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문을 활짝 열면(맥추감사절) / 시100:1-5
유대인의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경우에 처해도 배움의 자세를 갖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이 모습, 이 대로를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감사한 만큼 인생은 행복해 집니다. 행복은 소유에 정비례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정비례합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흘러 들어갑니다. 결국 물질도 감사하는 사람에게 흘러들어 갑니다. 건강도, 명예도, 은혜도, 행복도 감사하는 사람에게 흘러들어 가는 것입니다. 금년 상반기를 보내고, 하반기를 시작하는 첫 주일 맥추감사절로 지키면서 본문을 중심으로 “감사의 문을 활짝 열면”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감사의 문을 활짝 열면,
1.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본문 시100:4에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집, 성전을 그 문, 그 궁정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궁정은 아무라도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왕이나 왕비, 왕자, 공주, 대신들이나, 시중을 드는 자들이 들어가는 곳으로, 일정한 자격이 있는 자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예배당에 아무나 들어오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무나 들어오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하나님의 아들딸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택하신 백성들, 왕 같은 제사장이 들어오는 곳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궁정인 이 예배당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궁정의 문을 밟은 것 만해도 영광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 주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전은 세상의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은혜롭고 복된 자리입니다. 그래서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84:2)라고 고백합니다. 시편 본문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감사 찬송함으로 예배당에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형식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즐겁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나아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을 볼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하여 세상을 사랑 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의 연락하는 곳이 너무 좋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즐기는 곳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롬 살롱, 나이트클럽, 술집, 요정 등 너무 화려하고, 풍성하고, 즐거운 곳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성전은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곳이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곳으로, 할 일 없는 어리석은 자들이나 가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는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전에 나와 감사로 예배하는 자들과 세상에 속하여 세상 연락을 좋아하는 자의 결국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인생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한번 뿐인 인생이 후회 없는 인생, 낭비 없는 인생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고, 방향을 잘 잡아서 기쁨과 보람을 누리는 인생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인생이 펼쳐질 수 있을까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 우리들의 삶은 진정 보람 있고 축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감사의 문을 활짝 열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2.은혜와 믿음이 더욱 충만해 집니다. --- 본문에 보면 성도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먼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3절 전반부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찬양하며 나아가야 할 가장 큰 이유는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까닭입니다.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인 까닭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예배드려 영광을 돌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다음에 우리를 친히 지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3절 후반부에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했습니다. 우리 인체를 신묘막측 하게 지으신 분이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분이요, 우리를 택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로 삼아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지으시고, 하늘 기업의 상속자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이시오,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3절 후반부에 계속해서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 했습니다. 우리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진정한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주셔서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지켜주시고 돌보아 주시는 분이 십니다. 대표적인 애완동물 가운데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있습니다. 고양이와 강아지는 기억장치가 이상하게 되어 있어서 특별한 차이점이 있다고 합니다. 강아지는 주인이 10가지를 잘못하고 한 가지만 잘해주면 그 한 가지 잘해주는 것 때문에 주인을 졸졸 따르고 고맙게 생각한답니다. 반면에 고양이는 10번 잘해주다가도 한번 잘못해 주면, 잘해준 것 싹 잊어버리고 잘못한 것 때문에 토라져서 주인을 잘 따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도들도 보면 강아지 형의 신앙 자세가 있고, 고양이형의 신앙 자세가 있습니다. 고양이형의 신앙 자세는 하나님이 열 가지 복을 주시다가도 한 가지 조그마한 고난을 허락하시면 그것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하며, 절망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강아지형의 신앙 자세를 가진 사람은 열 가지 어려움이 있다가 한 가지 좋은 일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송합니다. 골3:15~17에 보면 각 절마다 감사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15절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했고, 16절에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했으며, 17절에는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늘 감사하게 되면 *은혜를 은혜로 아는 믿음이 생깁니다. 먼저 감사를 넘치게 하면 자족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고, 은혜가 은혜로 우리에게 감격적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나타납니다. 감사할 일이 더 많이 생기게 됩니다. *은혜 체험을 통해 구원의 확신이 넘치게 됩니다. 눅 17장에 보면 열 명의 문둥이가 예수님께 나와 제사장에게 보여주려고 가다가 고침 받은 사실을 알고 그 중 한 명 사마리아 인만이 주님께 나와 감사했을 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하고 말씀 하시면서 (눅17:19)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성도가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외면하고 감사치 않을 때, 지금까지 너를 돌보아 주었는데, 너의 구원을 위해 나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했는데 너는 내게 감사할 줄도 모르는구나! 하시며 섭섭해 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감사의 문을 활짝 열어 은혜와 믿음이 더욱 충만해 지기를 소망합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이론이나 교리로만, 머릿속으로 만 ‘구원’받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예수 믿고 용서받고 거듭난 구원받은 자의 삶을 현실의 삶 속에서 누리며 살길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 복된 하늘의 신령한 선물들을 받아 누리며 평강 가운데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