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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칠불암, 용암사지
2026년 04월 05일(일요일)
칠불암 갈림길
금오봉 3.05km, 용장마을 3.65km, 고위봉 1.0km, 통일전주차장 3.85km, 칠불암 0.35km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199호)
보물 제199호로 지정된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은 절벽의 바위 면을 얕게 파고, 고부조(高浮彫 : 모양이나 형상을 나타낸 살이 매우 두껍게 드러나게 한 부조)로 새긴 마애불로, 전체높이는 190㎝입니다.
남산의 많은 불상 중 제일 먼저 달빛과 햇빛을 받는다고 하는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은 절벽의 바위 면을 주형의 감실처럼 얕게 파고, 그 안에 두광과 신광을 갖춘 반가부좌의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마애보살반가상 주변에 가구의 흔적과 기와 조각이 산재하고 있어 원래는 목조 전실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은 칠불암 위의 바위에 새긴 동남향의 보살상입니다.
바위 표면을 광배 모양으로 파내고 돋음새김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보살상의 아래쪽에는 피어오르는 구름을 새겨 마치 부처가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듯한 모습입니다.
불상은 머리에 보관을 썼고, 보관 아래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아 있습니다. 오른손은 손목이 구부러진 형태로 손에는 꽃가지를 쥐고 있고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 설법할 때의 손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다리를 아래로 내리고 왼쪽 다리를 접어서 대좌에 올려놓은 반가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옷의 주름이 섬세하게 표현되었으며 옷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대좌를 덮고 있습니다. 손에 꽃가지를 들고 있어 이 불상을 미래불인 미륵보살로 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미륵보살은 용화 꽃가지를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상이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경주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봉우리 부근이어서 경주 남산의 마애불 유적지 가운데서 풍광이 가장 좋은 곳으로 꼽힙니다.
관음보살상의 부드럽고 온화한 얼굴
불상은 머리에 보관을 썼고 보관 아래로 흘러내린 머리 카락이 어깨에 닿아 있습니다.
칠불암 위의 곧바로 선 절벽 면에 새겨져 있어 마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듯이 보이는데, 머리에 삼면보관을 쓰고 있어 보살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얼굴은 풍만하고, 오른손에는 꽃가지를 들고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서 설법하는 모양을 표현하였습니다. 팔각형으로 보이는 대좌 아래로 옷이 흘러내리고, 오른쪽 다리는 아래로 내려놓은 자세입니다.
발은 연꽃 위에 있으며, 이처럼 유희좌를 표현하였음은 드문 예입니다. 그 아래에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불상 높이는 1.4m이며,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입니다.
경주시내
칠불암 직전 대나무숲
칠불암 마애불상군(국보 제312호)
가파른 산비탈을 평지로 만들기 위해서 동쪽과 북쪽으로 높이 4m 가량되는 돌축대를 쌓아 불단을 만들고 이 위에 사방불을 모셨으며, 1.74m의 간격을 두고 뒤쪽의 병풍바위에는 삼존불을 새겼습니다.
남산에서 가장 큰 불상군인 국보 제312호 칠불암 마애불상군으로 우측 삼존불과 좌측 사면불로 총7개의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 칠불암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칠불암 내에 있는 바위 면에 새겨진 7구의 불상들을 지칭합니다.
동쪽을 향한 넓은 바위 면에 삼존상이 있고, 삼존상 바로 앞의 네모난 돌기둥에는 면마다 불좌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본존과 두 보살로 된 삼존상, 돌기둥의 네 면에 새겨진 사방불을 합쳐 모두 7구의 불상들이 새겨져 있으므로 암자의 이름을 칠불암이라 부릅니다. 이곳에 있던 원래의 사찰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불상군의 핵심 불상은 삼존불 중앙의 불좌상입니다. 이 불상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가사를 걸치고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습니다. 사방불은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손 모양을 취하고 있는데, 정면에 해당하는 동쪽 면의 불상은 약그릇을 지니고 있어 약사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삼존상의 뒤쪽에는 여러 개의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또 돌기둥 위에 홈이 파여 있고, 주변에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이곳이 원래 지붕을 얹은 석굴 사원으로 추정됩니다.
이 주변에서 약사경과 금강경을 새긴 석경의 파면들이 발견되어 복과 장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민간의 약사 신앙과 관련된 사찰로 보입니다. 석불의 제작 시기는 석굴암 본존불보다 앞서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방불상(동면)
삼존불 앞의 돌기둥에 새겨진 사방불은 높이가 2.23m 내지 2.42m 정도로 바위 모양에 따라 크기를 달리하고 있는데, 네 상 모두 연화좌에 보주형 두광을 갖추고 결가부좌하였습니다.
각각의 높이는 동면상 1.18m, 서면상 1.13m, 남면상 1m, 북면상 72cm입니다.
동면상은 본존불과 동일한 양식으로 통견의 법의가 다소 둔중하나 신체의 윤곽이 뚜렷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오른손은 가슴 높이로 들어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는데, 이것을 설법인이라고 합니다.
왼손에는 작은 단지를 들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을 약사여래라고 합니다. 그리고 약사여래는 통상적으로 동면하고 앉아다고 합니다.
사방불상(서면)
서면상은 동면상과, 북면상은 남면상과 서로 유사하나, 북면상은 다른 세 불상과 달리 특히 얼굴이 작고 가름하여 수척한 인상을 주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네 상의 명칭을 확실히 하기는 어려우나, 방위와 수인, 인계에 의하여 볼 때 일단 동면상은 약사여래, 서면상은 아미타여래로 볼 수 있습니다.
사방불상 중에서 잘 보이지 않는 북면과 서면 부처님의 모습은 국가유산포털의 이미지로 확인합니다.
사방불상(남면)
사방불상(남면)
남면상(南面像)은 여러 면에서 동면상과 비슷하나,가슴에 표현된 군의(裙衣)의 띠 매듭은 새로운 형식에 속하며, 무릎 위의 옷 주름, 짧은 상현좌(裳懸座)의 옷 주름이 상당히 도식화되었습니다.
사방불상(북면)
서면상(西面像)은 동면상과, 북면상(北面像)은 남면상과 서로 유사하나, 북면상은 다른 세 불상과 달리 특히 얼굴이 작고 갸름하여 수척한 인상을 주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네 상의 명칭을 확실히 하기는 어려우나, 방위(方位)와 수인(手印)·인계(印契)에 의하여 볼 때 일단 동면상은 약사여래, 서면상은 아미타여래로 볼 수 있습니다.
동면 약사여래부처의 오른쪽 남면에 조각된 부처는 왼손은 설법인을 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게 보이지만, 오른손은 잘 구별되지 않습니다. 흘러내린 옷자락이 연꽃 대좌를 살짝 덮고 있는데, 이런 점 등으로는 이 부처가 누구인지 구분해 낼 수가 없습니다.
칠불암 마애삼존불
가운데 있는 본존불은 석가여래불상입니다.
좌측에 있는 협시보살은 관세음보살상으로서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습니다. 우측에 있는 협시보살은 대세지보살상입니다.
삼존불상은 4.26m 높이의 바위 면에 꽉차게 부조한 마애불로서, 거의 환조에 가까운 고부조로 되어 있습니다.
본존불은 높이가 2.6m나 되는 거대한 좌상이며, 두 협시보살도 2.1m로 인체보다 훨씬 장대합니다.
본존불은 머리가 둥글고 크며 소발에 큼직한 육계가 솟아 있습니다.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풍만하여 박진감이 넘치며, 부풀고 곡선적인 처리로 자비로운 표정을 띠고 있습니다. 즉 부풀고 두껍게 처리한 눈두덩이라든가 쌍꺼풀진 오른쪽 눈, 부드러우면서도 양감나게 처리한 코, 세련된 입, 어깨까지 닿은 긴 귀 등 자비롭고 원만한 얼굴 모습을 성공적으로 묘사하였 습니다.
목에는 삼도가 없으며, 어깨는 넓고 강건하여 건장한 가슴, 가는 허리와 더불어 당당하며 박진감 넘치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으로 두 손이 유난히 큼직합니다. 법의는 우견편단인데 상체의 옷주름은 곡선적인 계단식 주름이며, 옷깃이 반전되었습니다. 하체의 옷주름은 큼직한 선으로 처리되었는데, 두 다리 밑으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규칙적인 지그재그 무늬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대좌는 위로 향한 연꽃잎과 아래로 향한 연꽃잎이 이중연화좌로서 단판칠엽은 잎들 사이의 잎에 중간선을 그은 특이한 형태로서, 9세기에 나타나는 독특한 연화문의 조형으로 주목됩니다. 광비는 보주형의 소박한 무늬를 두드러지게 표현하였습니다.
협시보살은 좌우 모두 동일한 모습에 비슷한 양식을 나타내고 있는데, 풍만한 얼굴, 벌어진 어깨, 당당한 가슴, 풍만하고 육감적인 체구, 유연한 삼곡의 자세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조각이 깊어서 모습이 똑똑하고 위엄과 자비가 넘치면 대좌의 앙련과 복련의 이중 연화무늬는 지극히 사실적이어서 마치 만발한 연꽃 위에 앉은 듯합니다.
왼쪽 보살은 연꽃을 어깨까지들고 있고, 오른쪽 보살은 보병(寶甁)을 들고 있으며, 모두 본존 쪽을 향하여 몸을 약간 비틀고 있습니다.
칠불암
칠불암 편액
칠불암에서 바라본 칠불암마애불상군
칠불암에서 바라본 칠불암마애불상군
가야할 금오봉
이영재
금오봉 1.7km, 용장마을 2.8km, 고위봉 2.3km
용장계 연화대곡 비석대좌 50m
용장계 연화대곡 비석대좌
삼화령에서 바라본 고위봉
백운재, 고위봉(494m), 열반재, 황발봉(360m)과
고위봉 아래로와 태봉(355m)이 보이고 태봉 좌측으로 태봉능선, 열반재 아래로 이무기 능선이 보입니다.
용장사지가 보입니다.
용장사지 갈림길
용장사지 0.55km, 용장마을 3.0km, 통일전주차장 3.5km, 포석정주차장 5.0km, 금오봉 0.7km
경주 남산 용장계 탑상곡 제1사지(용장사지) 탑부재
용장사지 삼츨석탑 북쪽에 있으며 탑부재로 추정됩니다.
디딤돌 4매를 조립하여 받침돌을 만들고, 그 위에 사각형 몸돌을 놀려 놓았습니다. 사각형 몸돌 윗면에 다듬은 부분이 있습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제186호)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머물면서 금오신화를 썼던 곳입니다.
이석탑은 자연 암반을 깎아 세울 자리를 마련하고, 1층으로 된 바닥돌 위에 3층의 몸돌을 올렸습니다. 무너져 절터 아래쪽 계곡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22년 복원하였습니다. 이때 2층 지붕돌에 사리를 넣었던 구멍만 있고 사리는 없어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바닥돌은 모서리와 내부에 1개의 기둥만 새겼습니다. 몸돌은 2층부터 급격하게 작아집니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계단식 받침을 두고, 처마는 모서리에서 치켜올렸습니다. 탑의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고, 장식의 중심을 뚫어 세운 쇠기둥인 찰주를 끼웠던 구멍이 남아 있습니다.
용장계곡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하늘 끝에 닿아 있는 것처럼 보여 신비롭습니다. 주변의 넓게트인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루어 경주 남산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탑입니다.
이 삼층석탑은 절터를 감싸고 있는 동쪽 바위 산맥의 높은 봉우리 정상 부근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아래층 기단으로는 자연암석을 활용해, 그 위에 조각된 윗층 기단을 올린 독특한 구조입니다. 윗층 기단은 네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 조각을 새긴 면석 7장과 2장의 판돌로 덮개돌을 이뤄 조화롭고 견고한 형태를 이룹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석재로 조성되었습니다. 1층 몸돌은 상당히 높고, 2층과 3층 몸돌은 크기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지붕돌의 받침은 4단으로 견고하게 구성되어 있고, 처마는 직선이지만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들려 있는 전각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는 유실되어 현재는 중앙의 찰주공 자리만 남아 있습니다. 이 탑은 일찍이 무너져서 1922년에 재건되었으며, 그때 사리 장치는 이미 유실된 상태였습니다.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
이 마애여래좌상은 경주 남산의 용장사 터에 있는 바위 면에 새겨진 불상입니다.
용장사 터에는 이 불상과 함께 삼층석탑(보물 제186호)과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이 남아 있습니다.
불상의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을 겹겹이 새겼고, 정수리의 뼈가 머리 위로 솟아 상투처럼 보이는 육계는 크고 펑퍼짐하게 표현하였습니다. 눈, 코 입이 뚜렷하게 새겨진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보입니다.
옷 주름은 평행선을 빼곡하게 그려 넣어 표현하였습니다. 무릎 위에 놓인 오른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쪽에 놓여 있습니다. 머리 광배와 몸 광배는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왼쪽 어깨 바깥 부분에 10자 정도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앞부분을 태평 2년 8월(太平二年八月)로 읽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마애여래좌상은 977년 또는 1022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애불상은 높이 약 1.62m, 광배와 대좌를 갖추고 있으며, 자연 암벽에 불신 본체를 조각한 형식입니다.
마애여래좌상의 얼굴은 원만하고 온화한 미소를 띠며 나선형 소라 머리인 나발(螺髮)과 둥근 육계(肉髻)가 솟아있습니다. 귀는 크고 길게 표현되어 있고 목에는 삼도(三道)라 불리는 세 줄 선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내린 통견 의상으로, 평행선을 반복해 촘촘히 세밀하게 표현한 옷깃과 주름이 특징적이며, 매우 사실적인 묘사로 당시 통일신라 불상 양식을 잘 반영합니다.
불상의 두 손은 전형적인 선정인(禪定印) 자세로,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고, 왼손은 불신 중앙 배 부분에 편안히 놓여 있어 불교 좌선을 상징합니다.
대좌는 자연석 기단 위에 원형의 연꽃 무늬가 조각된 3중 원형 대좌(삼륜대좌)이며,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고 조화로운 구성입니다. 불상 뒤쪽에는 원형 광배가 상대적으로 간략하지만 두 줄 선으로 표현되어 있어 불상의 신성을 강조합니다.
얼굴 크기에 비해 어깨와 무릎의 폭이 넓은 편이어서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줍니다. 머리와 그 위의 나지막한 육계에는 나발이 굵게 표현되었고, 얼굴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어깨와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앉아 있는 자세에서 탄력과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법의는 통견으로 입었는데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오는 옷자락이 가슴부분의 옷깃 속으로 접혀들어간 점은 경주 남산 미륵곡 보리사에 있는 석불좌상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옷주름 표현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여러 층단을 이루면서 부드러운 물결처럼 처리되었고 비교적 조각기법이 섬세한 편입니다.
손 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밑으로 내려뜨리고 왼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중앙에 손바닥을 위로 해 올려놓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습니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각각 두 줄의 음각선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대좌는 마멸이 심한 편이며 앙련의 연화좌가 얕은 부조로 표현되어 상을 받쳐주고 있습니다.
이 마애불상은 당당한 자세의 불신 표현이나 부드러운 옷주름선의 흐름, 그리고 섬세한 조각기법 등에서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양식의 요소가 남아 있으나 시대적으로는 8세기 중엽의 석굴암 조각보다는 약간 후대로 보입니다. 마애불상 앞쪽에 3층의 높은 연화대좌 위에 놓인 석불좌상이 있어 통일신라 경덕왕대에 용장사에 있었던 유가종의 개조 대현이 예배한 미륵석상과 관련짓는 설도 있습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은 조각도 우수하지만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가 독특합니다. 이 대좌는 자연 암반 위에 원반 모양의 돌을 층층이 쌓아 올린 형태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예입니다.
그 위에 앉은 불상은 머리를 잃었지만, 왼쪽 어깨 위에 부처의 옷인 가사와 옷을 고정하는 끈과 매듭이 새겨져 있습니다.
옷자락이 무릎 아래로 흘러 대좌를 덮고 있습니다. 손 모양은 일반적인 손 위치와는 반대로 왼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왼 무릎 위에 오른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달리 위에 두었습니다.
삼륜대좌는 신라 석조불의 독특한 대좌 형태 중 하나로, 둥근 원형 대좌가 3겹으로 중첩되어 있으며 각 층마다 연꽃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가장 아래층은 자연석을 기단 삼아 놓았고, 윗층들에는 아름다운 연꽃무늬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 전체적으로 매우 견고하고 장엄한 인상을 줍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은 삼국유사에 서술된 유명 승려 대현(大賢)의 활동 시기와 연관지어 8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해지는 전설에 따르면 대현 스님이 이 불상을 돌며 예배를 하면 불상도 방향을 바꾸었다 한다. 이는 당대 신라 불교 예술에서 사실주의적 표현과 신앙의 융합을 보여 줍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이 불상은 약 4.56m 크기의 삼륜대좌(세 겹으로 겹친 원형 좌대) 위에 앉아 있는 형태이며, 불상 본체 높이는 약 1.41m입니다. 머리 부분은 없어졌으나 손과 몸체 일부가 남아 있고,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신체 표현이 두드러져 있습니다. 이는 과장된 이상미를 추구하던 이전 신라 불상의 전통에서 벗어나 실제 승려가 앉아 있는 모습처럼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체구를 강조한 점에서 큰 특징이 있습니다.
불상은 결가부좌(좌선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전형적인 법의인 우견편단(한쪽 어깨를 드러내는 옷차림)을 하고 있습니다. 옷자락은 대좌 윗부분까지 흘러내리며 마치 레이스가 달린 듯 매우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특히 좌측 어깨에 가사끈이 매듭 지어진 모습이 극도로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어, 불교 승려의 자세와 생활감을 잘 드러냅니다.
금오봉 0.9km, 용장마을 2.65km, 용장사지 0.2km
금오봉(남산)
포석정주차장 4.7km, 삼릉주차장 2.6km, 약수골입구 1.5km, 약수계곡마애입불상 0.4km, 고위봉 4.5km
하산길에 바라본 단석산과 벽도산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유형문화재 제158호)
통일신라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입니다. 높이는 6m에 달하며 남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새겨진 마애불입니다. 머리와 어깨를 입체적으로 조각한 반면, 몸체는 아주 얕게 새겼습니다.
결가 부좌로 앉아 설법인을 하고 있습니다. 암반을 광배로 삼고 대좌는 2겹의 연꽃으로 표현되어 있고 꽃잎마다 보상화를 새겼습니다.
당겨본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바둑바위
좌측 맨뒤로 단석산과 그 앞 벽도산, 선도산, 구미산, 옥녀봉
상선암
삼릉계 제6사지 마애여래상
등산로에서 서쪽 암반을 바라보면 선각의 마애불이 새겨져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머리와 어깨 부분은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 있으나 그 이하는 미완성입니다.
정면에 있는 바위에는 머리부터 가슴 부위까지의 상반신을 선으로 새긴 불상이 있습니다. 불상의 정수리에는 낮은 육계가 솟아 있으며, 둥근 얼굴에는 뚜렷한 이목구비가 보입니다. 이처럼 선으로 새긴 선각 마애여래상은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했으며, 인근의 삼릉계곡 선각육존불과 경남 함안 방어산 마애여래입상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암벽과 불상의 비례로 보아 앉아 있는 부처상을 새기려 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습니다.
2025년 경주국립공원사무소의 조사 및 분석 결과, 상반신의 아랫부분은 제작 후 훼손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미완성인 작품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이 불상은 머리에서 부터 신체 아래로 내려가며 조각하려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릉주차장 1.25km, 금오봉 1.35km, 상선암 0.35km,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40m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66호)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은 삼릉계곡의 왼쪽 능선 위에 자리한 석불로 불상의 몸과 광배,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불상과 얼굴 아래쪽이 부서지고 광배도 떨어져 흩어져 있던 것을 발굴, 조사한 후 복원하였습니다.
불상의 머리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고 그 위로 상투 모양의 큰 육계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불상의 머리와 몸을 따로 제작해 조립한 것인데, 얼굴 아래쪽이 심하게 손상되었던 것을 복원하였습니다.
왼쪽 어깨에만 걸친 옷은 옷의 주름이 간결하고 몸의 윤곽이 드러나게 밀착되었습니다. 손의 모양은 오른손을 펼쳐서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은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입니다.
다른 돌로 만들어진 광배는 파손되어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 복원한 것입니다.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는 위와 아래를 연꽃무늬로 장식한 3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당당하고 안정감 있는 자세와 섬세한 조각 기법 등으로 보아 이 불상은 8-9세기에 만들어진 통일신라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이 불상은 섬세하게 조각된 소발의 머리위에 둥근 육계가 나지막하게 솟아 있고, 반쯤 뜬 가늘고 긴 눈은 자비로운 모습입니다. 눈썹과 눈매에는 위엄이 느껴져 단정한 얼굴 모습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짧은 목에는 3도가 있고, 벌어진 어깨와 당당한 감슴, 넓은 무릎 등은 안정감 있는 신체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견편단의 법의는 얇고, 뒷면에도 일정한 간격의 계단식 옷주름을 표현하였습니다. 법의의 간결한 옷주름은 기본적으로 석굴암본존불과 유사하나, 수인의 표현은 석굴암본존불에 비해 완전하지 못합니다.
촉지를 취한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충분히 내려오지 못하였으며, 왼손 역시 복부 앞이 아니라 왼쪽 다리 위에 놓여져 있습니다.
또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넓게 결가부좌한 자세는 안정감 있으나, 가슴과 두 팔의 양감은 석굴암 본존불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슴과 팔에 걸친 옷주름과 양다리 사이의 부채꼴 옷주름은 석굴암본존불과 같고 더우기 대좌 상면의 부채꼴 옷주름은 석굴암 본존불의 정통계보를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광배는 원형의 두광과 신관을 마련하고, 보상화문과 화염문을 화려하게 장식하였습니다.
대좌는 상, 중, 하대로 구성되었으며 중대석은 8각형입니다. 상대석의 연잎 안에는 꽃무늬가 첨가되어 있고, 밑면에는 8각형의 상대받침이 1단으로 마련되었습니다. 팔각형의 중대석은 낮은 편으로, 각 면에는 첨정형의 안상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대석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2단의 8각형 중대 받침을 갖추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불상의 크기에 비해 대좌는 낮고, 광배는 크며, 신체도 상체에 비해 하체의 양감이 강조되어 안정감을 줍니다. 또한 신체 표현은 둔감하고 형식적으로 흘러간 반대 대좌나 광배의 세부 표현은 화려합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통일신라 후기의 일반적인 경향으로, 이 불상은 9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여져집니다.
삼릉계 석불좌상은 항마촉지인을 맺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석불좌상입니다
불상은 불두와 불신을 따로 제작하여 결합하였습니다.
불상의 몸은 당당하면서도 안정감 있게 조형되었습니다
법의는 왼쪽 어깨에만 두르고 오른쪽 어깨는 노출하는 편단우견식으로 걸쳤는데, 앓게 몸에 밀착하여 신체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정강이에서 발목으로 옷 주름이 비스듬히 흐르고 있습니다
광배는 간결하면서도 섬세하게 새겨진 화염문 등으로 보아 우수한 조형성을 보인다.
한편 연화좌는 상대에 앙련을 3단으로 새겼는데, 꽃잎 안에 다시 꽃잎을 새겼습니다.
팔각의 중대에는 면마다 안상을 두었으며 하대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습니다.
이 불상은 풍만하면서 당당하고 안정감 있는 신체 표현, 대좌와 광배의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조각 수법, 몸에 밀착시켜 입은 앓은 법의, 발목으로 흐르는 옷 주름 등으로 보아 석굴암 본존불상에서 완성된 통일신라시대 조각의 양식과 수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므로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석조여래좌상 바로 뒷쪽에 혼자 수행할 수 있는 선방굴이 있습니다.
금오봉 1.5km, 상선암 0.5km, 삼릉주차장 1.1km
경주 05-02 이정목 해발178m
삼릉주차장 0.9km, 금오봉 1.7km, 상선암 0.7km, 삼릉계곡선각육존불 20m
삼릉계곡 선각육존불(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이 선각육존불은 삼릉계곡의 두 바위 면에 새겨진 여섯 분의 부처와 보살을 선으로 새긴 것입니다. 통일 신라 시대에 만들어져 우리나라 선각 마애불을 대표하는 작품이지만, 자연 암벽에 음각의 선으로만 새긴 것이어서 조각이라기보다는 그림에 가깝습니다.
중앙의 서 있는 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상이 앉아 있는 보살상이 있는 삼존고가 앉아 있는 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상이 서 있는 삼존상을 각각 구분되는 바위면에 새겨 육존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약간 튀어나온 왼쪽 바위 면에는 두 보살이 무릎을 꿇고 꽃을 담은 쟁반을 받쳐 들고 있습니다. 조금 들어간 오른쪽 바위 면에는 두 보살이 중앙의 불상을 향하여 몸을 돌린 채 서 있습니다. 선각육존불은 모두 연꽃 모양의 대좌 위에 있고, 머리에 둥근 광배를 갖추었습니다.
선각육존불이 새겨진 바위의 윗면에는 지붕을 설치했던 흔적으로 보이는 사각형 홈과 빗물이 바위 면으로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는얕은 배수로가 남아 있습니다.
좌측 삼존불은 가운데 본존불을 중심으로
양쪽 협시불이 낮은 자세에서 연꽃을 공양하는 모습입니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 협시불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있는 아미타삼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미타불
중앙 불상은 손 모양(수인)이 아미타불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
양옆의 보살은 무릎을 굽히채 공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어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쪽 무플을 끊고 있는 보살의 얼굴 볼이 탱탱합니다.
우측 삼존불은 가까이 가야 선이 겨우 보입니다.
삼존불이라고 하지 않으면 3명임을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 협시불로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있는 석가삼존입니다.
가운데 석가모니불은 연꽃 대좌 위에 앉아 있고, 양옆의 보살은 정병 등을 서 있습니다.
석가여래
삼릉주차장 0.8km, 금오봉 1.8km, 상선암 0.8km
경주 남산 삼릉계 제2사지 석조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앞 평탄지부터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일원까지는 사지로 추정합니다. 사지내에 석렬, 우물지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석조여래좌상은 1964년 계곡 옆에서 발견되어 현 위치로 옮겨졌습니다. 불두는 결실되었으며, 대좌가 함께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훼손이 심해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습니다. 왼쪽 어깨와 양손도 훼손되었습니다.
목에 삼도가 뚜렷하며, 왼쪽 어깨에는 가사 끈이 새겨져 있습니다. 가사자락을 묶어 매듭지은 후 나머지 끝을 무릎까지 늘어뜨렸고 끈의 끝에는 술장식이 있습니다.
투터운 옷을 입은 삼국시대에 비해 통일신라시대가 되면 얇은 옷을 입은 불상이 유행하게 됩니다. 이는 간다라 불상의 유행이 사라지고 상대적으로 더운 인도의 마투라 지역의 불상이 신라에까지 유행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견편단은 인도 수행자들의 옷 모습이 불상에 나타난 것으로 통견에 대비되는 옷 모습입니다. 아주 사실적인 띠 매듭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중국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우리 나라에 유행한 것입니다.
경주 남산 삼릉계 제1사지 탑재 및 석재
좌측 1, 2 석탑재, 3 석조여래좌상, 4 석조여래입상
삼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