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반산 자연휴양림
[ 위 치 ]
전북 진안 동향면성산리 836-8.
[ 소개 및 특징 ]
천반산 북쪽 구량천변에 조성된 천반산자연휴양림은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 휴양림으로 예전에는 '강 건너 뒷섬' 이라 불리며 농경지로 이용되던 곳을 개발해, 황토방 숙소와 식당,
양어장 등의 시설물들을 만들었다.
숲을 조성하기 위해 나무를 심기는 했지만 아직 이렇다할 그늘을 제공하지는 못하고 있다.
강변에 여러 개의 평상을 설치해 휴식을 취하며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독특하다.
자연휴양림 치고는 비교적 협소한 6,000여 평의 면적이지만, 거의 대부분 평지라 축구나 배구시합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터가 있다. 휴양림 이용갯들이 낚시를 할 수 있도록 민물고기를 넣어 키우는 양식장도 조성했다.
올해 여름 태풍피해로 둑이 터지고 물가에 설치한 평상들이 떠내려가는 등 큰 피해를 입어
복구공사가 진행 중이다.
한편 이 휴양림은 황토찜질방을 신축해 휴양림 이용객들에게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 휴양림은 이름 그대로 천반산 자락에 기대어 있어 산행을 즐기는 등산 애호가들에게는
좋은 배이스캠프 역할을 한다. 휴양림 뒤편의 능선길을 이용하면 정상까지 다녀오는 데 1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계속해 주능선을 타고 산행을 연장해 성터와 한림대터를 돌아보고 와도 4~5시간이면 여유
있게 산행이 가능하다.
시설물은 관리소를 중심으로 한 곳에 집중되어 있어 답답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그런대로
이용에 불편은 없다. 황토로 만든 숙박동 2채(7실)를 갖추었고, 단체용 큰방도 5개 있다.
부대시설로 연회장 식당, 찜질방 등이 있다.
시설물 내용 및 이용료 휴양림 내의 주요 시설물은 황토로 지은 숙박동 2채와 단체용 숙소 1동이 있다. 각 방에는
싱크대와 샤워실, 간이 스토브, 냉장고 등을 갖췄으나, 상수원보호구역인 관계로 화장실은
휴양림 중앙에 설치된 것을 공동으로 이용해야 한다.
방 이용객에게는 강가의 평상 1개가 무료로 제공된다. 현재는 공석인 상태지만 운영자가 정해지는 데로 식당도 운영할 계획이다. 양어장은 휴양림 이용객에 한해 낚시를 허용한다. 강변의 나무 그늘 아래 40여 개의 평상도 설치해 두었다.
숙박동 황토방
8평(7실)=성수기 50,000원/비수기 30,000원,
15평형(5실)=50,000원/30,000원 평상=7,000원(1일)
* 주차료 및 입장료 없음.
전화 063-432-7366, 9344 최병규 대표
[ 천반산 ]
◆ 백두대간 상의 남덕유산(1,507.4m) 서쪽으로 약 1km 거리인 서봉(1,510m, 일명 장수 덕유산)에서 대간을 이탈해 북서쪽으로 가지를 치는 능선이 있다. 이 능선은 약 5.5km 거리인 19번 국도가 넘어가는 솔고개에서 잠시 가라앉았다가 약 4km 더 이어진 다음 영구산(802.3m)을 빚는다. 영구산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약 8km 거리에 이르러 구량천과 금강 상류에 막혀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들어올려진 산이 천반산(646.7m)이다.
전북 진안군 진안읍, 상전면과 장수군 천천면 경계를 이루는 천반산은 주능선 일원이 소반과 같이 납작하다 하여 그런 이름이 생겼다는 설과, 땅에는 천반, 지반, 인반 이라는 명당자리가 있는데 이 산에 천반에 해당하는 명당이 있다 해서 지어졌다는 설이 있다. 또 산 남쪽 마을 앞 강가에는 장독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하늘의 소반에서 떨어진 복숭아(천반락도 天盤落桃)라 하여 마을 북쪽에 있는 산을 천반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천반산은 사방이 깎아지른 험준한 절벽으로 에워싸여 있다. 여기에다 북으로는 덕유산에서 발원한 구량천이 산자락을 휘감고 있으며, 서쪽과 남으로는 금강 상류를 이루는 연평천(일명 장수천)이 휘돌아 흐르고 있어 천혜의 요새를 방불케하는 산세를 이루고 있다.
이 산은 선조 22년(1589년)전라도를 반역향이라 하여 호남 차별의 분수령을 이룬 기축옥사의 주인공 정여립(1546~1589)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정여립은 전주 남문 밖에서 태어나 선조 3년 25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이라는 벼슬에 올랐으나, 선조와 서인들의 미움을 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낙향, 대동계를 조직하고 모악산 앞 제비산(현재의 김제시 금구면)에 머물면서 죽도에다 시설을 지어놓고 천반산에서 군사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정여립은 선조 22년 역모로 몰리자 아들과 함께 죽도로 피신했다가 관군에 쫓기자 이 산에서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천반산에는 정여립이 성터와 망루로 사용하던 한림대터, 그가 뛰어다녔다는 뜀바위 등이 남아 있고, 군사를 훈련할 때 사용했다는 거대한 돌솥이 묻혀 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동서만록>에 의하면 정여립은 평소에 천반산 아래 죽도를 자주 찾았기에 그를 죽도선생이라 불렀다고 하며, 더욱이 역적도 아니었기 때문에 죽도로 피난 간 것이 아니라 평소처럼 죽도의 비경을 즐기려고 나왔다가 관군에게 잡혀 억울하게 죽었을 뿐 자살로 조작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단종 때 왕위찬탈에 항거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송판서가 수도하였다는 송판서굴, 그리고 송판서의 부인이 살았다는 할미굴, 정여립이 친지들과 바둑을 두었다는 말바위 등이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산 아래 신기 마을은 정감록이 예언한 10승지의 한 곳이다. 조선조 유학자인 유겸안이 겸안록을 통해 이곳의 지리가 호남 제일의 땅이라고 칭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반산 서쪽 금강과 구량천이 파(巴) 자처럼 돌아나가는 육지 속의 섬 죽도는 넓은 모래사장과 자갈밭으로 이뤄진 한폭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천혜의 비경지대인 죽도는 세월따라 용담댐이 만수위가 되면 절반 가량이 수몰된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 등반안내 ]
○ 산행 들머리는 가막리 매표소 앞에서 다리를 건너가면 오른쪽 신기 마을 방면으로 굽돌아 나간다. 이곳에서 왼쪽 농로길을 따라 7~8분 거리에 이르면 외딴 농가 왼쪽으로 수백 년생 괴목이 숲을 이룬 작은 동산이 있다. 괴목숲 아래에 있는 당집은 마을의 평안을 위하여 당할머니께 제를 올리는 곳이다. 당집 위 동산 위 감투바위도 치성을 드리는 곳이다.
당집 왼쪽으로 이어지는 농로로 100m 거리에 이르면 파란 지붕 농가 앞에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 앞에서 왼쪽 다리를 건너 파란 지붕 농가 왼쪽 길로 들어가 10분 거리에 이르면 등산로 안내판이 또 나타난다. 이 안내판 앞에서 오른쪽 사면 숲속으로 통나무 계단길이 있다.
급사면 계단길을 타고 15분 거리에 이르면 50m 길이 굵은 밧줄이 매어진 사면지대에 닿는다. 50m 길이 밧줄을 잡고 올라서면 천반산 서릉 삼거리다. 삼거리에서 동쪽으로 뚜렷한 능선길을 타고 3~4분 오르면 왼쪽으로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왼쪽 길은 할미굴로 가는 길이다. 할미굴은 150m 거리로 5분이면 닿는다.
20m 절벽 아래에 깊이 5m 정도 패어든 자연석굴인 할미굴 속에는 미세한 물줄기가 흐르는데, 예전부터 안질에 좋은 물이라고 전해진다.
할미굴에서 다시 삼거리로 나와 서릉을 타고 25분 가량 올라가면 '한림터대 0.1km, 죽도 2.8km, 천반산성터 0.3km, 할미굴 0.6km' 라고 쓰인 안내판이 나타난다. 안내판을 지나 3분 더 오르면 떡시루를 엎어놓은 형태의 바위봉인 한림대터에 닿는다. 한림대는 옛날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던 장소였다 전한다.
이곳은 사방으로 시원한 조망이 터지는데 남쪽 아래로는 가막리와 신기 마을은 물론 그 사이를 흐르는 금강 물줄기가 아찔하게 내려다보이고, 서쪽 멀리로는 M자형을 이룬 마이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북쪽 멀리로는 운장산, 복두봉, 구봉산도 시야에 와닿는다.
한림대를 내려서서 계속 서릉을 타고 10분 거리에 이르면 575.8m봉인 성터가 나온다.
성터 위에는 벤치가 있어 잠시 쉬어가기에 괜찮다. 성터를 내려서서 10분 거리인 안부를 지나면 노송 어우러진 암릉에 닿는다. 암릉으로 발길을 옮기면 왼쪽 아래로 S자 굽이로 패어 내린 구량천과 상전에서 동향으로 이어지는 도로, 그리고 장전 마을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이기 시작한다.
구량천 협곡 건너로는 고산이 마주보이고, 고산에서 오른쪽 멀리로는 적상면 방면 국사봉 너머로 적상산이 가물거린다. 조망을 즐기며 암릉길을 오르내리며 10분 거리에 이르면 급경사에 매놓은 30m 밧줄을 잡고 내려선다. 내려서면 일명 마당바위로 불리는 바위안부를 지나간다.
안부에서 5~6분 오르면 지나온 함림대와 암릉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바위를 밟는다.
분재와 같은 노송 한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전망바위에서는 남족 아래로 먹개골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로는 성수산이 하늘금을 이룬다. 성수산 왼쪽 멀리로는 남덕유산과 육십령이 시야에 와 닿는다.
전망바위에서 13분 더 오르면 벤치 세 개가 놓여 있는 천반산 정상이다. 삼각점(무주 314)과 화강암으로 된 정상비석이 서 있는데, 숲으로 조망이 시원하지 못한 것이 흠이다.
그러나 나뭇가지 사이로 동쪽 멀리 덕유산 줄기와 그 아래를 지나는 대전 - 통영간 고속국도가 보이는 것이 위안이 된다.
하산은 장전 마을 방면 북릉을 탄다. 북릉으로 약 100m 거리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흐릿한 산길이 보인다. 이 길은 천반산의 모산인 영구산으로 이어지는 길이지만, 아직 등산인들이 다니지 않아 산길이 흐릿하다. 영구산 방면 능선길로 발길을 옮겨 25분 가량 내려서면 오른쪽 아래로 임도가 내려다보이는 안부에 닿는다. 안부에서 오른쪽 사면을 타고 7~8분 내려서면 먹개골 임도에 닿는다.
양쪽으로 잡목과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버린 임도를 따라 약 30분 내려오면 파란 지붕 농가 앞을 지나 당집 앞에 이른다.
가막교 매표소 - 당집 - 농가 - 서릉 - 할미굴 - 한림대 - 성터 - 마당바위 - 정상 - 동릉 - 안부 - 먹개골 - 당집 - 매표소 ( 약 7.5km, 4시간 )
[ 주변관광 ]
할미굴 이 굴이 할미굴로 이름 지어진 것은 조선 세종 때 예조판서를 지낸 송보산 선생이 단종 문제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후학을 가르치는 몰두하다가 이곳에서 북쪽 50m 거리에 있는 굴속에서 은거하면서 부인과 동침을 금하기 위해 부인을 따로 이곳에 기거하도록 해서라고 전해진다.
전설에 의하면 송판서가 수도하면서 쌀 한 되를 부인과 나누어 갖고 부인에게 한 끼에 쌀 세 알, 생솔잎 세 개, 굴속 석간수 세 모금만 먹도록 했는데, 부인이 그 약속을 어기고 많이 먹어 부인의 쌀이 먼저 바닥이 나자 자신의 남은 쌀을 다시 반으로 갈라 부인에게 주어 함께
수도를 마쳤다고 한다. 1484년 세상을 떠난 송보산 성생 후손들은 지금 연평리 평지 마을에서 살고 있다.
[ 교통안내 ]
대전 - 통영간 고속국도 덕유산 나들목을 이용해 접근하는 것이 편리하다. 덕유산 나들목에서 나와 19번 국도를 타고 무주 방면으로 안성면 소재지까지 간 뒤, 좌회전해 49번 지방도로 갈아탄다. 이후 동향면 사무소를 거쳐 죽도 방면으로 약 16km 가면 구량천 건너편에 휴양림이 보인다. 휴양림 입구에만 안내판이 있으므로 초행길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찾을 수 있다.
휴양림 이외의 천반산 산행기점인 가막리나 연평리 신기 마을로 가려면 대전 - 통영간 고속국도를 타고 장수 나들목에서 나와 장계를 거쳐 진안 방향으로 진입하는 것이 무난하다. 장수 나들목에서 장계읍내를 거쳐 26번 국도를 타면 곧이어 진안 19km라고 쓰인 이정표가 보인다.
장계에서 5분 거리의 천천면 삼거리에서 우회전, 계속해 26번 국도를 따라 방고개를 넘는다. 방고개 정상에서 3분 거리에 왼쪽에 '원촌도토리묵' 간판이 붙은 식당 앞에서 오른쪽의 좁은 길로 우회전하여 5분쯤 주행하면 가막리 가막교앞 매표소에 닿는다.
또 다른 진입로는 천천면 삼거리에서 장계 쪽으로 약 1.5km 떨어진 삼거리에서 북쪽의 719번 지방도로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 도로를 따라 4km 거리인 연평초교를 지난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3km 가면 신기 마을에 닿는다. 신기 마을에서 가막교만 넘으면 가막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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