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리 반송을 보려고 대전에서 2시10분에 출발하였다.
와서보니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왜 마을 이름이 소우리 인지 궁금했다.
소우리 반송 주변은 그래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천연기념물인 양령리 향나무 보다 더 잘 관리가 되고 있어서 약간은 의아했다.
소나무 수령으로는 300년이면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자태 등이 아름다워 보호되고 있는 듯 하다.
소우리 소나무 바로 주변에는 묘가 조성되어 있고, 주변에 반송 등 좋은 나무들이 많이 식재되어 있었다.
반송의 민둥 부분인데 정말 힘이 넘친다. 용이 실제 살아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반송 옆 잔디공원에서 본 나무 전체모습/ 옆에 빨간 지붕집은 좋은 곳에 자리 잡은것 같다.
반송의 7가지를 모두 찍으려고 노력했다. 정말 아름답고 웅장한 반송이다.
<소우리 마을 유래>
우리 마을은 고려 태조가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땅'이라고 하여 고을 이름을 붙인 '천안부'와 '성인'이 살고 있는 산이라고
칭한 '성거산' 지명에서 비롯된 천안시 성거읍 소우리로서 명우리 마을이다.
소우리에 처음 사람이 거주한 시기는 조선시대 세종 25년경인 약 600년전으로 입향조는 언양 김씨로 보고 있으며
그 뒤를 이어 연안 김씨가 16대 뿌터 36대 까지 세거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자연마을은 '바조리'와 '명우리'이며 '바조리'는 솥뚜껑을 의미하는 '소댕이'라고도 부르는데
마을 지형이 솥단지와 같이 생겨 '끼니 걱정을 안하는 곳'이라고 하며, 한때 솥 만드는 곳이 있어서
솥모양인 바조리라고 부른것이 마을 명칭이 되었다고 한다.
명우리는 마을 지형이 와우형으로서 소가 새끼를 품은 형국이므로 의식걱정을 안한다는 마을이다.
이와같이 소우리는 예로부터 의식걱정이 없는 양반마을로 불려왔다.
바조리 마을의 중심부엔 예전에 서당이 있어서 학문적인 기풍이 충만한 곳이었으며
바조리와 명우리에서 각각 향교의 전교가 배출되어 '전교마을'로도 불리고 있다.
마을이 길지에 형성되어 풍수해 등 피해가 없었으며 교통의 요충지로서 신문화가 유입되고
수도작 등 전통농업이 발달하였으나, 신고배 마을로서도 명성이 높은 지역이다.
인구증가로 인하여 바조리는 1리, 명우리는 2리로 분구되었다.
*개인생각 : 바조리, 명우리의 통칭이 소우리 인것은 한자 바 소( )자에 소 우( )자로
소에서 마을 명칭을 따온 듯 한다.
소우리는 마라톤 영웅 이봉주가 태어난 동네라고 한다.
마을이 좀 더 잘 가꾸어지고 많이 홍보되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마을 길은 차량 한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