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너더리통신 14/170325]쿨cool한 처갓집이 나는 좋아!
글감으로는 아주 드물게, 처갓집 이야기이다. 사실은 처가(妻家)라고 해야 맞지만, 굳어진 우리의 언어습관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역전앞, 초가집, 외갓집도 마찬가지이다. 3남 3녀, 아내의 형제관계이다. 맨 위로 나와 띠동갑인 처형은 아내와 16살 차이, 장모님이 비교적 일찍 돌아가신 탓에 예전부터 ‘새끼장모’라고 불렀다. 그 밑으로, 최근 칠순七旬을 맞은 둘째 처형, 51년생 큰처남, 55년생 둘째처남 그리고 나의 절친이었던 손위처남(전라고 6회. 전주에서 치과의사이다). 마지막으로 얼굴 보지도 않고 데려간다는 교장선생님의 셋째딸이 나의 아내이다. 장인어른은 50이 거의 다 되어 낳은 막내딸만 보면 어쩔 줄 모르는 ‘딸바보’였다. 오죽했으면, 나같은 ‘실實한’ 청년을 사위로 맞는 것을 반대했을까. 문제는 절친 처남의 반대가 더 기가 막혔다. 이유인즉슨 “가장 친한 놈이 가장 사랑하는 동생과 결혼하면 1년도 안가 찢어질 것이 불보듯 뻔한데 둘의 예상되는 비극을 어찌 반대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초년병 기자시절 전주에 내려가 비싼 ‘노란술(양주)’을 한두 번 사주며 찬성까지는 아니지만 침묵하라고 종용하기도 했으니.
아무튼, 언제부터인가 칠순이나 회갑을 맞는 형제(‘남의 식구’는 해당되지 않는다)가 ‘1박 2일’ 가족소풍을 쏘기로 하였다. 하여 칠순을 맞은 둘째처형이 앞장서, 지난 18일 대천 ‘환상의 바다 리조트’에 모여 즐겁게 놀기로 한 것이다. 이 아니 좋은 일인가. ‘완벽한 모계사회’라고 여기저기서 입들을 삐죽거리지만(힘없는 남자끼리 모여, 그것도 작은 소리로), 세상이 하수상하다고 할 것도 없다. 어쩌면 이것이 ‘정상’인지도 모를 일이다. 당연히 참석률 100%, 그 누가 얼마나 간이 크다고 엄처嚴妻 앞에서 ‘못간다’ 핑계를 댈 것인가. 이래서 처가모임은 갈수록 잘된다. 그러나 친가모임을 생각해 보라. 어찌 그리 갈등이 많을까? 고부갈등, 형제갈등, 동서갈등, 시누이-올케갈등, 갈등의 집합체가 따로 없다. 잘되는 집이 어쩌면 ‘비정상’인 세상이 되었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이모와 고모를 생각해 보자. 아이들에게 선호도와 친밀도를 물어볼까? 대답은 100%일 터, 세상은 확실히 변하고 크게 바뀌었다.
모두(11명) 거의 정시에 모여 저녁식사 장소로 향했다. 숙소로부터 대천 해수욕장 모래밭을 3km쯤 걸어 도착한 곳이 한화리조트 16층 미가. 오션 뷰ocean view가 장난이 아니다. 한마디로 캡이다. 게다가 태양이 막 바다 속으로 잠기는 낙조落照의 풍경은 맛있는 자연산 회를 앞두고도 거기에 심취했다. 소폭과 소주가 마치 맹물같다. 몇 잔을 마셔도 취할 줄을 모른다. 숙소로 돌아와 헤드쿼터에서 2차는 당근. 아아, 오늘의 주인공이 연주회를 갖겠단다. 상자를 열자 오카리나와 플루트 그리고 연주대. 의상까지 신경썼다. 이 날을 위하여 교회 성가대 등서 3년여를 갈고 닦았다는데, 가족들 앞이라 더욱 떨린다며 겸손해한다. 개똥벌레, 올드블랙 조, 연가, 하늘나라 동화, 등대지기, 사랑으로, 내 맘의 강물, 바위섬 등 8곡의 선율이 방 안에 울려퍼지자 일순 모두 숨을 죽인다. 노랫말은 또 어찌나 좋은지, 몸에 착착 감기는 듯하다. 예상은 했는지 역시 수준급이다. 어디 양로원, 요양병원 등 찾아다니며 재능기부를 해도 충분할 듯하다. 곡이 끝날 때마다 당연히 앙코르(재청) 요청이 이어지고. 박수가 쏟아졌다. 참으로 멋졌다. 어두어지는, 그득한 봄바다를 지척에 두고 전망좋은 방에서의 이런 칠순잔치, 어디 흔하랴. 우아하다. 칠순의 할머니가 남편과 언니 그리고 동생들과 동생댁, 제부弟夫 앞에서 제대로 솜씨(특기)를 뽐냈다.
아담한 체구의 처형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형님(동서)은 국립대 교직원으로 정년퇴직하여 ‘연금부자’인 셈이다. 자녀들도 미국에서 제자리를 잡았고, 소위 말하면 ‘걱정 하나 할 것없이’ 노후를 행복하게 지낼 일만 남은 분들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될 일도 아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늘 가지고 있어야 얼굴에 빛이 나는 법. 이제껏 잘 살아왔고 잘 늙어가고 있는가? 추하게 늙어가고 있는지? 얼굴만 봐면 훤히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우아하게 늙어가야 하는 법이거늘. 세월 앞에 겸손할 줄도 알고, 남들의 입장을 고려해 늘 배려하는 미덕도 가질 일이다. 처남이 직접 담아온 막걸리는 또 얼마나 감치는 맛인가. 샴페인에 와인에 흥이 갈수록 도저해진다. 이들을 낳아 기르고 가르쳐 사회인으로 우뚝 서게 만드신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함께 하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막내사위는 이런 ‘기특한’ 생각도 할 줄 안다. 밤이 깊어간다. 자매들은 자매들끼리 새벽이 다가오도록 수다떨기에 바쁘고, 나의 동서의 ‘세 명의 처남들 이럴 때 기분내라’고 각각 독방을 얻어주는 배려가 돋보였다. 아름다운 밤이다. 이런 밤이 1년에 몇 번이나 있으랴. 내년엔 처남이 회갑이다. 아예 2박3일로 기분 한번 더 내자고 한다. 남해와 여수 오동동 투어를 제안한다. 좋고말고! 만사 제치고 응하리라.
60을 넘은 아들 3형제의 우애엔 빈틈이 없는 듯하여 더욱 보기가 좋다. 사는 형편도 비슷비슷하달 수 있어 다행이고, 무엇보다 흔히 말하는 보수네 진보네 하는 ‘이념갈등’이 없이 한목소리이니, 어떤 밤샘토론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장인-장모 합동제사를 현충일 바로 전날로 정하고, 장남댁에서 지낸다. 설명절은 작은아들이 양력설로 지내는 걸로, 추석은 막내아들집에서, 의사결정이 신속하다. 의사인 막내아들, 추석연휴에 외국나들이 몸살을 대다 아예 정식 추석 1주일 전에 지내는 것으로 하자는 ‘불경스런 제안’에도 두 형님 오케이다. 뭐,날짜가 꼭 그날일 필요가 있을까. 같이 모여 부모님을 추도하고 명절을 기념하여 형제자매가 모여 즐겁게 놀면 되지 않겠는가. 역사상 없던 21세기 '신시대'가 아닌가. 그 덕분에 나는 설도 두 번, 추석도 두 번 쇠는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조부모 합동제사는 처숙부님이 돌아가시는 날까지는 지내기로 하였으니, 이런 쿨한 패밀 리가 어디 흔하랴. ‘명절 스트레스’가 있을리 없으니 며느리들도 낯 붉힐 일이 없다. 역시 형제애는 아들들이 앞장서 보여줘야 ‘정답’이다.
1년에 몇 차례, 이렇게 우애좋은 처가모임에 꼭 낄 때마다 기꺼이 어울리며 좋아하다가, 한편으로는 금세 얼굴이 어두워지고 만다. 그것은 물어보나마나 우리집 대가족모임이 떠올라서이다. 왜 아니겠는가? 처갓집은 이렇게 화기애애하거늘, 우리집은 왜 잘 모이지도 않고, 모여도 서로 얼굴을 으등거리며, 서로 못잡아 먹어 죽을상인가 말이다. 가끔씩 아내가 내 안색을 살피는 까닭이 그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문 문구가 열친척지정화(悅親戚之情話)가 아니던가. 우리집 모임만 생각하면 우울하다. 양친兩親이 고향에서 구존俱存하는 복을 누리건만, 이것만큼은 마음대로 안되는 일. 처갓집(처남들집)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는 별 것도 아닌 아내의 말에도 심통이 나 같은 말도 퉁명스럽게 내뱉아 서로 얼굴을 붉히고 만다. 언제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그나저나 지극히 쿨한 처갓집 모임에 나는 늘 감초가 되는 것으로라도 자족自足할 밖에. 칠순을 맞은 둘째처형과 형님의 건강하고 오붓한 노후생활을 기원한다.
첫댓글 친가 처가 다들 건강의 축복을 받으셨네.우천은 여복도 많으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