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육아
주말이면 더욱 바쁘다. 주중에 미처 보지 못한 책을 읽다가 생각나는 무엇인가를 메모하고 글로 쓰다가, 밀린 중국어 복습을 하고, 틈틈이 기타 연습을 하다가 다시 성경을 읽는다. 간간히 TV로 좋아하는 골프와 바둑프로를 구경하길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육아로 바쁜 친구에 비하면 여유로운 시간이다.
이 시간에 간간이 아내에게서 손자들과 이웃들의 소식을 듣는다. 어차피 인간은 혼자 살게 되지만 주변에 대화를 나눌 가족마저 없다면 얼마나 삭막한 일일까 싶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부부는 상대의 허전함을 채워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니 더욱 소중한가보다. 가정에 대화가 끊이지 않는 그 자체만으로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있다.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어린 손자를 돌보느라 일주일이면 며칠씩 꼼짝하지 못한다. 약속을 잡으려 해도 그로인한 제약이 뒤따른다. 더구나 몸으로 때우지 못하면 육아비용이라도 대주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가 않다. 주기적으로 아이를 돌보고 혹 입주라도 하여 가사를 처리하게 되면 그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겨우 연금으로 연명하는 경우라면 언감생심(焉敢生心)으로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보면 주말에 운동을 나가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취미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사치스런 일이다. 더구나 부인이 대신하여 수고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편히 휴식하도록 보장을 해 주어야하니 나머지 가사는 고스란히 남편의 몫이다. 어찌 집안일을 모른 체하고 방치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보통 가정의 남편들이 감내해야 하는 일상사이다.
더구나 최근의 사회분위기는 예전과는 전혀 다르다. 특히, 딸을 가진 입장에서 황혼에 육아를 담당해야하는 추가 서비스를 해주어야 한다. 사실 결혼마저도 노심초사하여 시집을 보내고 나면 안도할까 싶었는데 아이를 냉큼 낳지 않으니 애간장을 태우다가, 겨우 새로 태어난 아이를 축복하기 전에 육아의 책임을 떠맡아 기르게 된다. 그러자니 자신을 위한 여가시간을 잃어버리고, 여행이나 취미 활동도 접은 채 열심히 아이를 돌보다가 허리가 고장이 나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후유증으로 전혀 새로운 질병을 얻어 고생을 하게 된다. 남은 세월을 육아로 시달리다가 갑자기 떠나는 길에 인생무상의 아쉬움만 가득할 뿐이다.
잘 알고 지내는 친구의 경우가 전형적인 육아의 모범이다. 두 남매를 키우면서 부인이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교육에 전념하였다. 그 덕분에 공부도 잘 하고 품성도 뛰어나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녀로 키웠다. 과학고와 명문자연대를 나온 큰 딸이 먼저 결혼하여 두 남매를 낳았는데 이때부터 다시 외손자들의 양육이 두 부부의 몫이 되었다. 딸은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명문의대에 합격하고 장기 수련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완전히 육아를 도맡아 고생을 하였다. 보통 정성이 아니고서야 아무나 할 수 없는 내리사랑의 헌신이었다. 외손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데 결과도 좋고 그나마 수고를 알아주는 아이들 덕에 보람을 느끼며 지낸다.
또 다른 친구는 두 손녀의 교육에 매진하여 아예 필요한 공부를 직접 가르치면서 틈틈이 육아 과정을 글로 써서 훌륭한 수필집을 발간하였다. 변화하는 계절에 맞춰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미세하고 따뜻한 관찰을 통해 아름다운 글로 맛깔스럽게 표현하였다.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만사 일을 제쳐두고 맞벌이하는 자녀로 인해 어린 손자나 손녀의 육아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물론 정성들인 효도비용을 부모에게 지급한다하지만 노력에 비하면 적은 액수이다. 더구나 집에서 숙제는 물론이고 수학과 영어까지 가르치자니 교과과정이 상이하여 어려움을 느낀다는 호소를 하기도 한다. 모두 훌륭한 성과가 있길 바라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고부(姑婦) 간에 교육에 대한 방향이 달라 갈등하는 일도 목도하였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자칫 아들과의 관계마저 소원하게 되는 경우도 보았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면서 부딪치는 현실적인 어려움 중의 하나가 신부의 집이 지방인 경우가 있다. 나중에 아이를 돌봐줄 처가가 가까이 있지 않으면 시댁의 부모로서는 선뜻 결혼에 동의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어려운 혼사 길을 가로막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흔쾌하게 보모(保姆)를 집에 들여 숙식을 제공하자니 상상 이상의 비용이 든다. 아무리 젊은 부부가 직장 생활을 한다 해도 비용을 감당하기에는 무리인지라 양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된다.
여기에 한술을 더 떠서 신부가 애완동물이라도 키우면 이에 대한 뒷바라지도 겸해야 한다. 언젠가 공항에 갔다가 부근에 애완동물 전용의 호텔을 보았다. 아파트에서도 자주 목격하지만 아이들보다 개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어느덧 우리나라는 개의 식용을 금지하며 개의 권리를 내세우는 ‘견권국가(犬權國家)’가 되었고 사람보다 동물이 더 대접받는 나라가 되었다. 일반 백성들의 음식거리를 법으로 규제하는 사례는 「모세」의 설교를 기록한 『신명기의 14장』에 나오는 규정이 있기는 하다.
나아가 개의 장례식장이 성업 중이라 하는데 자칫 개들의 결혼식장도 등장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생소한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는지 안타깝다. 종종 생활고로 일가족이 세상을 떠나는 이웃의 비명소리에 귀를 막고 사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국가와 사회의 관심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나마 운영되는 각 종 유아원 등에서 부실한 관리와 학대 등으로 많은 공분을 샀던 일도 있다. 적격한 담당자의 관리, 영양의 제공, 세심한 교육과정, 획기적인 시설의 개선 등은 거국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마음 놓고 어린이를 맡길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출산율도 높아진다.
여기에 더하여 모든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이 요구된다. 사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인생의 목표 중 하나는 후손을 올바로 성장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누구나 소망하는 일이다. 제 몸 하나도 추스르기 어려운데 무슨 말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여러 세대에 걸친 열과 정성을 다해야 제대로 된 인물이 출현하는 법이다. 모든 종교에서도 갈파하듯 공덕과 선을 쌓아야 그 후대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적어도 자신이 받은 선대들의 노력을 훼손하지 않고 후대에 전하는 일은 귀하고 성스런 일이다. (2024.1.21.작성/3.13.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