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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강해 (5)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대상 21:1~14
I. 서론
핑크 대왕이라고 불리는 퍼시(Percy)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퍼시는 핑크색을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옷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물건도 핑크색만을 샀습니다. 심지어 먹는 음식도 핑크색만 먹었고, 성 안의 모든 물건도 핑크색으로 다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핑크 대왕은 여기에서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성 밖에 핑크색이 아닌 물건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고민 끝에 핑크 대왕은 백성의 모든 소유물을 핑크색을 바꾸라고 말했습니다. 일부 백성들이 반대했지만,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따랐습니다. 옷, 그릇, 가구 등 모든 것을 핑크색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핑크 대왕은 여기에서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핑크색이 아닌 것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핑크 대왕은 나라의 모든 나무, 풀, 꽃, 심지어 동물까지도 핑크색으로 바꾸라고 말했습니다. 갓 태어난 동물까지도 태어나자마자 핑크색으로 칠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핑크 대왕은 아직까지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보이는 모든 것은 핑크색으로 바꾸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파란색이었기 때문입니다. 며칠 동안 전전긍긍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핑크 대왕은 자신의 스승을 찾아갔습니다. 스승도 고민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이내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스승은 핑크 대왕에게 자신이 준비한 안경을 끼고 하늘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파란 하늘이 핑크색으로 변한 것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스승이 한 일이라고는 핑크색 렌즈를 끼운 안경을 핑크 대왕에게 만들어 준 것뿐이었습니다. 핑크대왕은 크게 기뻐했고, 그날 이후로 매일 핑크 안경을 쓰고 다녔습니다. 백성들도 기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더 이상 핑크색 옷을 입지 않아도 됐고, 동물들을 핑크색으로 칠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이것을 두고 “프레임”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프레임”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의 도형으로 설명을 합니다. 두 개의 오렌지색 원이 있는데, 어느 쪽 오렌지색 원이 더 클까요? 당연히 오른쪽에 있는 오렌지색 원이 더 커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크기를 측정해 보면, 똑 같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오렌지색 원이 더 크게 보이는 원인은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원들의 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위를 감싸고 있는 원들을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고, 각 사람마다 자신만의 프레임을 가지고 사물을 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프레임을 가지고 성경을 읽고 해석합니다. 지금도 제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는 것은 지난 성경공부 시간 때, 성도님 한 분이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오병이어를 공부할 때였습니다. 그 성도님께서 본인은 이 이야기를 이렇게 이해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마다 각자 도시락을 싸 온 것이 있었는데 숨기고 있다가 한 소년이 자신의 도시락을 내놓자 사람들도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내놓아서 함께 나누어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 성도님께서는 이성이라는 프레임으로 성경을 읽고 이해했기 때문에 오병이어 사건을 자신의 프레임 안에서 해석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성경을 읽으면,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원래의 의미를 상실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마태는 오병이어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의 신성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성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그 사건을 읽고 이해할 때, 예수님의 기적을 있는 말씀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성경을 읽을 때, 꼭 가져야 할 중요한 프레임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오래 하신 분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겠지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한 명도 없다.
2) 죄에 대한 형벌은 피할 수가 없다.
3)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이제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II. 본론
1. 프레임 1: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한 명도 없다.
역대기 주석만 보고, 성경을 읽지 않은 분들은 오늘 같은 본문을 읽고 많이 당황할 것 같습니다. 역대기 주석을 보면, 에스라는 역대기를 기록하면서 다윗의 좋은 점만을 기록하여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다윗의 가장 큰 죄인 밧세바와의 간음과 우리아 살해를 기록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보면, 역대기서에 기록된 다윗도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었고, 죄인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죄는 무엇일까요? 왕이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의 인구를 조사한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요? 본문을 보시면, 다윗의 문제를 세 가지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1) 첫 번째 문제는 다윗이 사탄의 충동에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1절,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다윗은 노년에 영적 판단력이 흐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자신을 충동질하여 인구를 조사하게 한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할 다윗은 사탄의 충동에 귀를 기울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2) 두 번째 문제는 다윗이 신하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2~6절,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 내게 보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 하니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하나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요압이 떠나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요압이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보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백십만 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사십칠만 명이라 요압이 왕의 명령을 마땅치 않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다윗은 요압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3~4절,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하나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나이가 들수록 왕의 귀가 열리는 것이 아니라 닫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세 번째 문제는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왕의 정체성과 의무에 대해서 먼저 살펴 봐야 합니다. 이것을 기록한 본문은 신명기 17장에 나옵니다.
신 17:14~20,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이 말씀은 모세가 장래에 이스라엘에 왕을 세워야 할 때, 왕의 조건과 의무에 대해서 말해 준 내용입니다. 이 말씀의 결론은 20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의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면 이스라엘 중에서 왕의 왕위가 장구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왕의 교만과 불순종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면, 다윗이 이 두 가지 모두를 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노년에 인구조사를 한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신학자들마다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임용섭 교수는 이것을 잘 정리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구조사는 모세 때,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시내산에서 1차 이루어진 적이 있고, 또 광야 40년 이후, 출애굽 세대가 다 죽고 나서 모압 평지에서 2차로 신세대들을 계수했었다. 모세 때의 인구 조사는 백성을 조직적으로 진을 치고 이동하기 위해, 또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분배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다윗의 인구조사는 그와 같은 필연적인 이유가 없었다. 이 인구조사가 다윗 자신의 치세 때 이만큼 부강했었음을 자랑하고 싶은 교만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군사들의 수를 의지하려는 불신앙에서 나온 것인지 분명치 않다.”
그러니까 다윗의 죄는 크게 두 가지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첫째, 다윗 자신의 치세 때 이만큼 부강하게 되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교만, 둘째, 하나님보다 군사들의 수를 의지하려는 불신앙.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이 신앙이 좋을 리가 없고, 신앙이 좋은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교만에 빠질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가 왕에 관하여 말한 신명기 말씀에 나오는 것입니다.
먼저, 14~15절에 보니까,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왕이 다른 이방나라 왕과 다른 점입니다. 이방 나라 왕은 부모로부터 왕위를 물러 받거나 자신의 힘으로 권력을 쟁취해서 왕이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가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목적에 맞도록 통치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다윗은 부모로부터 왕위를 물러 받은 것도 아니었고, 자신의 힘으로 왕위를 쟁취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세 번이나 있고 난 다음에,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왕은 교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겸손한 사람보다 힘이 강한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겸손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떠나서 신과 함께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맞는 말입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멀리하시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이어서 이스라엘 왕에게 세 가지를 금하고 있습니다. 첫째,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 (16절), 둘째, 아내를 많이 두지 말 것 (17절), 셋째,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 (17절). 병마는 권력, 아내는 이성, 은금은 돈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선배 목사님들은 후배 목사들에게 권력, 이성, 돈만 조심하면, 목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바로 이 본문에서 가지고 온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비단 목회자들에게만 줄 수 있는 교훈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1) 먼저, 병마는 군사력(혹은 권력)을 의미합니다.
세계를 제패했던 3대 제왕이 있습니다: 알렉산더, 칭기스칸, 나폴레옹. 이 세 황제의 공통점은 병마를 잘 다루었다는 것입니다. 벤허나 글래디에이터와 같은 영화를 보시면, 전차 부대의 속도와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병마를 많이 두지 말라는 것은 전쟁의 승패가 군사력에 있다고 믿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왕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왕의 모습입니다.
2) 그 다음, 아내는 외교를 의미합니다.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것은 단순히 색욕을 쫓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 여인과의 결혼함으로 외교적 안정을 취하려고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딸을 준 이방 나라의 왕이 외손주와 딸이 있는 사위 나라에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일리가 있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여인들이 이스라엘로 들어올 때, 몸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이방 우상을 가지고 이스라엘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솔로몬입니다. 솔로문은 자신의 왕위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 이방 여인과 수많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종국에는 이것이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이유가 되었습니다.
왕상 11:1~5,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그러니까, 인간적인 방법으로 나라의 안전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의지함으로 나라의 안정을 추구하라고 이스라엘 왕들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 신앙입니다.
3) 마지막으로, 은금은 재물을 의미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라”는 말씀은 “네가 받은 왕위를 벌어먹는 자리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왕이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알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들은 이 세 가지를 잘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왕위가 영구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다윗은 병마, 아내, 은금을 많이 취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추구하지 말라는 본래의 의도는 범하고 말았습니다. 인구조사를 통하여 자신의 치세를 확인하려는 교만과 함께 하나님보다 군사력을 더 의지하려고 했던 불신앙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요압을 통하여 조사하라고 한 명령에서 보다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5절, “요압이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보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백십만 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사십칠만 명이라” 그러니까, 다윗이 요압에게 명령하고 재촉한 것은 이스라엘 전체 인구가 아니라, 칼을 뺄 만한 군사의 숫자였던 것입니다.
2. 프레임 2: 죄에 대한 형벌은 피할 수가 없다.
7~8절,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본문 8절을 보시면, 다윗은 분명하게 자신의 죄를 인정했고, 그 죄에 대해 용서를 구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하여 여전히 형벌을 내리셨습니다.
9~12절, “여호와께서 다윗의 선견자 갓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가서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내어 놓으리니 그 중에서 하나를 네가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그에게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마음대로 택하라 혹 삼년 기근이든지 혹 네가 석 달을 적군에게 패하여 적군의 칼에 쫓길 일이든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전염병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천사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이든지라고 하셨나니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지를 결정하소서 하니”
본문은 형벌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본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또 다른 특이한 점은 다윗이 죄를 지었는데, 그 죄에 대한 형벌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의 범죄를 그의 후손들이 형벌을 받는 것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것은 또한 이것은 역대기서의 최초의 독자인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의 상황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에서 70년만에 귀환했기 때문에 귀환한 사람들 중에는 어릴 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도 있겠지만, 바벨론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조상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은 죄로 인해서 나라가 멸망했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서 원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불합리한 것 같지만,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하나의 프레임입니다. 이것을 “대표성”의 원리라고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저희 가정의 아픈 과거사를 말씀 드리면, 제 큰 딸이 초등학교 5년 동안, 총 5개의 학교를 다녀야만 했습니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새롭게 친구를 사귀어야 했고, 새롭게 사귄 친구와는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무능한 아빠를 만나서 이사를 많이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2)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장이 경영을 잘못해서 회사가 망하게 되면, 직원들은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3)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 원수가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기로 결정을 하면, 그 나라 국민 모두가 전쟁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대표였기 때문에 그의 죄로 인하여 7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13~14절,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빠졌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염병을 내리시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죽은 자가 칠만 명이었더라”
3. 프레임 3: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기독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16~18절, “다윗이 눈을 들어 보매 여호와의 천사가 천지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하늘을 향하여 편지라 다윗이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아뢰되 명령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하니라 여호와의 천사가 갓에게 명령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다윗은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16~17절을 보시면, 다윗이 진심으로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다윗이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아뢰되 명령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그러자, 하나님께서 구원의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18절, “다윗은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1)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릴 때, 형벌이 그쳤습니다.
26~27절,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여호와께서 천사를 명령하시매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
이것은 아주 큰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제물이 되셔서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해 제사를 드리심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심판이 그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놀라운 복음이 있습니다.
2)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곳이 성전의 부지가 되었습니다.
대하 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다윗이 지은 죄로 인하여 7만명이나 죽는 끔찍한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회개하는 다윗을 통하여 드린 제사 자리가 제1성전의 자리가 되었고, 천년 후, 이 성전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를 통하여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III.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원나라는 칭기스칸의 후예 몽골족이 세운 나라입니다. 동쪽으로는 우리나라 제주도까지 지배했고, 서쪽으로는 유럽의 헝가리까지 지배했습니다. 전 세계를 다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제국을 이루었습니다. 칭기스칸은 자손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절대 흙집에서 자지 말고, 이동식 천막에서 자라. 기름진 음식이나 술을 먹지 마라. 다리에 기름이 끼면 말을 탈 수가 없고, 평안한 집에서 잠을 자게 되면, 우리의 야생성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칭기스칸의 후손들은 이것을 잘 지키지 못했습니다. “비단 옷에 흙집을 짓고 여유롭게 살다 보니, 점점 사치와 향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원나라는 주원장이 이끄는 명나라에 의해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을 보면, 고생하던 젊은 시절에는 하나님을 지극히 잘 따랐지만, 여유가 있던 노년 시절에는 예전만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년에 다윗은 군사들을 전쟁터에 내 보내고, 혼자 왕궁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가 충신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고, 나라가 부강해지자 자신의 통치력을 확인하기 위해 인구조사를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한결 같은 신앙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1) 사탄의 충동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2) 죄를 지은 후에, 진심으로 회개를 해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