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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장 제양공의 종말 (6)
이윽고 12월이 되었다.
제양공(齊襄公)은 예정대로 패구산으로 사냥을 나갔다.
힘센 장수 석지분여와 시종장 맹양만 대동하였을 뿐, 대부분의 신하들은 도성에 남겨두었다.
고분 들판에 이르렀다.
그 곳엔 이궁(離宮)이 하나 있었다.
제양공(齊襄公)은 그 곳에서 하루를 보낸 후 다음날 수레를 타고 패구산으로 향했다. 패구산은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찼고, 덩굴이 하늘을 가릴 듯 휘감겨 울창했다.
제양공은 높은 언덕 위로 올라가 수레를 멈추고 수행원들에게 명했다.
"사냥을 하기 전에 먼저 저 울창한 숲을 태워라. 그리고 산을 에워싼 후 매와 개를 풀어 짐승들을 남김없이 잡도록 하라."
대륙의 겨울바람은 거셌다.
바람이 미친 듯이 불었고, 불길은 맹렬히 타올랐다.
연기와 시뻘건 불꽃이 하늘까지 태워버릴 듯 치솟았다. 여우, 토끼 등 온갖 짐승들이 불길을 피해 이곳 저곳으로 날뛰었다.
그러던 한순간이었다.
별안간 멧돼지 한 마리가 숲 속에서 뛰어나왔다.
첫눈에 보아도 엄청나게 큰 멧돼지였다.
제양공(齊襄公)도 그 멧돼지를 보았다.
"잡아라!"
불타는 숲 속에서 튀어나온 멧돼지는 제양공이 있는 언덕을 향해 곧장 치달아올랐다. 병사들이 멧돼지를 뒤따르며 화살을 쏘아댔다.
멧돼지는 어느덧 구릉 위로 올라와 제양공이 타고 있는 수레 가까이에 이르렀다. 그 기세로 덤벼들면 수레가 박살날 판이다.
제양공(齊襄公)은 마음이 급해 옆에 서 있던 맹양을 돌아보며 외쳤다.
"빨리 저 멧돼지를 쏘아라!"
그런데 맹양이 이상했다.
무엇인가에 놀란 사람처럼 눈을 치켜뜬 채 활을 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건 멧돼지가 아닙니다. 지난 날에 죽은 공자 팽생(彭生)입니다."
맹양이 헛소리를 지껄여댔다.
팽생이 누구이던가. 노환공을 죽였다는 죄목으로 참수형에 처해진 제양공의 이복동생이 아니던가. 생각지도 않은 이름이 맹양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제양공(齊襄公)은 버럭 화를 내었다.
"멍청한 소리 마라! 죽은 놈이 어찌 내 앞에 나타날 수 있단 말이냐!"
그는 맹양의 활을 빼앗아 직접 맷돼지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그러나 너무 당황했음인가.
제양공(齊襄公)은 여러 대의 화살을 연달아 쏘았으나 한 대도 멧돼지에 가서 맞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제양공(齊襄公)이 다시 화살을 시위에 거는데, 별안간 멧돼지가 크게 울부짖으며 앞발을 곧추 세웠다. 그러고는 사람처럼 수레 앞을 왔다갔다하면서 서럽게 통곡하는 것이었다. 그 울음소리가 어찌나 처량하고 애달픈지 사람들은 모두 넋을 빼앗겼다.
그러나 제양공(齊襄公)만은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섬뜩함을 느꼈다. 한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며 앞이 보이질 않았다.
"아악!"
제양공은 날카로운 외침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 바람에 제양공의 신발 한짝이 벗겨지며 멧돼지 앞에 가 떨어졌다.
멧돼지는 울부짖음을 멈추고 땅에 떨어진 제양공의 신발을 입에 물어들었다. 그러고는 눈 깜짝할 새에 언덕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맹양을 비롯한 수행원들은 쓰러진 제양공(齊襄公)을 부축해 수레 속에 눕혔다.
사냥을 중지하고 이궁이 있는 고분 들판으로 돌아갔다.
제양공(齊襄公)은 이궁에 돌아와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여전히 눈앞이 어지럽고 가슴이 뛰었다. 그는 왼발이 몹시 아픈 것을 알았다. 이마를 찡그리며 시종장 맹양을 불러 말했다.
"왼발을 다친 모양이다. 내가 걸어볼 테니 신발을 가져오너라."
그런데 신발 한 짝이 보이질 않았다.
제양공이 쓰러질 때 맹양은 제양공에게만 신경 쓰고 있었기 때문에 신발이 없어진 것을 몰랐다. 방 안 여기저기를 뒤지고 있는데 도인 비(徒人 費)가 들어왔다.
제양공(齊襄公)이 물었다.
"신발 한 짝이 어디 갔느냐?"
도인 비(徒人 費)는 사실대로 말했다.
"멧돼지가 물고 갔습니다."
멧돼지라는 말에 제양공은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네놈은 나를 따라왔으면 신발 하나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느냐!"
그는 가죽채찍을 들어 사정없이 도인 비를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도인 비(徒人 費)의 등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런데도 제양공의 매질은 멈출 줄 몰랐다.
도인 비는 3백 대의 채찍을 맞고서야 놓여났다.
칠흑 같은 밤이었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고분 들판의 밤은 음산했다.
한줄기 불빛 -
제양공(齊襄公)이 묵고 있는 이궁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다.
그 불빛을 향해 은밀히 움직이는 한 무리의 군사가 있었다. 모두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연칭과 관지보가 이끄는 규구(葵丘)의 수비병들이었다. 아니, 이제는 규구의 수비병이 아니었다. 제양공에게 반기를 들고 제양공을 처치하기 위해 고분 들판으로 달려온 반란군이었다.
"일시에 공격하여 단숨에 해치우는 것이 어떻겠소?"
반란군의 총사령관 연칭(連稱)은 흥분해 있었다.
성공하면 권력을 한손에 거머쥐는 제(齊)나라 제일의 실력자가 되지만, 실패하면 역적이 되어 비참한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순간이 아닌가.
가슴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면..............."
부사령관격인 관지보(管至父)는 침착하고 차분했다. 이번 거사에 임해 들뜬 연칭을 제어하는 역을 수행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제양공(齊襄公)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일단 이궁의 동정을 살핀 후 급습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좋소. 관 대부께서 직접 이궁의 동정을 살피고 오시오."
관지보(管至父)는 몸이 날랜 군사 10여 명을 뽑아 어둠 저편에 떠 있는 불빛을 향해 민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상외로 이궁의 경비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군사들의 숫자도 많지 않았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관지보의 가슴속에 충만했다.
관지보(管至父)와 척후병들이 본대로 귀환하려 할 때였다.
문득 전방 어둠 속에서 기척이 일었다. 그림자 하나가 나타나 이편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궁에서 나온 제양공의 수행원이 분명했다.
'눈치채인 것인가?'
관지보(管至父)는 긴장했다.
그러나 이궁에서 나온 사내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계속 관지보가 숨어 있는 바위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대로 숨어 있다가는 발각될지도 몰랐다.
관지보는 수하 병상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일단 사로잡아라!"
이궁에서 나온 사내가 그들이 숨어 있는 바위 앞을 지나칠 때였다.
관지보(管至父)의 부하들이 날렵하게 뛰어나가 재빠른 솜씨로 사내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두 손을 결박했다.
관지보로부터 보고를 받은 연칭(連稱)은 친히 그 사내 앞으로 갔다.
"관솔불을 밝히고 재갈을 풀어줘라!"
병사들의 삼엄한 경비하에 관솔불이 밝혀졌다.
궁에서 나온 사내의 얼굴이 불빛에 드러났다.
"너는 .................?"
연칭도 관비보도 잘 아는 사내였다.
"도인 비(徒人 費)가 아니냐?"
도인 비도 연칭과 관지보를 알아보았다.
그는 신발을 잃어버렸다는 죄목으로 제양공에게 채찍 3백 대를 맞은 후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여 홀로 밤길을 걷는 중에 졸지에 관지보(管至父)에게 사로잡혀 이 곳으로 끌려 온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에워싼 주위 병사들의 살벌한 분위기에서 대뜸 사태를 짐작했다.
도인 비(徒人 費)라면 제양공이 수족처럼 부리는 심복이었다.
연칭은 잘되었다는 듯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그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무도한 임금은 지금 어디 있는가?"
도인 비는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순순히 대답했다.
"침실에 있습니다."
"잠을 자느냐?"
"아직 잠들지 않았습니다."
"이궁을 지키는 병사들은 얼마나 되느냐?"
"석지분여와 20여 명의 병사들뿐입니다."
"오늘 밤이 무도한 임금의 마지막 밤이 될 것이다."
연칭(連稱)은 더 이상 물을 것도 없다는 듯 칼을 빼어 도인 비의 목을 치려 했다.
그때 도인 비(徒人 費)가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나를 살려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먼저 이궁 안으로 들어가 동정을 살피다가 적당한 때에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그것을 군호로 삼아 일시에 들이치면 쉽게 제양공을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칭(連稱)은 주춤했다.
"어찌 네 말을 믿을 수 있겠느냐?"
"이 옷을 벗겨 내가 얼마나 심하게 매를 맞았는지 직접 확인해보십시오. 그러면 내 말을 믿을 것입니다. 나는 기필코 그 흉악한 놈을 죽이고야 말겠습니다."
밧줄을 풀어주자 도인 비(徒人 費)는 옷을 벗고 뒤돌아섰다.
과연 도인 비의 등짝은 상처와 피로 심하게 얼룩져 있었다.
연칭은 그것을 보고 도인비의 말을 믿었다.
"하늘이 우리 일을 도와주는구나."
연칭과 관지보는 새로이 전략을 짠 후 도인 비를 풀어주어 이궁안으로 들여보냈다. 이궁을 포위하고 있다가 도인 비가 안에서 문을 열어줄 때 일시에 들이쳐 제양공을 잡아죽일 작정이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