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正東津)과 썬크루즈 호텔
정동진(正東津)
○ 지명의 유래 : 한양(漢陽)의 경복궁에서 정(正) 동쪽 나루터가 있는 마을
○ 주소 : 강원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4시, 아무도 없는 해변가에서 거대한 자연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두려움'에서 '놀라움'과 '황홀함'으로 바뀌기까지 그리 올래 걸리지 않았는데 처음 본 새벽 바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검은색 물감으로 빈틈없이 칠한 듯한 하늘과 바다를 향해 비추던 조명을 통해 드러난 검푸른 물, 살을 에는 듯한 겨울바람과 파도 소리가 뒤엉키면서 나는 우레와 같은 소리는 마치 웅장한 교향곡을 듣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파도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는데 육지에 닿으면서 하얗게 부서지는 물살이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 손짓 같았다. 고요하면서 요란한, 정적이면서 동적인 느낌이 공존하던 신비하고도 묘한 풍경에 추위도 잊고 푹 빠져들었다.
문득 동해가 보고 싶을 때 접근하기 좋은 곳은 정동진만한 곳이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대다수 바다가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에서 한참 떨어져 있어 또다시 이동해야 하지만, ‘정동진역’은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만큼 역에서 5분가량만 걸어가면 해변에 이른다. 기차에서 잠시 한숨 자고 일어나면 바다 앞에 도착하니 이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바다가 보고 싶지만,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때 밤 기차는 여러모로 유용했다. 시간을 아껴주는 동시에 낯선 장소를 새벽부터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동진의 경우, 늦은 밤에 출발하면 새벽 4 – 5시 즈음 역에 도착해 일출과 함께 아침바다를 실컷 보고 올 수 있었는데 직장인이라면 다음날 오전 반차만 내도 충분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열차 개편으로 인해 지난 2020년 3월 2일부터 서울에서 정동진으로 가는 새벽 열차가 폐지되었다. 대신 KTX가 운행되어 편도 2시간대(2시 5분~10분 소요)로 빠르게 다녀올 수 있게 되었지만, 새벽 기차의 즐거움을 다시 느낄 수가 없게 되어 아쉬울 따름이다. 또한, 당일치기 여행으로는 일출을 보기 어려우며 정동진에서 일출까지 보고 싶다면 근처 숙소에서 숙박하는 것이 좋다.
▼ 2020년 3월 2일 열차 개편 전 방문한 새벽의 정동진역(2020년 1월). 해 뜨는 시각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이곳이 일출 명소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때 마지막으로 탄 새벽 열차(무궁화호)가 무척 그립다.
서울에서 정동진으로 가는 대중교통 (2022.1월 기준)
1. 현재 서울에서 정동진으로 가는 KTX 첫차와 막차 시간은?
서울역 - 정동진역 (KTX)
■ 첫차 07:01 – 09:12 (2:11 소요, 편도 요금 28,300원)
■ 막차 18:31 – 20:36 (2:05 소요, 편도 요금 28,300원)
※ 2020년 3월 2일 이후, 열차 개편으로 서울에서 출발하는 정동진행 KTX 첫차로 일출을 볼 수 없다. 근처 숙소에서 1박을 권장.
2. 정동진에서 당일치기로 일출을 보고 오고 싶은 뚜벅이 여행자들을 위한 대안
경로 ① 서울고속버스터미널 – 강릉고속버스터미널 (심야 프리미엄) 23:00 – 01:50 (약 2시간 50분 소요, 어른 요금 26,000원)
경로 ②-1 강릉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강릉역까지 도보 36분 소요 (택시 이용 권장)
경로 ②-2 강릉역 - 정동진역 (누리로) 첫차 06:26 – 06:41 (15분 소요, 요금 2,600원)
※ 단점 : 새벽에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강릉역은 자정(00:00)부터 문을 닫기 때문에 첫차 운행 전(대략 새벽 5시 전)까지 강릉역에서 머물 수 없다. 예전처럼 야간열차가 운행될 때 당일치기로 일출을 보고 오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아쉽겠지만, 지금은 1박 2일 일정으로 방문하는 것을 권장한다. 동해는 해돋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잠시 관련 내용을 소개했지만, 어느 시간대에 방문하더라도 아름다운 바다이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찾으면 좋을 것 같다.
썬크루즈 호텔
해뜨기 직전, 먹물 같던 하늘과 바다는 이렇게 짙푸른 색으로 변하면서 또 다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해변가의 작은 배와 언덕 위 커다란 배의 화려한 조명을 쫓아 앞으로 나아갔는데 이곳이 말로만 듣던 썬크루즈 호텔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뒤, 가족과 함께 썬크루즈 호텔을 방문했다.
썬크루즈 호텔 앞에 도착하면 바다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되고, 그 아름다운 모습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이국적인 풍경 덕분에 잠시나마 해외로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호텔 방, 9층 전망대, 해돋이 광장 등 어디서든 탁 트인 바다를 볼 수가 있는데 그 풍경들이 하나같이 근사했다.
▼ 이국적인 호텔 전경
▼ 호텔 방에서 바라본 풍경
▼ 썬크루즈호텔 9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정동진 바다 전경
▼ 범선 형태의 호텔 직영 횟집(어국)
▼ 해돋이 광장
▼ 해돋이 광장에 있는 포토존
▼ 유리 전망대
다음 날 새벽, 높은 곳에 위치한 호텔 덕분에 방에서도 편하게 일출을 볼 수 있었지만 해변을 거닐고 싶어서 산책 겸 내려갔다. 겨울 바다답게 청량감 가득한 모습을을 보니 답답했던 가슴이 탁 트이는 것만 같았다. 밀려오는 파도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언제봐도 아름다웠고, 수평선 위로 은은하게 물든 붉은 빛이 황홀했다.
매일 보는 해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낯선 곳에서 함께 맞이한 아침이라 여느 때보다 특별하게 느껴졌다. 행복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