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타전하다
조민정(1957년~) 그녀는 보호색을 갖지 않은 한 마리 나비잠자리 아주 천천히 윤기 나는 날개를 흔들 뿐 자신을 위해 집 한 채 지을 줄도 모르지 몸 안 가득 생명을 품고서 논가 아무데서나 혼곤한 잠에 빠지기도 하는 무사태평이지 그런 그녀, 월요일 오전이면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찾아온 전화 목소리에 곧잘 포박 당하곤 하지 흔해빠진 휴대전화도 없는 그녀가 친구의 손을 빌려 모국의 언어로 속삭일 때면 가무스름한 피부만큼 눈망울도 깊어지지 어쩌면 무성한 독초로 자랄지도 모르는 불온한 소리들은 한 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녀 보호색도 없이 날개를 흔드네 -아코 아이 마사야냐온* *‘나는 오늘도 행복합니다’라는 뜻의 필리핀 타갈로그어 ■감상: 고귀한 자태를 뽐내던 나비의 주검을 본 적이 있다. 꽃을 징검다리 삼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나비가 어느 날 풀숲 아래서 개미들의 도움을 받으며 육탈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화려하고 고혹적인 모습도 죽음 앞에서 하나의 생명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생명을 품고 사는 동안 지향해야 할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행복해 지기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다. ‘그녀’도 행복해 지기 위해서 낯선 땅에 왔다. 그런데 익숙한 곳에 비해 낯선 곳은 위험이 다쳤을 때 피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다보면 작은 바람에도 경계를 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다. 나를 보호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이럴 때 늘 경계하고 늘 보호색을 치며 살다보면 세상은 온통 볼온한 소리로 가득 찬다.
그렇다고 나를 무장해제하고 살 수도 없는 일이다. 낯선 땅에서 이렇게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던 지 아니면 바보처럼 살아야 하는데 이또한 어려운 일이다. ‘여기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변을 경계하려 하지 않고 자신을 보하하기 위해 꾸미려 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누구에게나 그대로 보여준다. 행복해 지기 위해서 말이다. 일주일의 단 하루 그녀가 사랑을 갈구하는 곳 사랑이라는 말(가족)을 표현할 수 있는 모국어(마음)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 | | ▲ 김희정 |
◇<미룸에서 만난 詩>는 김희정 시인의 안내로 시 한 편 감상하는 코너입니다. 미룸은 미(美) + 룸(Room) =아름다운 방이라는 뜻이 담겨 있고, 순순 우리 말로는 미루다(어떤 일을 미루고 삶의 여유를 찾아보자) 이런 뜻도 있습니다. 김희정 시인은 2002년 < 충청일보> 신춘문예, 2003년 <시와정신>에 당선돼 문단에 나와 시집으로 <백년이 지나도 소리는 여전하다>, <아고라>, <아들아, 딸아 아빠는 말이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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