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다리에 오르다
전국 지자체들이 다투어 출렁다리를 건설하면서 그 광고에도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세계적인 우리 토목기술이니 마음만 먹으면 그까짓 출렁다리쯤이야 쉽게 지을 수 있을 터이다. 지역 주민들의 표를 얻어야만 단체장도 될 수 있으니 코로나 이전까지는 출렁다리로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들여 지역경제를 살리려 했던 것 같다. 인생황혼 늙은이도 이렇게 불어나는 관광자원에 기대감이 한껏 부풀곤 했었다.
김천 부항댐에 출렁다리가 들어섰다는 뉴스를 접하곤 서둘러 찾아갔더니 다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출렁다리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요지부동이었다. 느슨하게 설치했다가 안전사고라도 일어날까봐 다리 사이 장력을 최대한 높인 것 같았다. 부항댐에서 스릴을 느꼈다는 젊은이들 글을 접하고서야 다시 장력을 조정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출렁다리는 계곡 사이나 바다와 호수 같은 물위에 주로 세워진다.
다리 위를 걷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하면서 스릴을 느끼게 할 목적인 것이다.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출렁다리는 관광사업이 주목적이지만 전기를 수송하는 송전선도 떠올리게 된다. 산과 산 때로는 섬에서 섬을 건너야하는 전력선은 출렁다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악조건을 극복해야 한다. 다리든 송전선이든 설비가 양쪽 지지대에서 출발하여 공중을 가로지르는 것은 서로 다를 바가 없겠다.
송전선로가 철탑 사이에 가설된다면 출렁다리는 교각 사이에 매다는 것이다. 송전선로를 붙들어 맨 양쪽 지점에서 수평으로 봤을 때 선로가 밑으로 쳐지는 정도를 이도弛度라고 한다. 아직 국어사전에는 오르지 못한 용어로 영어론 딥dip이다. 설비의 안전을 위해 딥은 허용기준치가 있다. 1960년대 중반에 이르자 부산 영도에도 대한조선공사로부터 정유시설 업체들까지 들어서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청정한 섬인지라 매연이 솟는 발전소를 지을 수 없게 되자 육지에서 송전선로로 전기를 보내야했다. 선로 경과지는 천마산 꼭대기에서 부산남항 맞은편 영도 남항동까지였다. 거리가 너무 멀어 이도가 기준을 훨씬 벗어나는 게 문제였다. 전력회사 본사에선 영도 산업체들의 독촉성 민원을 부산사업장으로 중계했다. 당시 쉰을 바라보던 J송전계장은 갑자기 빚쟁이 신세가 되어 하루가 멀다하고 천마산을 올라야했다.
하지만 송전거리가 너무 멀어 기준 이도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다가 하루는 ‘진로 두꺼비’를 꽁무니에 차고 산을 올라 병째로 나발을 불고 나자 거짓말처럼 묘책이 나왔던 것. 송전선로 건설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 뒤 가끔씩 사진작가 그룹에서 부산 전경이나 야경을 찍느라 천마산을 오를 때마다 그 철탑 밑에 서서 말수가 적으면서도 정이 많았던 J계장의 생전 모습을 떠올렸다.
동양에서 가장 길다는 출렁다리를 품은 탑정호. 대둔산 물줄기를 담아내는 호수는 물이 맑다고 홍보했지만 우리가 찾았을 땐 비온 뒤라 그런지 수면은 흐릿했다. 출렁다리로 진입하는 지점엔 검문소처럼 체온을 재고 마스크 착용을 확인하느라 법석을 떨었다. 때는 단풍이 절정인데도 하늘이 맑질 못하니 제대로 그 빛깔을 읽을 수 없었고 호수에 비치는 노을이 아름답다는데도 그때까지 머물 수 없는 형편이었다.
금년 봄 개통한 국내에서 가장 긴 예당호 출렁다리는 개통 두 달이 안 되어 방문객 100만을 돌파했었다. 그 결과 국토교통부 국비지원 사업 가운데 가장 투자가치가 높은 사업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이곳 탑정호 출렁다리는 예당호보다 200m나 더 긴데다 논산평야의 젖줄로 둘레가 24km나 되어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하다. 관광버스가 쏟아놓은 부산 문인 120명은 출렁다리를 거쳐 나름대로 투어를 이어갔다.
2년 넘게 코로나에 갇혔던 사람들인지라 예약한 식당들이 숫자가 불어난 걸 이유로 받아주지 않고 거절해도 콧구멍에 바람을 쏘이는 게 어딘가 싶었던지 일행은 종일 표정이 밝았다. 승용차로 탑정호를 찾은 청장년들은 주로 전망 좋은 카페에 앉아서 호수를 감상하고 있었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호숫가를 수놓았고 코스모스 너머로 드넓은 호수에 떠있는 하얀 출렁다리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