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3. 20.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집무실 용산 이전 결정은 엄청난 파격이다. 1392년 조선이 건립된 이후 630년간 이어온 권력의 축이 광화문-경복궁에서 벗어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윤 당선자는 20일 "(한번)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면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벗어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결정을 신속히 내리고 추진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새 정부는 집무공간 변경만으로도 문재인 정부와는 확실한 차별점을 갖게 되었다. 윤 정부는 새로운 용산 시대의 첫 정부가 된다. 반면 문 정부는 마지막 제왕적 대통령제로 규정된다.
대통령 집무실 변경은 5년 전 문 대통령 공약 중 하나였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식 자리에서도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당시 문 대통령은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이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고 광화문 대통령의 모습을 그린 바 있다.
하지만 2년 뒤 집무실 이외 주요 기능의 대체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며 집무실 이전을 백지화했다. 이와는 달리, 윤 당선자는 집무공간을 용산으로 바꿔 집무실 이전과 청와대 개방을 전격 결정했다. 윤 당선자는 "어렵다고 또 다시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다면, 이제 다음 대통령은 어느 누구도 이것을 새로이 시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당선자가 선택한 용산은 지난 140년간 청군과 일본군, 미군의 주둔지로서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면서 용산은 청나라 군대의 주둔지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일본군의 터전으로 바뀌었다. 1945년 해방과 6·25전쟁 이후 미군이 100만여평의 용산 땅에 주둔하게 되었다. 1987년 노태우 대통령이 용산기지 반환을 공약하고, 2005년 노무현 정부가 공원화 방침을 선언했다.
덕분에 빈 땅만 생기면 아파트, 오피스텔을 짓는 마구잡이 난개발에서도 100만여평의 녹지가 그대로 보존되어 왔다. 만약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더라면 아파트 용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후보는 이곳에 청년주택 10만호를 건설하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이다.
용산은 전략적 요충지이면서 국제화 공간이기도 하다. 1883년 외국인들의 상업 행위를 허용한 개시장(開市場)이 되었다. 용산강은 한강 수심이 깊어 큰 배가 들어올 수 있었고, 광화문까지 평지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이곳에 기차역을 건설해 전국 철도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제 용산은 세계 10대 무역강국이 된 대한민국의 국제화를 상징하는 장소로 바뀌게 되었다.
윤 당선자는 광장으로서 용산을 주목하였다. 소통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의지가 중요하다. 20일 윤 당선자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넓은 광장을 가진 집무실의 조감도를 설명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변을 하면서 소통 관계에서 대변혁을 예고했다. 무엇보다 청사 1층에 기자실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은 출퇴근을 하면서 1층 로비나 기자실에서 현안에 대한 질문을 수시로 받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윤 당선자는 서울 출신 첫 대통령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중·고·대학을 마쳤기에 이렇다 할 지역 기반이 없다. 역대 대통령이 대구(전두환-노태우-박근혜 대통령)와 부산(김영삼-노무현-문재인 대통령), 호남(김대중 대통령)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은 것과는 달랐다. 그럼에도 20대 대선에서는 영·호남의 지역주의는 그대로 재연되었다. 이들 지역 유권자들은 후보자 개인과 정책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여전히 지역성에 바탕을 둔 거대 정당에 투표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윤 당선인의 용산 이전은 현재의 영·호남 지역주의를 깨뜨리고 진정한 국민통합 시대로 나아가는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윤 당선자는 문 정부와는 차별적인 정책을 펼칠 것으로 기대된다. 선거기간 밝힌 것처럼 부동산 정책, 대북문제, 원자력 발전 등의 방향은 명확하게 다르다. 외교 역시 전통적인 우방국과의 관계 강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특히 용산고교 인근으로 이전한 미 대사관과의 근접성을 고려하면 한미 관계는 더욱 가까워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새로운 정부의 용산 시대는 단순히 반(反)문재인, ABM(Anything but Moon) 정책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홍성철 /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디지털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