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아름다운 소설이다.
2010년 출간된 황정은 작가의 첫 소설. 13년이 지나 2022년 말에 새로 복간되었는데, 그때보다도 지금 다시 이 책을 읽으며 조금 더 슬퍼졌다. 마치 올해 새로 쓴 소설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옛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13년 동안 세계는 계속해서 나빠져왔다는 걸, 오랜만에 다시 읽은 책으로 입증한 듯한 설움이 밀려왔다.
청소년 북클럽 책을 의논하다 골라봤는데, 너무 어려운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생에 그림자를 가져보지 못한 밝고 어린 친구들이, '그림자가 일어서는' 경험을 해본 적 없는 이 친구들이,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을 거다.
그림자라는 것은 한 번 일어서기 시작하면 참으로 집요하기 때문에 그 몸은 만사 끝장,
일단 일어선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으니 살 수가 없다
그러니 가능하면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의 깊은 의미를 이 친구들이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한다면 그것이 더 슬픈 일이겠지.
책에는 그림자가 일어선 사람들의 사연들이 이어진다.
다른 사람의 종이에 이름을 적어준 대가로 빚을 갖게 되고 빚의 규모가 너무 커서 빚보다는 빚의 이자를 갚느라고 힘든 노동을 하는 와중에 아홉 식구의 생활비도 버는 생활을 하다가 끝끝내 그림자가 일어서고 말았던 아버지, 못 배운 것이 한이 돼 자식과 아내를 미국에 보낸 기러기 아빠가 정작 미국에 가서 자식에게 외면당하자 밤마다 그림자가 일어서버린 이야기, 열 두 살 때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추락하는 타워크레인의 추에 깔려 압사당하자 그림자에 몸을 휘감겨버린 어머니, 그 모습을 보고 그림자가 바닥에서 일어서버려 소년이 중년이 되도록 영영 팔락이고 있는 이야기.....
작가가 말하는 그림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림자는 언제 일어서는가?
일어선 그림자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작가는 사회적 폭력 앞에 무너지는 사람들, 약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조심스럽게 아주 낮은 목소리로 전한다. 이 슬프고 애잔한 삶의 터에서 책의 주인공 은교씨와 무재씨는 서로 보듬고 사랑하는 것으로 그림자를 억누른다. 절망을 이겨내며 앞에도 뒤에도 온통 캄캄한 어둠 뿐이지만 그래도 주어진 길을 함께 손잡고 걸으려 한다. 슬프고 먹먹하지만 애써 따스함을 나누려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진다.
개인적으로 책의 마지막 몇 페이지가 참 좋았다.
섬을 나갈 마지막 배가 끊기는 상황, 선착장으로 향하던 자동차 엔진마저 멈춰버리고.....달려온 방향과 가야 할 방향이 모두 어둠에 잠겨 있는데 별도 달도 보이지 않는 그 막막하고 두려운 순간. 그러나 은교씨와 무재씨는 손을 잡고 어둠 속을 걷는다. 함께있기에, 사랑하기에,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것은 전혀 무섭지 않았고 둘은 천천히 걷는다.
은교씨.
하고 무재씨가 말했다.
노래할까요.
(책을 읽지 않은 이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 마지막 글이 나는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이들의 삶은 여전히 춥고 시리겠지만, 그래도 맞잡은 손의 온기가 있어 그 어둠을 견딜 수 있을 거다. 슬픔을 딛고, 눈물을 꾹 눌러 참고 슬픈 노래를 끝까지 부를 수 있을 거다. 그들이 부르는 슬픈 노래를 울지 않고 끝까지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