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강의(經史講義) 9 ○ 논어(論語) 2 계묘년(1783)에 이현도(李顯道), 정만시(鄭萬始), 조제로(趙濟魯), 이면긍(李勉兢), 김계락(金啓洛), 김희조(金煕朝), 이곤수(李崑秀), 윤행임(尹行恁), 성종인(成種仁), 이청(李晴), 이익진(李翼晉), 서형수(徐瀅修), 심진현(沈晉賢), 신복(申馥), 이유수(李儒修), 강세륜(姜世綸) 등의 대답을 뽑았다
위정(爲政)
삼백편(三百篇)을 사무사(思無邪)라고 한 것은, 시(詩)를 논하는 사람들의 의안(疑案)이 된 지가 오래이다. 정(鄭) 나라와 위(衛) 나라의 음악을, 여러 학자들은 ‘시인이 음란함을 풍자한 것’임을 주장하고, 주자는 ‘음란한 자들이 스스로 지은 것’임을 주장하였다. 학자들의 말은, “성인이 음악을 바로잡으면서 먼저 정(鄭) 나라의 음악을 내쳤으니, 어찌 시를 정리하는 마당에 도리어 음란한 내용을 취하였겠는가. 상중(桑中)과 같은 시는 악(惡)을 풍자한 것이 환히 드러나 있으니, 이른바 사무사라는 것이다.”라는 것이고, 주자의 말은, “성인이 그 성(聲)을 악(樂)에서 단호히 끊어 법(法)을 삼았고, 그 사(辭)를 시(詩)에서 엄하게 세워 경계를 삼았다. 만약 상중(桑中) 같은 시들을 음란함을 풍자한 내용이라고 한다면, 남들의 비밀스럽고 치우친 것을 들추어서 충후(忠厚)함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음분(淫奔)한 자들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여기고서 우리가 무사(無邪)한 마음으로 그 시를 본다면 그 징계(懲戒)가 더욱 절실하다.”라는 것이다.
두 학설이 참으로 모두 근거가 있는데, 다만 시어가 이미 무사(無邪)하지 않다면 시를 읽는 사람이 무사(無邪)한 생각으로 시를 보고자 해도 어렵지 않겠는가? 그리고 일반 사람들의 마음은, 반드시 풍자 비판하고 애타게 탄식하는 말이 있은 뒤라야 비로소 움찔 마음이 감동하여 징계하는 바를 알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음란한 자가 스스로 지은 시이고 또한 성인이 취한 것이라면, 징계와 거리가 멀어짐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의 사악한 생각을 끄집어 들추어서 도리어 그 악행을 부추기게 되지 않을 줄을 어찌 알겠는가.
[신복(申馥)이 대답하였다.]
옛말에도, 선(善)과 악(惡)이 모두 나의 스승이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나의 불선(不善)은 내 몸에만 있는 것이어서 알기가 어렵고 남의 불선은 사람들에게 공개된 것이어서 깨닫기가 쉽습니다. 시(詩)에 담긴 생각이야 비록 무사(無邪)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시를 읽을 때에야 어찌 반드시 사악한 생각으로 읽겠습니까.
이 장의 공부는 반드시 10년에 한 칸을 진취하는데, 십오지학(十五志學)과 삼십이립(三十而立) 사이만 유독 15년이나 오래 걸리는 것은 어째서인가? 어쩌면 불혹(不惑), 지명(知命), 이순(耳順), 불유구(不踰矩)와 어렵고 쉬운 구별이 있는 것인가?
[이익진(李翼晉)이 대답하였다.]
십오지학과 삼십이립은 지(知)와 행(行)의 시작입니다. 그 때문에 공효(功效)가 순서대로 점차 진취되어 나가는 아래 구절과는 빠르기가 같지 않습니다.
이 장은, 정자(程子)는 ‘힘써 후인을 권면하여 진취시킨 것[勉進後人]’이라고 주장하였고, 주자는 ‘홀로 그 진취됨을 깨달은 것[獨覺其進]’이라고 주장하였다. 만약 정자의 학설과 같다면, 성인은 학문을 하는 차례를 범범하게 말하여 후인들로 하여금 분발하여 이르러야 할 바를 알게 하면 되는 것이지, 어찌 굳이 스스로 진덕(進德)의 순서를 말한 것이 이토록 자세하단 말인가. 또한 주자의 말과 같다면, 부자는 생지(生知)의 성인이니, 생각하지 않고도 아는 것[不思而得]을 어찌 반드시 예순을 기다렸겠으며 애쓰지 않아도 중도에 맞는 것[不勉而中]을 어찌 반드시 일흔을 기다렸겠는가.
[서형수가 대답하였다.]
이 장의 정자와 주자의 두 학설은 본디 모두 이러한 뜻이 있습니다. 비록 생지(生知)의 성인이라 하더라도 그 진덕(進德)을 할 때에 필시 여기에 이르러 스스로 확신하는 효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의 자세함이 이러한 것입니다. 선유(先儒)가 이른바 “그 학문은 사람들의 학문과는 다르고 그 입지(立志)는 사람들의 입지와는 다르다.”고 한 말이 참으로 맞는 말이며, 단지 겸사(謙辭)를 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될 듯합니다.
무백(武伯)의 물음은 아들이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인데, 부자의 대답은 부모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대답한 것이 물은 것이 아님은 어째서인가? 물음에 대한 성인의 대답은 각기 그 묻는 사람의 높낮이를 따라서 하므로 가르침이 각기 같지 않다. 무백 같은 보통 사람으로서도 유추하여 두루 다 깨달을 수 있으리라고 여기신 것인가?
[김계락(金啓洛)이 대답하였다.]
이것은 ‘교언영색(巧言令色)이 인(仁)이 아님을 알면 인(仁)을 안다’는 것과 서로 비슷합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알면 응당 아들이 어버이 섬기는 도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어찌 유추하여 두루 깨닫기를 기다릴 것까지 있겠습니까.
자장(子張)은 성인(聖人) 문하(門下)의 고제(高弟)인데도, 또한 ‘녹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함[學干祿]’을 면하지 못한 것은 어째서인가? 여기서 “녹을 구하는 방법을 여쭈었다.[問干祿之道]”라고 하지 않고 “녹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하였다.[學干祿]”라고 하였고 보면, 자장이 부자께 질문한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대개 자장이 일상생활에서 오로지 많이 듣고 많이 보기를 힘쓴 것이 바로 녹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려는 뜻이었기 때문에 부자가 이렇게 말해 준 것이다. 《집주》의 정자의 학설 가운데 “안연(顔淵)이나 민자건(閔子騫)이었으면 이런 물음이 없었을 것이다.”라고 한 한 구절은 문제가 없을 수 있겠는가?
[조제로(趙濟魯)가 대답하였다.]
자장이 녹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한 것은 세속 사람들이 영리만을 위해 구차하게 애쓰는 것과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겉치레에 힘쓰고 이름을 내려고만 하고 자신의 몸에 절실한 실제의 공부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비록 이것을 질문하지는 않았지만 부자가 대개 자장의 말과 행동, 일을 하는 것에서 그것을 이미 알고는 그 허물을 바로잡아 준 것입니다. 정자 학설의 ‘이런 물음이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성상의 말씀과 같습니다.
‘정사에 베푼다[施於有政]’는 군진(君陳)의 본문(本文)에는 일국(一國)의 정사[政]를 가리켰고 이 장의 《집주》에는 일가(一家)의 정사를 가리켰는데, 대개 ‘이 또한 정사를 하는 것이다[是亦爲政]’로는 미루어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혹인은 말하기를, “이 또한 정사를 하는 것이다[是亦爲政]의 시(是)는 단지 효우(孝友)의 구절에 소속시켜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 뜻은 “정치라는 것이 특별한 일이 있는 게 아니라 효우를 미루어 나가는 것이 바로 정치에 베푸는 것이니, 효우하는 것이 또한 정치하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이 학설이 어찌 따를 만하지 않겠는가.
[이청이 대답하였다.]
혹인이 이미 “어찌 정사를 하지 않느냐?[奚不爲政]”라고 물었으니, ‘정사에 베푼다[施於有政]’를 반드시 일가(一家)의 정사에 소속시킨 뒤라야 유정(有政)의 정(政)이 해불위정(奚不爲政)의 정(政)에 딱 맞아서, 묻고 답함이 서로 호응하여 더욱 글맛이 있는 것입니다.
자장(子張)이 “열 왕조 뒤의 일을 알 수 있습니까?[十世可知]”라고 여쭈었는데 부자는 삼대(三代)의 인(因)한 바와 손익(損益)한 바로써 대답하였다. 그러나 인(因)이란 것은 예전 그대로 이어받아 바탕 삼음이고 가지(可知)라는 두 글자는 모두 손익(損益)한 바에 소속되는 것이고 보면, 성인의 뜻은 대개 백 왕조 뒤의 손익할 바를 미리 알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진(秦) 나라, 한(漢) 나라 이후로 문질(文質)은 반드시 세(世)마다 손익한 것은 아니고 삼통(三統)은 오로지 하정(夏正)을 인습하여, 백 왕조 뒤의 일도 알 수 있다고 한 말씀과 서로 합치되지 않는 듯하니, 어째서인가?
[김희조가 대답하였다.]
성인(聖人)이 미래를 아는 것은 이치로 아는 것이지 술수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자장이 질문한 뜻은 술수이고 성인이 대답한 말은 이치입니다. 가지(可知)라는 두 글자는 비록 손익(損益)에 소속되는 것이지만, 대개 또한 인(因)한 바를 인하여 미루어 아는 것이니, 진(秦) 나라와 한(漢) 나라 이후가 참으로 반드시 삼대(三代)와 한결같이 같은 것은 아니지만 요체를 따져 보면 삼정(三正)과 삼통(三統)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백 왕조 이후라도 알 수 있다.[百世可知]”고 말할 수 없겠습니까?
위는 위정편(爲政篇)이다.
[爲政]
三百篇之思無邪。爲說詩家疑案久矣。鄭衛之音。諸儒則主詩人刺淫。朱子則主淫者自作。諸儒之言曰。聖人正樂。首放鄭聲。豈刪詩而反取淫詞。如桑中之詩。刺惡昭彰。所謂思無邪也。朱子之言曰。聖人深絶其聲於樂以爲法。而嚴立其辭於詩以爲戒。若謂桑中諸篇。爲刺淫之辭。則發人隱僻。有傷忠厚。謂出自
淫奔者之口。而我以無邪之思觀之。其懲戒尤切。兩說固皆有據。而但詩之言。旣不能無邪。則讀詩者之欲以無邪之思觀之。不亦難乎。且凡人之情。必其有譏刺嗟傷之言。然後始可以怵然動心。知所懲創。如使淫者之自作。亦爲聖人之所取。則懲創。尙矣勿論。安知不挑發人之邪思。而反有以勸其惡歟。
馥對古語云。善惡皆我師。蓋我之不善。私諸己而難知。他之不善。公諸人而易曉。詩思雖不能無邪。而我所以讀之者。豈必以邪思耶。
此章工夫。必十年一進。而十五志學。與三十而立。獨
至十五年之久。何也。豈與不惑知命耳順不踰矩。有難易之別耶。
翼晉對。十五志學與三十而立。爲知行之始。所以與下節功效之循序漸進者。遲速不同。
此章。程子。主勉進後人。朱子主獨覺其進。若如程說。則聖人。泛言爲學之次第。使後人。知所企及。可也。何必自言進德之序。若是其丁寧耶。又如朱說則夫子以生知之聖。不思而得。何必待六十。不勉而中。何必待七十耶。
瀅修對。此章程朱兩說。固皆有此意。而雖生知之
聖。其於進德之際。必有至此自信之效驗。故其言之丁寧如此。先儒所謂其學也異乎人之學。其立也異乎人之立者。儘得正義。而恐不可但作謙辭看也。
武伯所問者。人子事親之道。而夫子所答者。父母愛子之心。所答非所問。何哉。聖人答問。各因其人之高下。誨各不同。曾謂武伯之凡庸。而爲能推類以旁通哉。
啓洛對。此與知巧言令色之非仁。則知仁相似。知父母愛子之心。則當知人子事親之道。何待推類
以旁通乎。
子張聖門高弟。而亦不免學干祿。何也。此不曰問干祿之道。而曰學干祿云爾。則非子張之請問於夫子可知。蓋子張之於日用動靜之間。專務多聞而多見者。卽學干祿之意。故夫子告之以此。集註程說中。顔閔無此問一句。得無如何耶。
濟魯對。子張之學干祿。非如世俗之營營苟苟。惟是騖外求名。而不反於切己之實工。故雖未嘗以此請問。夫子蓋已得之於言行事爲之間。而救其失。程說無此問一句之如何。誠如聖敎矣。
施於有政。君陳本文。則指一國之政。而此章集註。則指一家之政。蓋以是亦爲政。推說不去也。然或云是亦爲政之是。只當屬於孝友之句。其意若曰政不是別有事。在孝友之推。卽所以施於政。則惟孝友于。是亦爲政云爾。此說豈不可從耶。
晴對。或人旣以奚不爲政爲問。則施於有政。必屬於一家之政。然後有政之政。破奚不爲政之政。而問答相應。益覺有味矣。
子張問十世可知。而夫子以三代之所因損益。答之。然因者自因。而可知二字。皆屬於所損益。則聖人之
意。蓋以百世之所損益。爲可前知也。然秦漢以降。文質則未必每世損益。三統則專以夏正因襲。與夫百世可知之訓。若不相合。何也。
煕朝對。聖人之知來。以理而不以數。子張所問之意。數也。聖人所答之言。理也。可知二字。雖屬損益。而蓋亦因所因。而推以知之。則秦漢以後。固未必一如三代。要之不離於三正三統之中。此不可謂百世可知乎。以上爲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