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억 담임목사님께서는 설교도 잘 하셨지만, 찬양도 아주 잘 부르셨다.
또한,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목회를 하시면서 교회는 착실히 성장해 갔다.
당시 장로님들도 여러분이 계셨는데, 여러 교우들 앞장에 서서 목사님과
함께, 교회 부흥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참 좋게 보였다.
K 자신도 교회학교와 구역활동 그리고 남선교회 모임 등에도 적극 참여
하며 교회를 섬기게 되었다. 두 남매도 잘 자라나 주었으며, 교회학교에도
열심히 다니는 아들과 딸이었다.
교회학교에서 교사로 봉사하면서, K는 반의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갖고 열심히 하였다. 그동안, K가 방송국에서 엔지니어로 근무
했던 세월이 꽤나 많이 흘러갔다.
1986년 연말 기준으로 만 17년이 되는 셈이었다. K는 직장에서 방송기술
직으로서의 대부분을 교대 근무를 하였기에, 매 주일마다 교회 출석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늘 있었다. 그래서, 성수주일(聖守主日)은 K의 간절한 기도
제목이었다.
이 무렵에, K는 직장인 청주방송국에서 근무하면서, 방송제작에 참여하는
기술팀의 팀장인 'TV기술감독'으로 근무하였으며, 후에는 다시 TV중계차
기술감독으로 일하였다.
그런 가운데, 두 남매를 승용차에다 태우고 아내와 함께 교회를 오가며, 차
안에서 나누는 자녀들과의 대화는 K 내외를 즐겁게 했다. 한마디로, 이 당시
직장에서 근무 기상도는 자주 자주 흐렸지만, 교회생활의 기상도는 대체로
맑고 밝았다고 하겠다.
우리 사회의 큰 변화를 가져 온 큰 사건들이 이 시기에 집중되었다. 1986년
TV시청료 거부운동 확산, 1987년 6월 항쟁과 직선제 개헌, 1988년의 서울
올림픽 개최와 언론사노동조합 설립 등, 우리 사회에 명암(明暗)을 가져오는
격동의 시절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