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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산은 해발 156m로 작고 나지막한 산이지만 해송과 야생화가 어우러진 숲길과 몽돌로 가득 찬 때 묻지 않은 해변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중요시설 및 군사작전지역으로서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지역이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오늘 일정 중 끝골, 굴금 몽돌해변, 코끼리바위 어간의 해안절벽경이 장관을 이룬다. 절벽 틈새마다 뿌리를 박고 자란 멋스런 노송도 볼거리로 한 몫 한다. 인터넷카페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황금산의 진명목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산시가 대국민 공모를 통해 지역을 대표할 관광명소로 선정한 '서산9경' 중 제7경에 뽑히기도 했다.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정상에 발도장을 찍고 해안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넉넉잡아 4시간이면 족하기 때문에 가족단위 등산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특히 하산 후 10개 군데의 조개구이 집에서 자연산 가리비나 조개를 숯불에 구워 먹거나, 해물칼국수 등 별미로 식사를 하거나 간식을 즐길 수 있다는 정보를 주시면서 추천해 주신 부회장님의 뜻에 따라 12월 두 번째 주 정기산행지로 선정하였다. 서산7경 황금산에서 산과 바다를 가볍게 즐긴 후 갯벌에서 직접 잡은 해산물을 맛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부회장님께 감사드린다.
- 지난 11. 21 옹진 장봉도에 이어 서산 황금산으로 이어진 바다와 함께하는 산길여정에는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차고 넘치는 분위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대설을 지나면서 오락가락하는 눈발과 함께 당일 전국적으로 내려진 눈 소식에 치명타를 맞고 아쉬움을 남긴 채 춘천을 출발하였다. 구두계약도 엄연한 계약일 진데 1 ~ 4㎜의 비나, 1㎝의 눈이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질겁하고 무자비하게 일정을 취소하신 분들이 의외로 많아 집행부를 곤혹스럽게 하였다.
- 오늘 일정상 나들목인 독곶리 마을입구 간이주차장까지 10:30분경 도착을 예상했었는데 예정시간대에 무사히 도착하여 일상을 열었다. 오늘 버스운행 구간 중 서울외곽순환도로 경유시간대가 러시아워시간대이기 때문에 은근히 걱정했었는데 그런대로 무난하게 통과한 것이 한몫 한 셈이었다. 그나저나 노련한 운행 솜씨를 발휘해 주신 권 희 성 기사님에게 그 공(功)을 돌린다. 요즘 철도노조의 파업 영향으로 서해안고속도로를 경유하면서 트럭 행렬이 이어지면서 상당시간 지체를 염려했었는데 기우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 들머리에 들 당시만 하더라도 눈이나 비가 내릴 징조는 보이지가 않았다. 햇빛이 쨍쨍한데다가 대산석유화학단지를 비롯하여 서해바다 멀리까지 조망권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오전, 오후 눈. 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는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연일 호들갑을 떨어대는 언론매체의 귀에 거슬리는 수다가 야속하다고 투정을 부렸었는데 고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출발 전 확인한 기상도에 의하면 눈사람이나 우산이 그려진 시간대가 한낮이었기 때문에 뭔가 오기는 올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 서산시 대산읍 석유화학단지 내에는 현대오일뱅크, 삼성토탈, LG대산유화, 롯데대산유화, 삼성석유화학 등이 주축을 이룬다. 대산읍 독곶리는 중국 및 수도권과의 인접성이 좋은데다 평택항과 대산항을 비롯한 서해안 항만시설 등 사회간접자본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지역이다. 신축공사가 한창인 삼성토탈G2현장 인근 조개, 가리비 등 해산물을 판매하고 있는 마을안길 끝자락이 오늘 등산기점이다. 나들목 주변에는 화장실 등 편의시설과 서산아라메길종합안내도, 황금산등산안내도, 황금산등산요령, 몽돌밀반출금지안내문, 국가중요시설 및 군사작전지역 경고문 등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안내도를 보면 등산코스가 분명한데 경고문을 보면 출입금지구역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혼란을 초래하기십상이다. 등산코스와 출입금지구역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직감하면서 들머리 입구에 도착하였다.
- 산행안내준비를 하면서 현장에 설치된 등산안내도를 기준으로 도상연습을 하였지만 다른 등산지도상에는 끝골 해변에서 굴금해변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표기되어 있어 은근히 기대를 걸었었다. 현장에서 일정을 안내하면서 그 점을 염두에 두고 현장의 상황이 등산지도에 표기된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귀띔하기도 하였다. 오늘 운영시간은 여유 있게 4시간으로 잡고 14:30분 현 위치 원점회귀를 예고하고 들머리에 들었다.
- 들머리에서 임도를 따라 직진하면 안부사거리(쉼터)를 경유하여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안부사거리까지 되돌아 내려와 헬기장 - 끝골 방향으로 가는 우회코스이고, 들머리에서 10여m 임도로 올라가다가 진행방향 왼쪽 산악회 리본이 즐비한 샛길로 진로를 잡아 계곡에 놓인 간이나무다리를 건너 올라가면 정상(황금산사)으로 곧바로 올라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에 오늘 안내일정대로 정상을 곧바로 올라가는 지름길로 진로를 잡았다. 정상을 올라가는 도중 이 길을 모르고 그냥 우회코스로 지나쳤다가 투정을 부리며 하산하는 산객들의 물음을 받고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하면서 오늘도 지난주 운악산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네 산악대장 노릇을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이르렀다.
<정상석>
- 들머리에든지 20여분이 채 안되어 정상에 올랐다, 황금산의 정상석은 첫 느낌에 남다름 이 있었다. 대부분의 정상석은 받침돌위에 그냥 정상석을 안치하였는데 이곳은 정교하게 탑을 쌓고 중간 지점에 정상석을 안치한 다음 다시 탑을 쌓아 마무리하였다. 정상 주변에는 황금산사란 사액[(賜額)예전에, 임금이 사당, 서원(書院) 등에 이름을 지어서 그것을 새긴 액자를 내리는 일을 이르던 말]이 걸린 임경업장군 사당, 황금산 안내문, 임경업사당과 황금산당제 안내문, 코끼리바위와 주차장 진행방향 안내표주가 세워져 있다. 정상에서 서쪽으로는 서해바다가 눈이 모자라게 펼쳐져있고 동쪽 독곶리 방향으로는 하늘을 삼킬 듯 흰 연기를 내뿜는 대산석유화학단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 서산시에 따르면 지난 가을 평일 500여명, 주말에는 2천여 명 이상의 등산객이 황금산을 찾았다고 한다. 주말이면 황금산 입구 주차장은 등산객을 태우고 외지에서 온 대형버스로 빈 공간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하니 가히 짐작이 간다. 무리한 등산보다는 지인들과 함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산행이 유행되다 보니 동호회나 가족 단위로 황금산을 찾는 등산객 수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 황금산의 전설을 소개하고 넘어간다. 4백여 년 전에 이곳 황금산 앞바다는 많은 물고기들이 살아 이곳 어부들은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황금산 앞 갯골을 사이에 두고 있는 자각산 아래 박(朴)씨라는 활량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고기잡이 보다 무예를 닦는 사람으로 특히, 활을 잘 쏴 인근에서 명궁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어느 날 박 씨는 다른 날과 같이 활쏘기와 담력 기르기 등 무예를 닦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박 씨는 잠시 쉬는 동안 마당바위에서 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황룡이 나타나 뿌연 연기를 뿜으며 말하기를「나는 이 황금산 앞바다를 지키는 용신으로 이곳의 어부들이 지내는 고사밥을 받아먹고 살고 있노라 그런데 연평도에 살고 있는 청룡이 황금산 조기 떼를 몰고 가려고 해 며칠째 황금산 앞바다 상공에서 싸움을 하고 있는데 나 혼자의 힘으로는 청룡을 이기기 어려우니 다음날 새벽에 청룡을 이곳 마당바위 상공으로 유인해 올 테니 너의 활 솜씨로 청룡을 쏴 죽여 달라, 화살시위를 당길 때 반드시 자기(황룡)의 눈을 보고 명중시키면 청룡이 죽을 것이니 꼭 약속을 지켜라」고 말한 후 사라졌다. 다음날 새벽 마당바위 상공에서 황룡과 청룡이 싸움을 하는데 박 씨는 재빨리 활에 화살을 끼고 황룡과의 약속대로 황룡의 눈을 보고 시위를 당기려고 하는 순간 자신의 활 솜씨가 너무 뛰어나 꼭 황룡이 화살을 맞을 것 같아 황룡과의 약속을 어기고 그만 청룡의 눈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그러나 그 순간 청룡의 몸을 뒤트는 황룡과 청룡의 위치가 바뀌었고 화살은 황룡의 눈에 꽂혀 황룡이 우뢰와 같은 비명을 지르며 물속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날 밤 황룡이 피를 흘리며 나타나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다. 황금산 바다 반대편에 있는 연평도 바다와 연결되어 있는 큰 동굴을 통해 이제 청룡이 황금산 조기 떼를 연평도 앞 바다로 모두 몰고 가서 이곳 어민들의 생활이 빈곤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청룡이 고기떼를 몰고 가지만 앞으로 황금산이 세 번 푸르러지는 몇 백 년 후에는 내 아들이 성장하여 다시 고기떼를 몰고 올 것이오” 하면서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황금산사>
- 황금산 정상에 있는 황금산사(黃金山祠)의 유래를 살펴본다. 황금산에는 옛날부터 산신령과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 조그마한 당집이 있어 인근 주민이나 어업을 하는 사람, 배를 부리는 사람 등이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고 치성을 드려왔다. 산신령은 신하를 지켜주는 신으로, 임 장군은 바다 한 가운데서 생수를 구하거나 가시나무로 조기떼를 잡아 군사들의 기갈을 면하게 하는 등 초능력을 지닌 충신이었다. 그러나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기에 사후에 영웅신으로 모시게 되었고, 황금바다와 멀지 않은 연평바다 사이를 오가는 조기떼를 놓치지 않으려고 임 장군을 모신 연평도의 충렬사에 대립하여 황금산에 모셨던 것으로 1996년 서산시에서 복원하여 황금산사라 이름 짓고 매년 봄철에 제향을 지내고 있다. 서산 대산지역은 어느 지역보다 다양하고 경쟁력 잇는 자원이 많이 있다. 넓은 간척지는 농업소득을 억대로 끌어 올리는 부자농업의 기반이 되고 있으며, 천혜의 바다자원인 가로림만은 조상대대로 이어온 보물창고와 같은 갯벌을 가지고 있다. 항만개발이 용이한 바다환경은 임해공단의 터전이 되어왔다. 특히 환황해권의 중요성이 높아가고 있는 21세기 세계경제의 물결은 대산의 미래를 밝게 비추고 있다. 몇 백 년 후에는 황룡의 아들이 장성하여 고기떼를 몰고 오리라는 황금의 전설이 대산의 미래를 밝게 비추고 있다.
- 내친김에 임경업장군에 대해 살펴보거자 한다. 임경업(林慶業)장군은 친명반청(親明反淸)에 투철한 무장으로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활약했으며, 청나라와 화의가 성립된 이후에도 명나라와 협력하여 청을 공격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당했다.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영백(英伯), 호는 고송(孤松). 판서 정(整)의 7대손으로, 아버지는 황(葟)이다. 1618년(광해군 10) 아우 사업(嗣業)과 함께 무과에 급제했다. 1620년 소농보권관(小農堡權管)을 지내고, 1622년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정충신(鄭忠信) 밑에서 세운 공으로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 1등에 봉해지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그뒤 우림위장(羽林衛將)·방답첨사(防踏僉使)·낙안군수 등을 지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전라병사 신경인(申景禋)의 좌영장으로 출전, 강화도로 갔으나 이미 화의가 성립된 뒤여서 후금군과의 전투는 없었다. 이듬해 체찰부별장, 1629년 용양위부호군, 1631년 검산산성방어사·정주목사 등을 거쳐, 1633년 청북방어사 겸 안변부사에 기용되어 백마산성(白馬山城)·의주성(義州城)을 수축했다. 같은 해 명나라의 공유덕(孔有德)이 반란을 일으켜 후금군과 합세하려 하자, 명군과 함께 이를 토벌하여 명나라의 왕으로부터 총병(摠兵) 벼슬을 받았다. 1634년 의주부윤 겸 청북방어사에 임명되었으며, 중국무역과 둔전(屯田) 개설의 공로로 이듬해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다. 무역거래에서 폭리를 취했다는 탄핵으로 한때 파직되었으나, 곧 복직하여 압록강 맞은편의 송골산(松鶻山)·봉황산(鳳凰山)에 봉화대를 설치하는 등 국경경비를 강화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백마산성에서 청군을 차단하고자 했으나, 청군이 우회하여 남하했으므로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이듬해 인조로부터 굴욕적인 강화를 받아내고 돌아가던 일부 청군을 쳐서 무찔렀다. 1637년 청나라가 가도(椵島)에 주둔한 명군을 공격하기 위하여 조선에 병력을 요청하자 수군장(水軍將)으로 출전했으나, 병자호란 때의 치욕을 씻을 기회를 노리던 그는 명의 심세괴(沈世魁)에게 연락하여 몰래 명군을 도왔다. 이듬해 평안도병마절도사 겸 안주목사가 되었으며, 1640년 다시 청나라의 요청으로 주사상장(舟師上將)으로 발탁되어 금주위(錦州衛)의 명군을 공격했지만 이때도 마찬가지로 승려 독보(獨步)를 보내 명군과 연락을 취하면서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1641년 서울로 돌아왔으나, 그의 행적에 의심을 품고 있던 청의 압력으로 벼슬에서 쫓겨났다가 곧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로 복귀했다. 그러나 1642년 명장(明將) 홍승주(洪承疇)가 청나라에 투항함으로써 명과의 관계가 발각됨에 따라 체포되었다. 청나라로 압송되던 도중에 황해도 금천군 금교역(金郊驛)에서 탈출, 회암사(檜巖寺)에 들어가 스님이 되었다가 1643년 명나라에 망명했다. 그뒤 명나라 장군 마등고(馬騰高)와 함께 석성(石城)에서 청나라 공격에 나섰으나 마등고가 곧 항복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탈출을 기도하다가 그의 부하였던 한사립(韓士立)의 밀고로 잡혀 1645년 베이징으로 압송되었다. 이무렵 조선에서 심기원(沈器遠)의 옥사가 일어나 그의 관련설이 대두되자 1646년 인조의 요청으로 송환되었다. 그는 역모사실을 부인했으나, 김자점(金自點)·원두표(元斗杓)가 강력히 처벌을 주장, 심문을 받던 중 형리(刑吏)에게 장살(杖殺)되었다. 사후 그의 무용담을 소재로 한 〈임경업전 林慶業傳〉을 비롯하여 많은 소설·설화가 전해지고, 토속신앙의 대상으로 신격화되었다. 1697년(숙종 23) 복관되었다. 충주 충렬사(忠烈祠), 선천 충민사(忠愍祠)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안부사거리 이정표>
- 황금산 정상에서 10여분 내려오면 안부사거리(쉼터)에 이른다. 여기서 헬기장. 끝골 방향, 굴금. 코끼리바위 방향, 주차장방향, 정상방향으로 갈라지는 교통 요충지인 셈이다. 이 지점에 일몰이후 출입통제를 안내하는 경고문, 감시초소(끝골) 0,15km, 주차장 0,95km, 굴금(코끼리바위) 0,12km, 정상 0,25km를 안내하는 이정표, 일몰이후 출입통제를 안내하는 경고문, 나무의자 2개가 있다. 오늘 일정상 끝골 - 굴금 - 코끼리바위 해변을 경유하여 이 지점까지 원점 회귀한 다음 주차장방향으로 하산 일정이 잡혀있다.
<끝골해변 파티장면>
- 11:40이 넘어가면서 끝골 해변에 이르렀다. 끝골은 오늘 일정상 반환점이기도 하다. 끝골에서 능선산행이 끝나고 해변트래킹으로 이어지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능선에서 몇 번 시행착오를 거친 다음 해변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로프 구간을 지나면서 끝골 해변에 다다랐다. 암벽을 내려가는 코스는 두 갈래이다. 굵은 로프구간과 가는 로프 구간이 있는데 난이도는 유사하였지만 물기 머금은 암벽이 부담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에 여기서 일행이 쪼개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 끝골 해변에서 배낭을 풀고 미리 준비해온 막걸리와 들머리 현장에서 사가지고 온 생굴을 안주로 막걸리파티가 열렸다. 그러나 그도 잠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서둘러짐을 챙겨 암벽을 올라야만 했다.
- 끝골에서 굴금해변으로 이어지는 트래킹코스는 아예 없었다. 절벽구간이기 때문에 우회하는 수밖에 별 수가 없었다. 능선길을 되돌아 올라온 다음 “등산로 아님”이란 노란색팻말이 붙은 계곡으로 접근하여 굴금해변방향으로 진로를 잡아야만 했다. 인터넷상에 올라있는 황금산등산지도중 끝골 - 굴금구간 등산코스가 그려진 지도는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행여나 하고 기대를 걸었었는데 역시 나로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황금산 산행을 기획하시는 분께서는 이점 참고하시기 바란다.
<굴금 몽돌해변>
- 12:30분이 가까워지면서 굴금해변을 경유하였다. 물때가 맞지 않아 만수위를 보인가운데 굴금이 있는 절벽해변은 물속에 잠겨 굴금인지 금굴인지 여부를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인터넷 상에 올라있는 영상자료를 익혀뒀던 탓에 그 형상을 짐작할 수 있었다.
- 그러나 굴금 몽돌해변을 그냥 지나치면서 예기치 못했던 우발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능선 해변 오름길로 진입하여 한 참 오르는 도중 뒤에서 “코끼리바위다” 라는 산처녀님의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 황급히 뒤돌아 해안으로 길게 뻗은 암벽을 살펴보니 절벽끝단 바다와 접한 지점에 물속에 잠기다만 코끼리 코 상단 지점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아무리 살펴봐도 코끼리 코 상단이 분명하였다. 때 마침 점심시간대를 넘긴 시간이었으므로 점심을 먹을 겸 겸사겸사 발길을 되돌려 굴금몽돌해변 밥자리 명당에 배낭을 풀고 점심식사시간을 갖았다.
- 그러나 코끼리바위로 보였던 그 바위는 코끼리바위가 아니었다. 눈에 콩깍지가 씌워졌는지 어이없는 착각에 빠졌던 것이다. 굴금과 코끼리바위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리한 점을 간과하고 잊었던 것이다. 오늘 코스 자체가 단일코스로 단순하고 능선길과 해변길 어간이 100여m 남짓하기 때문에 자만한 것이 화근이었다.
- 점심식사를 마치면서 빗방울이 굵어졌다. 우장으로 복장을 챙기고 굴금해변을 출발하면서 점심식사 전에 진입했던 해변길을 접고 능선길로 진로를 변경하였다. 해변코스는 바위벼랑을 아스라이 거쳐야하는 부담을 감수해야했기 때문이다.
- 모나지 않고 동글동글한 돌을 몽돌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몽돌해변은 거제 학동, 울산 주전, 남해, 농소, 고성, 내도, 완도 등을 꼽는다. 본인으로서는 수석취미 일환으로 해석(바다돌) 탐석 차 다녀온바 있는 울산 주전, 거제 학동, 완도 몽돌해변이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동해안 몽돌 해변은 갯벌이 없는 것이 대표적 특징인 반면 서해안 몽돌 해변은 갯벌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 것이 비교된다.
<코끼리바위>
- 13:20 코끼리바위 도착
- 코끼리바위는 오늘일정 중 엄지로 꼽히는 명소이다. 코끼리바위에 접근하는 방법은 두 가지 코스기 있다. 첫 번째는 굴금해변에서 사면길을 잠시 올라와 갈림길 이정표지점에서 진행방향 오른쪽 사면길을 5분쯤 내려가거나, 굴금해변에서 해변길로 접근하여 코끼리바위와 연이어 있는 몽돌해변에 이르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들머리에서 정상을 경유하여 안부사거리(쉼터)에 이른 다음 헬기장방향으로 직진하지 아니하고 진행방향 왼쪽 사면길로 120m 내려가면 몽돌해변과 연이어 있는 코끼리바위에 이르는 방법이다. 오늘 선발팀은 굴금해변에서 해변길 대신 능선길을 경유하여 코끼리바위로 접근하였고, 후미팀은 안부사거리(쉼터)에서 곧바로 코끼리바위로 접근하였다가 원점 회귀하였다.
- 이곳이 바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고 좋아하는 코끼리바위이다. 높이 5m가 넘는 코끼리바위가 바다를 향해 버티고 우뚝 서 있으며 절벽 틈새마다 뿌리를 박고 자란 멋스런 노송이 암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선다. 이렇게 빼어난 풍광을 두루 갖추고 볼거리가 알차다 보니 인터넷카페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황금산의 진명목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곳은 지난해 서산시가 대국민 공모를 통해 지역을 대표할 관광명소로 선정한 ‘서산 9경’ 중 제7경으로 뽑힌 광광 명소이다.
- 몽돌해변에 이르면서 빗방울은 더욱 거세졌다. 이곳 몽돌은 굴금해변 몽돌에 비하여 알이 굵고 거칠었다. 그러나 거친 파도와 함께 썰물수위가 점차 높아지면서 바닷가 접근조차 여의치 않았다. 코끼리바위가 그 모습을 들어 낼만도 하였지만 쉽사리 찾을 수가 없었다. 우왕좌왕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자문을 구하는 것이 상책일 듯 싶었다. 해변 초소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짐을 챙기는 산객을 찾아가 코끼리바위 가는 길을 물어본즉 그냥 손짓으로 초소 밑으로 내려가라는 전갈이었다. 초소에서 삼각봉처럼 생긴 암봉을 한 컷 담아 가지고 앞서 가신 일행 분들과 합류하기 위해 동행하던 야인님과 함께 코끼리바위 목 부위 마루턱 안부로 내려감과 동시에 그 분들은 인증 샷만 남긴 채 서둘러 자리를 뜨고 난 후였다. 빗방울이 점차 굵어지면서 당시 현장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꽁지가 빠지게 줄행랑을 쳤던 것이다.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동행하시던 야인님께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10m 급사면 벼랑길에 설치된 로프를 타고 아무 말 없이 내려가시는 것이었다. 이에 뒤질세라 곧바로 따라 붙었다. 아니나 다를까 해변에 내려서자마자 해변 왼쪽으로 코끼리바위가 시야에 잡혔다. 아하! 그럼 그렇지! 코끼리 주제에 지가 가면 어딜 가겠어? 라고 뇌까리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제야 앞서가신 일행 분들 행적을 떠올리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으리. 이었다.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지만 순식간에 젖어드는 빗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내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기왕이면 영상자료라도 제대로 담아가지고 가서 카페에 올릴 요량으로 연속으로 몇 컷 담아보았지만 렌즈가 빗물에 젖어드는 바람에 이 또한 여의치 않았다. 카메라를 수건으로 감아 수납한 채 마음속에 그려놓고 발길을 서둘렀다.
- 코끼리 형상 중 대부분 코 부위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코끼리바위이다. 코끼리 바위는 전국에 부지기수로 많다. 대표적인 코끼리바위는 아마도 울릉도코끼리바위(공암)일 듯 싶다. 그 밖에 비단섬, 삼천포, 사천 남일대, 평창군 미탄면 기화리, 포천시 군내면 하성북리, 서산 황금산, 가평 운악산, 의정부시 수락산, 진안 마이산, 경주 오봉산 등에도 코끼리바위가 있다. 황금산 코끼리바위는 황금산 트래킹코스 중 백미로 꼽히는 명소이다. 멀리 서해를 바라보며 떠나온 고향을 그리는 듯한 코끼리 한 마리가 망부석처럼 우뚝 서 있는 모습은 과연 장관이었다.
- 기왕 코끼리 얘기가 나온 김에 코끼리에 대한 일반상식 정도를 소개하고 넘어간다. 코끼리는 장비목(長鼻目 Proboscidea) 코끼리과(─科 Elephantidae)에 속하는 인도코끼리(Elephas maximus)와 아프리카코끼리(Loxodonta africana)의 2종(種)이 있다. 거대한 몸, 긴 코, 기둥처럼 생긴 다리, 큰 귀(특히 L. africana), 커다란 머리가 특징적이다. 코끼리는 회색 또는 갈색이고 털은 거칠고 성기게 나 있다. 두 종 모두 엄니와 계속 자라나는 윗앞니가 있지만 보통 인도코끼리의 암컷에는 없다. 능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근육질의 코끝에 콧구멍이 있는데 그 끝부분에는 작은 물건을 집을 수 있는 손가락 모양의 작은 돌기가 있다. 코끼리는 콧속으로 물을 빨아들인 후 입 속으로 내뿜는다. 수컷은 음낭을 갖고 있지 않고, 정소는 몸속에 있다. 아프리카코끼리는 현존하는 육상동물 중 가장 큰 것으로 몸무게가 7,500㎏이나 되고 어깨높이가 3~4m에 이른다. 인도코끼리는 몸무게가 5,000㎏ 정도이고 어깨높이가 2.5~3m인데, 아프리카코끼리보다 귀가 훨씬 작다. 코끼리의 어금니는 한꺼번에 나지 않고 전에 있던 이빨이 닳아서 없어질 때쯤 앞쪽으로 새 이빨이 난다. 아프리카코끼리의 6번째와 마지막 어금니는 60세 정도에 닳아 없어지게 되므로 코끼리가 이 때 이상 사는 경우는 드물다. 인도코끼리는 인도 반도와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이고, 아프리카코끼리는 사하라 사막 아래의 아프리카 지역에서 볼 수 있다. 한때 다른 종으로 여겼던 이른바 난쟁이코끼리(pygmy elephant)는 어린 아프리카코끼리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두 종은 모두 우거진 정글에서 사바나 지역에 이르는 서식지에서 산다. 그들은 늙은 암컷이 이끄는 작은 가족집단으로 살다가 먹이가 풍부한 곳에서 더 큰 무리와 합쳐진다. 대부분의 수컷은 암컷과 떨어져 독신으로 무리지어 산다. 코끼리는 계절에 따라 먹이와 물을 구하기 좋은 곳으로 이동한다. 그들은 먹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풀과 다른 식물들을 하루에 225㎏ 이상이나 먹어치운다. 임신기간은 인도코끼리의 경우 평균 610일이고 아프리카코끼리는 2개월 정도 더 길다. 인도코끼리는 8~12세가 되면 새끼를 낳을 수 있고 아프리카코끼리는 14세 정도가 되어야 한다. 수세기 동안 인도코끼리는 의례용이나 짐수레용으로 중요한 동물이었고 코끼리를 부리는 사람의 조종에 따라 동남아시아 벌목작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아프리카코끼리도 역축(役畜)으로 이용되기는 했지만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다. 코끼리가 복잡한 일을 해낼 수 있으려면 적어도 20세는 되어야 하기 때문에 아프리카코끼리는 집에서 길들이지 않고 야생에서 젊은 성인 코끼리를 잡아 조련사의 힘을 빌려 훈련시킨다. 이 때문에 개체군의 숫자가 더 빨리 줄어들고 있다. 코끼리는 서식지 파괴와 사람에 의한 개발로 큰 위험에 처해 있다. 인도코끼리는 멸종위기종이고, 아프리카코끼리도 숫자가 점차 감소해 위험에 처해 있다. 특히 아프리카코끼리는 상아 거래를 위한 밀렵으로 인해 시달리고 있다. 계속적으로 서식지를 잃어감에 따라 야생동물보호지구에는 코끼리 숫자가 지나치게 밀집되고 있다. 밀렵을 금지하고 중요한 이동 경로를 보호하기 위해 회랑지대를 포함한 큰 보호지구를 만들어 보존하고 있다.
- 우여곡절 끝에 코끼리바위를 알현(謁見)하고 뒤늦게 하산 길에 오르다 보니 후미 중 후미 신세가 되고 말았다. 주차장 날머리에 도착하면서 식당에서 현지식을 시식하고 나오시는 일행 분들과 합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산예정시간보다 무려 30여분을 앞당긴 시간대였다. 굴금 몽돌해변에서 코끼리바위 몽돌해변 구간을 지나면서 비를 비켜갈 수만 있었다면 아마도 30분은커녕 한 시간도 모자라는 상황이 전개되었을 것으로 여겨졌다.
- 오늘 하산행사는 현장에서 찌개를 끓여먹을 요량이었다. 그러나 찌개는 끓였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깔아야할 상황이 아니었다. 버스 내에서 찌개를 곁들여 이슬이와 곡차로 목을 축이기는 하였지만 춘천에서 시시각각 손소리통으로 날라드는 “대설특보” 때문에 장내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면서 촌각을 다퉈 귀로에 오르자는 의견이 한껏 무르익은 분위기를 압도하고 말았다. 서둘러 귀로에 오르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현장을 출발하여 경기도 기흥까지는 비와 진눈개비가 오락가락하였지만 기흥을 지나면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도 잠시뿐이었다. 이내 눈도 가고, 비도 가고 온 세상이 잠잠해졌다. 그러나 어둠이 깊어지면서 기온이 점차 떨어진 듯 차량속도가 늦춰졌다. 저속운행정도가 아니라 거북이걸음이 되었던 갓이다. 통상 3시간30분대 운행시간이 무려 5시간을 넘기면서 출발지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온통 눈 세상으로 변한 새로워진 모습과 함께 희비가 엇갈리면서 황금산 일상을 갈무리하였다.
Ⅳ. 주요볼거리
<대산석유화학단지 전경>
-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 일원 대산석유화학단지는 울산· 여수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석유화학단지로 꼽히며 국내 굴지의 정유사와 화학업체가 밀집해 있다. 대산석유화학단지는 1980년대 중반 민간기업 주도로 수백만 평의 갯벌을 매립해 조성한 전형적인 임해공단으로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이 내수에서 수출산업으로 전환하는 초석이 되었으며, 동북아지역 최대 석유화학제품 수출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대중무역이 국가의 전략사업으로 대두된 가운데 대산은 환황해권 신성장동력의 개발 중심지로 각광 받고 있다. 대산석유화학단지는 타 석유화학단지에 비해 석유화학제품 최대 시장인 중국 수출에 매우 유리한 지리적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다. 대산에서 중국과는 최단거리 339㎞에 불과하다. 이는 평택 390㎞, 인천 400㎞와 비교할 때 짧은 진입항로로 신속한 접안이 가능하며 시간과 경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 국토해양부는 '제3차 항만기본계획 고시'를 통해 대산항을 석유화학사업 거점항만이자 대(對)중국 전진기지로 육성한다고 밝힌바 있다. 여기에 석유화학기업들도 민간투자방식으로 액체화물부두 13선석을 별도 건립해 석유화학제품 전문부두로 활용하고 있다. 대산석유화학단지는 지난 20여 년간 국가경제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해 왔으며 앞으로 그 역할과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비록 배부시설 견학의 기회를 갖지 못하였지만 오늘 일정 중 내내 전경이나마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갖았다.
<서산아라메길 종합안내도>
- 충남 서부의 맥을 잇고 있는 서산은 차령산맥의 한 줄기인 가야산을 비롯해 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부춘산과 팔봉산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런 서산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는 명품 체험길이 있다. ‘서산 아라메길’이다. 아라메길은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메’를 합친 말이다. 지난해 행정안전부의 ‘우리마을 녹색길 베스트 10’에 선정됐다. 아라메길은 5개 구간, 2개 지선에 총연장 88km로 풍부한 역사문화 유적과 다양한 생태체험을 할 수 있어 교육·환경적 가치가 큰 탐방로로 각광 받는다. 경사도가 완만한 낮은 평지 위주로 산책탐방로를 조성해 어린이와 여성, 노약자도 부담없이 걸을 수 있어 가족과 함께 걷기에는 더없이 좋은 길로 호평 받는다. 특히 운산면 여미리 유기방가옥을 시작으로 해미읍성 주차장까지 18km의 1구간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불교문화의 진수를 체험하며 자연스럽게 역사를 밟아갈 수 있는 인기 코스다. 이 구간을 걷다 보면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제84호)을 비롯해 보원사지, 개심사, 해미읍성 등 다양한 문화유적을 만날 수 있다. 산림으로 우거진 임도와 용현계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길에서는 자연 생태교육이 가능하고 용현계곡 정상에선 드넓은 서산 A·B지구 간척지와 천수만의 빼어난 풍광을 볼 수 있다. 종착지인 해미읍성(사적 제116호)에서는 전통공연과 함께 옥사(獄司)·국궁·의복체험·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다. 팔봉산 주차장에서 팔봉면사무소, 솔감저수지, 구도항, 갯벌체험장, 방천다리를 지나 다시 팔봉산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22km의 4구간도 트레킹족에 인기다. 이 구간은 천혜의 자연환경이자 생태자원의 보고(寶庫)인 가로림만의 빼어난 풍광과 함께 구도포구의 눈부신 갯벌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갯벌체험을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해미 순교성지에서 예산군 덕산면 대치2리 입구까지의 9km 구간, 대산읍 황금산 입구에서 삼길포 관광안내소로 이어지는 18km 구간 등도 저마다 운치를 간직하며 트레킹의 풍미를 더해준다.
◆ 아라메길 구간 ◆
- 1구간 : 운산면 여미리 유기방가옥 ~ 해미읍성 주차장(18km)
- 1-1구간 : 강댕이미륵불 ~ 보원사지 ~ 전망대 ~ 용현리주차장(9km)
- 2구간 : 해미 순교성지 ~ 송덕암 교차로 ~ 대치2리 입구(11km)
- 3-1구간 : 삼길포 관광안내소 ~ 봉화대 ~ 삼길포 관광안내소(3km)
- 4구간 : 팔봉산 양길리 주차장 ~ 호리 ~ 팔봉산 양길리 주차장(22km)
- 5구간 : 대산목3거리 ~ 부춘산(전망대) ~ 대산목3거리(7km)
Ⅴ. 특기사항
- 김 승 림님 호두과자 2상자, 오 철 수님 호두과자 1상자 :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Ⅵ. 산행을 마치고
- 해 뜨는 도시 서산은 한반도의 중서부, 충남의 서북단에 위치한다. 동편으로는 홍성군, 예산군, 당진군, 서편으로는 태안군과 서해안에 접해있다. 739.46㎢의 광활한 평야와 저산성 구릉지대로써 서해안개발과 더불어 개발 잠재력이 많은 도시 중 하나로 생각했었고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은 없다. 오래 전 기획부동산의 권유로 당진읍 영탑리 772번지에 인연을 맺은 후 단 한 번도 현장답사 기회를 갖지 못했었는데 오늘에 와서야 그 인근이나마 탐방기회를 갖게 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 일상으로 기억하고자 한다.
- 오늘 고르지 못한 날씨에 바쁜 일상 맞춰 서산7경에서 산과 바다를 아우르며 고락을 함께해주신 모두님들과 좋은 산 추천해주신 비취 부회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또한 귀로 휴게소에서 맛난 호두과자를 협찬해 주신 위 두 분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올리면서 서산7경 황금산에서의 일상정리를 여기서 마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