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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0년대 초 1월의 어느 날 저녁에 크리스틴 닐슨이 뉴욕의 아카데미 오브 뮤직에서 <파우스트>를 공연하고 있었다.
사치스러움과 화려함에서 유럽의 큰 수도들에 위치한 오페라하우스들과 필적할 만한 새 오페라하우스가 ‘40번 가 위쪽의’ 한적한 대도시 지역에 세워진다는 소문이 벌써부터 있었지만, 사교계 사람들은 친근한 옛 아카데미의 낡은 붉은색 박스와 금색 박스에서 매해 겨울마다 기꺼이 다시 만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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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눌레코디아의 감상평
이디스 워튼은 처음부터 뉴욕의 상류층의 보수성을 보여주는 문장으로 작품을 시작합니다. 오페라하우스가 새로 생김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아카데미로 가는 사람들을 언급하면서요. 워튼은 그녀 자신이 뉴욕 상류층의 일원이었기 때문인지, 그 속의 사회를 아주 날카로운 눈으로 관찰하고 자신의 감상을 책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상류 사회의 규율과 가식, 모순 위로 인물들이 움직이는데, 그 글을 읽는 저마저도 이 사회의 눈치를 보고 두근두근하며 읽었던 작품입니다. 글 자체는 참 잔잔한데 그 안에서 읽는 사람까지 긴장감이 일어나게끔 만드는, 정말 신기한 작품이라 개인적으로 이번 시즌에서 소개해드리는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작품이예요.
[이디스 워튼 (1862~1937)](https://lh3.googleusercontent.com/proxy/L4HIvTNfgJJs0noVIZ2zWMFk6XRmdd-9YDSJTNmxj5Qf3DzOr8by1IIGHpFxoHMCFS4jiB-SSKp_PmkemA-aRHmjz2KUfPYQ5-jhpwFEzWyUL5J6gmkTA-sr9Z001ExMhokBFg)
이디스 워튼 (1862~1937)
[순수의 시대 문예출판사 판본](https://image.yes24.com/goods/4246190/XL)
순수의 시대 문예출판사 판본
## 뉴욕 사교계
> 뉴랜드 아처가 살던 뉴욕에서는 무엇이 ‘세련되고’ 무엇이 ‘세련되지 않은지’가 몇천 년 전에 조상들의 운명을 지배했던 토템에 대한 불가사의한 공포감만큼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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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눌레코디아의 감상평
우리의 주인공은 뉴랜드 아처입니다. 그는 진보적인 청년으로, 변호사입니다. 그는 메이 웰렌드라는 여성과 약혼이 되어있습니다. 메이는 매우 아름답고 아처와 마찬가지로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 당시 사교계에서 제일가는 신붓감입니다. 메이 웰렌드는 뉴욕 상류층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아처는 그녀가 좋은 아내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선택에 뿌듯해하고 있었습니다.
> 그들은 개별적으로는 열등함을 드러냈지만 함께 모이면 ‘뉴욕’을 대변했다. 남성적인 결속력의 습성 때문에 그는 도덕적이라 불리는 모든 문제에서 그들의 원칙을 받아들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 독자 노선을 취하게 되면 골치 아픈 문제가 일어나리라는―또한 상당히 무례함을 범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사실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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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 세계의 사람들은 어렴풋한 암시와 희미한 미묘함의 분위기 속에서 살았고, 그와 그녀가 한마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한다는 사실은 그에게 어떤 설명보다도 두 사람을 더 가깝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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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삼스럽게 경외심을 느끼면서 그는 자신에게 영혼을 보호받아야 할 아가씨의 솔직한 이마와 진지한 눈, 밝고 순진무구한 입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속하고, 또한 믿는 사회 체제의 그 끔찍한 산물인, 아무것도 모른 채 잔뜩 기대를 품은 젊은 아가씨가 메이 웰렌드의 친근한 모습 속에서 마치 낯선 사람처럼 그를 마주 쳐다보았다. 그는 결혼이 그가 자라며 배웠던 것처럼 안전한 정박지가 아니라 미지의 바다로 나가는 항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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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들도 자유로워야 합니다―우리만큼요”라는 그 자신의 외침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기로 모두가 합의한 문제의 뿌리까지 타격을 가했다. ‘점잖은’ 여자들은 아무리 학대를 당하더라도 그가 말한 그런 종류의 자유를 절대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처럼 관대한 마음을 가진 남자들은―뜨거운 논쟁을 벌일 때―여자들에게 그 자유를 더 기사도적으로 기꺼이 부여할 자세가 되어 있었다. 그런 말뿐인 관대함은 사실 모든 것을 구속하고 사람들을 오래된 방식에 묶어놓는 냉혹한 관습들을 숨기는 기만적인 위장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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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녀에 대해 잠깐 동안 죽 훑어보고 나자 이 모든 솔직함과 순진함이 인위적인 산물일 뿐이라는 생각에 다시 낙담했다. 훈련받지 않은 인간의 본성은 솔직하거나 순진하지 않다. 그것은 본능적인 교활함의 요령과 방어물로 가득했다. 그러자 어머니들과 숙모들, 오래전에 죽은 여자 조상들의 공모에 의해 너무나 교묘하게 만들어진 이런 인위적인 순수함의 창조물에 오히려 그가 짓눌리는 것같이 느꼈다. 그는 그 순수함을 자신이 원했던 것이며, 눈사람처럼 마음 내키는 대로 부숴버릴 수 있는 자기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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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렌 올렌스카
> 그녀에게는 아름다움의 신비스러운 권위가 있었다. 머리를 든 자세에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고, 눈을 움직이는 모습은 조금도 부자연스럽지 않고 고도로 훈련된 것이며 의식적인 힘으로 가득 차 있다는 인상을 그에게 주었다. 동시에 그녀의 태도는 그 자리에 참석한 대부분의 숙녀들보다 더 꾸밈이 없었다. 그녀의 차림새가 더 ‘세련되지’ 않은 것에 실망한 사람이 많았다―뉴욕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세련됨’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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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련되진 않았죠.”
“세련이라고요? 당신들 모두 그걸 그렇게 중요하다 생각하나요? 각자 나름대로 세련됨을 추구하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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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서는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나요, 아처 씨? 진짜 외로움은 가식만을 요구하는 이 모든 친절한 사람들 속에서 사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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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나다고! 우리는 모두 종이를 똑같은 크기로 접어놓고 한 번에 잘라낸 인형처럼 서로 닮았소. 벽에 스텐실로 찍은 무늬 같지. 당신과 내가 우리 힘으로 새로운 길을 갈 수는 없겠소, 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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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눌레코디아의 감상평
이렇게 모든 것이 정해져있고 ‘해도 되는 것’과 ‘해선 안 되는 것’이 분명한 뉴욕 사교계에 메이의 사촌 엘렌 올렌스카 백작부인이 귀국합니다. 그녀는 어릴적 폴란드 귀족에게 시집갔으나 추문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세련됨’을 중시하는 사교계에서 그녀를 곱게 볼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올렌스카 부인은 그런건 신경쓰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태도로 삶을 대합니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기를 바라는데, 상류 사회에서 이혼이란 가장 큰 금기이자 치명적인 스캔들입니다. 그래서 아처는 부인의 친적이자 자신의 약혼녀인 메이의 가족의 부탁으로 그녀가 이혼하지 않도록 설득하게 됩니다.
> “당신도 그들과 같은 의견인가요?”(…)
“진심으로 말씀드리자면, 그렇다면 온갖 불쾌한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이 있는데―아니 확실한데―그것을 보상할 수 있을 만큼 당신이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내 자유는요―그건 아무것도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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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그녀가 틀림없이 뉴욕에서 더 큰 관용을 기대하겠지만 순진하고 친절한 뉴욕이야말로 관대함을 절대 바랄 수 없는 곳이라는 점도 분명하게 이해시켰다. 이런 사실을 그녀에게 분명하게 알려줘야 하고―그녀가 그것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아야만 하는 것은 그에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일이었다. 마치 침묵으로 고백한 실수 때문에 그녀가 그의 처분에 맡겨져서 초라해지면서 한편으로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된 것처럼, 그는 자신이 질투심과 동정심의 애매한 감정에 의해 그녀에게 끌리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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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수
> 직업을 갖는 것은 괜찮은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돈벌이를 한다는 노골적인 사실은 여전히 품위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법률은 전문직이었기 때문에 사업보다 더 신사다운 직업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런 젊은이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직업에서 정말로 성공하고 싶다는 희망이나 그렇게 하려는 어떤 진지한 소망을 가지진 않았다. 그리고 대다수의 그들에게는 기계적으로 일하는 태도가 녹색 곰팡이처럼 이미 눈에 띄게 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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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메이의 얼굴 역시 불굴의 순수함을 띤 중년의 모습으로 두꺼워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자문했다.
아, 그러면 안 되는데. 그는 메이가 똑같은 종류의 순수함을 갖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상상력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정신을 꼭꼭 닫아버리고 경험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가슴을 닫아버리는 그런 순수함은 원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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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다르게 살고 싶어 하지 않지. 사람들은 그것을 천연두처럼 두려워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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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눌레코디아의 감상평
순수해 보이는 눈 밑에는 고도로 훈련받은 위선과 가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처는 눈치챕니다. 모든 감정과 충동을 억누르고, 오로지 사회가 정한 틀 안에서만 존재하며 다른 것들은 못본 체해버리기 때문에 메이는 그토록 순수한 눈빛을 할 수 있는 것이죠. 순수함이란 그 자체로 깨끗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그것을 오히려 위선과 가면의 결과라고 보는 이 시각이 굉장히 새로웠어요.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어렵기도 한 느낌입니다.
한편, 올렌스카 부인에게 계속 이성적 호감을 가지던 아처는 그녀에게 마음을 드러내고 맙니다. 그러나 그 자신이 그녀의 이혼을 막았고 그의 결혼이 임박해온 상황입니다. 그는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할 수 없게 만드는 이 사회의 엄격한 규율이 모두 유치하게 느껴집니다.
> “당신에게 한 번도 구애한 적이 없소. 앞으로도 그럴 것이오. 그렇지만 당신은 우리 둘 중 어느 누구에게라도 가능했다면 내가 결혼했을 여자요."
"우리 둘 중 어느 누구에게라도 가능했다면요?" 그녀가 솔직하게 놀라움을 표시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다니요—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당신이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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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처는 레퍼츠의 날카로운 시선이 '훌륭한 예법'이라는 신에 대한 의식에서 얼마나 많은 결점을 찾아냈을지 궁금했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 또한 한때는 그런 문제들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자신의 일상을 차지했던 것들이 이제는 인생에 대한 유치한 패러디나,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 형이상학적인 용어들에 대해 중세 신학자들이 벌인 논쟁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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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능력 때문에 그녀의 두 눈이 그렇게 투명해 보이고, 그녀의 얼굴은 어쩌면 시민의 미덕 동상이나 그리스 여신의 모델로 선택 되었을 것처럼, 한 개인이라기보다 한 유형을 대표하는 표정을 띠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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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처는 결혼에 대해 오래전에 지니고 있던 생각들로 되돌아갔다. 구속받지 않던 총각 시절에 장난삼아 매달렸던 이론들을 실천에 옮기려고 애쓰는 것보다 전통을 따르고 친구들이 자기 아내들을 대하는 것과 똑같이 메이를 대하는 것이 덜 성가셨다. 자신이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을 눈곱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아내를 해방시키려고 애써봐야 소용없는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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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눌레코디아의 감상평
아처는 메이와 결국 결혼하게 되고, 올렌스카 부인에 대한 마음을 접습니다. 한때 여성도 남성들만큼이나 자유로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그는 그럴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아내와 함께하며 예전의 진보적인 생각을 접고 현실과 타협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한번씩 올렌스카 부인을 마주할 때마다 그는 흔들리고 그녀에게 도망가자고까지 제안합니다. 그러나 가족을 배신할 수 없었던 올렌스카 부인은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 그는 처음 여섯 달이 항상 결혼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라는 진부한 말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 후에는 우리 각자의 모난 각들이 거의 다 닳게 되겠지." 그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가장 나쁜 것은 그가 가장 유지하고 싶었던 날카로움을 지닌 바로 그 각들에 메이의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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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무슨 소용이 있소? 당신은 내게 진짜 삶을 처음으로 보게 해주고 바로 그 순간 계속 가짜 삶을 살라고 부탁했소. 그것은 인간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오-그게 전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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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바라는 것은—내가 바라는 것은 그런 단어들이—그런 범주들이—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당신과 함께 어떻게든 떠나는 것이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삶의 전부가 되는 그저 두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런 곳으로 말이오.”
그녀가 깊이 한숨을 쉬다가 다시 웃기 시작했다. “아, 세상에―그런 나라가 어디에 있어요? 그곳에 가본 적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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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위해서요? 그런 의미에서의 우리는 없어요! 우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때만 서로 가까이 있어요. 그러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저 우리를 신뢰하는 사람들 등 뒤에서 행복해지려고 애쓰는 엘런 올렌스카의 사촌의 남편 뉴랜드 아처와 뉴랜드 아처의 아내의 사촌 엘런 올렌스카일 뿐이에요."
"아, 나는 그것을 뛰어넘었소." 그가 신음하듯 말했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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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분 동안 그가 어둠 속에 몸을 내밀고 있자 메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뉴랜드! 제발 창문 좀 닫아요. 그러다 독감에라도 걸려 죽겠어요." 그가 창틀을 내려서 닫고 돌아섰다. '독감에 걸려 죽는다고!' 그가 그 말을 되뇌 었다. 그는 '그렇지만 나는 이미 독감에 걸렸소. 나는 죽은 몸이오—이미 죽은 지 오래되었소'라고 덧붙이고 싶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 말장난에 터무니없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죽은 사람이 메이라면 어떨까? 그녀가 죽는다면—곧 죽어서—그를 자유롭게 놓아준다면! 그 따뜻하고 친숙한 방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가 죽기를 바라면서 그곳에 서 있는 느낌이 너무 이상하고, 너무 매혹적이며, 너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바로 깨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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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 속 진실
> 평온하고 살진 얼굴을 하나씩 훑어보면서 그는 메이의 들오리 요리를 열심히 먹는 악의 없어 보이는 사람들 모두가 말 없는 음모자들의 무리고, 자신과 그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창백한 여성이 그들의 음모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가 그들 모두에게는 그와 올렌스카 부인이 연인 사이이며, ‘외국의’ 어휘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극단적인 의미에서의 연인 사이라는 것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서 내리치는 거대한 번갯불 섬광처럼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자신이 여러 달 동안 말없이 주시하는 무수한 시선과 끈기 있게 곤두세운 귀들의 중심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자신이 아직은 모르는 방법으로 자신과 그의 죄를 같이 지은 상대자를 떼어놓는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래서 모두 아무것도 모르거나 어떤 것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는 암묵적인 전제 하에, 그리고 이 접대 행사는 메이 아처가 친구이자 사촌에게 다정한 작별을 고하고 싶은 당연한 바람으로 만들어진 자리일 뿐이라는 전제 하에, 일족 전체가 자기 아내 주변에 몰려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목숨을 빼앗는 옛 뉴욕의 방식이었으며, 병보다 추문을 더 두려워하고 용기보다 품위를 더 중요하게 여기며 소동을 일으킨 사람의 행동을 제외하면 '소동'을 일으키는 것보다 더 교양 없는 짓은 없다고 간주하는 사람들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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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눌레코디아의 감상평
결국 올렌스카는 유럽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녀를 위해 메이가 송별회를 해주는데 그 자리에서 아처는 사교계의 누구도, 심지어 자신의 아내마저도 그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모두가 자신과 올렌스카 부인과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게됩니다. 그렇게 올렌스카는 유럽으로 돌아가고, 아처는 메이와 결혼 생활을 이어갑니다. 어느날 메이가 아이를 돌보다 폐렴이 옮아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나중에 아처는 아들을 통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됩니다.
> 그는 자신이 뭔가를 놓쳤다는 것을, 인생의 꽃을 놓쳤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너무나 도달하기 어렵고 불가능해 보여서 그것에 대해 한탄하는 것은 복권에서 일등으로 당첨되지 않았다고 절망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복권에는 몇억만 장의 표가 있었고 일등은 하나밖에 없었다. 일등에 당첨될 확률은 그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그가 엘런 올렌스카를 생각할 때면 책이나 그림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연인을 생각하는 것처럼 추상적이고 평온했다. 그녀는 그가 놓친 모든 것을 보여주는 종합적인 환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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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수 있는 그런 여자 말이에요. 아버지는 그러시지 않으셨지만 말이에요." 그를 계속 놀라게 만드는 아들이 말을 계속했다.
"그래, 그렇게 안 했지." 아처가 엄숙하다 할 수 있는 투로 되풀이했다.
"네, 아버진 정말 고리타분해요. 그런데 어머니 말씀이……"
"네 어머니 말이냐?"
"네. 돌아가시기 전날이었어요. 절 혼자 부르셨어요—기억나세요? 어머니는 우리가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고 또 항상 그럴 것이라는 걸 안다고 하셨어요. 옛날에 어머니가 아버지께 부탁했더니 아버지가 자신이 가장 원하던 것을 포기 하셨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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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어머니가 나한테 부탁한 적이 없었다."
> "맞아요,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두 분은 서로에게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았어요, 그렇죠? 두 분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앉아서 서로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추측만 했어요. 사실 농아 보호시설 같았다니까요.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각을 알아낸 것보다 부모님 세대가 서로의 마음속 생각을 더 많이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부모님 세대를 지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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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처는 아들의 말을 들으며 자기 자신이 부족하고 표현력이 없다는 느낌을 더욱더 갖게 되었다. 아들이 둔감하진 않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거기에다 아들에게는 운명을 주인이 아니라 동등한 존재로 간주할 때 생겨나는 능수능란함과 자신감이 있었다. “바로 그거야. 그들은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고 느끼고 있어―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아는 거지.” 그는 아들을 옛 경계표와 더불어 표지판과 위험 신호기까지 전부 쓸어내버린 신세대의 대변자라고 생각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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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는 위로 올라간 것보다 여기 앉아 상상하는 게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군." 갑자기 그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생생함의 마지막 그림자가 희미해지지 않을까 두려워서 그는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계속 앉아 있었다. 그는 점점 더 짙어지는 어스름 속에 발코니에서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벤치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마침내 창문을 통해 불빛이 흘러나왔고 잠시 후 남자 하인이 발코니로 나와 차양을 올리고 덧문을 닫았다.
그것이 자신이 기다렸던 신호이기라도 한 것처럼 마침내 뉴랜드 아처는 천천히 일어나서 혼자 호텔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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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눌레코디아의 감상평
아처와 아처의 아들 댈러스는 유럽 여행을 하면서 파리에 도착하고, 올렌스카 백작부인을 만나러 갑니다. 댈러스에게 올렌스카 부인은 엄마의 사촌이니 조금 먼 이모뻘 (?) 이니까요. 그녀가 살고 있는 집에 도착하고 댈러스는 그녀를 만나러 올라가지만 아처는 그저 건물 바깥의 벤치에 앉아있다가 자리를 떠납니다. 그녀와는 뭔가 실제로 연애를 했다기보다, 그가 놓친 미래를 늘 상상만 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녀를 그렇게 상상으로만 남겨두는 것이 어쩌면 안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주변 눈치 보느라 노선도 확실히 정하지 못하고 이리 얼쩡, 저리 얼쩡 거리는 아처가 답답했었어요. 결국 메이에게는 죽을 때까지 큰 상처를 주었고, 올렌스카 부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책임지지 못할 감정을 비쳐보이고 말았죠. 그러나 다시 읽으니 인물 관계보다 당시 뉴욕의 갑갑한 규율 위에 주위 눈치보느라 자유롭게 생활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려졌어요. 결국 남 눈치보다가 나다운 결정을 하지 못하는 건 나에게도 주변을 둘러싼 사회에도 그다지 유용한 일이 되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잔잔한 스토리 속에서 인물들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숨 죽이며 보는 뭐랄까… 어찌보면 서스펜스 같기도 한 소설입니다. 조금 두껍긴하지만 이렇게 글로 독자까지 눈치보게 만드는 작품은 분명 흔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