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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쟁투 교회사2 - 제1세기의 핍박/ 박상길 목사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대쟁투 교회사 두 번째 시간으로 제1세기에 하나님의 교회에 닥쳐온 핍박의 역사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제가 지난 시간에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여러분에게 좀 생소할 것으로 생각되는 대쟁투라는 용어에 대해서 잠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대쟁투 (大爭鬪) 는 한자로는 이렇게 쓰고, 영어로는 Great Controversy 라고 옮겨 쓸 수 있습니다.
쟁투라는 단어는 우리가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만 서로 다투어 싸운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대쟁투는 큰 싸움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누구와 누구 혹은 무엇과 무엇의 싸움일까요? 대쟁투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탄과의 싸움이며 진리와 거짓, 선과 악 사이의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선악의 대쟁투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이전에 하늘에서 사탄에 의해서 시작된 전쟁이며 지금까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 온 전쟁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승리하셨지만 지금도 이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까닭은 사탄과 그 세력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대로 사탄과 그의 세력이 완전히 소멸된 후에 마침내 대쟁투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
온 우주에서 죄가 사라지는 그때의 대쟁투도 끝나는 것이죠.
이 대쟁투 교회사는 이와 같은 대쟁투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어떤 사명을 감당해 왔는지, 지금 어떤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사명을 감당하며 어떤 일을 이루어야 할지 그와 같은 관점에서 기독교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되는 대정투 교회사를 통해서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교회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그리고 교회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승리를 확인하고 확신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예루살렘 멸망 이후에 찾아온 핍박의 역사를 선악의 대쟁투의 관점에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예언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당신의 재림이라는 이 큰 두 사건을 중심으로 말씀하시면서
그 사이의 기간,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는 기독교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할 시련에 대해서도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시대에 하나님의 교회에 밀려올 폭풍과 그 이후 먼 시대에 닥칠 암흑과 박해, 그리고 세상의 통치자들이 교회에 행할 공격과 핍박에 대해서도 예언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때의 사람들이 너희를 환란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바로 이 말씀이 예루살렘 멸망 이후 또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이전까지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어야 할 경험할 수밖에 없는 박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예수님 말씀대로 박해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무자비한 핍박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재산을 빼앗겼고 살던 집에서 쫓겨났고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걸어가신 동일한 굴욕과 비난과 고난의 길을 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구주를 향하여 쏟아졌던 증오는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도 반드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복음 15장 20절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너희 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 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오.
내 말을 지켰쓴. 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네로 황제 때 본격적으로 박해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황제에 따라서 어떤 때는 더 심하고 어떤 때는 좀 덜 심하고 한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몇 세기에 걸쳐서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박해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근이나 질병이나 지진 같은 재난의 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저 사람들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뿐만 아니라 로마 사회에 로마 제국의 반역자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자들로 정제되었습니다.
네로 황제가 로마 시에 불을 지르고 그 화재의 원인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뒤집어 씌운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백성들은 무자비한 핍박을 받으면서 원형 극장에서 짐승의 밥이 되고 화형에 처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짐승의 가죽을 씌워서 투기장에 던져졌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는 당시 로마 제국 사람들의 최고의 오락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서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카타콤과 같은 지하 무덤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햇빛을 볼 수 없는 땅 속에서 살았지만 그들은 한마디의 불평도 입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믿음과 인내와 희망이 가득한 말로 서로 격려하며 궁핍과 괴로움을 견뎠습니다.
온갖 세상적인 축복들을 잃어버리는 것도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버리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시련과 박해는 그들로 하여금 장래에 받을 안식과 상급을 향하여 더욱 가까이 나가게 하는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체포되어서 사형에 처해졌지만, 히브리서에 기록된 것처럼
그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행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산상수훈에 기록된 말씀대로 그리스도로 인하여 받는 핍박을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은 내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내게 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핍박을 당하고 죽임을 당할수록 복음은 더욱 강력하게 전파되었고, 로마 군대의 독수리 깃발이 접근하지 못하는 곳에도 진리의 복음은 증거되었습니다.
그들이 당한 고난은 서로를 친밀하게 만들어 주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했습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일상생활의 모범과 경건한 삶과 고결한 품성과, 그리고 그들이 임종 시에 남긴 위대한 증언에 감동을 받은 많은 박해자들이 사탄을 섬기는 일을 떠나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아무리 핍박해도 아무리 죽여도 교회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박해로 하나님의 교회를 멸하려던 사단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여러분 사탄이 얼마나 약이 올랐겠습니까?
핍박으로 교회를 멸하는 일에 실패한 사탄은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매우 그럴 듯한 그리고 성공적인 교활한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믿음과 순종을 분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허락하되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막는 것입니다.
박해를 멈춘 사단은 세속적 번영과 명예라는 미끼로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했습니다.
그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은 한 번도 세상에서 인정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잘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세속적 번영과 명예라는 믿기를 마구 마구 던져준 것입니다.
한편으로 사탄은 우상숭배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유인했습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사탄이 우상숭배자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참된 믿음을 갖지는 못하게 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게는 하면서 진리의 일부분은 받아들이고 다른 부분은 거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죄를 버리지 않는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넘쳐나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했는데, 이제는 세상을 버리지 않고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교회는 공공연하고 극렬한 핍박을 받던 때보다 더 치명적인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세속화라는 위기입니다.
기독교의 가면을 쓴 사탄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신자들의 순결한 믿음을 파괴하고 그들의 마음을 진리의 말씀해서 떠나가게 한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은 신자들을 교회 안으로 데려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신앙의 표준을 낮추는 데 동의했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와 이교 사이에 별 차이가 없게 되었고, 이 교회의 불건전한 교리, 미신적 의식, 우상숭배가 교회 안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순결과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 중에는 언제나 두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한 부류는 예수님의 생애를 연구하여 자신의 결정을 고치고 그분의 삶에 일치되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부류는 그들의 잘못을 보여주는 명백하고도 실제적인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가롯유다는 진리의 실체이신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거듭거듭 빛을 거절하고 사탄의 유혹을 자초했습니다.
초대교회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탐심을 품고 있다가 결국 죽임을 당했습니다.
핍박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교회가 순결을 유지했지만 박해가 그치자 철저하지도 않고 헌신하지도 않은 신자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사탄의 발판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전에는 신실했던 그리스도인들이 이 절반만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과 연합함으로 점점점 진리에서 멀어져 갔고, 마침내는 그들이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면들을 부정하고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신앙의 표준으로 인정하지 않게 되었으며, 신앙의 자유마저도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사탄이 던져준 미끼를 물고 점점 타락하고 표준을 낮추고 세속적으로 되어 가는 모습을 바라본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 깊은 고민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지킬 것인가
마침내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무리들에게서 분리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치명적인 오류를 묵인하거나 후손들의 신앙을 위태롭게 할 모본을 남기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들도 화평과 연합을 소중하게 여겼지만, 원칙을 희생하면서 화평을 유지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진리와 정의를 양보함으로 얻을 수 있는 연합이라면 차라리 불화와 투쟁의 편을 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두려운 일은 이 같은 1세기 기독교에 나타났던 동일한 현상이 우리의 시대에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고 죄에서 돌아서는 참된 기독 신앙의 정신이 거의 사라져버렸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죄와 악습을 버리지 않고도 아무런 가책 없이 교회에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여러 세기 동안 충성된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무릅쓰고 거부하고 폭로한 거짓 이론과 치명적 기만들이 교회 안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환영받고 있습니다. 동시에 생명을 무릅쓰고 지켜온 하나님의 계명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취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설교와 주장을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는 사탄의 계략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대쟁투 교회사를 통하여 지나간 역사를 확인하는 이유입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한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흠 없는 행실과 견고한 믿음으로 죄를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하고 단호한 견책이 되었습니다.
숫자도 적었고, 재산과 지위와 명예도 없었지만 그들의 품성과 삶의 모범은 이기심과 타락에 대한 끊임없는 견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벨과 예수님이 받았던 대접을 받았, 예수님이 세상에 사시던 때로부터 오늘까지 그분의 충성된 제자들은 죄를 좋아하고 그 길을 따라가는 자들의 미움과 반대를 받아왔습니다.
이것이 오늘 진리를 사랑하는, 진리, 횃불, 가족이 가야 할 길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명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복음은 평화의 기별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동시에 분쟁을 일으키는 칼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10장 34절에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여서 순종하기만 하면 평안과 조화와 행복을 전해준다는 면에서 복음은 평화의 기별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죄를 지적하고 드러내는 역할을 할 때에 그것을 거절할 때는 증오와 분쟁을 일으키기 때문에 복음이 칼이 되는 것이,
그러므로 악인의 손에 의해 의인이 핍박받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십자가라는 사랑의 충분하고 넉넉한 증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 즉 너희도 핍박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과 혹독한 형벌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선택하고 복음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많은 핍박과 고난을 당할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경우에라도 당신의 자녀들을 잊으시거나 소홀히 여기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고난의 풀물을 허락하시는 까닭은 그것을 통해 정결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신앙과 경건의 실제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불경건하고 믿지 않는 자들을 견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악한 자가 번영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향한 적의를 나타내도록 허용하시는 까닭은
그들의 죄악에 잔이 찰 때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완전한 멸망 가운데서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한 자들이 공정한 복을 받는 날, 하나님의 충성된 자들에게 행한 모든 잔혹하고 불의한 행위가 사실은 그리스도께 행한 것으로 인정되어 벌을 받는 날이 신속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무릎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박해의 불이 꺼진 듯이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회가 1세기의 교회처럼 세속적 표준과 타협하여 세상의 반대를 받을 일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세상에서 인기가 있는 이유는 죄와 타협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무시하기 때문이며, 경건의 정신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신앙과 능력이 되살아날 때 박해의 정신은 다시 타오를 것이 핍박의 불길이 다시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도
변함없이 진리의 편에서 주님을 따라가는 진리 횃불 가족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진리 횃불 웹사이트에는 이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성경 연구 자료를 통해서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