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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북한 방문 및 금강산 등정기
* 왜 방문기인가?
지금 시각은 2002년 6월 6일 오전 11시 5분이며, 이 글을 쓰는 장소는 경남대학교 내 연구실이다. 휴일인 현충일에까지 학교에 나와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조금 전 금강산에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잊기 전에 기행문을 쓰려고 무리를 좀 했다.
지금부터 정확하게 6 시간 전인 오늘 새벽 5시 5분, 금강산 관광을 무사히 마치고 귀가하여 집 현관문을 열었으며, 바로 4 시간을 잔 후 9시에 기상하여 아침 식사를 하며 TV로 현충일 기념행사를 보다가 집을 나섰다. 계단을 오르는데 다리가 뻐근하며 통증이 온다. 느낌에 배도 좀 들어가고, 체중도 준 것 같다. 솔직히 말해 나는 ‘과체중’을 넘어 ‘비만’ 수준이며, 그래서 이번 금강산 등정도 미리부터 적잖이 걱정을 했었다. 혹시 못 올라가면 어쩌나, 뒤쳐져서 일행에게 폐가 되면 어쩌나 등등. 그래서 먼저 갔다온 동료 교수들에게 금강산 등정이 얼마나 힘들더냐, 지칠 경우 어디까지만 올라가는 것이 좋겠는가, 우리가 갈 만물상 코스의 두 정상인 천선대와 망양대 중 하나만 선택한다면 어디가 나으냐 등을 묻기도 하고, 나름대로는 금강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읽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람마다 말이 다르고 책들은 대개 코스 소개에 그쳐 정작 내가 궁금해하는 바에 대해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선행자의 대답 중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또한 나에게 희망과 동시에 부러움을 갖게 했던 것은 김 모 교수의 “금강산이 별로 운동은 안 되더라”라는 것이었다.
금강산에 관한 글이나 책을 보면서 한 가지 희한하게 생각한 것은 다른 산을 소개할 때는 대개 ‘관광’이나 ‘등산’ 등의 말을 사용하는데 비해, 유독 금강산의 경우에만 ‘탐승’이란 말을 쓰더라는 것이다. 내가 본 금강산 기행문이나 관광안내책자들은 대부분 그랬다. 금강산에 버금가는 설악산만 해도 ‘설악산 탐승’이란 말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처음 들어본 낱말인 ‘탐승’의 뜻이 무엇인가 사전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탐승(探勝)이란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님’이란다. 그렇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좀 더 알아보니 그 말은 북한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이란다. 북한에서는 ‘관광’이란 말은 거의 쓰지 않고 대신 ‘탐승’, ‘휴식’, ‘정양(靜養)’이란 말을 많이 쓴단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금강산 탐승’이란 말을 사용한 남쪽 사람들은 대부분 뜻도 제대로 모르는 그 새로운 단어를 어찌 된 사연인지도 모르면서 북한 어법을 그대로 복창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나는 이번 글의 제목에는 ‘탐승’이란 단어를 쓰지 않기로 하겠다. 원래 남들이 모두 하는 것은 잘 하지 않으려는 내 못된 성격 탓이기도 하고, 또한 이번 여행에서는 금강산 등반보다도 북한의 실상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던 것이 더 중요했으므로(애초 의도는 그 반대였으나 결과는 그리 되었다.), 이 글은 기존의 ‘금강산 탐승기’들처럼 금강산의 절경을 묘사하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직접 북한 땅에 들어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금강산에 오르는 과정과 그 곳 주민들의 삶을 보고 느낀 소감을 기록하는 데 의미를 두기 때문이기도 하다. 혹 나처럼 몸이 비만하거나 건강이 안 좋아 금강산 등정을 앞두고 걱정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뜻밖의 소득이리라.
그러고 보니 내가 어떻게 해서 이번 여행을 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지 않았다. 약 2 달 전쯤 경남대학교의 학생선발본부장인 최효일 교수가 직접 전화를 하여, 그 동안 신입생 유치를 위한 고교생 대상 학교소개 행사에서 여러 번 특강을 하느라고 수고했으니 다른 것은 몰라도 여행이나 한번 다녀오는 기회를 주겠다고 해서 즉석에서 “고맙습니다. 물론 가겠습니다”라고 했던 것이다. 이번 여행도 신입생 유치가 1 차적 목적으로 인근 고등학교 선생님 53 분이 초청되었으며, 대학 측에서는 나를 비롯하여 고희석 부총장, 하경재 정산정보원장, 학생선발본부의 김종전, 조성수 선생 등 5 명이 합류하였다. 그리하여 총 58 명의 여행단이 구성되었던 것이다.
* 출발 전
먼저 출발 전에 있었던 일들을 간단히 적는다. 출발 7 시간 전인 6월 2일(일) 저녁 7시에 같은 과 교수 두 분이 떠나기 전에 저녁이나 함께 하자고 전화를 하여 7시 30분부터 동네 음식점에서 쇠고기 등심을 구워 소주를 한 잔 했다. 소주를 선택한 것은 고기 안주에 어울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잠시 후의 장시간 버스 여행에 대비해 (맥주에 비해) 용량이 적은 것을 마시려는 현명한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마시다보니 그만 흥이 올라 금강산이고 뭐고 일단 더 마시고 보자는 객기가 발동해 동료들을 충동질 해 결국 2 차를 가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날카로운 판단력이 살아있어 늘 2 차에서 마시던 맥주가 아니라 양주를 마셨다. 내가 한잔 한잔 더 하며 취흥이 도도해 가는 중에 동료 교수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김 선생, 내일 새벽 여행을 위해 이제 일어나는 것이 좋겠다”며 등을 떠민다. 만인의 뜻이 그러하니 아쉬운 대로 술자리를 일찍 작파하고 귀가하게 되었다. 그 때 시간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걱정을 하면서도 여행 배낭을 미리 챙겨놓았다. 카메라는 어쩔 거냐고 물어서 내가 언제 사진 찍더냐며 그만 두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배낭은 속옷과 양말 몇 개가 전부로 아주 단출해졌다. 그 후 계속 TV를 보다가 출발 1 시간 전에서야 간단히 샤워를 하고 술 냄새를 가시게 하려고 양치질을 하였다.
1시 30분에 집을 나서 택시를 타고 약속 15 분 전인 1시 45분에 집합장소인 마산역 앞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와 계셨다. 학교 측에서도 학생선발본부장을 비롯하여 몇 명의 직원이 환송을 나왔다. 관광버스가 2 대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앞 유리에는 ‘경남대학교 금강산 방문단. 제 1 호 차’, ‘제 2 호 차’라고 써있었다. 학교 측이 나누어준 차량 배정표를 보니 나는 2 호차로 경남대의 조성수 씨를 비롯하여 고교 교사 27 명과 함께 총 29 명이 타게 되어있었다. 출발 5 분전인 1시 55분 모두 승차하였는데 시간이 되어도 좀처럼 차가 출발하지 않는다. 잠시 후 상황을 알아보니 1 호차의 1 명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집으로 전화를 해보니 자고 있더란 것이다. 그래서 칠원에 사는 그 교사가 올 때까지 30, 40분간 기다려야 한단다. 모두 김이 새서 불평을 늘어놓으며 다시 차에서 내렸다. 대부분은 차 주변에서 삼삼오오 짝을 이뤄 웅성거리며 기다리는데 몇 명은 그 잠깐 사이에 근처 포장마차를 찾아들기도 하였다. 나는 학교 사람들과 잡담을 하며 기다렸는데 화가 난 학교 직원들은 “그래 놓고 오긴 뭘 오노? 와도 욕을 바가지로 먹을 텐데. 나 같으면 안 간다고 하겠다.”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주변에서도 “해외 여행을 가도 그런 사람이 꼭 있어요. 단체 여행을 하면 시간 준수가 기본인데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걸 못 해.”하는 소리들이 간간이 들려왔다. 2시 35분, 그 교사가 택시에서 내려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가 1 호차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본 우리 차 사람들은 “이제 보니 제일 째깐한 놈이 그랬구만. 나이나 좀 들었으면 몰라, 제일 젊은 놈이 와 저 모양이고.”하며 욕설들을 퍼부었다.
1. 6월 3일(월) 첫째 날: 마산 출발 - 속초 거쳐 - 금강산 도착
02:40 출발! 속초를 향하여.
그리하여 결국 2002년 6월 3일(월) 새벽 2시 40분에야 어렵사리 출발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운전석 바로 뒷 좌석에 혼자 앉았다. 마산역 광장을 출발한 버스는 시외버스 터미널 앞을 지나 동마산 I.C를 통해 남해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앞으로의 코스는 김해 I.C.를 잠시 나가 김해 선생님들을 몇 분 태우고, 다시 고속도로로 들어와 대동, 남양산을 거쳐 경부고속도로로 경주에 가서 역시 I.C.로 나가 경주 선생님들을 합류시킨 후 포항을 거쳐 7 번 국도로 목적지 속초까지 가는 것이다.
04:00 경부고속도로 경주 톨게이트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가 차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벌써 경주 I.C였다. 경주 선생님 몇 분이 승차하자 차가 예정과는 다르게 다시 경부고속도로로 들어가는 것이다. 애초 계획은 국도를 타고 포항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던가? 학교 직원 조성수 씨에게 물어보니 시간을 줄이기 위해 계획을 변경했단다. 그리하여 차는 다시 대구 방향으로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고 술에 취하고 피곤했던 나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05:13 - 05:28 중앙고속도로 군위 휴게소
중앙고속도로 군위 휴게소. 용변과 휴식을 위해 휴게소에 들어옴. 잠을 깨어 밖으로 나옴. 이미 날은 밝았음. 용변을 보고 맨손 체조로 몸을 풀고 담배를 피운 후 차에 올라 운전석 옆에 있는 지도책을 펼쳐보니 군위는 대구 위, 의성 바로 아래였다.
5시 28분 차가 다시 출발한 후 한참 동안은 깨어있었으나 얼마 후 나도 모르게 다시 잠에 빠져듦
6:42 단양에서 아침 식사
단양 고수동굴 관광단지 앞 주차장에 도착.
6시 35분쯤 차안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고속도로가 아니라 어떤 동네 한 가운데를 가고 있음. 한참을 지켜보니 전에 몇 번 와봤던 충북 ‘신 단양’(처음에는 충주댐으로 인해 수몰된 ‘구 단양’과 구별하여 ‘신 단양’이라 하더니 요즘은 그냥 ‘단양’이라 함)임을 알게 되었음. 혼자 속으로 ‘어찌 이곳으로 왔을꼬? 이 길이 더 빠른 길인가?’ 하며 의아하게 여김. 잠시 후 신단양대교(정식이름: 고수대교)를 지나는데 보니 남한강 상류 지역인 이곳 강 한 가운데 들어가 견지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몇 있음. ‘누치’를 주로 잡는 이곳 견지낚시는 워낙 유명해 TV의 낚시 전문 채널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음.
다리를 건너자마자 큰 길인 왼쪽으로 가지 않고 작은 길인 직진로로 들어감. 갈수록 이상하구만? 그러더니 몇 분 후인 6시 42분에 고수동굴 주차장에 멈춤. 운전사의 설명을 듣고서야 아침 식사를 위해 단양 I.C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이곳으로 왔음을 알게 됨. 사실 차를 타고 오면서 혼자 생각에 ‘원래 계획과 다르게 이렇게 고속도로로 가다보면 아침 식사 할만한 곳을 찾기 힘들 텐데 어쩌려나? 고속도로 휴게소 식사는 맛이 없을뿐더러 60명 가까운 사람들이 한꺼번에 식사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하고 걱정했었는데 신통하게도 식사할 수 있는 곳을 찾아내어 다행이라 여김. 식당 이름도 마침 ’경남식당‘인데(주인이 경남 사람이란다.) 들어가니 벌써 식사 준비를 다 해놓은 상태. 그 참 재주도 좋다! 반찬은 산간지방답게 주로 산채. 시장했던 터라 된장찌개와 함께 맛있게 먹음. 그런데 식탁에 함께 앉은 어떤 선생님이 “왜 계획에도 없던 이런 곳으로 왔느냐? 이렇게 돌아가다 보면 시간이 길어져 차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겠느냐?”며 불평을 늘어놓음. 경치가 좋은 7번 국도를 포기하고 고속도로로 계획을 바꾼 이유가 바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함인데 잘 알지도 못하고 구시렁대는 것이 마음에 안 듦. 식사 후 대부분 화장실을 다녀온 후 7:21 다시 출발. 건너왔던 고수대교를 다시 건너 우회전하여 이번에는 북단양 I.C를 향해 잠시 국도를 달림.
7:26 도담삼봉 옆을 지남.
도담삼봉은 단양팔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곳.
7:40 북단양 I.C로 중앙고속도로 진입
북단양 I.C를 통해 중앙고속도로에 다시 진입. 2001년 12월에 완공된 중앙고속도로의 이 구역은 처음 달려봄.
8:15 만종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중앙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만나는 만종분기점에서 우회전하여 강릉 방향 영동고속도로로 들어섬.
9:20 - 9:38 영동고속도로 강릉 휴게소
강릉휴게소 도착. 이 휴게소는 2001년 11월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구간의 직선화 및 확장 공사가 완료되면서 새로 문을 연 곳으로 시설이 현대적이고 매우 깨끗함. 용변과 맨손체조와 흡연.
9:52 고속도로를 나와 국도로.
새로 닦은 영동고속도로의 강릉 북쪽 I.C인 현남 톨게이트를 나와 오른 편의 동해바다를 보며 7 번 국도를 달리기 시작.
10:00 38선 휴게소를 지남.
10:20 교통경찰에게 잡힘.
속초의 설악산 입구 조금 못 미쳐 우리 차 두 대 모두 차선 위반으로 교통경찰에게 적발됨. 5 분간의 실랑이 후 다시 출발.
10:43 속초 여객터미널 도착.
드디어 1 차 목적지인 ‘현대 속초 여객터미널’에 도착.
학교 직원들이 수속을 밟는 중에 혹자는 터미널 내의 환전소에서 북한에서 사용할 달러를 환전하는가 하면 나는 구내 매점에서 담배(디스) 한 보루와 일회용 라이터를 2 개 구입. 그 후 화장실에 대변을 보러감. 한참 힘을 쓰고 있는데 옆 칸에서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이게 왜 이 모양이야?”하는 소리가 들려옴. 그러더니 내 칸으로도 똥물이 밀물처럼 밀려옴.(화장실 칸막이의 아래 부분이 막혀있지 않았음.) 나도 모르게 “으악!” 하는 비명이 나옴. 일을 마칠 때까지 다리를 들고 있었는데, 그러면서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아침 식사로 미역국을 먹었는지 검은 빛깔의 해초가 똥물 위를 둥둥 떠다님. 지금 다시 생각해도 욱! (혹시 식사를 앞두고 계시거나 바로 식사를 하신 분들께는 죄송!)
그 다음에는 터미널 의자에 모두 모여 앉아 여행객들을 반과 조로 나눈 다음 (나는 라반 3조 9번), 조장이라는 20대 아가씨(한성희 양: 현대아산의 하청회사 소속)의 설명에 따라 출국과 입국에 관련된 서류를 받고 기재할 사항을 기재함. 모두 비닐 봉투를 하나씩 목에 걸도록 했는데 그 안에는 북한에서 사용할 일회용 북한주민증(사진, 이름, 성별, 생년월일, 직장과 직위, 거주지, 기간 등이 쓰여있음)을 비롯하여 나갈 때 사용할 출국신고서, 들어올 때 사용할 입국신고서, 배의 좌석 배정표, 북한에서 침식할 숙소 배정표 등의 잡다한 것들이 다 들어있음. 조장은 특히 북한주민증을 분실하거나 훼손할 경우 입국이 안 되거나, 북한 측에 벌금을 물 수 있다고 겁을 줌.
그런 후 바로 줄을 서서 출국 수속을 밟음.
11:30 승선.
우리가 탄 배는 ‘설봉호’. 금강산 방문 초기에는 이보다 더 큰 ‘풍악호’, ‘금강호’ 등도 띄웠으나 요즘은 관광객이 줄어 이 배만 운행한다고. 배 탈 때 인사를 하는 승무원들을 보니 한국사람은 몇 명 안 되고 대부분이 동남아인으로 보임. 명찰을 보니 이름도 남자는 ‘호세’, ‘조나단’, ‘알렉산더’, 여자는 ‘아미’, ‘제니퍼’ 등의 서양 이름임. 나중에 물어보니 모두 필리핀 사람들이란다. 서투르게 우리말을 하긴 함. 아마 인건비를 줄이려다 보니 그렇게 된 듯.
승선하여 내 자리를 찾아 앉음. 1층의 크리스탈룸으로 총 324개의 좌석이 있는 가장 큰 객실. 앞에는 대형 TV가 두 대 있음. 내 자리는 좌측 뒤편의 D열 53번. 옆자리는 같이 간 하경재 교수. 우리 옆 C 열에는 전라도 관광단이 자리 잡음. 그러더니 전라도 사투리도 꽤나 시끄럽게 떠들어댐. 나는 속으로 ‘솔찬히 시끄러 버리구마, 잉. 오늘 여행도 솔찬히 괴로워버리겠구마, 잉’ 하고 생각함.
자리에 배낭을 내려놓고 배를 구경하기 시작.
1 층 밑으로는 기관실인 듯 출입통제 구역.
1층 한 가운데에는 ‘information'이라 써 붙인 안내 데스크가 있고, 배 앞쪽으로는 침대가 있는 객실들이 있음.
안내 데스크 앞의 계단을 통해 2 층으로 올라가면 뒷편은 한식당이고, 앞쪽은 역시 침대 있는 객실.
다시 계단으로 한 층 더 올라가 3 층으로 가면 뒷편은 선물 판매 코너와 restaurant, 앞쪽은 역시 침대 있는 객실.
다시 계단으로 한층 더 올라가면 사방을 훤히 볼 수 있는 배 꼭대기인데, 앞쪽에 ‘설봉 sky lounge'라 써 붙인 허름한 생맥주 코너가 있음.
배를 구경하고 있는 중에 2 층 한식당에서 식사를 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옴. 12시에 식당으로 감. 학교 직원이 나눠준 7,700원짜리 식권으로 ‘육개장’과 ‘사골우거지탕’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직원이 은밀히 ‘육개장’이 더 좋다는 정보가 입수됐다고 전해주기에 줄이 더 길어도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기어코 육개장을 먹음. 식사 후에는 여행 며칠 전 학교에서 있었던 방북 교육에서 여행사 직원에게 들었던 식사 후나 잠을 잔 후에는 꼭 팁을 주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나 아깝지만 내 식판을 치워주는 필리핀 여종업원에게 천 원을 줌.
(학교의 방북교육에서는 배에서는 달러와 원화 모두 사용할 수 있으나 북한에서는 꼭 달러만 사용해야 하며, 만약 우리 돈을 갖고 가면 압수한다고 하였으나, 여객 터미널에서 조장이 말하기는 원화를 들고 가는 것은 괜찮고 다만 북한 사람에게 보이며 자랑만 하지 않으면 된단다. 그리고 비자 카드나 비씨 카드 같은 신용카드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하여, 나는 귀찮아서 달러를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당장의 팁만 하더라도 1 달러보다 1 천원이 내 입장에서는 얼마나 경제적인가? 지금 환율로는 1 달러가 1200원이 훨씬 넘지 아마?
그러나 혹시 금강산에 가실 기회가 있으신 분들은 달러를 좀 준비하는 것이 좋긴 좋을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단체로 가다보니 학교 직원들이 이것저것 다 챙겨주어 달러가 별 필요가 없었으나, 특히 개인적으로 가시는 분들은 북한에서 달러가 없으면 불편할 것이다. 모든 것이 1$, 2$,...... 9$, 하는 식으로 달러로 가격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나도 북한 판 ‘금강산 관광수첩’을 하나 샀는데 가격이 1$여서 그것 때문에 환전하기도 귀찮고 해서 원화로 지불하겠다고 하니 2 천원을 내되 잔돈은 거슬러 주지 못하게 되어 있단다. 그래서 몇 백원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리부터 서둘러 달러를 준비할 필요는 없다. 속초의 여객터미널에도, 배 안에도, 북한의 호텔․식당에도 모두 환전소가 있으니 그곳에서 필요할 때마다 환전하면 된다.)
12:15 독서
식사를 마치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우아하게 독서를 함. 유홍준이 쓴 ‘금강산’이란 책인데 금강산에 먼저 다녀온 철학과 김재현 교수에게 빌린 것임. 금강산의 등산 코스와 각 명소에 관해서는 떠나기 며칠 전에 이미 다 읽었고, 이번에는 금강산 탐승기 중에서 정비석이 쓴 ‘산정무한’을 읽기 시작.
12:40 출항
사람들이 밖으로 뛰어나가기에 창 밖을 보니 배가 움직이고 있음. 나도 책을 던져두고 얼른 밖으로 나감. 방파제로 둘러싸인 항구를 서서히 빠져나간 배는 잠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속초시 전체를 보여주더니 곧 뱃머리를 동쪽으로 돌려 먼바다로 나가기 시작. 대체로 맑은 날씨이나 멀리 설악산은 흐릿한 안개에 쌓여 대충의 윤곽만 보인다.
배가 움직이자 비로소 북한으로 간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 사실 그 동안 학교에서 동료 교수들이 첫 번째 해외여행을 축하한다, 내 선물은 빠뜨리지 마라, 북한에서 살아 돌아와라, 등등의 인사말을 할 때만 해도 “그게 뭔 해외여행이야? 엎드리면 코 닿는 곳인데. 여행이라고 하기도 쑥스럽구만.” 했었는데.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곳이 어디인가? 초․중․고 시절 이맘때(현충일과 6.25가 있는 6월)면 늘 학교에서는 ‘방공방첩’, ‘멸공통일’, ‘무찌르자 공산당’을 주제로 포스터를 그리게 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큰 도화지 한가운데 검은색으로 철조망을 치고는 한쪽에는 큰 톱니바퀴가 움직이는 공장을 그리고, 반대쪽에는 붉은 얼굴에 머리에 뿔이 솟고 찢어진 옷을 입은 사람들을 잔뜩 그려놓으면 대개 가작 정도는 받을 수 있었지. 지금 향하고 있는 곳이 바로 그 철조망 너머의 땅인 것이다. 호기심과 불안감으로 가슴이 설렌다.
그러는 중에 다시 안내 방송은 ‘안전 및 관광안내 교육’이 있으니 모두 객실(크리스탈룸)에 모이라고 알린다.
1:35 - 1:50 안전 및 관광안내교육(비디오 시청).
커튼을 치고, 배에 화재 등의 사고가 났을 때의 대피 요령을 설명하는 비디오와 과거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 전에 보았던 ‘대한 뉘우스’ 성격의 김대중, 김정일 주연 ‘남북협력: 희망의 메시지’ 비디오를 연이어 시청. 관람자 대부분 취침.
1:51 - 2:07 금강산 소개 및 관광 시 주의점 교육(비디오 시청)
바위에 새겨진 선전 문구(구호 바위)를 손가락질하지 말라, 사적비 위에 앉지 말 라, 북한 체제를 비판하지 말라, 북한 사람들을 촬영하지 말라, 북한 사람들에게 돈․음식물․담배 등을 주지 말라, 북한 친척에게 편지 전해달라고 부탁하지 말라, 흡연 장소 이외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 아무데나 침이나 코를 뱉거나 풀지 말라, 계곡 물에서 손발을 씻거나 세탁하지 말라....
2:08 - 2:16 대표 조장의 설명
북한 ‘반입금지 물품’과 ‘반입규제 물품’ 설명
2:17 망망대해
대표 조장의 설명을 끝으로 교육이 모두 끝난 후, 각 조 조장들에 의한 ‘반입금지물품’과 ‘반입규제물품’의 수합이 있었다. 주로 핸드폰이며 그 외에 고배율 카메라와 망원경 등. 나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으니 해당사항 없음. 그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객실 밖으로 나갔다. 나도 배 꼭대기로 올라갔다. 어느새 배는 망망대해 한 가운데 와 있다. 바닷물 외에 사방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 방향 감각이 뛰어나다고 자부한 나도 동서남북을 전혀 가늠할 수 없다. 그림자의 위치를 통해 가까스로 추리해보니 현재 배는 북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구경하려고 이러 저리 몇 바퀴 돌다보면 곧 다시 방향감을 잃었다.
2:50 독서
객실로 돌아와 아까 읽다만 ‘산정무한’을 다시 읽기 시작. 그때 ‘크리스탈룸’에는 교육이 끝난 후부터 외화 비디오 상영을 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거나 혹은 잠에 빠져있음. 마지막 페이지를 읽는 중에 옆에 있던 우리 팀 사람들이 “선상에서 지금 생맥주 타임이 진행 중이니 우리도 올라가자”고 하는 말을 엿들음. 갑자기 목젖이 저절로 꿀떡거리고 글자가 제대로 안 읽힘. 남은 부분은 대충 읽어치우고 3:05 바로 선상으로 쫓아 올라감.
3:05 - 3:35 생맥주 파티
부총장, 하 교수, 교장, 교감 선생님 몇 분과 윤수일의 ‘아파트’가 크게 울려퍼지는 ‘설봉 라운지’에서 생맥주를 마심. 계산대의 필리핀 아가씨가 이국적 풍모의 미인이라 자꾸 눈이 감.
3:35 금강산이 보인다.
갑자기 사람들이 ‘저기 금강산이 보이는 것 같다’며 술렁거림. 우리도 생맥주 파티를 마치고 모두 밖으로 나감. 과연 서쪽으로 육지가 눈에 들어옴.
3:50 뱃머리를 서북쪽으로 조금 돌림. 찬바람이 점차 거세짐.
4:03 장전항 입항 시작
(장전항은 ‘고성항’이라고도 하는데, 남쪽에서는 주로 ‘고성항’, ‘북쪽’에서 주로 ‘장전항’이란 말을 씀.)
뱃머리를 완전히 육지 쪽(서쪽)으로 틀더니 입항을 시작함. 옆에서 “북쪽에 오니 바람부터 다르네. 훨씬 차갑군.”하는 소리가 들림. 바람이 점점 거세져 모자를 날린 사람도 여럿 있음.
멀리 흐릿하게 장전항 입구와 그 뒤의 금강산 일부가 보이기 시작. 멀리서 본 금강산은 위쪽은 엷고 아래쪽은 짙은 안개 띠에 가려 마치 얇은 속치마 뒤에 숨은 듯 보임.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 차마 부끄러워 속살을 내보이지 않으려는 조신한 아녀자처럼.
잠시 후 우리 배 오른 쪽에 부부처럼 보이는 남녀가 노를 저어가며 고기를 잡고 있는 작은 나룻배가 나타남. 역시 듣던 대로 남루한 옷차림과 낡은 배. 처음 만난 북쪽 사람을 향해 설봉호 위의 관광객들은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하며 손을 흔듦. 그러나, 상대 쪽은 무반응. 잠시 후 장전 항 쪽에서 흰색 pilot 선이 나타나 우리 배를 선도하기 시작.
장전항 오른 쪽에 3 ~ 4 층 흰색 건물 몇 동이 보임. 반공 교육을 잘 받은 승객 중 몇 명은 “저건 모두 전략적으로 지은 거야. 밤에도 불이 안 켜져”라며 지식과 애국심을 뽐냄. 또 “산에 나무가 전혀 없네. 길에 차가 하나도 안 보이네.”라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옴. 노인 두 분이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두 손에 모자를 부여잡고 마치 제사라도 지내는 듯 경건한 표정으로 서 계신 모습이 인상적임. 그런가 하면 출항 직후부터 벌어진 고스톱 판이 계속 되고 있는 배 뒤편에는 그보다 더욱 진지한 표정을 한 노름꾼들이 ‘금강산’이고 뭐고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화투판에 몰두. 또 벌써 술에 취한 어떤 사람은 들뜰 대로 들떠 지나가는 여승무원을 희롱하기도.
장전 항에 더 접근하면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왼쪽 산(나중에 알아보니 바리봉. 488m)의 중턱 큰 바위에 가로로 새긴 ‘OOOO 김정일 장군’이라는 글씨(OOOO 부분은 너무 멀어서 알아 볼 수 없음). 조금 후에는 장전항 바로 뒷산(천불산. 외금강의 가장 북쪽 봉우리로 높이 654m) 한 가운데 세로로 ‘위대한 선군정치 만세’라고, 아까 것보다는 조금 작게 새긴 것이 보임. 과연 저것이 ‘구호바위’라는 것인 게로구나! 말로는 많이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정말 내가 북한 땅에 오긴 왔구나 하는 실감과 함께 막연한 불안감이 밀려옴. 많은 사람들은 뱃머리에 모여 장전 항을 뚫어져라 보고 있음. 말은 안 하지만 아마 모두 나와 같은 심정일 듯.
4:40 접안 완료.
오목하게 들어간 장전항에 들어서자 거셌던 바람이 갑자기 멈추면서, 오른 쪽 멀리로는 장전 항 마을(장전리)이 보이고, 왼쪽 가까이에는 새로 축조한 듯한 접안 시설이 보임. 또 바로 그 옆에는 우리가 숙소로 사용할 ‘호텔 해금강’이 바다에 떠있음(일종의 바지선). 우리 배는 천천히 후진하여 4:40에 완전히 접안. 먼저 다녀온 사람들 말로는 장전항에는 큰 배를 댈 수 있는 시설이 없어 작은 배로 옮겨 타고 상륙했었다는데 이번에는 탔던 배로 그냥 들어왔다. 아마 최근에 접안 시설이 새로 만들어진 듯.
접안 직후 객실에서는 각 조장들이 내리기 전에 다시 한번 인원 점검을 하고, 주의 사항을 전달하느라고 소란. 나는 혹시나 하여 유홍준의 저서 ‘금강산’을 조장에게 보여주니 규제품목이라며 나올 때까지 자기에게 맡기란다. 이런 어이없는 일이! 어찌 이런 교양도서까지 규제한단 말인가? 또 이런 낭패가! 아직 다 읽지 못해 밤에 읽으려고 했는데. 그나마 그 내용 중 중요한 부분은 미리 컴퓨터에 요약․입력해서 출력하여 갖고 온 것이 다행이다.
4:50 - 5:20 하선
차례로 하선하기 시작했는데 우리 팀은 제일 끝으로 5:10부터 하선함. 배에서 내리니 남쪽에서도 많이 들었던 ‘반갑습니다’라는 북한 여가수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바로 눈앞에 현대에서 세운 ‘천하의 명산 금강산 방문을 환영합니다. Welcome to Mt.Kumgang, the biggest diamond on earth'라는 입간판이 보임. 그리고 그 옆에 단층의 출입국관리소가 있음. 그 건물 앞에는 북한 특유의 붓글씨체 글씨로 ‘금강산 관광객들을 뜨거운 동포애의 심정으로 환영한다’라는 야트막한 입간판이 서있음. 그걸 본 어떤 경상도 사람은 “이 놈들 봐라. 언제 봤다고 바로 말을 까삐네(까버리네. 놓아버리네. 반말을 하네.)” 하며 불쾌해함.
5:30 입국 수속
두 줄로 서서 10분만에 입국 심사와 수속을 마침.
5:40 호텔 입실
호텔 해금강 입실. 나는 5층 515호 twin bed room. 하경재 교수가 내 room mate. 우리 방은 바다 방향(금강산 쪽)이 아닌 출입국관리소가 보이는 쪽. 안 좋은 방향. 호텔 해금강은 일종의 바지선으로 바다 위에 띄워놓았는데, 지하 1 층, 지상 6 층의 건물이다. 평상시에는 잘 모르겠는데 가만히 있으면 전체가 약간씩 출렁출렁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계단은 좁고 가파르며, 로비에는 두 대의 엘리베이터가 있다. 엘리베이터 옆 좁은 공간에는 필리핀 사람으로 보이는 3 인조 밴드가 듣는 사람도 없는데 계속 연주를 하고 있어 안 돼 보인다. 1 층에는 식당과 커피숍, 선물코너가 있으며, 2 층에는 바(bar)가 있다. 지하에는 가라오케와 디스코텍이 있음.
5:50 금강산 온천으로 출발
룸에 짐을 풀고 숨 돌릴 새도 없이 바로 호텔 앞마당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는 버스(32 인승으로 보통 버스보다 조금 작다. 금강산의 좁은 도로 사정을 고려하여 현대자동차에서 특별히 80 대를 제작하였다고.)를 타고 금강산 온천으로 출발. 차 제일 앞자리에 앉음. 처음으로 북한 땅을 돌아보기 위해 출발하니 또한 감개가 무량하다. 처음 1 km 정도는 오른 쪽에 장전항을 두고 포장도 안 된 좁은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는데 그쯤에서 왼편으로 인민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입구를 지키는 군부대가 나타났다. 조금 더 가니 역시 왼편에 ‘현대 oilbank’라고 쓴 주유소가 보이는데 정작 써있기는 ‘금강산 연유공급소’란다. 연유라니? 주유소에서 우유를 공급할 일 있나? 함께 탄 조장의 설명으로는 북한말로는 주유소가 ‘연유공급소’라는데, 그 주유소는 북한 땅에 세운 현대의 oilbank 제 1 호 주유소로서 주로 호텔 해금강과 관광단지인 온정각, 그리고 우리가 타고 있는 관광객용 버스의 기름을 공급한단다. 곧 항구를 벗어나더니 들길을 가는데 그때부터 차도 양편에 높은 철조망이 쳐있다. 무슨 사파리 동물원을 가는 듯 하여 기분이 묘하다. 차를 타고 가면서 가까이 보니 배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OOOO 김정일 장군’의 앞 네 글자가 ‘천출명장’이었다 천출 명장이라? 명장이야 물론 名將軍의 名將일 것이고, 천출은 무슨 뜻일까? 천한 출신이라는 뜻의 賤出은 아니겠고, 그럼 천년만에 나왔다는 뜻으로 千出이냐, 하늘이 냈다는 天出이냐? 아마 마지막 것이겠구나, 추측해본다. 북한에서는 한문을 안 쓴다더니 그래서 이해가 더디다. ‘선군정치 만세’의 선군은 善君이냐, 選軍이냐, 先軍이냐. 왕은 없으니 善君은 아니겠고, 혹시 선진 군대라는 뜻의 先軍인가? 나도 모르겠다. 평지로 접어드니 우리가 가는 차도 바로 오른쪽 옆에 기찻길이 있고 또 그 옆에는 포장도 제대로 안 된 조악한 차도가 있다. 조장 설명으로는 우리가 가는 이 아스팔트 차도는 현대가 포장한 것으로서 금강산 관광객 전용이며 저쪽 길은 북한 사람들이 쓰는 것이란다. 마침 저녁 시간이 되어서인지 저쪽 길에 TV에서 보았던 짙은 인민복을 입은 남자들이 뭔 보퉁이를 들고 걸어가고 있는가 하면 낡은 트럭 짐칸에 많은 사람들이 타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듯 했다. 그쪽 차도 뒤에(서쪽) 그리 크지 않은 바위산이 서있었는데 그게 해발 225m의 매바위봉이란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작고 돌덩이라고 하기에는 큰 그런 정도였다. 조장은 그 산에서 ‘매 바위’와 ‘서있는 남근석’을 가리키는데 나는 당최 보이지가 않는다. ‘천출명장 김정일 장군’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산은 매바위봉의 뒤편에 있는 바리봉으로서 해발 488m이다. 조금 더 가자 왼편으로 똑같은 기와집 수십 채가 있는 ‘양지마을’, 오른 편으로는 콘크리트로 담장을 둘러친 ‘온정리(溫井里) 마을’이 나타났다. 전형적인 농촌으로서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집들은 한결 같이 지붕이 내려앉을 만큼 낡아 보이는데 조장 설명으로는 기껏해야 3 년 밖에 안 된 집들이란다. 원 세상에! 온정리 마을 앞 길가에는 우리나라 태창이 운영하는 ‘금강산 샘물’ 공장이 있었다. 온정리 마을을 끼고 오른쪽(서쪽)으로 조금 휘어 돌아가면서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너자 온정천이라는 개천이 마을과 차도 사이에 자리잡는다. 그 길로 조금 더 가자 흰색의 돔 건물이 나타나고 그 뒤에 바로 우리가 저녁식사를 할 금강산 관광의 중심지인 ‘온정각’(溫井閣)이 있었다. 호텔 해금강부터 온정각까지는 6.1km로서 차로 꼭 10 분이 걸린다. 그러나 아직 저녁 식사시간이 안 돼 차는 온정각을 그냥 지나쳐 그로부터 북서쪽으로 몇 백 m 거리에 있는 금강산 온천으로 가서 6시 3분에 주차장에 멈췄다.
6:03 금강산 온천 하차
차에서 내리니 조장은 온천장 바로 코앞에 있는 바위산이 출발하면서 보았던 ‘매바위봉’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바위봉 동쪽에서 출발하여 매바위봉 남쪽 앞을 돌아 지금은 서쪽으로 온 모양이다. 조장은 손가락질을 해가며, ‘두꺼비 바위’, ‘낙타 바위’, ‘풍산개 바위’, ‘누워있는 남근석 바위’를 설명하는데 나는 마지막 것만 확실히 보일 뿐 다른 것은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는 온천욕을 할 사람들은 각자 9$(할인가격. 원래는 12$) 씩 내고 하고, 안 할 사람들은 주변을 구경하다가 7 시쯤까지 온천과 온정각 사이를 수시로 다니는 셔틀버스를 타거나 혹은 걸어서 온정각으로 와 저녁식사를 하란다. 평상시에도 씻기 싫어하는 놈이 뭐하러 제 돈까지 써가며 목욕하겠는가? 나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내일 만물상 등반 후에는 전원이 온천욕을 하기로 이미 계획되어 있으니 하루 뒤에는 내 돈 들이지 않고도 목욕할 수 있는데 현명한 내가 왜 쓸데없는 낭비를 하겠는가 말이다. 그리하여 목욕할 사람들이 들어가고 난 후 나는 목욕탕 로비의 TV에서 브라질과 터키의 월드컵 축구 중계도 전반 15분까지 보다가 (그때까지의 스코어는 0:0), 2 층으로 올라가 전시 중인 ‘북한명인 미술전’과 얼마 전에 금강산에서 있었던 ‘남북이산가족 상봉 사진전’도 보면서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역시 나처럼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부총장님을 만나 온천장 앞마당에서 함께 맨손체조를 하며 몸을 푼 후 6시 30분부터 슬슬 온정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온정천 다리를 건널 때 멀리서 뻐꾸기 소리가 한가롭게 들려온다.
6:45 온정각 도착
온정천을 건너고 소나무 길을 걸어서 온정각에 도착하여 의자에 앉아 잠시 쉬는데 작년에도 금강산에 왔었던 학교 직원이 온정각 코 앞(남쪽)에 있는 크기가 꼭 주먹만한 바위산의 이름이 ‘닭알바위’라고 설명해준다(뒤에 조장의 보충설명을 들으니 닭알바위 동쪽에는 예로부터 닭을 많이 키웠다는 용계리(用鷄里) 마을이 있는데 비가 안 올 때는 마을 사람들이 흰 천에 닭 피를 묻혀 닭알바위 위의 꼭 설악산 흔들바위처럼 생긴 바위 - 차 타고 가면서 내 눈으로도 보았음 - 에 가서 기우제를 지낸다고 함). 그러고 보면 금강산 관광의 중심으로서 매일 점심과 저녁을 이곳 식당에서 먹어야 하고 또한 선물 구입도 여기서 해야 하는 단층의 온정각 휴게소 건물은 앞의(남쪽의) ‘닭알바위’와 뒤의(북쪽의) ‘매바위봉’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온정각에서 뒤쪽의 매바위봉을 보니 온천 쪽에서는 보이지 않던 ‘주체’라는 글씨가 왼편 아래 쪽 바위에 새겨져있다. 이런 썩을 놈들! 바위마다 그냥 둔 것이 없네.
7:00 - 7:30 온정각에서 뷔페로 저녁 식사. (1 인 9 $)
부총장님, 하 교수, 교장 선생님들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하는데 옆에 꼭 우리 어머니 연세쯤 되는 아주머니가 채소(상추, 쑥갓, 고추, 기타 등등)를 한 무더기 갖다 쌈을 싸 드시면서 연신 ‘다른 건 다 한국에서 가져왔는데 이것만은 이곳에서 기른 100% 무공해’라면서 “갖다 드세요.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아요”하며 권한다. 우리가 그냥 건성으로 “네, 네” 하고 말자 이번에는 우리 식탁에까지 직접 갖다 놓으시면서 “드셔보세요. 정말 맛있어요.” 한다. 할 수 없이 한 분, 한 분 씩 맛을 보더니 전부 “정말 맛있네” 한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는 신이 나서 몇 번씩 또 갖다주고 또 갖다주고 하면서 “여자 옆에 앉으면 좋아요. 이런 것도 먹을 수 있고.” 하며 자화자찬을 하신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이것도 북한에서 기른 것이라며 ‘참외’를 또 한 접시 가득 담아다 주시는데 맛을 보니 그렇게 달 수가 없다. 그래서 나도 몇 개 더 집어먹어 배가 빵빵해졌다.
(나중에 조장의 설명을 들으니, 관광객이 먹는 음식의 재료는 모두 남쪽에서 가져오는데, 채소(북쪽에서는 ‘남새’라 한단다.)만은 북쪽에서 재배한 것이란다. 고성읍 근처에 현대가 임대하여 운영하는 1만 2천평 크기의 비닐하우스가 있는데 비료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을 쓴다고. 관리는 현대가 하고 인력은 북쪽이 제공하는데, 생산품은 현대와 북한이 4 : 6으로 분배한단다. 북한 사람들도 그 농장에서 일하기를 원하는데 그 이유는 일이 쉽고 편하기 때문이라고.)
7:30-8:30 온정각 앞에서 자유시간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혹은 끼리끼리 앉아서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자전거, 롤러 블레이드를 타거나 혹은 트렘플린(뜀틀)에서 뛰고 있다. 모두 1 - 2 $ 정도를 내면 빌려서 이용할 수 있단다. ‘온정각’의 이 모든 것은 물론 금강산 관광을 독점하고 있는 현대아산이 운영하는 것이다. 자유롭게 놀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여기가 마치 설악산의 설악동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곳이 북한 땅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렇게 쉬고 있는 중에 이제 곧 숙소로 출발할 것이니 승차 준비를 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주차장 밖에 일렬로 도열해 있던 10여대의 버스들이 일제히 시동을 걸고 주차장 안으로 들어온다.
8:30 온정각 출발
8:40 - 9:35 호텔 해금강에 도착하여 입실. 룸메이트와 대화.
우리처럼 호텔 해금강을 숙소로 하는 사람들은 바로 호텔로 들어오고, 옆에 정박 중인 ‘설봉호’의 객실을 숙소로 하는 사람들은 다시 출입국사무소를 거쳐 배로 들어간다. 물론 배는 3 일간 그대로 머물 것이다. 그들보다는 우리가 더 편할 것이다. 출입국사무소를 아침 저녁으로 거치지 않아도 되고, 아무려면 시설도 더 나을 테니까.
방에 들어가서 룸메이트인 하경재 교수와 처음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눔. 마침 하 교수도 흡연자여서 너무 다행임. 하 교수도 같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룸메이트가 되어 좋다고 함. 그러나 내가 잠시도 쉬지 않는 골초라는 것을 알게 돼도 같은 마음일까?
9:35 지하 디스코텍에서 간담회를 빙자한 맥주 파티
9시 30분으로 예정된 간담회에 5 분 늦게 참석. 이미 모든 사람들이 모여 캔맥주를 마시고 있음. 디스코텍이라고 해서 가보니 좌석은 총 60석 남짓이며 무대는 손바닥만하고 시설도 열악함. 디스코텍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좀 큰 노래방에 가까움. 천장에는 굵은 파이프가 노출돼 있는 등 마치 배 기관실에 와 있는 느낌. 물위에 띄운 바지선의 특성 상 그럴 수밖에 없는 듯. 부총장님의 인사말씀이 있은 후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 나에게도 노래 신청을 하라고 하나 마음이 내키지 않아 그냥 술만 마심. 이번 우리 팀에는 내가 아는 선생님이 세 분 계셨는데, (한 분은 우리 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내가 그의 논문 심사에 참여했었으며, 또 한 분은 재작년 가을에, 다른 한 분은 지금 교육대학원에서 내 강의를 들었거나 듣고 있다.) 그 분들이 돌아가며 와서 술을 권하는 바람에 배가 너무 불러짐.
10:30 디스코텍을 나와 주변을 둘러봄.
배가 너무 불러 디스코텍을 나와 혼자 호텔 주변을 둘러 봄. 배 안에서의 관광안내 교육에서는 밤에 호텔 밖으로 나와 땅에 올라가면 안 된다고 했는데 호텔 직원에게 물으니 호텔 앞마당에 세워진 노란색 경계선(무릎 높이로 파이프를 세워 놓았음) 밖으로만 나가지 않으면 된다기에 밖에 나가 담배를 피움. 호텔 해금강 및 온정각의 많은 종업원들과 버스 기사들은 대부분 현대아산이 고용한 조선족들임. 북한 땅에서 남한 사람들의 서비스를 중국의 조선족들이 한다고 하니 그것이야말로 분단국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듦. 조선족 종업원들은 이곳을 오기 위해 한국을 거쳐왔을 뿐으로 한국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임. 모두 친절하고 열심히 일함. 설봉호의 필리핀 선원들보다 훨씬 나음. 필리핀 사람들은 맥주 한잔을 시켜도 한참 시간이 걸리고 재떨이를 부탁해도 가서는 잊어버린다. 아이고 답답해!
10:50 룸으로 돌아옴.
룸에 들어오니 하 교수는 아직 오지 않았음. 혼자 오늘 있었던 일을 기록한 후 내일 만물상 등반을 위해 그에 관한 자료를 읽는 중에 11시 25분쯤 하 교수가 들어옴.
11:30 잠.
피곤하여 발만 씻고는 이도 안 닦고 11:30 잠을 청함. 이를 안 닦은 이유는 나도 하 교수도 치약이 없었기 때문. 출발 전 학교에서 안내교육을 받을 때는 호텔이므로 치약, 칫솔, 면도기 등 있을 것은 다 있다고 해서 칫솔만 가져 왔는데 와 보니 하나도 없음. 청결에 관한 한 나는 참을성이 많은 편이므로 이 안 닦은 것쯤은 아무런 문제가 안됨. 이럴 때 보면 내 성격도 사는데 편리한 편임.
하교수가 내일 아침 6시 30분 모닝콜을 부탁함.
2. 6월 4일(화) 둘째 날: 만물상(萬物相) 등반
6:30 기상
5시 50분쯤 소변이 마려워 잠시 눈을 떴으나 시계를 보니 일어나기에는 너무 일러 꾹 참고 다시 잠. 6시 30분에 모닝콜이 울려서 할 수 없이 일어나니 하 교수는 벌써 일어나 준비를 거의 마쳤음. 내가 세수하고 옷 입는 동안 하 교수는 먼저 식당으로 감.
7:10 - 7:35 아침 식사.
1 층 식당에서 뷔페로 아침 식사. 식사 후 잠시 호텔 뒤편의 뱃전(?)으로 나가 장전항을 보며 담배.
7:40 - 7:55 출발 준비
다시 룸으로 돌아와 이 닦고 용변. (하 교수가 어디서 치약을 구해왔음)
이 호텔의 화장실 변기는 압축공기방식이라는데 밸브를 누르면 한참 있다가 천둥치는 소리를 내며 배출됨. 듣기에 별로 유쾌하지 않음.
7:58 승차
8 시에 차가 출발한다고 하여 시간 맞춰 나가니 벌써 모두 차에 타고 있어 내가 꼴찌가 됨. 당연히 나를 보는 시선들이 곱지 않음. 거 참, 이상하다. 왜들 이렇게 미리 나왔을까? 어쨌거나 나는 비어있는 운전석 바로 뒤 창가 자리(부총장님 옆자리)에 앉음. 관광하기에는 최적의 자리. 어찌 이 좋은 자리가 비어있을꼬? 횡재한 기분!
바로 옆의 출입국관리소 스피커에서는 예의 ‘반갑습니다’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아무래도 아침마다 틀어대는 듯.
8:05-8:15 온정각으로 이동
8시 5분에 출발한 차는 어제 이미 왕복했던 길을 따라 온정각을 향해 감. 가는 길에 조장이 눈앞에 빤히 보이는 바리봉의 ‘천출명장 김정일 장군’ 구호바위에 대해 설명하기를 2002년 2월 김정일의 환갑을 기념하여 6 개월에 걸친 작업 끝에 완성한 것으로, 구호바위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커 글자 크기가 27-34m, 파낸 깊이가 1.5 - 2 m란다. 또 욕이 나온다. 이런 썩을 놈들! 통일이 되면 저것을 어떻게 복원한다? 비슷한 색깔의 시멘트로 메우나? 감쪽같이 할 수 있을까? 그때쯤 되면 기술이 더 발전할 테니 아마 할 수 있겠지. 에라, 나도 모르겠다. 그건 나중에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 사이 차는 양지 마을과 온정리 마을 사이 길을 달려 8:15 온정각에 도착했다.
8:15 - 8:30 온정각
관광을 떠나기 전에 차는 항상 온정각을 들른다.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것은 현대아산이 장사 속으로 상품 구입의 기회를 늘리기 위함인 듯. 몇 명은 등반을 앞두고 다시 한번 용변을 보고, 또 어떤 사람은 현대의 기대대로 선물을 산다.
8:30 - 9:00 한하계(寒霞溪: 찬 안개 골짜기)
차가 다시 출발한 후 곧 ‘금강산온천’이 오른 쪽에 나타나고 또 ‘금강산 려관’이 왼쪽에 보인다. 길은 평탄하나 폭이 좁아 두 대가 교행하기는 어려울 듯 하며, 길 양 옆은 키가 큰 붉은 소나무(적송.赤松) 숲이다. 조장이 설명하기를 그 소나무들은 잘 생겼다고 해서 미인송이라고도 부르며 키는 20m쯤 된다고 한다. 8:35분부터 차가 슬슬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길은 더욱 상태가 나빠져 그냥 흙길로서 먼지가 풀풀 난다. 중간 중간에 시멘트 포장이 돼있다가 다시 흙길이다가 한다. 곧 왼쪽에 한하계(寒霞溪: 찬 안개 골짜기)가 나타나는데 온정천의 위쪽 계곡으로 새벽에 찬 안개가 많이 낀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그리 크지 않은 계곡으로 물은 많지 않으나 맑아 보인다. 혹자는 온정리로부터 육화암까지의 약 6 km 중․하류 계곡만을 한하계라 하고 그 위쪽의 상류 약 4 km는 만상계(萬相溪)라 달리 부른다고도 한다.
온정리부터 온정령(溫井嶺)으로 올라가는 이 길은 일제시대 때부터 닦기 시작했는데, 총 24 km로서 모두 106 구비를 돌아 올라가며, 우리가 지금 목표로 가고 있는 만상정 휴게소는 12 km 거리, 77 구비를 돈 곳에 있다고 한다.
8:36 하관음봉
조장이 왼쪽을 보라고 하면서 계곡 건너에 불쑥 솟은 봉우리를 하관음봉(453m)이라 설명한다. 마침 운전석 바로 뒤인 내 자리에서는 잘 보인다. (여러분도 만물상에 가게 되면 꼭 차 왼쪽(운전석 있는 쪽)에 앉으시라.)
8:38 중관음봉과 관음 폭포, 곰바위
잠시 후 다시 조장은 역시 왼쪽의 다른 봉우리를 가리키며 그것이 ‘중관음봉’(857m)이고 그 꼭대기에 불쑥 솟은 큰 바위가 ‘곰바위’, 그 중턱에 물이 조금 흐르고 있는 폭포가 ‘관음폭포’(높이 37m)라 설명한다.
8:48 상관음봉과 육화암
다시 왼쪽에 높이 1137m의 상관음봉이 보이며 조장 설명으로는 그 중간의 어떤 부분이 달빛 아래에서는 육각형의 눈꽃송이로 보이는 ‘육화암(六花岩)’이라 하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다. 상관음봉 가운데 있는 계절 폭포(비가 와야만 물이 쏟아지는 폭포)가 ‘관음 폭포’라 한다.
8:50 다리를 건넘
한하계 계곡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길이 계곡에서 멀어지며 본격적으로 가파라진다. 여기서부터가 앞에서 말했던 만상계인가?
8:53 세지봉
오른 쪽의 높은 봉우리들이 세지봉(1041m) 줄기인데, 조장은 그 속에서 ‘동자 바위’, ‘쌍촛대바위’, ‘낙타바위’(8시55분), ‘망아지바위’, ‘말바위’ 등을 설명하는데 내 쪽에서는 세지봉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8시 54분 차가 방향을 틀어 또다시 계곡을 건너간다.
9:00 만상정(萬相亭) 주차장 도착
온정각을 출발한 후 꼭 30분만에 만상정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 옆은 계곡인데 그 위에 ‘만물교’라는 콘크리트 다리가 놓여있다. 그 길로 계속 올라가면 내금강으로 넘어가는 온정령 고개가 나오는 듯. 차에서 조장이 설명하기를 만물상 등반을 시작하면 중간에 간이 화장실(북한말로는 ‘위생실’)이 하나 있는데, 유료로서 소변은 1$, 대변은 4$ (여성은 둘 다 4$)이니, 무료인 만상정 화장실에서 미리 일을 보란다. 혹시 아무 곳에나 방뇨를 하다가 감시원에게 적발되면 벌금을 내야한단다. 모두들 화장실로 몰려가 나오지도 않는 것을 쥐어 짜낸다. 생각해보면 기껏해야 왕복 3 시간의 산행인데 도중에 무슨 용변 볼 일이 그리 있겠나? 남쪽에서 산행할 때도 서너 시간 동안 언제 한번이라도 용변을 보았던가? 여기는 북한이다, 유료이다, 벌금을 낸다 하니 지나치게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 실소가 나온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나도 만상정 화장실을 들르긴 했다.
또한 등반 중 담배는 절대로 피울 수 없단다. 금강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은 재떨이가 준비되어 있는 곳에 한한다. 걸어 가면서는 절대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 이곳 만상정 주차장에 재떨이가 있으니 만물상 등반을 마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동안은 금연이다. 그 말을 듣고 골초들은 너도 나도 얼른 담배를 피워 문다. 물론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곧 조장의 지시에 따라 간단한 맨손체조를 하고 등산로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왕복 4.3km, 3 시간 예정), 9:18 드디어 등반을 시작했다, 내가 그리도 걱정했던 만물상(萬物相) 등정.
9:18 만물상(萬物相) 등반 시작
만상정 주차장에서 오른 쪽 돌계단을 몇 개 올라 특이할 것이 전혀 없는 등산로를 걷기 시작.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왼쪽으로 만상정 휴게소가 나타났다. 콘크리트로 지은 보잘 것 없는 그늘막. 그리고 또 몇 걸음 안 가 오른 쪽으로 ‘만물상 대문’과 계곡 건너 쪽에 ‘장수 바위’. 조장은 열심히 설명하건만 도대체 뭐가 ‘대문’이고 뭐가 ‘장수’라는 것인지? 초입이라서 그런가 아직까지는 깜짝 놀랄만한 일이 전혀 없다. 또 몇 걸음 걸어가 계곡에 가로놓인 철제다리를 건넌다.
9:28 삼선암과 습경대
다리를 건넌 후 물도 거의 없는 계곡을 왼쪽에 두고 평이한 산길을 걸어 5 분쯤 가니 다시 철제다리를 건너가는데, 그곳에 삼선암(三仙岩. 아래쪽부터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이 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돌로 만든 벤취가 몇 개 있어 앉아 쉴 수 있게 되어있는데, 그곳에서 왼쪽으로 돌계단 수십 개를 올라가면 상선암 허리 쯤에 ‘귀면암(鬼面岩)’을 볼 수 있는 ‘습경대’(책에 따라 ‘정성대(頂成臺)’, 혹은 ‘첫사자목’이라고도 되어 있다.)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만물상 메인 코스가 이어진다. 다람쥐 몇 마리가 사람을 겁내지도 않고 가까이 다가온다.
오른 쪽 길로 올라가자 길은 조금 더 가파라져 숨이 조금씩 차지만 아직까지는 그리 어려울 것은 없다.
9:30 메뚜기 바위
앞장 서 가는 조장은 다시 일행을 세우고 계곡 건너편 바위 끝의 ‘메두기 바위’를 설명한다. 그런 식으로 몇 걸음마다 조장은 설명을 계속해 나간다.
(일행과 꼭 함께 다닐 필요는 없다. 힘들면 뒤쳐져 혼자 걸어도 된다.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 조장의 설명을 못 듣는 것만 빼고.)
9:34 역시 계곡 건너편의 바위 꼭대기에서 ‘아기 업은 엄마 바위’, ‘스핑크스 머리 바위’, ‘말머리 바위’, ‘삿갓 바위’, ‘쌍솥뚜껑바위’, ‘꼬부랑할머니 바위’, ‘코뿔소 바위’를 설명. 어떤 것은 쉽게 보이고 어떤 것은 당최 보이지 않는다.
9:39 칠층암
앞장 서 걷던 조장이 뒤를 돌아보라 하기에 시키는 대로 하니 방금 지나온 길 바로 오른 쪽 옆에 큰 검은색 바위가 서 있다. 그것이 칠층암(七層岩)이란다. 만물상의 대부분 바위가 세로로 금이 가 있는데 그것만은 가로로 금이 가 있으며 그 층이 일곱 개라서 칠층암이라 한단다. 조장은 또 그 꼭대기에서 ‘뽀뽀하는 원앙새 바위’, ‘고개 돌린 물개 바위’, ‘기어올라가는 풍산개 바위’를 설명함.
9:45 절부암
칠층암 설명을 듣고 다시 오르려니 앞에 가파른 철제계단이 몇 개 연이어 놓여져있다. 첫 번째 계단을 올라가서 다시 조장은 전설 속의 나뭇꾼이 도끼로 찍은 자국이 남아있다는 절부암(切斧岩) 위에서 ‘두더지 바위’, ‘새끼곰 바위’, ‘맷돼지 바위’, ‘도마뱀 바위’, ‘독사 바위’, ‘올빼미 바위’를 찾아준다. 역시 어떤 것은 잘 보이고 어떤 것은 보이지 않는다.
설명을 듣고 철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니 본격적으로 숨이 가빠온다. 그 위로는 가파른 길이 계속 된다.
9:51 바위 앞 산길을 돌아가는데 엉성한 나무 벤취가 하나 놓여있다. 잠깐 앉아 다리를 쉰다.
9:54 절부암 휴식터
절부암 휴식터라는 곳에서 일행 모두 5 분간 휴식. 이곳이 꼭 중간이란다. 모두들 물을 마신다, 오이를 먹는다 분주하다. 나는 기록을 위해 종이와 펜만 들고 왔을 뿐, 배낭은 처음부터 호텔에 두고 나왔고, 차에서 나누어준 ‘물, 오이’ 등도 차안에 그대로 두고 왔기 때문에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그것은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다. 만약 무언가 들고 왔다면 기록하는 데 지장이 컸을 것이다.) 사실 남쪽에서 산행할 때 언제 1 시간도 안 돼 물 마시고 오이 먹고 했던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곳에도 다람쥐가 지천이다. 만물상 등반 중에 수없이 많은 다람쥐를 보았으나, 남쪽에 많은 ‘청설모’는 한 마리도 없다. 그리고 산행 중 곳곳에서 은은한 약초 향기가 난다. 가까이에 산삼이라도 있을 듯 하다. 한 뿌리 캐고 싶지만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라도 건드리면 잡혀간다는 관광안내교육 때문에 꾹 참았다. 그러고 보니 금강산에서는 남쪽 산에 많은 날파리나 하루살이를 못 본 것 같다. 쓰레기가 전혀 없기 때문인 듯하다. 그만큼 금강산에는 우리 고유의 자연이 잘 보호되고 있는 중이라 하겠다
휴식을 마치고 10:00 다시 출발.
10:05 천선대와 망양대 갈림길
조장이 멈추더니 ‘천선대’에 가실 분은 왼쪽 길로, ‘망양대’로 가실 분은 오른 쪽으로 가라고 안내한다. 양쪽 다 가실 분은 ‘망양대’를 먼저 갔다 오라 한다. 거기서부터 천선대는 250m, 망양대는 750m 거리에 있으며, 망양대는 왕복 1 시간, 천선대는 왕복 30분이란다. 나는 천선대를 먼저 가려고 했으나, 조장의 조언에 따라 망양대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조장은 더 이상 가지 않고 그곳에서 기다리며, 우리들은 각자 자기 속도대로 가기 시작한다.
10:16 첫 번째 고개 위에 도착하여 쉼
한참 평탄한 산길을 걷다가 가파른 길 만나 헐떡대며 올라가다가 쳐다보니 고개 위에 커다란 바위가 있다. 일단 저기까지 가서 쉬자. 10:16분에 도착하니 먼저 와 있던 학교 직원 조성수 씨가 하는 말이 “교수님이 오시는 것은 안 보고도 알아요. 쌕쌕하는 섹시(sexy)한 숨소리가 먼저 들리거든요.” 그렇게 봐 줘서 고맙네. 그런데 동성(同性)에게 그런 소리 들으니 좀 징그럽구만. 몇 분 쉬고는 다시 출발.
10:22 두 번째 고개 위에 도착하여 쉼
두 번째 고개에 도착해 위를 올려다보니 뒤쪽(북동쪽) 큰바위 위에 벌써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 있다. 아, 저기가 바로 망양대인 모양이구나. 나는 언제나 올라갈꼬? 10:25 다시 출발.
10:27 철제 사다리
몇 걸음을 옮기자 가파른 철제 사다리가 연이어 세워져 있다. 올라가려니 한숨이 먼저 나온다. 그래도 가보자. 예서 말 수는 없지 않은가. 계단을 계속 올라가려니 숨이 찬 것보다도 다리가 몹시 아프다.
10:30 철제 사다리를 다 오르다
사다리를 다 오르니 이번에는 오른 쪽으로 길이 나있다. 돌계단 5 개를 올라서니 비교적 평탄한 오솔길이 시작된다.
10:35 망양대(望洋臺) 제 1 전망대에 도착
오솔길을 5 분쯤 걸어 제1 전망대에 도착하여 사방을 둘러본 후 10:40 다시 제 2 전망대를 향해 출발.
10:44 제 2 전망대 도착
제 1 전망대에서 내리막길을 잠시 내려갔다가 다시 가파른 길을 오르니 바위 위에 제 2 전망대가 있다. 특별한 지형이나 경관이라기보다는 여느 산의 정상과 비슷하다. 곧 바로 제 3 전망대로 출발.
10:48 제 3 전망대 도착
결국 망양대의 제일 동쪽 끝, 동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제 3 전망대(1031m)까지 왔다. 바다는 안개 때문에 흐릿하게 보인다. 초등학생 몇 명이 선생님과 함께 도착했다. 여자아이의 첫 마디가 “이거 보려고 여기까지 온 거예요?” 선생님 말씀. “왜, 멋있잖아? 금강산에 온 소감이 어때?” 아이 대답하여 가로되 “짜증나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전북 고창의 한 초등학교 6 학년 학생들이란다. 초등학생 말에 나도 동의한다. 이 정도의 경관이라면 우리 동네 무학산에서 마산만을 내려다보는 것보다 특별히 더 나을 것도 없다. 하다 못해 우리 집 앞동산인 해발 200m 정도의 ‘갈마산’, ‘청량산’에서 보는 경치도 이보다 크게 못하지는 않다. 물론 부산 해운대의 달맞이 언덕, 남해의 금산, 여수 돌산의 향일암, 해남의 땅끝 마을에서 보는 경치는 여기보다 훨씬 낫다.
그렇다면 천선대는 좀 나은가? 어디 한 번 가보자.
10:55 제 3 전망대 출발
이번에는 천선대에 가려고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
11:00 제 1 전망대 통과
내려가면서 보니 온정령으로 올라가는 좁은 찻길이 저 멀리 보인다.
11:15 천선대 올라가는 갈림길 도착.
천선대를 향하여 오른 쪽 길로 올라감.
11:20 -11:24 숨이 차 그늘 아래 돌계단에 앉아 5 분간 휴식
쉬고 있는데 바로 머리 위에서 어떤 선생님이 “교수님 힘내세요. 여기가 망장천입니다.” 하고 소리친다.
11:25 망장천(忘杖泉) 도착
안내판에는 제 5 휴식처라고 쓰여있다. 아래의 어디가 제 1, 2, 3, 4 였는지 모르겠는데? 지팡이를 짚고 금강산에 올랐던 어떤 노인 이 샘물을 먹고는 다리에 힘이 솟아 내려갈 때는 지팡이를 잊고 내려갔다는 바로 그 샘. 가보니 샘은 없고 물방울이 하나씩 똑똑 떨어지는 정도였다. 목이 타 망장천에 빨리 도착하기를 바랐으나 실망. 마침 먼저 와 물을 한 병 받아 놓았던 어떤 선생님이 한 모음 권하기에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마심. 이제 나도 다리에 힘이 솟으려나.
망장천 위로부터는 다시 가파라지며 곧 철제 사다리가 나타났다. 철제 사다리를 오르니 그 끝에 자연석 바위로 이루어진 문이 나타나는데, 아, 이것이 바로 ‘하늘문’(또는 천일문(天一門))인 모양이구나. 그러나, 안내책자에 소개된 옛날 한 천재 소년이 썼다는 ‘금강제일관’(金剛第一關)이라는 글씨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11:31 드디어 천선대(天仙臺) 도착
천선대(936m)에 도착. 드디어 만물상의 두 정상을 모두 정복했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오버. 하늘은 맑고 시야는 넓다. 모든 사람들이 살아 생전 한번 가보기를 소원한다는 천하제일명산에 올랐으니 나도 이것으로 ‘다 이루었도다.’ 앞은 낭떠러지이고 뒤는 바늘 같은 바위가 촘촘히 서있는 오봉산 줄기이다. 여기서 보이는 전경이 바로 ‘만물상’이다. 습경대(구만물상(舊萬物相) 혹은 만물초(萬物草)), 망양대(오만물상(奧萬物相))에서 보는 경관과 비교해서 ‘진만물상(眞萬物相)’ 혹은 ‘신만물상(新萬物相)’이라고도 한다. 망양대보다 경치가 낫다. 그러나 왠지 자연물이라기보다는 사람이 만든 인공물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정교하고 아기자기하다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오기 전에 마음 속으로 그렸던 것보다는 못 하다. 만물상은 그 전체의 규모가 너무 작고, ‘OO 바위’, ‘XX 바위’하는 것들도 하나 같이 주먹만하다. 한마디로 웅장한 맛이 없다. 내 기대가 너무 컸나? 아니면 내 감수성이 너무 메말랐나? 그것도 아니면 그 동안에 더 좋은 것을 그리 많이 보아버렸나? 그래도 만약 망양대와 천선대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천선대가 낫다. 망양대(望洋臺)는 이름 그대로 바다를 내려다보는 곳으로 남쪽에도 그 비슷한 경관은 많으나 천선대 쪽은 그렇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에 오니 온정각 근처에는 많았던 ‘구호 바위’(선전문구를 새긴 바위)들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이놈들도 이곳은 너무 아름다워 자연보호를 한 것일까? 그렇다기보다는 이곳 바위는 전부 세로로 쪽쪽 갈라져 있어 (이런 것을 ‘주상절리’(柱狀節理)라 한다지?) 큰 글자를 새기기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구호바위들은 하나 같이 크고 매끈한 화강암이었다.
천선대에 도착해 이런 저런 소감을 쓰고 있는데, 그 곳에 있던 북한측 ‘환경감시원’이 “그 뭡네까?” 하며 들여다본다. 순간 당황! 미리 출력해간 천선대 관련 부분을 보여주며, 오히려 내가 “도대체 어디가 오봉산이고 천주봉이란 말입니까?” 하며 되묻는다. 그제서야 그는 험한 표정을 풀면서 뒤를 가리키며 설명해준다. 휴! 혹시 이 자료를 빼앗기거나 혹은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생기는가 했네.
만물상 풍광을 내 둘째 아들 초등학교 2 학년 선빈이가 설명한다면 이렇게 할 것이다.
- 먼저 검은 색과 흰색이 섞인 돌을 깎아 삼각뿔을 만든단 말이에요. 삼각뿔 윗 꼭지점을 망치로 두드린단 말이에요. 그럼 깨져서 울퉁불퉁 해지고 돌 전체에 세로 금이 쭉쭉 간단 말이에요. 그럼 그 금 사이에 군데군데 나무들을 심는단 말이에요. 그럼 그게 바로 만물상이에요. -
11:45 하산 시작
더 오를 곳이 없다면 이제 내려갈 밖에. 슬슬 내려가면서 이제서야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니 더욱 기고만장해진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조금만 더 수고하십시오.”하며 앞 선 자다운 여유를 보인다. 내려가는 사람들 속에서 “천선대라고 해봐야 설악산 울산바위의 1/10도 안 되는 것 같네.”라는 말이 들린다. 나도 지금부터 약 30년 전인 고등학교 1 학년 때 울산바위를 가보았던 사람으로서 그 말에 동의한다.
11:50 다시 망장천을 지남
11:53 안심대(安心臺)를 지나침
안심대 앞에는 제 4 휴식처라고 쓰여 있음.
12:10 올라올 때 보았던 허술한 나무 벤취에 도착하여 잠시 앉아 쉼
내려 가면서는 이제 급할 것도 없다는 생각과 언제 다시 오겠느냐는 아쉬움에 중간중간 쉬어가며 일부러 천천히 걷는다.
12:20 철제 사다리를 내려와 절부암, 칠층탑 있는 곳에 옴.
내려오면서 여유를 갖고 보니 경치가 더 좋아 보임.
12:28 삼선암 앞에 도착.
돌벤취에 잠시 앉아 쉼.
12:30 왼쪽 돌계단으로 습경대에 올라감.
12:32 돌계단 76 개를 올라가니 바로 습경대.
북서쪽으로 코 앞에 ‘귀면암’이 보인다. 금강산 사진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귀면암’이 저 정도인가? 그저 팔뚝 하나 세워놓은 정도에 불과하다. 또 실망.
습경대에서 북쪽으로 만물상을 올려다보니 천선대에서 본 경관과 별 차이 없다. 그렇다면 몸이 안 좋은 사람들은 이곳까지만 와도 될 듯. 혹시 기운이 조금 더 남아 절부암까지만 갈 수 있다면 만물상 계곡에서 볼만한 것은 다 보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12:40 습경대에서 내려감.
다시 삼선암 앞 벤취에 잠시 앉아 쉼
12:45 삼선암에서 만상정 주차장으로 출발
이제 빨리 만상정 주차장에 내려가서 담배나 피우자는 생각으로 서두름. 그러고 보니 그 오랜 시간 동안 잘도 참았다.
12:50 주차장 바로 위 ‘만상정 휴식터’에 도착
여기서도 흡연은 안 되지만 그래도 잠시 앉아보자. 언제 다시 오겠는가? 먼저 와 계신 교장선생님들께서 엿을 한 덩이 주심. 5 분간 쉬다가 몇 걸음 밑의 만상정 주차장으로 내려옴.
12:56 만상정 주차장에 도착하여 얼른 담배를 피움.
1:05 기다리던 버스에 승차하니 곧 출발.
차에 타고 보니 윽, 또 꼴찌! 누군가 “거북이 교수님!” 하는 소리가 들린다. 차가 출발하자 일행 중 몇 명이 조장에게 내려가면 바로 목욕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조장이 목욕은 ‘교예 관람’ 후 5:30부터 하도록 계획되어 있다고 설명하자, 그래도 목욕이 더 급하다, 땀을 많이 흘려 찝찝해 죽겠는데 교예고 뭐고 관심이 있겠느냐, 어떻게 해서든지 목욕부터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달라는 등 생떼를 부리기 시작한다. 조장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출발 전부터 모든 일정을 다 알려주었는데도 저렇게 억지를 부리는 교사들이 한심해 보인다. 결국 조장이 사실 이곳 금강산 온천은 다른 곳에서 물을 받아오므로 오후 4:30 이후에야 문을 연다, 안 그래도 요즘 현대 측에서도 온천 오픈 시간을 앞당기려고 노력 중이라는 답변을 듣고서야 조금 조용해진다.
1:36 금강산 려관 도착
산을 다 내려온 후 차가 갑자기 예정에도 없던 오른 쪽(산을 올라 갈 때는 왼쪽)의 높은 건물 앞으로 간다. 조장이 설명하기를 시간이 좀 남아 얼마 전 남북이산가족의 상봉 장소였던 ‘금강산 려관’에 잠시 들렀단다. 북한쪽 건물은 대개가 흰색인데 깔끔하지가 못하고, 마치 도색을 안 해 시멘트가 그대로 노출되었거나 혹은 흰색 칠을 하긴 했으나 그것이 군데군데 벗겨진 것처럼 우중충해 보인다. ‘금강산 려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건물 입구에 재떨이가 있기에 담배를 피워 물고 보니 여관 앞마당 왼편에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에 따라 이 땅 우에 강성대국을 건설하자’라고 횡으로 크게 쓴 선전문구가 보인다.
입구가 북쪽을 향하고 있는 이곳에서 보니 왼쪽 앞(북서쪽)으로 수정봉이 빤히 올려다보이고 - 수정봉은 마치 설악산의 울산바위나 북한산의 인수봉처럼 한 덩어리의 화강암으로 이루진 산이다 - , 바로 앞(북쪽)에는 ‘천출명장 김정일 장군’이 새겨진 바리봉(488m)이 있다. 그리고 오른쪽(북동쪽)으로는 소나무만 많을 뿐 별다른 특징은 보이지 않는 ‘대자봉’이 야트막하게 보인다. 결국 그 세 개의 산은 ‘금강산 려관’ 앞에 동서 방향으로 좀 비뚤어진 일렬 횡대로 서 있는 형국이다(동쪽(바다쪽): 대자봉, 중간: 바리봉, 서쪽(금강산 정상 쪽): 수정봉). 그리고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수정봉 서쪽(산 정상 쪽)으로는 계속 문수봉(문주봉, 906m), 세지봉(1041m)이 연이어 있을 것이다. 이 산들은 만물상으로 올라갈 때 오른 쪽에 있었으므로 내 쪽에서는 볼 수 없었다. 금강산 려관 뒤(남쪽)로 보이는 산은 문필봉(337m)이다.
1:49 금강산 려관 출발
1:54 온정각 도착
2:00 - 2:50 온정각에서 점심 식사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나니 마음이 풀려 ‘금강’이라는 이름의 북한 소주를 마심. 가격은 5$이며, 도수는 23도, 재료는 ‘강냉이, 흰쌀, 금강꿀’이라 적혀있다. 우리 소주와 거의 같은데 입에 안 맞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저 좋다고 마신다.
2:50 - 3:50 4 시로 예정된 교예 관람 전까지 자유시간
적당히 취한 상태에서 온정각 앞의 그늘 밑에 앉아 부총장님, 하 교수와 한가롭게 잡담.
3:50 금강산 문화회관 입장
평양 모란봉 교예단의 공연을 관람하러 입장. 공연장은 온정각 옆(동쪽)의 돔 건물. 앞에는 ‘금강산 문화회관’이라고 쓰여 있음. 관람료 25$(특석은 30$). 사람들이 꽉 참.
4:00 - 5:30 교예(서커스) 관람
한복을 입은 북한 여자가 사회를 보면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자랑이 대단하다. 다음 것을 시작하기 전에 매번 사회자가 소개를 하는데 특히 잘 하는 몇몇 사람들은 ‘공훈 배우’라 한다.
원래 서커스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아슬아슬 해서 스릴을 느낀다기보다는 그저 끔찍한 기분일 뿐이다. 그러나 다른 관객들은 박수를 치고 난리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들의 고난도 곡예가 아니라 오히려 높은 철봉에 매달린 고등학생 또래부터 20대 중반의 공연자들의 너무 힘들어 부들부들 떨리는 안면 근육과 실수한 후에 속상해한다기보다는 겁에 질린 듯 보이는 여자 공연자의 얼굴 표정이다. 나는 손으로는 박수를 치지만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며 그런 모습들을 본다. 저렇게 하려면 어린 나이부터 얼마나 혹독하게 훈련을 받았을까? 북한이 세계적 수준이라고 자랑하는 서커스나 카드 섹션 같은 것은 실은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움인 줄 알기를 바라는 마음이 된다. 그리고 열광하는 다른 관객들에게도 한번 묻고 싶어진다. “당신 동생이나 자식이 저런 일을 하겠다면 시키겠습니까?” 시작 후 곧 곯아떨어진 옆자리의 하 교수가 오히려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40 분쯤 보고 나자 담배도 피우고 싶고 해서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래도 서커스는 장장 1 시간 반을 모두 채우고서야 끝났다.
혹시 나를 보고 ‘그래 애국자 났다. 반공 교육을 철저히 잘 받았구만’하고 욕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혹시 서커스를 하는 사람들이 외국인들이었다면 그보다 더한 것을 보았더라도 별 다른 감정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내 마음이 그리 편치 못했던 것은 그들이 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KBS TV의 ‘인간극장’이란 프로에서 ‘서커스의 난쟁이 형제들’ 사연을 보면서 혼자 눈물을 흘렸을 때의 감정과도 비슷하다. 서커스에서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으로 삶을 살아가는 그 난쟁이 형제들 말이다.
나는 오히려 오늘 오전 만물상 등정 중에 우연히 엿듣게 되었던 남한 관광객과 북한 ‘환경감시원’ 간의 대화가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등산로 곳곳에 남녀 한 명씩으로 이루어진 북한측의 환경감시원들이 있다. 이들은 조장과는 이미 친숙해진 듯 그냥 이름을 부르며 친구처럼 대한다. 예컨대 우리 조장에게는 “성희야, 또 왔네?”하며 먼저 말을 건다. 관광객들과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눈다. 많은 관광객들은 걸어가며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관광객들은 하나 같이 그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있었다.
“지금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네. 잘 알고 있습니다.) TV를 통해 월드컵 경기를 볼 수 있습니까? (네, 매일 보고 있습니다.) 그래요? 북한 가정에는 TV도 별로 없고 있다해도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못 보지 않습니까? 그리고 북한 사람들은 어느 나라를 응원합니까? 중국? 러시아? 한국? (그야 당연히 한국이지요. 우리 동포를 응원해야지 왜 다른 나라를 응원합네까?)”
“몇 년 전 올림픽에서 북한 선수가 사격에서 메달을 땄을 때 기자들이 어찌 그리 총을 잘 쏘느냐고 물으니까 뭐라고 대답한 줄 압니까? (뭐라 그랬습니까?) 남한 에미나이들 가슴팍을 겨냥하는 마음으로 쏜다고 했단 말입니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금강산 관리원들이 모두 남녀 한 명씩으로 짝지어져 있는 것을 보고) “왜 당신들은 남녀가 짝이 되도록 조를 짰습니까? (그래야 지루하지도 않고 더 좋지 않습네까?) 북한에는 연애도 없고 결혼도 당이 시키는대로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럴 리가 있습네까? 어떻게 청춘 남녀의 연애 사업을 막을 수 있습네까. 우리들도 연애 많이 합네다.) 그럴 리가요? 믿지 못하겠는데요.”
그런 식의 대화들을 들으며 나는 우리 남한 관광객들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 북한 사정을 잘 모르니 이왕 온 김에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것도 많겠지. 그러나, 알고 싶은 것이 꼭 그런 종류 밖에 없단 말인가? 상대방을 무시하고 모욕하려는 의도가 너무도 분명한 그런 것들 밖에? 그런 말을 들으니 우리 남한 사람들의 경박한 호기심과 천박한 우월감에 내가 얼굴이 붉어졌다. 정녕 처음 만난 우리 동포에게 묻고 싶은 것이 그런 것들밖에 없더냐? 당신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열렬한 애국자였단 말이냐?
5:35 교예 관람을 마치고 바로 온정각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고 금강산 온천으로 출발
5:39 금강산 온천 도착
5:42 - 6:30 온천욕
현대에서 지어서 그런가, 온탕, 냉탕, 게르마늄탕, 한증탕, 노천탕 등 남쪽 목욕탕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우리 동네 목욕탕보다는 좀 낫지만 남한의 유명한 온천들의 시설보다는 확실히 못하다. 물이 얼마나 좋은지야 온천에 별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남한에서도 모든 온천이 자기들이 최고라고 하니 별로 믿을 바는 못 된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만물상에 다녀오느라고 땀을 많이 흘렸으므로 목욕 뒤끝은 상쾌하다.
6:30 목욕 마침
목욕을 마치고 목욕탕 로비에 나오니 TV에서 일본과 벨기에의 월드컵 축구 경기를 중계하고 있다. 현재 전반전 33분 25초가 경과했는데 스코어는 아직 0 : 0.
6:40 - 6:55 금강산 온천에서 온정각으로
금강산 온천에서 온정각으로. 목욕도 했겠다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슬슬 걸어가니 꼭 15분이 걸렸다. 피곤한 사람들은 두 곳 사이를 쉴새 없이 왕복하는 셔틀버스를 타기도 한다.
7:00 - 7:50 온정각에서 저녁 식사
반주로 북한 술 ‘금강’ 조금. 식사 후에는 식당 옆의 선물 코너에 가서 북한 산 ‘솔꽃가루 꿀’(송화가루 꿀) 2 통 구입. (1 통 250 g, 가격 9 $) 지불은 BC 카드로.
8:00 다반 6,7조의 소란.
선물을 사고 밖으로 나오니 어제와 다르게 분위기가 소란하다. 무슨 일인가 살펴보니 아직 시간도 안됐는데 몇몇 사람이 버스에 올라타고 밖을 향하여 “빨리들 오랑께. 빨리 가서 축구 봐야 할 것 아니여?” 하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다. 일부는 그 말을 듣고 버스로 가기도 하고, 또 일부는 그대로 남아있다. 오늘 우리나라와 폴란드의 월드컵 축구 경기가 있다. 그래서 오늘 일정도 호텔에서 TV를 볼 수 있도록 8시 10분에 온정각을 출발하여 경기 시간 전에 호텔에 돌아가도록 잡았다는 조장의 설명을 이미 오전에 들었는데. 아직 출발 10 분 전인데도 저렇게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이 누군가 보니 다반 6조와 7조이다. 설봉호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바로 그 사람들로서 OO건설의 직원들이란다. 앞으로 저 회사가 지은 아파트는 절대로 사지 않겠다고 결심.
8:10 - 8:20 예정된 시각에 온정각을 출발하여 호텔 해금강 도착
8:30 - 10:24 월드컵 축구 시청
방에 잠시 들러 땀에 젖은 속옷을 갈아입고 호텔 로비에 설치된 TV로 한국 : 폴란드의 축구 경기를 보려고 내려옴. 우리 일행은 벌써 다 내려와 있다. 호텔 직원들도 모두 한국 응원단인 ‘붉은 악마’ T 셔츠를 입고 이마에는 ‘필승’이라는 머리띠까지 동여매 월드컵 분위기를 한껏 띄우고 있다. 말을 들어보니 머리띠는 어제 밤새 준비했다나. 황선홍와 유상철이 전반과 후반에 각각 한 골씩 넣어 우리가 2 : 0으로 승리. 시청자들은 모두 흥분하여 선수와 감독의 이름을 연호하는데, 감독 ‘히딩크’와 주장 ‘홍명보’를 외칠 때는 경상도 사람들답게 ‘히딩커!’, ‘히딩커!’, ‘홍맹보!’, ‘홍맹보!’
10:24 - 11:00 승리 축하 파티
승리의 기쁨에 도취돼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서질 않는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응원도 계속된다. 앞에 있는 필리핀 3인조 밴드도 ‘필승 코리아’를 계속 연주한다. 캔맥주도 계속 나온다. 밴드의 보컬을 맡은 필리핀 아가씨가 앞에 나와 춤을 추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서로 눈치만 볼 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에라 모르겠다. 이럴 때나 한번 기여를 하자. 벌떡 일어나 좁은 스테이지로 가서 개다리 춤으로부터 시작해서 막춤을 흔들어댄다. 그제서야 몇 명이 슬슬 뒤쫓아 나온다. 점차 분위기가 고조된다. 그렇게 분위기를 대충 up 시켜놓고 나는 뒤로 빠져 바닷가로 나간다. 누군가 밤낚시를 하고 있는데, 그 사람 말이 물 반, 고기 반이란다. (알고 보니 호텔 직원.) 볼락, 도다리, 오징어 등이 낚인단다. 내 눈에도 수면 위에 수많은 새끼 물고기들이 등을 반짝이며 몰려다니는 것이 보인다. 전어 새끼란다. 이런 걸 봐도 북한의 자연은 아직까지 사람 손을 덜 탄 것이 분명하다.
11:00 룸으로 올라감
하교수는 먼저 올라와 있음. 들고 간 캔맥주 하나를 나눠 마시자고 하니 생각 없다고 하여 혼자 홀랑 마셔버림. TV에서는 계속 월드컵 승리 소식만 전하고 있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아 계속 본다.
11:50 세면
12:00 잠
하 교수가 내일 새벽 5시 40분 모닝콜을 부탁함.
3. 6월 5일(수) 셋째 날: 해금강(海金剛)과 삼일포(三日浦)
* 참고:
(1) 해금강(海金剛)은 무슨 강이 아니라 바다에 있는 금강산이란 뜻이다. 그 정도는 알아야 글을 읽는데 오해가 없을 것이다.
(2) 삼일포(三日浦)는 신라 때의 사선인 영랑, 술랑, 남석랑, 안상랑이 이곳에 하루쯤 다니러 왔다가 호수 경치에 취해 사흘 동안 놀았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5:40 모닝콜 소리에 기상
역시 하교수는 먼저 일어나 있음. 일어나 보니 어제 만물상 등반으로 다리가 뻐근함. 날씨는 약간 흐림. 비 올 정도는 아님.
6:10 - 6:40 1 층 식당에서 아침 식사
부총장, 하교수, 교장선생님 한 분과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한 후 호텔 뒤에 나가 장전항을 바라보며 커피까지 한 잔.
6:45 룸으로 돌아와 떠날 준비
용변, 이 닦기, 배낭 싸기.
7:50 호텔 해금강 앞에서 전체 기념 촬영.
역시 어제처럼 스피커에서 ‘반갑습니다’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음.
7:55 차 출발
8:05 온정각 도착
마지막 날이라 나도 ‘금강산 관광수첩’(금강산관광총회사, 평양)을 하나 구입. 가격이 1$인데 환전하기 귀찮아 우리 돈 2 천원을 냈더니 거스름돈은 줄 수 없다고 하여 몇 백원 손해 봄.
8:25 출발 - 먼저 해금강을 향하여
차는 왔던 길을 잠시 되돌아 달리더니 곧 양지 마을(도로의 왼쪽. 북쪽)과 온정천(도로의 오른쪽. 남쪽) 사이에 있는 도로로 들어간다. 방향은 바다쪽(동쪽). 지금까지와는 달리 북한 사람들 많이 보인다. 차가 논밭과 마을 옆을 지나기 때문. 남자들은 대개 짙은 고동색 상하복 차림이고 여자들은 그보다는 조금 다양하나 과거에 우리가 ‘뽀뿌린’이라 불렀던 질 낮은 나일론 옷을 입고 있음. 등교하는 초등학생들도 눈에 띄는데 몇 명은 TV에서 보았던 것처럼 목에 붉은 머플러를 하고 있다.
밭에는 주로 보리, 메밀, 옥수수, 감자 등이 심어져 있으며, 논은 이미 모내기를 마친 것도 있고, 소 두 마리가 쟁기를 끌면서 준비 중인 것도 있다. 나는 농촌 출신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는데, 선생님들은 입을 모아 “저래서는 농사 안 된다. 어쩌면 저렇게 엉터리로 농사를 지을꼬? 모도 너무 촘촘히 심었고, 밭이 저렇게 바짝 말라서는 아무 것도 거두지 못한다.”며 내 일처럼 안타까워하신다.
논밭 사이에 전봇대가 아무렇게나 서있는데 모양이 일정한 것도 아니고, 어떤 것은 시멘트 조각이 떨어져나가 철근이 드러난 납작한 콘크리트 판이고 어떤 것은 산에서 바로 잘라온 듯한 구부정한 생목이다.
8:42 운곡리를 지남
왼쪽으로 ‘자력갱생’, ‘총폭탄’이라 쓴 큰 입간판이 보이자 조장은 그 뒤의 마을이 ‘운곡리’라 설명. 입간판 부근에 염소 몇 마리가 보이는데 하나 같이 흰염소이다. 조장도 북한에서는 흑염소를 한 마리도 못 보았단다. 자전거 타고 가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는데 북한에서는 자전거가 부의 상징으로 번호판까지 있단다. 자전거는 모두 앞에 바구니를 달고 있음.
또 뒤에서 어떤 분이 “이래선 못 산다. 빨리 통일이 되어야지 이 사람들 불쌍해서 안 되겠다. 못 산다 못 산다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남한의 60년대만도 못하구만.” 하는 소리가 들린다.
8:47 봉화리를 지남
‘군민일치’, ‘자폭정신’이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그 뒤로 봉화리 마을이 보인다. 조금 더 가니 ‘하루 빨리 끝장내자 분렬의 비극을’이라고 쓴 입간판도 보인다.
8:50 포장도로가 끝나고 비포장도로가 시작됨.
흙먼지가 심하게 남. 조장이 설명하기를 이제까지는 현대가 포장한 관광용 도로였고, 여기부터는 북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로란다. 그래서 그런가 양옆에 철조망도 없다.
그쯤에서 주위를 보니 대나무가 많이 보인다. 거 참 이상하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바로는 이 지역은 ‘대나무 생장한계선’의 위쪽일 텐데. 아니나 다를까 조장이 설명하기를 이 대나무는 1972년 중국에서 받아온 것으로, 반은 평양에 심고 반은 금강산 지역에 심었는데 평양 것은 모두 얼어죽고 이쪽 것만 살아남았단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건물이 ‘참대 사업소’란다. 도대체 대나무가 무슨 경제 효과가 있다고 이토록 애써서 키우려는 것일까?
8:56 삼일포 인민학교와 삼일포 고등중학교를 지남
학교 앞에 ‘조국통일’이라 쓴 입간판.
9:05 차가 구릉 길로 들어섬.
양옆의 야트막한 산에는 키 작은 해송이 많음. 이곳도 그렇고 지금까지 계속 도로 중간 중간에 아직 어려 보이는 인민군들이 차 쪽을 향하여 부동자세로 서있음. 조장도 아직까지 저들이 웃거나 손 흔드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함.
9:09 차가 잠시 멈춤.
이제부터 군사지역으로 들어가므로 잠시 검문을 하는 것이란다. 모든 차를 일일이 검문하는 것은 아니고 제일 앞차의 조장이 처리하면 된다고. 차는 곧 다시 움직인다. 가면서 보니 철대문을 열어놓았다. 아마 저 문을 여닫는 데 시간이 걸리는 듯.
9:15 해금강 주차장 도착.
하차하여 5 분쯤 흙길을 걸어 내려가니 바다가 보인다. 왼쪽으로 바닷가 길을 조금 더 가니 시멘트로 만든 휴식터가 나온다.
9:23 - 9:28 휴식터에서 담배 한 대
담배를 피우며 보니 바로 왼쪽 코 앞 바닷가에 조그만 바위산 하나가 삐죽하게 서있다. 그것이 향로봉이란다. 그 향로봉의 왼쪽으로부터 한바퀴 돌아 오른 쪽으로 나오는 것이 해금강 관광이란다. 이런 기가 막힐 일이! 향로봉이라고 해봐야 우리 동네 마산에서 바닷가로 조금만 나가면 지천으로 볼 수 있는 정도가 아닌가? 거제도 해금강이나 고성의 상족암은 갖다댈 것도 없이 늘상 낚시를 가는 와현 해수욕장의 서이말 등대 아래쪽 갯바위와만 비교해도 턱없이 초라하지 않은가? 바다 앞에 돌섬이 몇 개 떠있긴 하지만 어찌 저 정도를 거제도의 여차마을과 대포 사이의 절경에 비할 것인가?
그래도 사람들은 먼저 보겠다고 좁은 바위 길로 떼를 지어 몰려간다. 길은 좁고 사람은 많으니 완전히 도떼기 시장이다. 게다가 모두들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으니 비켜라, 기다려라 소리치며 설쳐대니 이런 아수라장판이 따로 없다.
9:28 - 9:47 향로봉을 한 바퀴 돎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안 볼 수는 없지. 향로봉에 다가가자 그 곳을 담당한 조장이 왼쪽 해안에 보이는 대포 2 문을 사진 찍으면 안 된다고 연신 소리친다. 이곳도 예외 없이 북한의 ‘환경감시원’이 곳곳에 있어 관광객들을 따라 다닌다.
옆 사람이 밀치는 바람에 바위에 무릎을 긁혔다. 줄을 서서 엉금엉금 황소걸음으로 걸었는데도 어느 새 향로봉 끝의 바닷가에 닿았다(9:36). 바위 끝에 올라서서 바다를 한번 둘러보려니 밑에서 사진에 나오니 비켜달라고 아우성이다. 그래, 당신들에게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지. 지금은 열심히 사진이나 찍고 여기 경치는 나중에 사진을 통해서나 봐라. 그래도 그것 참 성가시다. 빨리 휴식터로 돌아가서 담배나 피우는 것이 낫겠다.
9:52 휴식터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얼른 차로 돌아오니 10:00.
오는 길에 보니 길가에 책에서나 보았던 꽃이 피어있다. 어떤 어르신 말씀이 “초롱꽃이네. 옛날에는 우리 동네에도 많았었는데. 참 오랜만에 본다.” 하신다. 역시 이 쪽이 자연은 덜 훼손된 모양이다. 구호 바위만 빼고.
10:07 해금강 주차장 출발. 왔던 길을 되돌아감.
10:12 검문 위해 잠시 정차 후 다시 출발.
10:32 온 길의 중간쯤에서 오른 쪽으로 방향을 돌려 산길을 올라감.
소나무가 우거져 있음.
10:34 주차장도 아닌 길 한가운데 정차.
관광객이 모두 하차하여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감.
10:40 장군대 도착.
입구에 ‘김정숙 녀사 사적비’가 세워져 있고, 삼일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시멘트로 만든 휴식터가 있음.
곧 아래쪽으로 자연석을 깎아 만든 계단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 다 내려가서 호수 위에 설치한 구름다리를 건너 감. 다시 큰 바위들 사이로 좁은 산길을 올라감.
이곳이 김일성의 본처이자 김정일의 생모인 위대한 공산주의 혁명투사 김정숙 녀사의 사적지라더니 사방의 모든 바위에 김정숙에 관한 내용을 큰 글씨로 새겨 놓았음.
10:54 봉래대 도착.
봉래대는 한 개의 큰 화강암 위이며 휴식터나 정자 같은 시설물은 없음. 여기서도 삼일포는 잘 내려다보임.
도착 시간과 이런 저런 소감을 기록하고 있는데 누가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북한의 여자 환경감시원이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또 가슴이 섬뜩.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 여자가 “뭐하시는 겁네까? 작가입네까?” 하고 묻는다. 길게 설명하기 싫어 그냥 “네”하고 대답하자, 내가 목에 걸고 있는 ‘관광객 신분증’을 들고 살피더니 “교수시구만요. 뭐를 가르치는 교숩니까?” 하고 다시 묻는다. 다음은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다.
“상담입니다.”
“상담이 뭡네까?”
“마음이 괴로운 사람이 찾아오면 그 사람 말을 잘 들어주어 마음을 풀어주는 일입니다.”
“거 참 신기하구만요. 그래서 마음이 풀립네까?”
“네. 내가 말을 하지 않고 잘 듣고만 있으면 상대방이 스스로 해답을 찾습니다.”
“그거 미신 아닙네까?”
(순간 기분이 상한다. 미신이라니? 지금까지 내 직업을 미신이라고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속에서 ‘진짜 미신은 당신들이 믿고 있는 김일성․김정일교입니다’라는 말이 목에까지 올라온다. 그러나 입 밖으로 냈다가는 집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아 꾹 참는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니 그 북한 여자 말이 전혀 일리가 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한다.)
“어쩌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과거에는 무당이나 점쟁이들이 사람들의 심적 고통을 덜어주었으니까. 그러나, 상담은 이론에 기초한 학문입니다. 그러니까 미신보다는 위험이 덜 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프로이드란 사람이 이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 중 한 명입니다.”
“그럼 상담이 심리학입니까?”
(야, 이것 봐라. 프로이드를 아는 모양이네. 심리학이라는 것도 알고.)
“네 맞습니다. 상담을 상담심리학, 영어로는 counseling psychology라고도 하지요.”
“그렇군요. 선생님은 어느 학교 교숩니까?”
“경상남도 마산에 있는 경남대학교입니다. 우리 학교 전 총장이 ‘통일부’ 장관을 하신 박재규 장관입니다.”
“아, 박재규 선생이요. 어쩐지 경남대학교를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했습니다. 그 분은 다시 장관 안 합니까?”
“글쎄요. 그건 잘 모르지요. 워낙 유능하고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알 수 없지요.”
......
그 외에도 그 여자는 남한의 몇몇 대학교에 설치돼 있다는 ‘북한학과’의 교육내용과 졸업생들의 진로에 관해서도 묻고, “남조선 사람들이 북한 사정을 제대로 알기나 합니까?”와 같은 시비조 질문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일행에서 가장 뒤쳐지게 되어 11:08에는 “이제 저도 가 봐야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는 봉래대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뒤에서 “좋은 글 많이 쓰시라우요.”하는 인사가 들려왔다. 혼자 걸으며 ‘관광지 곳곳에 서있는 저 북한 사람들의 임무 중 하나가 남한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11:25 단풍관(삼일포 호수에 접한 북한 식당. 운영하지 않고 있었음) 도착.
단풍관 앞에 재떨이가 있기에 담배를 한 대 피운 후 단풍관을 한 바퀴 돌아보고 11:29 시멘트로 포장된 제법 넓은 언덕길을 올라가기 시작. 그 위에 버스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음. 버스를 지나쳐 왼쪽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삼일포 관광의 마지막 코스인 연화대가 보임.
11:38 연화대 도착.
삼일포가 가장 잘 내려다보인다는 곳. 1964년에 만들었다는 시멘트 정자가 있음. 연화대에서 오른쪽에 있는 봉래대를 내려다보니 봉래대를 이루고 있는 큰 화강암에 대문짝만한 글씨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만세’라고 새겨놓았다. 이놈들, 그냥 놔둔 바위가 없네. 이 지역을 완전히 낙서판으로 만들어 놓았군!
갑자기 조장의 설명이 생각이 났다. 북한 사람과 이야기할 때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호칭을 특히 주의해야 하는데, 둘 다 ‘장군’이라고 하면 가장 무난하단다. 장군이라? 그래서 바리봉에도 ‘천하명장 김정일 장군’이라 써놓았군. 그럼 군인이란 말인데 그렇다면 북한은 완전한 군사국가라는 뜻이군. 나 같이, 일사불란한 것은 체질적으로 안 맞고 명령에 죽고 사는 것을 죽기보다 더 싫어하는 놈은 정말 못 살 곳이네.
11:44 차에 도착하여 11:50 출발
이것으로 모든 관광 일정을 마침. 이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차에 올라탄 우리 일행은 긴장이 풀렸는지, 삼일포 구경을 반나절도 못 돼 마쳤으니 이제부터는 ‘삼일포’가 아니라 ‘반일포’라 부르자며 우스개 소리를 한다.
어제의 만물상 코스가 본격적인 등산이었다면, 호수의 남서쪽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동산을 여러 번 오르내린 오늘의 삼일포 코스는 몸풀기 산행이라 할 만하다. 해금강 코스는 ‘산보’ 정도이고.
12:08 온정각 도착.
온정각 앞에 다 오자 조장은 “아 참, 저걸 설명 안 해 드렸네.” 하더니, 온정각의 남서쪽으로 길건너에 빤히 보이는 흰색 고층 건물이 ‘김정숙 휴양소’라고 설명한다. 크기나 모양이 어제 보았던 ‘금강산 려관’과 거의 같아 보인다. 현재는 현대아산이 임대한 상태란다.
12:10 - 1:05 온정각에서의 마지막 식사
‘금강’ 술도 한 잔.
1:05 - 1:45 온정각 앞마당의 파라솔 밑에서 경남대 사람들끼리 캔맥주(3$) 한 개.
1:45 - 1:55 온정각 출발, 호텔 해금강 앞 도착.
차에 타자마자 조장(10 만원)과 운전기사(5 만원)에게 사례금 전달.
호텔 앞에 내려 이 열 종대로 줄을 서서 출입국사무소로 출발.
스피커에서는 ‘안녕히 다시 만나요’라는 북한 여자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옴.
누군가 “노래 참 구슬프게 부르네” 하는 소리가 들림.
2:00 출국 수속
매우 빠르게 진행돼 곧 끝남. 출입국사무소를 나와 설봉호를 향해 걸어갈 때의 심정은 섭섭함이나 아쉬움보다는 해방감과 반가움. (설봉호는 계속 우리 옆에 정박해 있었는데도 다시 보니 반가움. 저 배에서부터가 자유의 땅이다!)
이런 느낌을 갖는 내가 나 자신도 신기함. 며칠이나 되었다고, 그리고 뭐가 그리 부자유스러웠다고 이런 느낌이 들까? 그렇다면 이 북한 땅에서 나는 알게 모르게 어떤 압박감을 가졌었단 말인가? 아마, 그런 모양이다. 어두워지면 호텔 경계선 밖으로 나가지 말라, 재떨이가 없는 곳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말라, 북한 사람과 대화할 때 이런 말은 하지 말라, .... 하지 말라, ..... 하지 말라, 하는 규제들이 그 때는 몰랐었는데 이제 보니 꽤나 답답하고 부담스러웠나 보다.
그래서 그런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배에 탐.
2:20 설봉호의 내 자리에 앉음.
올 때와 같은 자리(크리스탈룸 D열 53번). 자리에 앉자 안도감에 ‘휴’하고 한숨이 나옴.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그리고 바로 배에 오르면서 승무원들에게 받은 ‘남북왕래자 휴대품 신고서’를 작성. 산 것이 없으니 쓸 것도 없어 순식간에 끝.
2:22 장전항을 보면서 담배 한 대
여기서는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언제라도 피울 수 있다. 이 놈들아, 여기서 피우는 것은 너희들도 어쩔 수 없겠지? 여기는 너희들 땅이 아니라 자유의 땅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심정에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내 옆에서 담배를 피운다.
2:30 배가 움직이기 시작.
낚시를 좋아하는 학교 직원 조성수 씨는 고기들을 그냥 두고 오는 것이 아쉬운지, “낚시 관광만 해도 사람들이 많이 올겁니다. 나도 다음 올 때는 꼭 낚시대를 갖고 와야지” 하며 결심을 다진다. 옆에서 담배 피우던 사람이 꽁초를 휙 하고 바다에 버린다. 저절로 눈살이 찌프려진다. 이 맑은 바다에 꼭 그러고 싶냐?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애연가들이 욕을 먹어요. 너 같은 놈은 북한에서 계속 살아야 돼. 나를 봐라. 꽁초는 항상 재떨이나 담배갑 속에 넣잖아. 재는 바다에 떨어도. 뭐? 오십보백보라고?
2:50 전속력으로 전진, 방향은 동!
항구에서 천천히 움직이던 배가 이제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방향은 동! 벌써 육지로부터 꽤 멀어졌다. 금강산도 윤곽만 흐릿하게 보인다.
배 안 분위기는 북으로 갈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차분하다. 차분하다 못해 축 쳐졌다. 갑판에 나와 바다를 보고 있는 사람들도 몇 명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객실에서 잠이 들었고, 3 층의 선물 코너에만 사람들이 몰려있다.
3:00 규제 물품 돌려줌.
북한에 들어갈 때 맡겨 두었던 규제 물품들을 조장들이 돌려줌. 대부분이 휴대폰. 군사분계선을 넘어야 통화가 된다는 조장의 설명이 이미 있었음에도 대부분은 받자마자 핸드폰을 두드림. 불통. 나는 유홍준 저 ‘금강산’을 돌려 받음. 반가운 마음에 바로 읽기 시작.
3:50 군사분계선을 넘음.
안내 방송에서 지금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으며, 배의 속도는 17.5 노트라고 알림.
17.5 노트라면 1 노트가 1,852m니까 시속 32.4km네. 되게 느리구만. 좀 더 빨리 갈 수 없나?
갑자기 여기 저기서 핸드폰 소리들이 요란. 이제 통화가 되는 모양. 그러나, 어디선가 “역시 011이 좋긴 좋구만”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 011 이외의 다른 것들은 아직 안 되는 듯.
4:00 - 5:20 배 위에 올라갔다 내려와 독서
객실의 두 대의 TV는 어제 있었던 한국 월드컵 축구를 다시 보여주고 있으나, 화질이 안 좋고 벌써 볼만큼 보아서인지 보는 사람들이 없다. 대부분 자고 있음. 나는 책을 덮고 배 위로 올라감. 배 위에도 사람들이 없음. 완전히 파장 분위기. 나도 빨리 속초에 도착했으면 하는 바람뿐. 잠시 배 위에 있다가 다시 내려와 독서.
5:20 - 5:40 배 위의 설봉 라운지에서 맥주
배 위에 다시 올라가니 설봉 라운지에서 맥주를 마시고 계시던 부총장님과 마산여고 노원섭 교장님이 부르심. 마침 위로 올라온 하 교수도 참석. 생맥주 500 cc. 잠시 후에는 경남대의 전신인 해인대학교에 다녔다는 노인 한 분도 합석. 서빙하는 필리핀 친구에게 재떨이를 갖다 달라고 했으나 꿩구어먹은 소식. 몇 번을 이야기한 후에야 가져옴.
5:40 뱃전으로 감.
속초에 6시 도착 예정이라 해서 혹시 육지가 보일까 하여 뱃전으로 나감. 그러나 전혀 보이지 않음. 바람이 거세지만 계속 뱃전에 서서 앞을 보고 있음.
5:55 흐릿하게 육지가 보임.
6 시 도착이라는데 왜 이렇게 육지가 멀리 보이지? 날씨가 흐려서 그런가?
6:10 속초항이 잘 보이며 우리 배는 그쪽으로 접근해 가고 있음
안내 방송에서 도착이 30 분 늦어져 오후 6시 30분에 속초항에 닿겠다고 알림.
객실 TV에서는 이제 미국과 포르투갈의 축구 경기를 중계하고 있음. 많은 사람들이 시청에 몰두. 방금 미국이 한 골을 넣어 1 : 0 으로 앞서고 있음.
6:13 오른 쪽에 노란색 관광용 잠수함이 보임.
역시 우리 대한민국이야. 북한에서는 관광용 잠수함은커녕 노란색도 보지 못했다.
6:16 배가 속초항의 방파제 사이를 통과함.
방파제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거나 산책을 하고 있음. (물 반 고기 반인 장전항에서도 낚시하는 사람은 못 보았는데.) 활기 찬 모습들이 괜히 반가움. 내가 지금 너무 감상적인가?
6:30 하선 시작.
나는 거의 끝에 내림. 배에서 내리자마자 출입국사무소에 길게 줄을 서서 입국 수속을 기다림.
7:10 현대 속초 여객터미날 주차장에서 차 승차
역시 맨 꼴찌로 입국 수속을 마치고 바로 관광버스에 승차(올 때와 같은 차).
7:17 속초 출발.
차에 있는 TV를 통해 미국 대 포르투갈 축구 시청. 승객들은 모두 시청에 몰두. 모두들 포르투갈을 응원. 그래야 우리가 16 강에 올라가기가 유리하니까. “때려야, 시끼야” 욕까지 하면서 흥분.
나는 축구보다도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3 일 전만 해도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속초 시내가 화려하고 생기에 넘치는 것으로 느껴져 나 자신도 깜짝 놀람.
7:40 - 9:17 저녁 식사.
속초와 양양 사이의 ‘어대진’ 횟집과 ‘초당’ 집이 함께 있는 건물 1 층에서 회와 소주. 두 집이 같은 집인지 음식은 회인데 먹기는 ‘초당’ 집에서 먹음. 전원이 다시 한번 자기 소개를 하고 부총장님의 인사말씀과 건배 제의 후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 긴장이 풀려서 마음 놓고 음주. 얼큰히 취함. 옆자리에 앉으신 창원여고 강충연 교장 선생님께서 내가 메모하는 것을 보셨던지 기행문이 완성되면 한 부 보내달라고 말씀하심.
부총장님이 재촉하여서야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섬. 일어서서도 “여기 속초에서 한 잔 더 하자”는 호기 로운 목청이 여기저기서 들림. 나도 덩달아 “좋아, 좋아. 한 잔 더 해” 하며 박자를 맞춤.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도 남은 사람 없이 모두 차에 오름. 술 취한 상태에서 출발. 이제부터는 7번 국도를 쭉 따라 내려갈 것임.
10:37 동해시 지남.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듦.
11:25 -11:37 장호-용화 관광랜드 휴게소.
자다 깨니 휴게소. 위치는 삼척 조금 밑. 용변.
6월 6일(목) 1:06 병곡휴게소
2:44 경주 시내에서 경주 선생님 두 분 하차.
2:50 경주 I.C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진입.
3:07 - 3:25 언양휴게소
4:00 김해 I.C로 나가 김해 선생님들 내려드리고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
4:11 남쪽 하늘에 그믐달이 처량하게 떠 있음.
4:18 창원터널 통과.
창원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창원 선생님들을 내려드림.
4:47 마산역 도착. 하차.
벌써 날이 밝아옴. 너무 피곤함. 바로 택시를 탐.
5:05 집 도착.
몸은 피곤해도 구경 한 번 잘 했네!
정작 몸이 피곤했던 것은 한밤중에 마산과 속초를 오가는 과정. 북쪽에서 불편했던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 경치로만 본다면 금강산은 ‘여기 아니면 안 된다’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님. 물론 경치가 특히 좋다는 가을에 간 것도 아니고, 금강산 중에서도 내금강은 전혀 못 보고 외금강도 극히 일부만 보았지만 그래도 내 판단이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닐 것임.
(경남대 김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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