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일의성(Univocity of being)
Univocity의 뜻은 일의성(一義性) 또는 단일 의미성입니다.
The word "univocity" is derived from the Late Latin term univocitās, meaning "the character of being univocal".
"Univocal" comes from univocus, a combination of the Latin prefix uni- ("one") and vox ("voice").
Therefore, the etymology of "univocity" is rooted in the concept of having "one voice" or a single, consistent meaning.
Late Latin: univocitās (the state of being univocal)
Latin: univocus (speaking with one voice)
Latin prefix: uni- ("one")
Latin root: vox ("voice")
이는 용어나 개념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든 단 하나의, 일관되고 명확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호함이나 다의성(equivocity)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주로 철학이나 신학 분야에서 사용되며, 특히 다음과 같은 개념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존재의 일의성 (Univocity of being):
스콜라 신학자 존 둔스 스코투스(John Duns Scotus)의 교리와 관련이 깊은 개념으로, 신(神)의 속성을 묘사하는 단어들('선하다', '존재하다' 등)이 인간이나 사물에 적용될 때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신과 피조물 간의 존재론적 공통성을 강조합니다.
언어의 일의성: 언어 표현이 해석의 여지 없이 오직 하나의 명확한 의미만을 가질 때 사용됩니다.
법률 문서나 과학 용어 등에서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일의적인(univocal) 표현이 요구될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univocity는 "하나의 목소리" 또는 **"하나의 의미"**라는 뜻을 내포하는 전문 용어입니다.
'존재의 일의성(Univocity of being)'은 존재가 모든 존재자에게 '동일한 하나의 의미'로 작용한다는 철학적 개념으로, 질 들뢰즈가 자신의 철학의 핵심으로 내세웠습니다.
이는 존재가 여러 다른 의미로 존재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의 다의성'과 반대되는 주장으로, 존재는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목소리로 말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요 내용
동일한 의미: '존재한다'는 술어의 의미는 인간, 사물 등 모든 개별자에게 동일한 하나의 의미로 존재합니다.
다의성과의 대조: 전통적으로 존재는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는 '존재의 다의성'이 지배적이었으나, 일의성은 이를 비판합니다.
들뢰즈의 사상: 들뢰즈는 자신의 철학을 '존재의 일의성'으로 규정하며, 이는 세계가 하나이면서 무한한 차이로 이루어져 있다는 노마드적 철학의 기반이 됩니다.
기원: 존재의 일의성 개념은 신의 속성을 묘사하는 스콜라 신학에서 유래하기도 했습니다.
Antonyms of "univocity" include equivocality, ambiguity, and multiplicity, all describing the opposite of having a single, uniform meaning. Other related antonyms are equivocal, ambiguous, polysemous, and disunity.
Antonyms of univocity
Equivocal: Having two or more possible interpretations, often misleadingly so.
Ambiguous: Having more than one possible meaning; unclear or inexact.
Polysemous/Polysemic: Having multiple related meanings; a word with multiple meanings.
Disunity: The state of not being united; disagreement or lack of uniformity.
Multiplicity: The state of being numerous or having many parts.
존재의 일의성(一義性, univocity of being, univocite)
존재의 일의성(一義性, univocite)은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1266년~ 1308년)’에 의해 서구 철학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스코투스는 존재의 일의성을 주장하며, 신과 세계, 세계의 모든 범주는 서로 통약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스코투스는 이성을 신뢰하는 아퀴나스의 주장에 반대했다. 아퀴나스는 지성에 의해 의지가 결정되고 제약받는다고 했다.
그러나 스코투스는 만약 신의 의지가 이성에 종속되거나 제약받게 된다면 그것은 신 자신이 제약받는다는 얘기가 되므로 이성을 위에 놓으면 신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신의 의지야말로 신의 절대적인 능력이 된다는 것이 스코투스의 생각이다.
그리하여 아퀴나스의 '주지주의(主知主義)'에 대비하여 스코투스의 주장을 '주의주의(主意主義)'라고 한다. 도덕에 대한 입장에서도 아퀴나가 순서는 완전히 다르다. 아퀴나스는 신의 명령이 선하고 신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신은 그것을 명령한다고 말하지만, 스코투스는 신이 그것을 명령하기 때문에 선하다는 것이다. 스코투스는 아퀴나스가 신뢰하는 이성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성을 통해 경험 세계와 신 사이의 연관 관계를 이성을 통해 밝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한 존재론, 존재를 넘어서는, 존재의 바깥에 있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론이다.
들뢰즈는 철학사를 연구하며 이런 존재론을 스피노자와 니체에게서도 발견한다.
“존재자들 사이에 차이가 존재하는데도 존재가 일의적이라면, 존재자들 사이의 차이는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유비적 사유에서 존재자들 사이의 차이는 외부적 시선읕 통해서, 즉 범주들에 의해서 주어진다. 그러나 일의적 사유에서의 차이는 각 존재들 내부에서 즉 역능(potentia=puissance)에 의해서, 강도에 의해서 주어진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역능의 정도들로서의 차이이며, 유와 종의 위계(이런 위계는 ‘포르퓌리오스의 나무’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에 입각한 차이(즉 동일성의 전제 위에서의 차이)는 이차적인 것이 된다. 모든 존재들은 하나의 일의적인 존재의 표현들이며, 그들의 차이는 역능의 정도에서의 차이이다.
그러나 스피노자에게도 동일성은 남아 있다. 실체의 동일성이 그것이다. 만일 스피노자에게서 실체의 동일성을 제거한다면, 남는 것은 오로지 순수하게 양태적인 우주, 또는 차생적인(diff?rentiel) 우주일 것이다. 이것은 곧 표면의 사유, 사건의 사유이다.
그러나 존재가 완벽하게 일의적이라면 존재자들 사이의 차이는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개별자들은 역능의 상이한 표현이 되며, 사물들에 대한 파악은 질적 본질(존재의 유비)에서 양화 가능한 역능(존재의 일의성)으로 옮겨간다.
이것은 곧 한 사물의 ‘임(esse)’에서 ‘할 수 있음(posse)’에로의 옮겨감을 말하며, 이로부터 여러 실천철학적 함의들이 전개된다.”
만일 스피노자적 동일성마저 사라진다면, 남는 것은 오로지 사물과 사물 사이의 ‘그리고’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즉 남는 것은 “존재, 일자, 또는 전체로 규정될 수 있는 모든 것의 바깥” 관계들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유에 있어 중요한 것은 이런 관계들의 ‘배치’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들뢰즈에 의하며, 사물들은 ‘배치’ 안에서 구체성을 획득한다. 존재의 다의성과 유비 논란이 들뢰즈가 ‘배치’라는 개념으로 융합되는 것이다.
이 배치 개념에서 개체는 다양체(multiplicity)다.
들뢰즈와 과타리의 다양체는 외적인 다양도, 형이상학적인 라이프니츠의 일자(一者)도, 베르그손의 다자(多者)의 개념도 아니다.
들뢰즈에 있어서 개체는 영토화·탈영토화 운동을 통해 다양하게 변주하기 때문에 다양체이며, 그 어디에도 정해진 노선을 그려놓지 않고 오직 차이 때문에 존재하는 다양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