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가만히 누워 자연이 내는 소리를 들어 보라. 아마 소나기 술에 인사불성된
사람처럼 정신을 잃게 될지 모른다. 그리곤 감았던 눈을 떠보자. 세상을 향해 뚫어진
하늘의 바늘구멍들이 무수히 어둔 밤을 수놓고 있다. 무수히 떨어지는 별똥별과 하늘의
은하수들이 마음의 벽을 허물어 버린다.
이 때문일까? 가스통 레뷔파는 ‘산 속에서 보내는 하룻밤, 이것은 등반가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라며 야영의 즐거움을 예찬했다.
또 그는 ‘비박은 산의 신비와 밤의 어둠, 하늘의 무한한 깊이를 이해하게 된다’며 비박을 예찬했다.
사실 야외생활은 야영을 통해 자연을 깨닫고 인식하는 과정이다. 이는 야영을 하는 시간이 하루의 일정을 되짚어보는 시간이며 야외생활의 낭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격을 형성해가는 청소년기엔 야영을 통해 자연 친화의 방법을 배울 수 있으며 직장과 삶에 찌든 어른들에겐 야영은 한적한 휴식을 통해 삶에 여유를 가져다준다.
코오롱등산학교 교장인 이용대씨는 “야영은 산행의 모든 것이 종합되는 활동으로 등산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고 한 뒤 “야영 생활은 자연과 친숙해지는 필수적인 활동”이라고 강조했다. 야영은 콘크리트와 기계화로 물든 사람들에게 자연을 느끼고 메마른 심성을 풀어줄 수 있는 시간이란 것이다.
77년 에베레스트에 고상돈씨를 올렸던 김영도씨는 “문명화된 사람이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이 야영이며 선조들의 전통적 사상인 물아일체와도 일맥상통하는 요소를 지녔다”고 했다. 김영도씨는 또 야영이 지닌 장점을 “문명화의 그늘을 벗어난 인간이 본연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산행과 야영으로 문제학생을 선도
야영의 중요성에 대한 예는 의정부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전완근씨에게서 알 수 있다. 전 교사는 학교에서 문제아로 불리던 아이들을 산행과 야영생활을 통해 변모시킨 경우다. 그는 학교에 산악부를 세우고 아이들과 함께 산행을 함께 하며 자연을 통해 배우고 자신감과 인내를 가르쳐 줌으로써 모두 훌륭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이는 충주 가금분교에서 교사로 활동 중인 김영식씨의 경우도 동일한 경우다. 시골 분교에 임명된 그는 40명도 안 되는 학교에 산악부를 세우고 학생들을 모집했다. 시골, 특히 분교란 초라함과 도시민에 대한 위화감 속에 기죽어 있던 아이들은 등반과 야영생활을 통해 자연과 협동심을 배우게 됐다. 자연을 호흡하며 자신감을 얻은 아이들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내년 1월엔 졸업생들과 함께 네팔지역으로 등반을 떠날 계획이다.
사실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북한산 일대에선 썩은 나무를 이용, 모닥불을 피우고 그 주위에 둘러앉아 산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곤 했다. 하지만 1990년 11월, 국립공원관리공단(당시 내무부 소속)과 산림청이 국립공원 3개소, 군립공원 7개소, 관광유원지 34개소에 대해 일체의 취사와 야영을 금지시킨 후 매년 점점 그 범위가 넓어져 최근엔 전국의 국립공원과 군립공원에선 일체의 야영이 불가능하다. 취사야영 금지 조치가 실시된 후 야영은 산악인과는 점점 거리가 먼 문화가 되고 말았다.
특히 공단 내 지정 구역과 산장 인근에 허용되던 야영 허가 조치도 1994년 들어 금지되면서 야영의 문화는 아예 사라져 버렸다. 결국 사람들은 획일화의 틀에 맞춰져 산장 안에 갇힌 새로 전락하게 됐으며, 등산도 산장을 이용한 산행과 당일 산행이란 형태로 변하고 말았다.
유럽에선 청소년들의 가장 좋은 인성교육으로 야영을 권장하고 있다. 이는 야영을 통해 청소년들은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고 또 자연과 친해지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야영을 통해 자연과 친숙해졌던 아이들은 생태 보존의 중요성과 합리적인 자연 친화 방법을 깨닫게 될 것이다.
호주의 한 아동학자는 가정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추억을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즉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공통된 추억을 통해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대화의 시간을 갖게 돼 화해의 분위기로 전환할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취사야영 생활은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갖게 해주고 함께 준비하고 해결함으로써 대립을 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야영은 청소년의 성장기와 가족의 행복에 중요하다는 말이다.
효율적 관리로 취사야영문화 유도 필요
하지만 국내는 전국의 국립공원 내에선 어떠한 취사야영 행위도 금지된 상태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북한산의 경우, 21야영장에서의 야영만이 허용된 상태다. 이도 산악단체에 가입된 경우에 한하며 공단에 야영허가서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단체가입이 안 된 개인이나 산악회는 불가능하다.
이외 각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야영장이 있긴 하지만 상가지역이나 국립공원 핵심지역과는 동떨어져 있는 곳이 많다. 설악산의 경우, 장수대 야영장처럼 한적한 곳이 있는 반면 차량이 통행이 빈번한 C지구에 자리잡은 설악동 야영장은 교통사고의 위험이 높으며 설악산과는 동떨어진 곳이라 산행을 하려면 자가용이나 버스를 이용해 매표소까지 접근해야 한다.
또한 계룡산이나 오대산의 경우처럼 상가가 인접한 곳에 위치해 노랫소리와 행락객들의 소란으로 한적한 취사 야영 생활을 즐기기엔 거리가 너무 멀다. 이는 공단이 관리하는 야영장이 형식상인 경우가 많아 이용객들은 현실적으로 이용 가능한 장소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한적함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야영방법은 없는 것일까?
좁은 땅덩어리지만 취사 야영을 하며 가족의 행복과 추억을 만들 곳은 많다. 취사야영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겐 이용객을 위한 편의 시설이 마련된 방태산 자연휴양림과 같은 전국의 자연휴양림이 적당하다. 산자락 안에 자리잡은 자연휴양림은 야영객들을 위해 야영 테크, 취사 탁자, 취사장 등이 갖춰져 있으며 숲이 지닌 한적함을 느낄 수 있다. 또 개인이 운영하는 휴양림도 적당한 곳이나 사설운영이니 만큼 요금이 조금 비싼 편이지만 샤워장과 테크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
또한 폐교를 이용해 만든 청소년 수련원도 가족이나 연인이 취사야영 생활을 즐기기엔 손색이 없는 곳이다. 오토 캠핑이나 야영생활이 조금 능숙한 편이라면 강화의 함허동천, 모곡의 명사십리 등과 같이 전국의 명소나 유원지에 마련된 야영장을 이용하면 좋다.
자연휴양림이나 청소년 수련원, 사설 야영장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취사와 야영문화가 자리잡기 위해선 무조건적인 당국의 금지조치가 해제돼야 할 것이다. 특히 주 5일제 근무가 적용된다면 취사야영의 욕구를 느끼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갈 것이다. 이젠 규제와 금지로 막기보다는 성숙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관리와 통제를 통해 취사야영문화를 선도해야 할 시대인 것이다.
첫댓글 이 겨울에 큰맘먹고 가까운 근교 자연휴양림 야영장을 함 찾아볼까하는 맘이 마구마구 일어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