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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일 (주일설교전문) "천국에서의 나의 이웃" 변승우 목사님
[사랑하는교회 흐름타기] 2015. 9. 10. 5:58
"천국에서의 나의 이웃"(2012년 1월 1일 주일설교전문)
출처: http://cafe.daum.net/Bigchurch/LuI5/1296?svc=cafeapp
천국에서의 나의 이웃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레 19:19)
용인 에버랜드에 있는 사파리에 가면 사자와 호랑이 부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거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흥미 있는 구경거리일 수 있으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가증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레 19:19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그러면 왜 이런 명령을 내리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각각 종류대로 창조하신 모든 것이 그대로 보존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각각 종류대로 독특한 색깔과 모양, 크기가 처음 만드신 대로 영원히 지속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자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만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기 때문입니다(레 19:2).
본문은 단순히 목축이나 농사 혹은 옷 만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자연, 사람, 교회, 천국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심화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구절에 나타난 원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점점 더 깊은 진리들을 추적해가며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1. 자연도 끼리끼리
저는 자연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산과 들과 강과 바다에 가보면 모든 것이 끼리끼리 어울려서 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지으셨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창 1:11-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24-25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식물들을 보면 냉이, 쑥, 달래, 돌나물, 고사리, 둥글레, 칡 등 많은 것들이 끼리끼리 군락을 이룬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동물도 세렝게티 평원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사자, 코끼리, 기린, 고릴라, 침팬지, 늑대, 하이에나, 물소, 가젤에 이르기까지 떼를 지어 살고 있습니다.
물고기들도 돌고래, 상어, 고등어, 오징어, 핫 콩치, 멸치, 피라미, 중태기, 송사리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떼를 지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들도 참새, 까마귀, 까치, 학, 기러기, 오리, 그리고 우리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까지 모두 무리를 지어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식물, 동물, 물고기, 새들에 이르기까지 종의 구분이 뚜렷하고 끼리끼리 모여서 살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증거입니다. 1980년 10월 16-19일, 진화론사상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 평가한 중요한 진화론자 학술회의가 시카고에서 개최되었습니다. 그때 진화론과 관련되는 여러 분야 즉 생물학, 분자생물학, 진화유전학, 화석학, 해부학 등의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진화론자들 160명이 한 박물관(Field Museum of Natural History)에 모여 ‘대진화’란 제목으로 회의를 열었습니다.
참고로 ‘소진화’는 종 내에서의 진화를 의미하고 ‘대진화’는 종과 종을 뛰어넘는 진화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진화론이 성립되려면 대진화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회의의 결론은 “소진화가 일어난다 해서 그것을 연장해서 대진화가 일어난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진화론자들 스스로 진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한 종류 내에서 변이(돌연변이)가 생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종 내에서의 작은 변이(소진화)가 쌓여서 다른 종이 되었다고(대진화) 주장하는 진화론은 유전학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종 내에서 다양한 생물체가 보이는 것은 가능하나 아메바에서 시작해서 원숭이가 되고 원숭이가 진화하여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진화론은 허구입니다. 세상은 진화된 것이 아니라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화론을 거부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과학이라는 미명 하에 종과 종을 섞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사람도 끼리끼리
동식물만 끼리끼리 모여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도 끼리끼리 모여서 살아갑니다. 그렇게 서로 어울리는 사람들을 친구라고 부릅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도 동물처럼
같은 종끼리 어울리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도 문제아는 문제아끼리 공부 잘 하는 아이는 공부 잘 하는 아이끼리 어울립니다. 그리고 착한 아이는 착한 아이들끼리 나쁜 아이는 나쁜 아이들끼리 어울립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 등 사람들은 무언가 공통점을 찾아 끼리끼리 어울리며 살아갑니다. 아니면 직업을 따라 정치인은 정치인끼리, 사업가는 사업가끼리, 학자는 학자끼리, 연예인은 연예인끼리, 종교인은 종교인끼리 서로 친분을 가지고 어울리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초월해서 신앙, 인격, 양심, 그리고 가치관과 목적이 같은 사람들끼리 어울리면서 살아갑니다.
암 3:3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이 말씀대로 같은 종류의 사람이 친구가 됩니다. 그뿐 만이 아닙니다. 즉 같은 종류의 사람이 친구가 될 뿐 아니라 친구가 되면 같은 종류의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동화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고전 15:33-34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딤후 2: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우리는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친구를 잘 선별해서 사귀어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불신자나 우상숭배자와는 결혼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 7: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이틀 전에도 불신자를 만나 교회도 제대로 못 나오고 얻어맞고 사는 자매가 상담을 요청하는 글을 카페에 올렸던데, 불신 결혼을 하면 불행해집니다. 단순히 불행한 정도가 아니라 믿음을 잃고 지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솔로몬도 하나님이 금하신 불신 결혼을 하여 우상숭배자가 되고 나라를 망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아합은 이세벨과 결혼하므로 이스라엘 왕 중 가장 사악한 왕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불신 결혼은 생각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아가서 가급적이면 불신자와는 동업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고후 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여기에 덧붙여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끼리끼리라지만 북한이 주장하는 ‘우리민족끼리’ 이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 크리스천 투데이 신문사설에 “북한 김정일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과 민족공조”라는 글이 실린 일이 있는데, 그것을 요약해서 소개해드리길 원합니다.
“북한 김정일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과 민족공조
구약성경의 에스겔서 34장은 전 장이 목자에 대하여 논한 장이다. 그래서 목자장이라 부른다. 여기서 목자란 말은 교인들을 돌아보는 목사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지도자들은 물론이려니와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 전체를 포함하여 일컫는다. 우리는 에스겔 34:1~4절에서 악한 목자의 특성과 그 악한 목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에스겔 34:1~4절을 킹제임스 성경으로 읽어보자.
‘1.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말씀하시니라.
2. 인자야,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대적하여 예언하라. 그들에게 예언하여 말하라.
주 하나님이 목자들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자신들만 먹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화가 있도다!
목자들이 양무리들을 먹여야 하지 아니하냐?
3. 너희가 살진 양들을 잡아 기름을 먹고 양털로 옷을 입어도 양무리를 먹이지 아니하는 도다.
4. 너희가 환자에게 힘을 돋우어 주지 아니하고, 병든 자를 치유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고, 쫒겨난 자를 다시 데려오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였도다. 그 대신 너희가 폭력과 잔인함으로 그들을 다스렸도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그와 같은 악한 목자가 없을까? 있다! 아주 가까운 곳에. 바로 북한을 다스리는 김정일이다.
여기에서 그 증거를 제시해 보겠다. 김일성 주석이 죽은 해가 1994년이다. 그때로부터 3년간에 걸쳐 그 시신을 보존하는 기념관을 꾸리는 데에 무려 8억 6천만 달러나 되는 엄청난 재정을 투입하였다. 그런데 그 3년 동안에 굶어 죽은 북한주민의 숫자가 최소한 250만으로 추정된다. 북한 국민 전체가 1년 간 먹을 식량을 확보하는 데에 대략 3억 달러면 가능하다. 그렇다면 3년간 9억 달러면 온 국민의 식량이 해결 될 수 있음에도 그 예산을 김일성의 시신을 꾸리는 기념관 건설에 투입한 것이다. (이런 정권을 상대로 남한에서 계속 수십억 달러에 해당하는 지원을 해오고 있다).
그렇게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인 김정일, 이 얼마나 악한 목자인가! 게다가 김정일은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에 약 50억 달러의 비자금을 맡겨두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 기근이 들어 수백만 명이 아사할 때, 김정일은 단 한 푼도 식량을 구입하는 데 쓰지 않았다...
지금도 김정일은 개성 노동자가 받는 월급 57.5달러 중 50달러 이상을 중간에서 직접, 또는 환치기로 가로채고 있다.(이것은 전근대사에 등장했던 극악한 지주-소작 관계에서도 볼 수 없는 현상이고 갑오농민들이 삼정의 문란시기에 들고일어났던 세금 착취와도 비교할 수 없으며 유일하게 고대 노예제 시대 때 노예들을 착취하던 노예주(主)에나 견주어 볼 수 있는 것이다). 실로 고대 노예제 사회보다 더한 착취와 폭력, 억압이 존재하는 전근대적 수령 제일의 전체주의 국가가 북한이다...
김정일은 수십억 달러를 숨겨놓고서도 주민들 구제에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전 노동당 비서 황장엽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은 군량미라도 우선 방출하여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자는 건의도 묵살하면서 그런 발상을 한 부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김정일의 화려한 식탁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코냑, 프랑스산 와인, 샥스핀(상어 지느러미) 스프, 바다가재, 캐비아(철갑상어 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소 즐겨먹는다는 음식들이다...
북한을 돕는 일에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 한 가지 있다.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들을 분리하여 도와야 한다는 원칙이다. 지금 우리 정부가 북한을 돕는 일에 과오를 범하고 있는 점이 바로 이 점에서다.
북한 정권이 어떤 정권인가? 주민들의 굶주림이나 고통은 전연 도외시한 채 그릇된 가치관과 통치관으로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굳히는 데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정권이다. 더욱이 평양의 김정일 독재정권은 오늘날 전 세계 모든 나라들 가운데 기독교를 가장 극심히 박해하는 정권이다. 오픈도어선교회의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독교인들이 수용소에 갇혀 있는 나라가 북한이며(5만~7만 명), 지난 한 해에만 북한에서는 수백 명의 기독교인들이 처형을 당했다. 이렇게 악한 정권을 ‘민족공조’(북한식 표현으로는 ‘우리민족끼리’) 라는 명분으로 지원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실까?
정답은 ‘아니다’ 이다.
성경은 악한 자를 도와주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통치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진노를 받을 것이라고 분명히 경고한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대하19:2)...남을 도와주고 남을 사랑하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님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아합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미워하는 악한 자를 도와주고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공조’ 한다면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며 인권을 탄압하는 최악의 수구보수냉전세력인 평양의 김정일 독재정권을 퍼주기 식으로 지원하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는 악한 행위라는 사실을 성도들은 깨달아야 한다.”
여러분, 이제는 왜 친북좌파를 반대해야 하는 지 아시겠습니까? 북한 동포를 돕는 것은 선한 일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을 돕는 친북좌파는 이적 집단이요, 하나님이 보실 때에 악한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교회와 목사들이 그런 정치인과 정당을 지지하고 그들에게 동조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 민족과 교회들을 깨워야 합니다.
3. 교인도 끼리끼리
사람은 각자의 성향에 따라 선호하는 교회가 다릅니다. 교리적인 사람은 교리적인 교회에 끌리고, 종교적인 사람은 종교적인 교회에 끌립니다. 반면에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회복된 진리를 전하는 교회에 끌리고, 성령을 사모하는 성도들은 건물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성령이 살아 역사하는 교회에 끌립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고 닮기 원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주님께 초점을 맞추고 서로 사랑하는 그런 교회에 끌립니다.
또, 사람은 각자의 부르심에 따라 선호하는 교회가 달라집니다. 사도적인 사람들은 사도적인 교회에 끌리고, 예언적인 사람은 선지자적인 교회에 끌립니다. 전도에 힘쓰는 사람들은 복음전도자적인 교회에, 사랑과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목회적인 교회에, 그리고 지적인 사람들은 가르침이 뛰어난 교회에 끌리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수평이동이란 것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수평이동은 유도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자연발생적이며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마음을 비우고 성도들이 자유롭게 자기가 원하는 교회를 선택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평안하고 성도에게도 발전이 있습니다.
여러분 학교를 아무 학교를 다니면 됩니까? 직장을 아무 직장이나 다니면 되겠습니까? 아니지요. 그렇다면 교회는 더욱 그렇습니다. 교회 선택은 학교나 직장 선택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때로는 그것에 따라 영원한 운명이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교회가 우리가 선택해야 할 좋은 교회일까요? 교회 선택의 기로에 놓인 분들을 위해 그 기준을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진리가 회복된 교회 즉 성경대로 가르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어떤 사람은 장로교 간판을 보고 장로교회만 다닙니다. 어리석은 것입니다. 교단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앵무새처럼 교리대로가 아니라 성경과 씨름하고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성경대로 설교하는 교회를 찾고 그런 교회에 다녀야 합니다. 그래야 영혼이 안전합니다.
다음으로, 기도에 힘쓰고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인간적이고 종교적인 행사로만 가득한 교회는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에 힘쓰고 성령 충만하여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고 그보다 큰일을 하는 교회! 그런 교회가 건강하고 좋은 교회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자들을 예수님의 신부로 단장시키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초점이 바른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1) 주님 자신을 증거하고 늘 주님께로만 인도하는 교회,
2) 오직 주님을 목적으로 추구하게 만드는 교회! 그래서
3) 주님과 점점 더 친밀해지고 주님을 더 알아가고 주님의 임재로 충만한 교회!
이런 교회가 가장 좋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교회 중에 이 세 가지를 다 갖춘 교회가 큰믿음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교회 선택을 잘 하신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등록할 교회를 찾지 못한 분들이 있으시면 주저하지 말고 큰믿음교회에 등록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평생 여러분이 한 선택 중 예수님을 영접한 것 다음으로 가장 탁월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4. 내세도 끼리끼리
레 19:19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하나님께서 왜 이런 명령을 내리셨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이미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만물을 그 종류대로 개성있게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거룩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섞인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구별된 것을 좋아하십니다. ‘거룩’은 구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기 때문에 이런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것은 같은 장 1-2절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바로 이 대전제 아래 본문 뿐 아니라 율법의 모든 조항과 계명들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대로 거룩해지라고 이런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도 즉 구별된 자답게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 구절을 통해 실제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세상 사람들과 구별하십니다.
고후 6:14-7:1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이처럼 우리가 세상 사람과 구별될 때 하나님도 우리를 구별하십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과 다르게 대하십니다. 그런 일은 죽은 후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부터 일어납니다. 고센 땅이 그 증거입니다. 세계 최강국 애굽에 10가지 혹독한 재앙들이 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거하던 고센 땅에는 재앙들이 비껴갔습니다. 이것은 단지 지나간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닙니다. 언제나 있어왔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호소하고 계신 것입니다.
계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물론 이런 구별은 우리가 죽은 후에 비로소 완전해질 것입니다.
계 7:15-17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계 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때가 되면 시편 1편에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5)라고 기록되어 있는 대로 악인과 의인은 완벽하게 구별되어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구렁(구렁텅이)이 끼어 있어 영원히 서로 왕래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을 때 속히 회개하고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모셔 들여서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한편, 하나님의 구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더 구체적이고 완벽하게 이루어집니다. 그것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간증이 있는데 메리에타 데이비스의 “천국에서 보낸 9일”이라는 책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간증입니다.
“천상의 멜로디
‘매리에타, 한 번 들어보렴!’
그가 내 관자놀이를 누르자 깊은 침묵 속에서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천사의 호흡 같기도 하고, 영혼 내부의 더할 수 없이 거룩한 생명체 같기도 했다.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음악이 몸 전체를 타고 서서히 움직였다. 그토록 거룩한 음악에 반응하는 것들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런 화음을 경험할 수 있도록 내 모습 전체가 변한 게 분명했다. 나는 음악과 완전히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음악이 계속해서 흐르자 그것이 내 안에 흐르도록 내버려둘 게 아니라 아예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의지가 소리와 뒤섞였다. 그러자 즉시 불협화음이 터져 나오면서 죄에 물든 본성이 강력한 힘으로 나를 압도했다. 음표 하나하나가 계속해서 파고들었지만, 내 안에서 흐르는 음악과 더 이상 하나가 되지 못했다. 내가 그것에 섞이려고 할 때마다 끔찍한 불협화음이 났다. 서너 차례 이런 식으로 끝나자 듣는 게 쉽지 않았다. 나의 본성이 그것과 섞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에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내 몸 도처에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둥근 지붕 전체를 울리는 화음의 물결이 나의 변질된 마음에 도달하자 격한 바닷소리에 파묻혔다. 달아나고 싶었다. 여기만 아니라면 다른 어떤 곳도 괜찮았다. 거짓으로 예배하는 지옥과 같은 곳이 내 본성에는 더 적합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완벽하게 방향감각을 상실했다. 순간순간이 영원 같았고, 그러다 보니 내 상태는 더욱더 악화되었다.
결국 나는 절망 속에서 부르짖었다.
‘이곳을 벗어나게 해주세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가늠하려고 노력했다. 거룩한 음악을 처음 들을 때는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것에 다가서려고 하자 불협화음이 만들어지고 거룩하지 않은 본성이 모두의 눈에 완벽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천사들과 어울릴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나는 구속 이후에 길을 잃었고, 내 영혼은 무너져내렸다. 영혼은 조금도 그 장소와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고통스러워서 소리쳤다.
‘이곳을 벗어나게 해주세요! 암흑 속에서 영원히 숨게 해주세요! 나를 숨겨주세요! 이 빛을 피하게 해주세요! 내 죄악을 감출 수 없어요! 달리 더 깊숙한 지옥이 있나요? 그곳으로 보내주세요. 길을 잃어서 악마가 조롱해도 상관없어요. 이곳과 어울리지 않아서 끝날 것이라면 내 영혼은 적어도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나는 빛과 조화와 평강이 충만한 세계를 벗어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낙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나는 정말 그곳에서 지내고 싶었지만,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조금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내가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때 천국을 바라보면서 그곳으로 가서 구원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다. 조화롭고 사랑이 넘치는 천국 때문에 그렇게 고통을 겪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의 진정한 모습이 말로 다할 수 없는 지옥처럼 재앙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도움을 구하는 사이에 이 모든 것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나는 내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길을 잃었고, 더 큰 슬픔이 기다리고 있다고 확신했다.
한참 뒤에 천사가 입을 열었다.
‘매리에타, 너는 길을 잃지 않았단다. 네 죄가 드러나고, 네 영혼의 진짜 모습이 밝혀져서 고통을 겪는 것은 맞지만, 어쩌면 이제 선하신 하나님이 주 예수님을 통해서 어떻게 구속을 예비하고 변화를 겪게 하시는지 알게 될 거야. 처음에 이곳에 도착했을 때 너는 스스로의 모습을 전혀 알지 못했지. 그냥 손님으로서 거룩하다고 인정받아서 보호받고 들어올 수 있었단다. 하지만 이곳이 너무 거룩해서 너의 내적인 삶이 밝혀지고 죄가 드러난 거야. 네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란다.
이제는 어째서 하나님이 비슷한 영혼들을 같은 장소에 배치하시는지, 선하고 악한 영혼들을 분리해두시는지 깨달았을 거야. 악한 자가 맛보는 재앙은 늘어나지 않고 선한 자가 누리는 행복은 줄어들지 않는단다. 사도 요한이 가증한 일을 하는 자가 거룩한 도시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지. 거룩하지 않은 영혼은 이 거룩한 성전과 도시에 결코 들어올 수 없단다. 마찬가지로 이 거룩한 곳의 거주자들은 하나님과 화해하지 않은 영혼들과 함께 어둠의 장소에서 지낼 수 없단다.’”
이 간증에서 매리에타 데이비스가 천국의 음악을 들으며 괴로워한 것은 그가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천국과 지옥 뿐 아니라 천국의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갔을 때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 정도의 고통은 아니더라도 불안감이나 편안하지 않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천사의 말대로 하나님은 천국에서 “비슷한 영혼들을 같은 장소에 배치”하여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왜 거룩이, 그리고 주님을 닮는 것이 중요한지 아시겠습니까?
내세에서는 업적이 아니라 존재가 중요합니다. 어떤 존재인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 세상은 잠깐이고 내세는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취가 아니라 자신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천국에서 누가 여러분의 이웃이 되길 원하십니까? 옆집의 초인종을 누르면 누가 나오기를 원하십니까? 아브라함입니까? 그러면 아브라함을 닮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입니까? 엘리야입니까? 다윗입니까? 다니엘입니까? 세례요한입니까? 바울입니까? 성프랜시스입니까? 마찬가지입니다. 그분들과 닮아 동류의 사람들이 되면 됩니다. 그러면 그분들의 옆집에 살게 될 것입니다. 릭 조이너의 간증에 나오듯이 예수님 보좌 가까이 있는 보좌에는 예수님을 가장 닮은 사람들이 앉게 됩니다. 주님을 닮으면 닮을수록 주님 가까이에서 살게 되고 주님을 가장 닮지 않은 사람은 보좌로부터 그만큼 더 먼 곳에 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도 그저 좋은 사람이 아니라 더 좋은 사람과 있을수록 더 행복하듯이 천국에서도 주님을 더 닮은 그룹과 있으면 있을수록 거기에 비례해서 행복이 더 깊어지고 커집니다. 천국에서의 영광과 행복은 주님을 얼마나 닮았느냐에 정비례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듯이 영광도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에서는 계급장이 아니라 존재가 곧 계급입니다. 그리고 천국은 황금률이 영원히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와 가장 닮은 사람이 자기의 이웃이 되어 영원히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주님을 닮는 일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그 일에 정진해야 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의 자연, 사람, 교회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모두 끼리끼리 어울리며 살아갑니다. 자기와 가장 닮은 사람이 영원히 자기의 이웃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성품을 닮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닮을 수 있을까요?
(1) 회개하고 죄를 끊어버려야 합니다.
죄는 짐승의 형상이며 심지어 마귀의 형상입니다. 그런 형상을 가진 자는 모두 지옥에 던져집니다. 그래서 자기와 비슷한 형상을 가진 마귀와 그리고 악인들과 영원히 지옥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회개하고 죄를 끊어버려야 합니다.
(2) 올바른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성공을 위해 살지 마십시오. 사역을 위해 살지도 마십시오. 예수님을 닮기 위해 사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 목적이고 우리를 선택한 목적입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3)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말씀이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는 씨앗이고 자라게 하는 양식입니다.
엡 6:26-27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일을 하는 것이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잘 듣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4) 기도로 예수님과 늘 교제하며 살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 27:17)고 했습니다. 교제는 사람을 좋게 변화시키기도 하고 나쁘게 물들게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과의 교제는 언제나 우리를 좋게 변화시킵니다. 주님을 닮게 만듭니다. 주님과 교제할 때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라는 말씀이 실제로 우리에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늘 기도에 힘쓰고 주님과 시간을 보내며 주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 4가지 일에 힘쓰십시오. 그러면 점진적으로 주님의 형상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천국에 갔을 때 주님을 빼닮은 사람들이 우리의 친구와 이웃이 되게 될 것이며 영원히 그들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출처] 2012년 1월 1일 (주일설교전문) "천국에서의 나의 이웃" 변승우 목사님|작성자 부동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