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법인 스님/지리산 실상사
일수사견(一水四見)은 똑같은 물을 네 개의 모습으로 본다는 뜻이다.
결혼식 주례사가 끝나면 사회자가 신랑·신부에게 연애 시절을 묻는다. 신기하게도 내용이 거의 같다. “이 사람을 만나고 나서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어요?” 늘 보고 있는 하늘과 나무, 늘 듣는 음악, 매번 먹는 음식, 그러니까 늘 마주하는 사물과 일상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는 고백이다. 뭐, 사랑에 빠지면 예쁘지 않은 게 있으랴.
그런데 그토록 사랑하는 부부가 시간이 흐르면 상황이 반전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연애 시절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 소리’는 피곤한 수다로 들린다. 당당하던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은 허세로 보인다. 행위와 사물이 바뀌지 않았는데 왜 마음에 비친 그의 모습은 달라졌는가?
인간의 마음을 깊이 다루고 있는 ‘유식불교(有識佛敎)’에서는 이를 ‘일수사견’이라고 말한다. 눈앞의 물을 두고 네 개의 모습으로 본다(보인다)는 뜻이다. 천상세계 사람은 물을 보석 유리알로, 인간은 마시는 물로, 아귀세계는 피고름으로, 물고기는 일상을 살아가는 집으로 본다는 것이다. 동일한 모습에 대해 인식과 해석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100명의 사람이 지리산을 보면 100개의 지리산이 존재하는 이치와 같다.
일수사견. 뭘 말하고자 하는가? 편견과 편향의 위험성에 대한 일침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이해관계, 소속, 경험, 환경, 학습, 전해들은 말 등에 오염되어 늘 편견과 편향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세상을 자의적으로 편집한다. 거기에서 갈등과 괴로움이 발생한다. 세상과 세상살이를 색안경 쓰지 말고 보라는 평범한 말이 일수사견의 뜻과 같다. 평범을 잘 살피고 새기면 비범이다. 정신 바짝 차리게 하는 죽비소리. 보고 듣는 매 순간을 살피라. 착각! 착각!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