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난아의 '붉은 찔레꽃'과 장사익의 '흰 찔레꽃', 어느 것이 진실?
찔레꽃이란 노래는 1941년 백난아가 불러서 한국인의 영원한 애창곡으로 자리 잡은 노래이다. 백난아가 부른 '찔레꽃'의 가사는 이렇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고향
언덕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물고 눈물에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잊을 사람아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동창생
천리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작년봄에 모여앉아 찍은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리운 시절아
연분홍빛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였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 떠서 슬피울고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찔레꽃은 장미과에 속하는 관목인 찔레나무에 피는 꽃이다. 영어 이름은 Wild Rose, '야생의 장미'란 뜻이며, 장미처럼 가시가 있다. 늦은 봄부터 이른 여름까지 흰색 꽃을 피우고 꽃이 지면 작은 붉은 색 열매가 달리는데, 향기가 짙고 꿀이 많아서인지 꿀벌이 항상 떠나지 않는다. 산길을 걷다보면 진동하는 진한 꽃향기 중 하나가 찔레꽃이다.
붉은 찔레꽃이 있었던가? 노래 가사는 찔레꽃을 붉은 꽃이라 해서 찔레꽃을 한 번도 못 본 사람은 장미과인 찔레꽃도 당연히 붉은 색이 있을 줄 안다. 하지만 내가 본 찔레꽃은 전부 흰색뿐이었다.
그래서 오해도 많았다. 한동안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는데, 그 이유는 진짜 가관이었다. "흰 찔레꽃을 1절에서 '찔레꽃 붉게 피는'이라고 하질 않나, 2절에서 노래하던 세 동무라고 하더니 3절에서는 북간도 등을 흠모하다니..." 뭐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흰 찔레꽃을 붉게 보았다면 고작 색맹일 뿐인데도 동무,북간도 등 억지로밖에는 공산주의가 연상되지 않는 가사를 이유로 금지곡을 만들어버렸으니 참 어이 없는 시대정신이었다.
어느날 가요무대에서 찔레꽃 3절을 부르는데 참으로 가사가 아름다웠다. 아무튼
장사익이 불러서 히트한 노래 '찔레꽃'도 가사가 참 좋다. "찔레꽃처럼 울었지/찔레꽃처럼 노래했지, 당신은 찔레꽃...." 이런 애절하면서 기가 막히게 가슴을 울리는 가사가 있어 좋은 노래이다. 장사익의 찔레꽃 가사를 보자.
하얀 꽃 찔레꽃 /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아!
찔레꽃처럼 울었지/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찔레꽃처럼 사랑했지
찔레꽃처럼 살았지/당신은 찔레꽃
장사익이 노래한 찔레꽃은 백난아의 붉게 표현된 찔레꽃과는 달리 흰색으로 정상이다. 백난아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 중에서 찔레꽃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장미나 그런 꽃처럼 붉은 꽃도 있겠지 생각하겠지만 장사익의 노래도 함께 들은 사람들은 헷갈릴 거다.

그렇다면 백난아의 찔레꽃은 왜 붉게 피었을까?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찔레꽃의 색상은 흰색도 있지만 연분홍색도 있다고 한다. 찔레꽃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고 그 중에 붉은 꽃이 없으란 법은 없을 것이니 그래서 가사를 그렇게 썼을까?
또한, 흰 찔레꽃이라 해도 처음 꽃피기 전 봉오리가 올라왔을 때 약간 붉게 꽃 입술을 내밀었다가 활짝 피면 희게 되고, 꽃이 질 무렵이면 약간 붉은 색으로 변하는 찔레꽃도 있다. 따라서 노래가사에 나오는 붉게 핀다는 말은 아예 좀 붉은 종류의 찔레꽃이던가, 아니면 찔레꽃이 봉우리일 때든가, 만개하여 지기 전에 약간 붉게 물든 것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붉은 계통의 찔레꽃은 거의 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니 아무래도 가사가 이상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인터넷 서핑 중에 한 가지 중요한 단서를 찾았다. 노래의 배경이 되는 남쪽나라, 즉 남쪽 지방에서는 해당화를 찔레라 불렀다는 얘기다. 그래서 해당화 붉은 색을 노랫말로 표현하면서 "찔레꽃 붉게 피는~~"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가장 설득력있는 설명일 것이다.
찔레꽃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상식적으로 찔레꽃은 희고 고운 꽃으로 아니 다행이고, 젊은 친구들은 장사익 노래를 더 쉽게 접할 것이니 찔레꽃이 흰 줄 알 것이고, 백난아 노래에 익숙한 세대는 찔레꽃을 직접 보아서 흰 줄을 잘 알 것이니 불행 중 다행이다.
이럴 때 개그맨들이 쓰는 말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노래는 노래일 뿐"이라고! 백번 양보해서 찔레꽃은 흰색만 있다고 치더라도 그렇다. 혹여 색맹이라서, 아니면 잠시 겉머시 들어서 흰꽃을 붉다고 했다고 거기다 주홍글씨를 쓰는 인간들이 더 개그맨 같으니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