구나 다 아는 여가수도 있었고, 정치인, 경제인등 유 무명 인사들이 줄을 이었다.
당시 필리핀에 살던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일부를 안내해서
준 라보에게 데려갔다.
수십 건의 치료를 바로 눈앞에서 보았고, 사진도 찍었다.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배를 가르고 멍게 같은 암 덩어리를 들어내
쓰레기통에 버리고 손바닥으로 배를 스윽 문지르면
벌어졌던 상처가 바로 없어지는 것이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은 아니었다.
‘보고 나니 못 믿겠더라’였다.
결론을 말하면 내가 데려간 환자 중 치유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
현지에서는 나은 것 같았는데, 한국에 돌아가 검진해 보니
꺼냈다던 부분이 그대로 남아있더라는 식이었다.
한 번은 내 친지 몸에서 신장결석을 집어냈는데,
내가 준 라보에게 “기념으로 그 돌멩이 주쇼, 펜던트 만들게.”
했더니 기고만장했던 그가 흔쾌히 그 돌을 넘겨주었다.
나중에 한국에서는 그를 초청해서 여러 차례 시술을 시켰다.
공영 TV 방송의 카메라가 사방에 설치돼 있었다.
준 라보가 덫에 걸려든 것이다.
그의 시술은 단순한 ‘손장난’에 불과한 것으로,
미리 손에 감추었던 물질을, 뱃속에서 꺼낸 것처럼
‘마술’을 부리는 것이 화면에 다 들킨 것이다.
내게 준 돌멩이도 시험 결과 가짜임이 밝혀지는 것을 TV 화면으로 보고
나 자신의 어리석었음에 실소가 흘러나왔다.
하기야 이은결의 마술을 보고 안 속을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기적 치유’를 행하는 종교 단체들도 많이 있고,
그게 진짜냐 가짜냐를
놓고 더 큰 논쟁도 진행된다.
과연 가톨릭에서는 ‘기적’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정리해 본다.
가톨릭대사전은 기적을 ‘초자연적인 계시의 표지로서
하느님이 비범하게 역사하시는, 감지할 수 있는 사건.
기적은 치유하고 구원하는 하느님의 종말론적 능력을 미리 계시하는 것이라는
의미와 이 계시를 모든 사람들이 깨닫기 쉽게 하기 위하여 감지할 수 있으면서도 비범하게 표현된 것이라는 표징적 기능을 지닌다.
기적은 질병의 치유와 같은 물리적 기적과 예언의 경우처럼 지적(知的) 기적 및
바울로의 개종 사례와 같은 윤리적 기적으로 구분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여러 기적들에 대해서는,
자연법칙을 면밀히 적용한 후 ‘기적이다' ‘아니다' 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성경의 기적은 하느님께서 어떤 특별한 행동이나 사건을 통해
당신의 뜻을 알리거나 실현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법칙을 뛰어넘는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자연법칙은 근대과학의 개념이기 때문에 성경의 세계와는
무관할 때가 많다.
따라서 성경의 기적은 첫째, 언제나 하느님이 주도하시는 일이므로
놀라운 일의 배후에 하느님이 계실 때 기적이라고 부른다.
둘째, 기적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그 사건의 외형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이다.
얼마나 큰 기적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그 기적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어떻게 드러나며 또 어떻게 실현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의 기적뿐 아니라 교회의 많은 성인들의 기적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기적들은 사람들을 신앙으로 인도하는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기적을 믿음의 조건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느님과 흥정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실제 사회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가톨릭은 인정한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는 하느님의 계시가
성령에 의한 내적 도움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기적을 통해서도 드러난다고 하였으며,
비오 12세는(1910년) 기적이 모든 시대의 모든 지성에 부합될 수 있다고 하였다.
기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면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루르드에서는 1858년 성모 마리아가 발현 이후
지금까지 약 7천 건의 치유 기적이 보고되었다.
그러나 교회가 실제 기적으로 인정한 사례는 67건 뿐이다.
역사적으로 마리아 발현 주장은 수없이 많다.
20세기에만 전 세계적으로 386건이 보고되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실제로 사도좌(교황청)나 지역교회(관할 교구)가
초자연적 사건으로 인정한 발현은 8건에 불과하다.
약 70건은 교회가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으며,
나머지 대부분은 교회가 입장을 유보한 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태다.
우리나라에서도 성모발현이 종교적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일이 있다.
1985년 전남 나주에서 ‘윤홍선 율리아’ 자매가 모시고 있던 성모상에서
눈물이 흐르며, 자매가 환시 속에서 말씀을 듣는다는 이야기가
주변 신자들을 통해 퍼지더니, 1986년에는 피눈물이 흐른다는 소문으로 번졌다.
본당신부는 사실 확인을 위해 성모상을 석 달 정도 본당 사제관으로 옮겨
관찰하였으나 이상이 없어 1987년 성모상을 자매에게 돌려주었다.
이후 자매와 동조자들은 자매의 일기와 주장을 ‘성모님 메시지’라 부르고,
성모상을 모시려고 집을 매입하여 ‘(성모)경당’이라 불렀다.
1990년에는 성모님의 지시라며 ‘마리아의 구원방주회’를 만들었고,
1991년 본당에서 모신 성체가 살과 피로 변했고
1992년부터는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광주대교구장은 1992년 5월 진위여부를 가릴 조사위원들을 선정했고,
1995년부터 1996년 초까지 정밀 조사를 실시했다.
그는 1996년 2월 ‘조사위원회’의 활동 내용을 교황청 신앙교리성에 전달하고,
3월에는 신앙교리성 장관(현 교황 베네딕토 16세)과 만난 결과,
“판단은 교구장의 권한이며, 현명한 판단을 위해 교구장 공지 전
신앙교리성에 내용을 알려주면 그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확인했다.
교구장은 1997년 6월 ‘조사위원회’의 종합의견서를 신앙교리성에 전달하고,
1998년 1월 1일에 기적을 부인하는 1차 ‘공지문’을 발표했다.
자매와 동조자들은 순종하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을 더욱 거세게 선전했다.
교구장은 2001년 5월 두 번째 공지문을 발표하고
2003년 자매를 직접 만나 경당과 성모동산을 조사하고,
동산 조성과 운영에 관련된 회계자료를 제출을 지시했다.
자매측은 2005년 ‘성모상 눈물 20주년 기념행사’를 치르면서
15년 동안 중지됐던 성모상의 피눈물이 재발되고,
‘태양의 기적’과 향유가 젖으로 변하는 현상이 일어났고,
2006년에는 성모동산에서 ‘기적수’가 흐른다고 주장했다.
2007년 11월 ‘성모동산’의 허황한 실태를 고발하는 TV 시사 프로그램이
방영되었고, 교구장은 마침내 2008년 1월 자매측이 교회와 일치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하여 ‘경당’과 ‘성모동산’에서 의식을 주관하거나 참여하는
모든 신자들에게 자동처벌의 파문제재를 선언하는 ‘교령’을 발표했다.
가톨릭교회는 성모상 이상이 목격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초자연적 현상이라 단정하지 않는다.
기도나 안수로 치유가 일어났다고 해서 기적으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가톨릭 신앙은 공적인 신앙이다.
개인의 체험을 공적으로 인정받으려면 먼저 자신의 체험과 신념에 대해
교회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판단의 권한은 체험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교도권에 있다.
특히 주장하는 내용이 기적이나 사적계시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교회의 판단 기준은 첫째,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과의 일치 여부,
둘째, 체험자의 인품과 관련하여 진실성과 교도권에 대한 순명(겸손)의 문제,
셋째, 성령의 열매를 맺고 특히 애덕을 실천하는 문제이다.
<馬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