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순교자의 신앙 따라 Date 2017. 6. 25
Text Jrm 37,16-21
(16)예레미야가 뚜껑 씌운 웅덩이에 들어간 지 여러 날 만에 (17)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이끌어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이르되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 예레미야가 대답하되 있나이다 또 이르되 왕이 바벨론의 왕의 손에 넘겨지리이다 (18)예레미야가 다시 시드기야 왕에게 이르되 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나 이 백성에게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 (19)바벨론의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한 왕의 선지자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20)내 주 왕이여 이제 청하건대 내게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에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 (21)이에 시드기야 왕이 명령하여 예레미야를 감옥 뜰에 두고 떡 만드는 자의 거리에서 매일 떡 한 개씩 그에게 주게 하매 성중에 떡이 떨어질 때까지 이르니라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머무니라
1.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귀한 액체 3가지가 있는데 바로 눈물과 땀과 피 입니다. 눈물은 모든 인간들이 슬플 때나 기쁠 때 흘리는 것으로 참회의 눈물은 마음의 상처를 씻고 감사의 눈물은 공동체를 천국으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땀은 노동과 운동의 결과물로서 소득의 정당성을 담보하여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흘릴 수 있는 고귀한 액체 가운데 최고는 피라 할 것입니다.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곧 희생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피 흘린 수고와 희생보다 더 위대한 것은 세상에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우리 감리교회가 10년 전부터 정하여 지키고 있는 순교자기념주일입니다. 순교자란 복음을 전하다가, 또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빼앗긴 사람들을 말합니다. 초대교회 시절 유명한 교부였던 터툴리아누스는 기독교신앙에 대하여 변증하는 글에서 ‘씨앗은 기독교인들의 피다.’(semen est sanguis Christianorum)라고 했습니다. 감신대 이덕주 교수는 6.25 때 감리교인들 중에서 밝혀진 순교자만 170명에 이른다고 했고, 고신대 이상규 교수는 초대교회 300년 동안의 순교자 숫자보다 100년 동안의 한국교회 순교자 수가 더 많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말씀에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옥고를 치르는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오늘 읽은 부분에는 옥고를 치르는 얘기뿐이지만 유대인들의 역사서가 전하여주는 바에 의하면 예레미야는 동족들에 의하여 살해, 즉 순교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영웅적인 헌신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기도 해야 하지만, 왜 그들은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는지 진지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설교시간에 이 질문을 함께 나누면서 은혜 받기를 소망합니다.
2.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꼭 목숨까지 바쳐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의 방법,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길, 예수님이 만들어놓으신 구원의 길을 따라가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 목숨까지 바쳐야 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와 부활의 방법입니다. 인간의 죄를 씻고 구원을 받는 것은 좋은데 꼭 그 방법이 예수의 방법밖에 없다고 고집해야 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사실 이런 질문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제기되는 질문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뚜껑 씌운 웅덩이에 갇힌 것은 예레미야가 한 예언이 시드기야 왕을 비롯한 당시 힘 있는 이들의 뜻과 배치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정부는 친 애굽, 반 바벨론 정책을 펼치고 있었는데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위협은 하나님의 법을 버린 이스라엘 나라와 백성들에 대한 징계성 심판이기 때문에 바벨론이 무서워 애굽을 의지하는 정책이 이 위기에서 벗어날 방안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징계를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외치니 정치지도자들은 격렬하게 예레미야를 핍박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순교자들은 예수의 길, 십자가와 부활의 방식만이 유일무이한 구원의 길이요, 예수라는 이름 외에 다른 구원 받을 수 있는 이름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목숨을 잃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그 믿음과 뜻을 꺾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는 용기의 문제라기보다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영상을 보여드리겠는데 제 말씀을 들으면서 영상을 참고하십시오. 1972년에 제작된 ‘포세이돈어드벤처’라는 유명한 영화입니다.
초호화 여객선이 지진 때문에 생긴 쓰나미에 대서양 한 가운데서 침몰합니다. 그 배에는 스캇이라는 이름의 젊은 목사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 배에서 살아날 수 있는 길을 목사 스캇은 찾아 나섭니다. 많은 승객들 중 9명만 그를 따라오는데 그 9명 중에서도 두려움에 휩싸인 사람, 부인의 뜻을 따라 동행하기는 하지만 사사건건 반대만 전직 경찰도 섞여 있습니다. 목사 스캇은 역설합니다. 이 길만이 구조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지만 9명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반대편의 길을 선택합니다. 마지막 관문에서 그 길을 인도하던 스캇 목사는 그 문을 열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반대만 일삼던 전직경찰에게 소임을 맡기고 죽습니다. 내대신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이 사람들을 인도하라고. 결국 최후에 6명만이 구조대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조되며 영화는 끝납니다.
이 영화에서 목사 스캇은 순교했다고 하기보다는 순직했다는 것이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목사 스캇이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구원의 길로 이끄는 장면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이 길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고 그는 믿었고 끝까지 그를 믿고 따라온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마지막에 불평쟁이 전직경찰이 고백하지요. “스캇, 그 녀석이 좋은 목사였어.”
여러분, 순교자기념주일에 우리 믿음을 돌아보십시다. 순교신앙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라고 말씀드렸지요? 순교자들은 모두 구원의 길은 이 길, 즉 예수께서 만드신 길,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길, 예수께서 이끄시는 길밖에 없음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끝까지 목숨을 잃어가면서도 포기하거나 중단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3. 한 가지 질문을 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꼭 이런 방식으로만 믿어야 해?’
이 두 번째 질문은 믿음의 문제라기보다는 용기의 문제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보면 예레미야 또한 죽음 앞에 두려워 떠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시드기야 왕에게 호소했습니다. “(20)내 주 왕이여 이제 청하건대 내게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에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 그래서 그는 왕의 호의로 당장 죽을 자리로 보내지지 않고 뚜껑 있는 물웅덩이에서 건져내어 시위대 뜰에 구금된 상태로 지내게 됩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말씀은 절대 변개될 수 없는 확실한 말씀임을 거듭 주장합니다.
‘꼭 이런 식으로 믿어야 해?’라는 질문은 순교의 길에서만 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어쩌면 성도들이 저 하늘나라를 향해 가는 길 내내, 평생 동안 따라다니는 마귀의 속삭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좀 적당히 하지?’
‘당신은 능력이 많지~ 그런데 왜 그렇게 굶고 있어? 당신의 능력이라면 이 돌들로도 빵을 만들 수 있잖아~ 배도 채우고 출세도 하고 해~ 구원도 좋지만 당장 먹고 살아야 할 것이 아님? 그 능력 너 자신을 위해 쓴다고 누가 뭐라겠어?’
‘사탄아, 넌 내가 우습지? 그게 너와 내가 다른 점이야. 아무리 급해도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이 있어. 내 배고픈 고통보다 하나님의 법,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해.’
‘야, 너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한다며? 그런데 왜 그렇게 미련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의 높은 빌딩에서 뛰어내려~ 그런 기적을 보여봐~ 그러면 그냥 다 너를 따라올 거야~ 멍청하게 십자가의 길을 걷고 십자가에 강도처럼 못 박혀 죽는 길을 왜 가? 너 그 많은 능력 이런 때 안 쓰고 언제 쓸려고 그렇게 아껴둔대?’
‘사탄아, 네가 보기엔 내가 바보 같지? 그래 그래서 넌 사탄인거야. 사람들이 네 능력에 미혹되어 너를 따르니 그들이 다 네 사람들처럼 보이지? 아니야. 그 사람들은 네 사람이 아니라 또 다른 너야~ 기적을 보고 초월적인 능력을 본다고 죄에 물든 사람의 심령이 깨끗해지지 않거든~ 신비가지고 장난치지 마~ 최고의 신비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방법을 순종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거야~’
여러분, 사탄은 오늘날에도 우리 성도들의 용기를 시험합니다. 너 이지경이 됐는데도 그 방법 포기하지 않을래? 라고.
‘예수님, 능력이 많으시다면서요~ 그 능력으로 나 쫌 취직시켜주시면 안 돼요?’
‘예수님, 내 속 고마 태우고 이제 그 능력으로 큰 기적 쫌 보여주시지요~ 그라모 하나님 영광 받아서 좋고~ 교회 부흥돼서 좋고~ 나도 덕분에 인기 끌어서 좋고~ 그런게 누이 좋고 매부 좋다고 하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 답답하십니까? 순교자의 신앙 따라 용기를 가지십시오. 끝까지 하나님의 방법을 포기하지 마시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을 믿으시면서, 묵묵히 인내하며 주님의 때를 기다리고 주님의 뜻에 순응하는 용기를 잃지 마시라고요.
4. 못하나마 제 찬양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왜 꼭 십자가의 길이어야 하죠? 그 많은 능력으로 사람들 휘어잡을 수 있잖아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비바람이 비바람이 비바람이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눈보라가 눈보라가 눈보라가 눈보라가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정말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좀 쉽게 갈 수 있게 해주시면 안 되나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마음에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험한 파도 험한 파도 험한 파도 험한 파도 앞길을 막아도
모진 바람 모진 바람 모진 바람 모진 바람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