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장군) 1545년 음력 3월 8일 子시
戊 辛 己 乙 子 丑 卯 巳 | = | 58 48 38 28 18 8 癸 甲 乙 丙 丁 戊 酉 戌 亥 子 丑 寅 |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해전에서 왜군을 격파하여 승리로 이끈 조선의 명장인 이순신의 사주는
과연 어떻게 타고났을까?
일주 辛金에 월령 사령이 乙木인 <편재격>의 사주로서 財도 왕하고 일주도 주변에 土가 많아 신왕 재왕의 사주다.
丙子대운 丙子년 즉 32세에 무과에 급제한 것은 年간 丙은 정관이고 子水는 격국을 생조하니 벼슬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고, 亥대운 말 47세 辛卯(1591)년에 파격적인 승진을 한 것은 亥水와 卯가 木局을 이루어 격국을 도와준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다.
그후 甲戌대운 48세 壬辰년에 전쟁이 터지자 무공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격국을 돕는 甲木운의 작용이라 할 수 있다.
용신의 甲戌(木) 대운이라하여도 53세 丁酉년은 丁火는 칠살로 일간을 때리고 酉金은 卯木 월령을 충극하니, 1월에 원균의 모함으로 투옥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다행히 봄에 석방되어,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여 망쳐먹은 수군을 다시 수습하여 13척의 배로 133척이 넘는 적을 상대로 기적의 <명량해전>으로 승리는 하였으나 모친과 아들을 잃는 비극을 겪었다.
54세 戊戌년, 대운의 戌과 년운의 戌, 두 개의 戌이 일지 丑을 형(刑)하며 土가 강하여 격국의 힘을 약화시키니 11월 甲子월에 <노량해전>을 승리로 장식하며 장렬히 전사하였다.
본관은 덕수, 자는 여해, 시호는 충무공으로 양반가에서 태어나 22세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해 1576년 봄 무과에 급제했다. 159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된 후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여 거북선을 건조하고 군사를 조련했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월에 옥포 앞바다에서 첫 승리를 거둔 이후 한산도대첩에서 적선을 크게 격퇴하여 왜군의 전의를 상실시켰다. 1597년 왜군의 간계와 원균의 모함으로 백의종군 처분을 받았으나 곧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했고, 13척의 배로 133여 척의 왜군을 격파한 명량대첩을 이끌어 왜군의 서해 진출을 저지했다. 마지막 전투였던 11월 노량해전에서 왼쪽 가슴에 탄환을 맞아 전사했다. 진중에서 기록한 <난중일기>가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