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의 뿌리를 찾아서 - 반여동 무지개마을
이주민에게 희망과 꿈을! 반여동 무지개마을
무지개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을 중리 마을에서는 ‘산너머’라고 불렀다. 마을이 형성되기 전에는 감나무가 심어진 버덩(번덕) 솔밭이었다. 산 너머 버덩 솔밭은 중리마을 목동들이 소를 먹이는 장소였고 야생동물과 새들의 보금자리인 천혜의 명소였다. 무지개마을은 이주민 정책 촌이다. 북구 만덕동, 금정구 서동, 해운대구 반송동이 대표적인 이주 정책 촌이다. 지금은 반여2동과 반여3동으로 행정구역이 나누어져 있으나, 무지개마을이 생기기 전에는 반여2동 지역은 무정마을에 속했고, 반여3동 지역은 중리마을에 속했다. 반여2동은 1972년 9월 서구 구덕수원지 수재민 165세대가 이곳으로 이주하며 형성됐다. 이후 계속되는 이주정책으로 인구가 증가하자 1973년 4월 20일 반여동에서 반여1동과 반여2동으로 분동됐다.
1973년 10월 동구 좌천동 고지대 철거민 1천643세대가 이주해 왔다. 이후 1974년 12월 중구 영주동에서 1천145세대가 이주해 오고, 1975년 12월 동구 초량동의 802세대도 이주해와 동세가 커져, 1979년 8월 반여2동이 반여2동과 반여3동으로 분동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철거민 이주 당시만 해도 10여 평으로 협소한 연립주택이었으나 주거환경 개선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돼 지금은 현대식 건물 빌라로 재건축됐다.
반여3동은 1979년 8월 반여2동에서 분동된 부산 고지대 철거민 정책 이주지역으로 마을이 형성된 내력은 반여2동과 같다.
무지개마을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1972년 부산시에서 시내 재개발 사업추진과 고지대 무허가 건물 철거 시 이곳에 10여 평의 협소한 연립주택 건물 지붕 위에 블록별로 빨강, 파랑, 노랑색 등의 페인트 칠을 해 멀리서 바라보면 무지개를 연상하게 한다 하여 무지개마을이라 했으나, 새로 정착하는 이주민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 주기 위해서 붙인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
또한, 장산로에는 고층 건물이 하늘 높이 우뚝 서 있고 장산 기슭 높은 곳까지 아파트 단지가 조성돼 산 속의 도시화된 마을이다.
반여2·3동의 동세의 강화와 도시화로 막혔던 길이 뚫렸다. 1987년에는 반여1동에서 반여3동으로 연결하는 도로가 개통되어 종전에 반여동에서 원동교까지 나가 재송동 반여2·3동으로 우회하여 통행하던 교통 불편이 해소되어 산 넘어 가는 교통이 편리하게 되었다. 반여3동 골목시장은 1965년에 개설된 상가주택복합시장이다. 반여3동 버스종점 정류소에서 장산 쪽으로 올라가는 골목 양쪽 건물들이 들어서서 시장을 형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