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보리밥에 김치... 어머니의 도시락이 그립습니다
기억과 추억 사이/수필·산문·에세이
2006-07-13 23:40:44
1960년대 초등학교 시절의 학교생활이 왜 그리 살갑게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코흘리개 때에는 학교 가기 싫어 꾸물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아련한 세월 속에서 그것들은 한결같은 추억이 되어 버렸다. 마음을 열어 그 때의 추억을 되살려 보지만 세월이 한없이 흐르고 흘러 꿈처럼 흐릿하기만 하다. 희미한 영화의 장면처럼 명멸하는 추억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문득문득 선명하게 떠오르는 상념들도 있다.
진절머리 나도록 가난했기에 먹는 일만은 오래도록 잘 잊히지 않았다. 점심 때 어김없이 배급받았던 강냉이 죽이나 강냉이 빵은 입맛을 적실 듯 다가왔다. 양은 도시락을 가득 채우던 노란 강냉이 죽.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구수한 냄새, 숟가락으로 떠서 후루룩 마시면 하루 종일 입안을 구수하게 채우던 그 강냉이 죽을 너도나도 게걸스럽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강냉이 빵도 빼놓을 수 없다. 넓적하고 속이 까칠까칠한 빵이 뭐가 그리 맛있었는지… 그것도 아껴 먹으려고 조금씩 뜯어먹던 기억도 있다. 세월을 잘 만나 온갖 음식에 길들여진 요즘 아이들에게 그것들을 준다면 한번 쳐다보고 몽땅 내버릴 것 같다. 그런데 그 시절 우리에겐 그게 왜 그리 꿀맛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강냉이 죽이나 강냉이 빵은, 고학년이 되면서 더 이상 배급받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대신 어머니가 싸 주신 도시락 속엔 강냉이 죽이나 빵을 능가할 만큼의 추억이 담겨 있었다.
한겨울이었던가 보다. 눈을 감으면 교실 풍경이 환하게 떠오른다. 교실 한가운데 설치된 무쇠난로 위에 찌그러진 양은 도시락들이 탑처럼 쌓여 있고 흘금흘금 난로로 향한 몇몇 아이들의 눈길도 보였다.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우르르 난로 쪽으로 몰려들었다.
불을 쬐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큰 목적은 다름 아닌 도시락 때문이었다. 난로 위에 올려둔 도시락들이 얼마나 따스해졌는지 손가락을 대보는 게 일이었다. 점심시간에 김이 오르는 따끈한 밥을 먹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도시락은 여간해서 데워지지 않았다. 아침부터 난로 속에 집어넣은 생장작이 잘 타오르지 않고 꺼지는 바람에 수시로 난로 뚜껑을 열어 불을 붙여야 했다. 보통 잘 쪼갠 장작 밑에 종이를 집어넣고 불을 붙였지만, 그래도 잘 타지 않으면 휘발유를 사용하기도 했다.
우리 반의 말썽꾸러기 한 놈이 교문 앞 제 집에서 들고 나온 휘발유를 장작에 들이붓고 불을 붙이는 바람에 교실을 태울 뻔한 일도 있었다. 순식간에 교실은 매캐한 검은 연기로 가득 찼다. 아이들이 우왕좌왕 하는 사이, 선생님이 헐레벌떡 달려와 불을 끄는 바람에 위기를 모면했지만 지금도 그 일만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강냉이 죽, 난로 위 양은도시락 탑… 기억나시죠?
그런 일이 있었어도 사정은 여전했다. 못 살고 굶주리던 시절인 만큼 어쩔 수 없었다. 불도 잘 일어나지 않는 난로 주위로 몰려들어 굽은 손을 펴며 여전히 도시락에 손을 대보는 게 일이었다.
양은 도시락은 납작해서, 쌓아올리기에 좋았다. 그 옆으로 2열, 3열 층층이 쌓아올린 숫자를 세어보면 거의 30개 정도는 되었다. 그나마 난로 뚜껑 위에 얹힌 도시락은 금방 훈기가 돌았지만 맨 꼭대기 도시락은 여전히 차가웠다. 잘 타지도 않는 난로의 열기가 맨 위까지 올라가 도시락을 데워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마다 아귀다툼이 벌어졌다. 난로 속에 장작을 넣고 뚜껑이 닫히기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서로 뚜껑 위에 도시락을 얹어놓으려고 난리를 피웠다. 동작이 제일 빠른 놈이 맨 아랫자리를 차지했고 동작이 굼뜨거나 힘없는 놈은 맨 꼭대기에서 찬밥 신세가 되었다.
나 역시 그랬다. 따끈하게 데워진 밥을 먹은 적은 드물었다. 거의 미지근한 밥 아니면 찬밥이었다. 어머니가 싸 주신 따끈한 도시락은 난로에 좋은 자리를 잡지 못해 냉랭하게 식어버려, 난 굽은 손을 펴며 밥을 먹어야 했다.
온기라곤 하나 없는 꽁보리밥에 김치와 단무지 같은 반찬이었지만 그런 대로 맛은 있었다. 친구들과 서로 어울려 이 반찬 저 반찬 찍어 넣다보면 나도 모르게 도시락을 후딱 비워버렸다. 보기에는 참 초라했지만 최고의 정성이 깃든 어머니의 손맛이 배어있음이 틀림없었다.
비록 찬밥에 보잘 것 없는 반찬이지만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은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맛깔스런 음식임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가난하던 시절은 지나고 지금은 음식이 눈앞에 널려 있을 정도로 먹을거리가 흔한 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가끔씩 터지는 급식 파동을 보면 무조건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갖가지 음식이 난무하는 요즘 같은 때일수록 음식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얼마 전 학교 급식 파동으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급식업체의 관리부실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급식운영 방식을 두고 여전히 말들이 많지만, 직영이든 위탁이든 학교 측이나 급식업체에서 학생들을 내 자녀처럼 생각하는 양심이 살아 있지 않은 한 이런 사건은 언제든 재발할 소지가 있다. 영양과 위생을 염두에 둔 어머니의 마음처럼 사랑과 정성을 다한다면 사고가 터질 일은 없을 것이다.
기름기 넘치는 요즘 쌀밥과 반찬이 황제의 음식처럼 보이지만 초등학교 시절 초라하게 싸준 어머니의 도시락이 세상에서 제일 귀하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때는 잘 몰랐어도 뒤돌아보면 어머니의 도시락이 그리운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온갖 고급 맛에 길들여진 내 혀를 일깨워주기 위해서라도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이 담긴 도시락을 다시 한 번 맛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