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의 이법(理法)에 따르는 삶
해담 조남승
새봄을 맞아 어딜 가나 백화난만(百花爛漫)이더니 바람에 꽃잎이 눈처럼 날리고 나자 이젠 신록이 창창해졌다. 바야흐로 입하가 되면서 모란의 꽃이 탐스럽게 피어나고 찔레꽃의 그윽한 향기가 노스탤지어(nostalgia)에 젖어들게 한다.
어느새 꽃이 진 매화, 살구, 벚나무 가지엔 어린열매들이 조랑조랑 매달려 도란거리고 있다. 아마도 꽃이 피었던 것은 열매를 맺기 위함이었던 같다.
이렇게 식물들은 열매를 맺기 위해 꽃이 피고, 열매는 다시태어나기 위한 씨앗이 된다.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히는 모습을 보며 숲속의 새들도 종족번식을 위해 짝을 부르며 요리조리 숨박질을 한다.
정말로 신록의 향기가 그윽한 호시절이다. 하지만 금세 녹음이 짙어지고 하늘에 기기묘묘한 구름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한 여름이 다가오게 된다. 그리곤 가을과 겨울을 거쳐 또다시 봄이 오고, 지금과 같이 훈풍에 청보리가 물결치는 신록의 계절이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계(四季)의 변화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연의 섭리란 실로 오묘하면서도 위대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대자연에서 파생된 하나의 소우주
대자연의 오묘한 생성변화에 대하여 중국의 염계선생(濂溪先生)은 형이상학적인 태극도설(太極圖說)에 의해 설명하고 있다. 근사록(近思錄)에 실려 있는 그의 말을 간추려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감각으로 느낄 수 없는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을 내포하고 있으니 무극이 곧 태극이다. 태극은 음과 양으로 나뉘어 양의(兩儀)를 성립한다. 이 양의의 음양(陰陽)은 태극의 동(動)에서 양(陽)이 생성되고, 그 움직임이 극에 달하면 고요해지며(動極而靜/동극이정), 고요함에 이른 정(靜)에서 음(陰)이 생성된다(靜而生陰/정이생음). 음의 고요함이 극에 달하면 다시 움직이게 됨으로써 동(動)에 이르게 되어(靜極復動/정극부동) 양(陽)으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 따라 음과 양이 끊임없이 반복하여 밤과 낮이 바뀌는 것과 같이 쉬지 않고 계속하여 순환하게 된다. 이토록 양(陽)이 변하고 음(陰)이 합해서 수화목금토(水火木金土)를 낳는다. 이 다섯 가지 기운이 순차로 벌어져 춘하추동의 사시(四時)가 운행되어지는 것이다.’
‘또 무극(無極)이라는 진실한 것과 음양오행이라는 순수한 것이 자연스럽게 합하여 건(乾)과 곤(坤)이 이루어진다. 여기서 건도(乾道)로서 남(男)을 이루고, 곤도(坤道)로서 여(女)를 이룬다. 이 남녀 두 개의 기운이 서로 감응하여 만물이 발생됨으로서 그 만물이 차례차례로 잇달아 나고 또 나서 변화의 끝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대자연의 위대한 현상과 관련하여 노자는 도덕경에서“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이란 말을 하였다. 즉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道)를 본받고, 도(道)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뜻이다.
음양의 조화와 변화에 의해 생성소멸을 거듭하는 자연의 법리(法理)에 따라 초목을 비롯한 모든 생물체들이 생장, 번식, 운동을 하며 존재하게 된다. 사람 또한 이러한 자연의 섭리와 함께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천지만물이 모두 자연을 본받고 자연에 의지하여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이든 자연의 순리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서 최고의 선(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노자는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과 같이 살아가는 것이라며 상선약수(上善若水)를 강조하였다.
주염계와 노자의 두 글을 보면서 동양학이나 한의학에서 말하는 천인합일론(天人合一論)의 사상이 떠오르게 된다. 천인합일론에 의하면 인간은 대자연에서 파생된 하나의 소우주라고 말한다. 사람의 인체구조와 우주자연의 현상을 형이상학적으로 접목시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운행질서와 법칙에 의해 발생하는 천기(天氣)의 현상인 오운육기(五運六氣)와 지구에 오대양육대주가 있듯이 사람의 장부도 오장육부로 구성되어 있다. 또 일 년이 12개월과 365일로 되어있듯이 인체의 기와 혈 역시 12경락과 365혈로 이루어져 자연의 현상과 같이 한시도 쉬지 않고 순환됨으로서 생명이 유지된다.
이와 같이 소우주라고 말하는 사람 또한 자연계의 하나인 만큼 자연의 현상에 따르는 것이 순리이다. 봄에 아름다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새잎이 돋아나듯이, 사람도 인생의 봄기운이 왕성한 20~30대에 이르게 되면 자연의 이법에 따라 사랑의 꽃을 피우고 결혼을 하여 인생의 새 출발을 해야 한다.
결혼을 하면 자연히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게 되고, 여름철과 같은 40~50대가 되면 자식을 키우고 가르치는 일이 본분이므로 그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그리고 가을에 해당하는 60~70대가 되면 자식을 결혼시켜 성가(成家)를 이루게 한다. 성가를 이룬 자녀 역시 아이를 출산하게 됨으로서 한 가정의 부모이자 조부모가 된다. 또 인생의 겨울에 해당하는 80대가되면 손주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것을 생의 낙(樂)으로 삼으며 여생을 보낸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인생의 자연스러운 모습인 것이다.
자식만 없으면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한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게 인생이련만, 현대사회는 농본주의시대를 지나 산업화시대를 거쳐 정보화시대가 되고 보니 격세지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실로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의 섭리인 상생보단 치열한 경쟁이 우선시되는 복잡한 사회가 바로 현대사회다. 게다가 일자리 부족에 의한 청년실업과 물가의 폭등에 의한 생활고 등 많은 문제들로인하여 젊은이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따라서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결혼을 해도 육아와 교육문제로 출산을 포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출산을 해도 딱 한명만 낳겠다는 게 현 세태이고 보니 이에 따른 저 출산의 문제가 실로 심각한 현실이다.
2020년 OECD국가의 출산율 통계를 보면“이스라엘이 2.90명으로 1위이고, 2위 멕시코 2.08명, 3위 프랑스 1.79명, 미국 14위1.64명, 일본 35위1.33명, 한국 38위0.84명이다.”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에서 최하위수준이다.
게다가 지난 2022년엔 0.78명이라는 충격적인 통계가 발표되었다. 설상가상으로 2025년엔 0.52명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으니, 저 출산의 문제는 이제 인구절벽이라 말할 정도로 위기의 비상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사회문제와 문화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의 샘 리처드 사회학교수도 한국의 미래에 대하여 저 출산을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바 있다. 또, 그 원인으로 한국 부모들의 극심한 교육열이 원인이라고 진단하였다.
그야말로 저 출산의 문제는 주거, 보육, 교육, 일자리, 복지 등 너무나 많은 사회적 문제점들이 복합적으로 엉키어있을 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성향과 인생관에 따라 문제가 상이함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만족스러운 대책을 내놓기가 그리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내가 다년간 결혼식 주례를 보면서 신랑신부와 그의 친구들로부터 들었던 바로는‘첫째, 신혼살림을 차릴 집은 있어야 결혼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둘째, 맞벌이 부부들이 아이를 출산하고 기르는데 불편이 없도록 육아를 담당해줄 사람이 있거나, 사회제도적으로 뒷받침이 잘 되어있어야 한다. 셋째, 사교육비가 너무 부담되어 어디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느냐?’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소시키기 위해 현 정부에서 여러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제 때에 결혼을 하여 두 명이상의 아이를 꼭 낳겠다는 마음이 생길정도의 분위기가 조성되기까지는 아직 멀기만 한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친인척들이나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유형의 문제점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집안으로서, 출산과 육아에 아무런 불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것이다.
왜냐고 물으니‘그냥 자기들끼리만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말한다는 것이었다.‘더 이상 말할 수도 없고 답답하기만 하다.’고 하소연들을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 역시 가슴이 답답해지긴 마찬가지였다.
이는 인생관의 문제요, 철학적인 문제가 아닌가!‘자신들만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면 된다니...?’마치 자식을 낳고 기르고 가르치는데 정성과 정력을 다하여 공을 들이는 것은, 인생에 있어 전혀 가치가 없는 헛된 일이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과연 그들이 주장하는 즐거움과 재미있는 행복이,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가슴에 안겨오는 기쁨과 행복에 비견될 수 있으며, 생을 다할 때 까지 지속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것인가.
신조정신 구국멸(新造精神 救國滅)
자신의 목숨보다도 나라를 더 걱정할 정도로 애국충정이 컸던 율곡 이이선생은 결연한 마음으로 선조임금에게 올리는 상소문에서, 그 당시의 나라현실에 대하여“조선은 붕괴되는 집입니다. 나라가나라가 아닙니다(基國非其國/기국비기국). 기둥을 바꾸면 서까래가 내려앉고, 지붕을 고치면 벽이 무너지니 조선은 어떤 대목도 손을 댈 수 없는 집입니다.”라고 한탄하였다.
나라가 그 지경이었으니 성웅(聖雄)이순신장군 역시 나라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며‘재조산하(再造山河)’란 말을 하기 에 이르렀다.
세계적인 석학 샘 리처드교수가 지난해에“우리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란 주제로 강의를 한바있다. 강의를 하면서 세계인을 상대로‘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가치’에 대하여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결과 거의 모든 나라의 국민들은 그 1순위로‘가족’을 선택하였지만, 한국만이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선택하였다고 밝힘으로서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와 같이, 가치관의 전도에 따라 사회각계에서 비정상이 정상을 덮고 군림하는 우리나라의 현 세태를 걱정하다보면 불현 듯 율곡선생과 이충무공의 말이 떠오르게 된다.
저 출산의 문제에 있어서도 출산과 육아에 필요한 모든 여건이 그런대로 크게 부족함이 없이 고루 갖추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즐겁고 재미있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 여기며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그들에게 과연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노부모들까지‘손주들을 왜 우리가 돌봐 주느냐?’면서 자기들도 노후에 즐기면서 살아야하지 않겠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이 또한 무어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인 기여를 하는 것은 요리조리 피하면서 인색하기 이를 데 없고, 오직 자신만을 위하는 삶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행복이라 여긴다면, 그것이 과연 가치 있는 참다운 삶이요, 최선의 행복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건 아닐 것이다.
나 자신보다 자녀와 타인을 위해, 육체적으로 힘들게 활동하고 정신적으로 신경을 쓰며, 물질과 경제적으로 기여를 하는 것이 조금은 어렵거나 부담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로인해 안겨오는 보람 속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감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행복으로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일생의행복일 것이다.
또 늙어가면서 힘이 좀 부치더라도 자식손자와 가족을 위해 헌신한다는 기쁜 마음으로 활동을 한다면, 그 또한 건강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고 그게 바로 노년의 아름다운행복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사회분위기가 조성되기 위해선, 한마디로 재조산하(再造山河)란 말처럼 우리의 정신을 확 바꾸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가 정신을 새롭게 가다듬고, 인생의가치관을 재정립하는 범국민적 정신운동을 펼쳐나가야 한다.
또한 국가에서도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들에게 그에 상당한 경제적인 보상을 해주어야한다. 아울러 아이 돌봄 조부모들을 상대로 한 각종문화행사 등을 통하여 동기부여를 하는 것 또한 필요할 것이다.
엄마의 젖을 빨며 빤히 바라보는 말똥말똥한 아기의 맑은 눈동자, 엄마아빠에게 옹알이를 하면서 방긋방긋 웃어주는 아가의 해맑은 얼굴, 넘어질 듯 넘어질 듯 걸음마를 시작하는 귀여운 모습, 안아달라며 가슴에 안겨오는 사랑스런 아기와의 포옹, 천사보다도 더 아름다운 아기의 잠든 모습, 퇴근을 하면 엄마아빠를 부르며 급히 달려와 안기는 아이의 팔딱이는 가슴에서 전해오는 짜릿한 희열, 자녀를 기르면서 안겨오는 기쁨과 행복감을 어찌 글로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물론 어린아이가 아플 수도 있고, 커가면서 말을 잘 듣지 않아 애먹일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 또한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결코 견뎌내지 못할 어려움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성장을 하면 결혼을 하는 것이 자연의 이법을 따르는 것이며,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아 기르고 가르치는 것이 삶에 있어 가장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로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길이란 걸 일찍부터 일깨워주어야 한다.
또 세상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상대적 빈곤감에 사로잡혀 살지 말고, 나 자신을 주인으로 하여 나를 중심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용기와 강인한 정신력을 심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정신을 새롭게 다져 이 나라의 멸망을 구하는‘신조정신 구국멸(新造精神 救國滅)’의 길이다.
위대한 어머니상을 저버리지 말자!
인생의 봄인 20~30대에 이르게 되면 이성간에 상대의 여러 장점과 매력에 이끌려 좋아하고 사랑하게 된다. 그러한 사랑이 깊어지게 되면 상대 없이는 살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불타올라 결국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을 하면 두 사람은 부부로서 즐거움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길 희망한다.
사실 부부는 성(性)의 원리와 성적결합에 의해 맺어지는 관계이다. 사랑의 원초적인 뿌리는 성욕(性慾)이며 섹스일지도 모른다. 나무가 뿌리에서 자라난 줄기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되듯이, 사람도 생물학적 생식기능에 의해 자연히 자녀를 출산하게 되고 그로인해 인류의 역사가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부는 선택적 만남으로 맺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사정에 의해 헤어지게 될 수도 있다. 만약 부부가 헤어지게 된다면 그 순간 바로 남남이 되고 만다.
하지만 부모자식과 형제자매는 물보다 진하고 호르몬보다도 더 강한 피의 원리로 맺어진 혈족이자 가족공동체의 일원이다. 이는 인륜을 넘어 천륜(天倫)의 관계로서 아무리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고, 헤어질 수도 없는 불변의 숙명적관계이다.
따라서 자식을 둔 부모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거나 부부간에 서로 실수와 잘못이 있다 할지라다도, 자식과의 천륜을 저버리게 되는 이혼만은 절대로 해서는 아니 된다. 부모는 자식을 양육하고 교육을 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거론하건대 삶의 목적이 즐거움이나 쾌락에 대한 욕구충족이라면, 그것은 진정으로 인생의 참가치가 실종된 것으로서 허무하기 그지없는 헛된 삶을 사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스라엘을 40년이나 통치하면서 권세와 부귀영화를 크게 누렸던 지혜의 왕 솔로몬도, 인생을 마감함에 이르러 참회록이라 할 수 있는 전도서에서“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하였다. 한마디로 인생무상(人生無常)의 공허함을 탄(嘆)한 것이다.
하지만, 자식을 낳아 기르게 되면 자신의 생명이 끝나는 순간이 온다하더라도 모든 것이 끝장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식이라고 하는 제2세에 의해 자신의 사상과 철학은 물론, 해온 일이나 하고자 하는 일들까지 면면히 이어져 살아 숨 쉬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자식을 낳아 잘 기르고 가르쳐 성공을 시킨다면 인생이 그렇게 헛된 것만은 아니란 것이다. 아니, 헛되지 않다는 것 보다 인생에 있어 가장 보람된 일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로부터 DNA라고 하는 유전자를 물려받아 태어나게 된다. 따라서 부모와 자식은 이러한 생리적 현상으로서‘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란 말처럼 외모와 체질은 물론 성격까지도 그대로 닮게 된다.
또한 부모와 자식은 이러한 생리적 관계만이 아니라 성장하면서 부모의 사고방식이나 인생관이라고 하는 삶의 정신까지도 닮아가는 철학적 만남의 관계이다.
가정(家庭)은 부모를 중심으로 형제자매의 혈족인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집이다. 그런데 가정(家庭)이란 글자는 집 가(家)자와 뜰 정(庭)자로 되어있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사람이 사는 집엔 마당과 뜰이라고 하는 정원을 갖추고 꽃이나 정원수를 가꾸어왔다.
가정엔 여러 식구가 함께해야 다복(多福)한 것이지, 자녀가 하나도 없이 달랑 두 부부만이 살아간다면, 아무리 정원을 잘 가꾸어놓고 산다고 할지라도 삶의 재미는 한계가 있을 것이며, 또 그 즐거움이 평생 지속되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가정엔 공간적이고 물질적인 정원뿐만이 아니라, 가족이라고 하는 정서적인 인적정원이 풍성해야 사람 사는 맛이 나고 기쁨과 행복이 배가될 수 있다.
혹자는 자식이 없어도 강아지나 고양이등 반려동물을 기르며 취미생활에 낙을 붙이면 된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어찌 내 자식을 키우는 보람과 행복만이야 하겠는가?
가정에서 여성의 일생은 딸, 아내, 어머니,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다. 딸인 여성은 약하다. 그러나 아내는 결코 약하지 않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보다도 더더욱 강하다. 한마디로 여성은 약하지만 모성(母性)의 정신력은 최고로 강한 것이다.
그래서 여성은 어머니가 됨으로써 숭고한 모성애(母性愛)에 의해 마음과 정신이 순화되고 정화되며 미화되어 인격적으로 더욱 원숙해진다. 인간의 한 생명을 탄생시키고 그 어린 자녀를 기르면서 진정한 사랑과 인내, 헌신과 용서, 용기와 희생, 자비와 지혜 등의 인(仁)과 덕(德)을 배우게 된다. 그야말로 모성애라고 하는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한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가 되면 사랑스런 손주들의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젊은 시절 잠시 잊고 살았던 인간의 본성인 인애(仁愛)의 정신과 넉넉한 마음을 되찾게 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맑고 향기로운 여생을 보낼 수 있게 된다.
이시대의 젊은 여성들이시여! 한때 젊은 시절의 쾌락과 즐거움만을 좇으며, 자식을 양육하고 교육시키기가 어렵다면서 나약하게도 위대한 어머니상을 포기하지 말라!
가빈사량처(家貧思良妻) 국난사량상(國亂思良相)
사람의 목숨이 살아있음을 두고 그냥 생(生)이라 하지 않고 생명(生命)이라고 말한다. 이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어떠한 명(命)을 받고 태어났다는 뜻이 담겨있다.
이를 두고 우리는 사명(使命)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사명(使命)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한다. 공자는 나이 오십이 되면 하늘의 명(命)을 알 수 있다고 하여‘오십이 지천명(五十而 知天命)’이란 말을 하였다.
하늘의 명을 알아가기 위해선 먼저 성인이 되어야 한다. 어른과 성인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나라는 18세가 되면 이미 성인의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민법에서는 성인을 만 19세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성인이 되었다고 하여 다 어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예로부터 철이 들어야 어른이라고 했다. 또 철이 제대로 들으려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했고, 결혼을 하고나면 자식을 낳아야만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 하였다.
자녀를 키우는 어느 가정이나 부자자효(父慈子孝)의 기본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가정이 바로 서게 된다. 대각국사 의천은“오형(五刑)에 속하는 죄가 삼천 가지가 된다고 하더라도 불효(不孝)의 죄보다 더 큰 죄가 없고, 육바라밀(六波羅蜜)의 복이 팔만가지가 된다고 하더라도 효행의 복보다 더 크지는 못하다.”라고 하였다.
또 맹자는“후손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불효다(不孝 無後爲大/불효 무후위대).”라고 했다.
의천대사의 말 중에서 앞부분은 이미 공자가 한 말로써 효경과 소학의 명륜(明倫)편에 실려 있다. 원문은“오형지속삼천(五刑之屬三千) 이죄막대어불효(而罪莫大於不孝)”이다.
또 육바라밀이라는 것은 불교에서 생사의 고해를 건너 열반의 세계에 이르는 보살의 실천수행법이다. 이는 보시(布施/베푸는 것), 지계(持戒/계율을 굳게 지킴), 인욕(忍辱/모욕과 번뇌를 참고 원한을 일으키지 않음), 정진(精進/불법을 믿고 수행에 힘씀), 선정(禪定/속세의 정을 끊고 마음을 안정시켜 삼매경에 듦), 반야(般若/불법의 참다운 이치를 깨달은 지혜의 완성)를 말하는 것이다.
맹자가 말한 후손을 옛날처럼 꼭 아들이여야만 한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다. 다만 부모로부터 생명을 물려받았으니 자신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생명을 이어가도록 하는 게 당연한 도리란 걸 절실히 깨닫고 따르면 되는 것이다.
모든 부모들은 자녀가 성장하면 결혼을 하여 성가(成家)를 이루고 아이를 출산하길 간절히 바란다. 늙어가면서 손주들의 재롱을 낙으로 삼고 싶은 것이다. 부모님의 이러한 간절한 마음을 살피지 않고 소홀이 하면서 자신들만 재미있게 살면 그만이라며 출산하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부모의 심정은 과연 어떠하겠는가!
꼭 부모에게 효도를 하거나 불효를 하지 않기 위해 자식을 출산해야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에 앞서, 아이를 낳아 육아와 교육을 시키는 과정을 통하여 얻어지는, 인생의 깨우침과 보람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삶의 참의미와 자신의 진정한 행복감을 맛보기위해 자식을 낳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만약 자식이 하나도 없이 살아간다면 과연 삶의 희망은 무엇이란 말인가. 설령 희망이 있다한들 그 희망이 생을 다할 때까지 의욕적인 희망으로 함께 할 수 있겠는가. 또 살아가면서 큰 어려움이 닥치게 되었을 땐, 무슨 희망의 끈을 잡고 그 힘든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단 말인가!
육체적으로 기운이 떨어지고 정신이 혼미한 황혼을 맞아, 부부 중에 한사람이 먼저 세상을 뜨고 소위 독거노인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홀몸으로 살아가면서 가슴 한가득 밀려오는 쓸쓸함과 외로움과 고독함의 정신적 허기를 어찌 달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이러한 노년의 정신적 실상을 젊었을 땐 전혀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젊은 시절을 거쳐 노년에 이른 인생의 선배이신 부모가 자식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인생의 정답일 것이다. 그러니 부모의 뜻에 따르는 것이 순리요, 도(道)가 아니겠는가?
결혼과 출산을 단념하고 있는 젊은 청춘남녀들이시여!
세상만사엔 다 때가 있고 적기가 있다. 무엇이든 타이밍(Timing)을 놓치면 후회만 남게 된다. 아직은 늦지 않았다. 부모님으로부터 생명을 물려받아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자연의 이법(理法)에 따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대를 이어가는 것이 인생의 정도(正道)요, 진정한 행복을 찾아 가는 길이란 걸 잊지 말고 결혼과 출산을 결심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결심을 실행하는데 머뭇거리지 말길 당부 드리는 바이다.
자녀는 둘이상은 두어야만 한다. 그 이유 또한 자식을 위해서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명보다 두 명을 키우다보면 경제적 부담이 더 클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두려워하지 말길 바란다. 환경과 상황은 적응력과 해결방안을 동반하는 법이다. 명심보감 성심편에“하늘은 제가 먹을 녹봉이 없는 사람은 내지 아니한다(天不生 無祿之人/천불생 무록지인).”는 말도 있지 않은가?
중국의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와 원나라의 증선지(曾先之)가 쓴 십팔사략에‘가빈사량처(家貧思良妻)요, 국난사량상(國亂思良相)’이란 글이 있다. 이는 집안이 가난하여 어려워지면 어진 아내를 생각하게 되고, 나라가 어지럽고 어려워지면 어진 재상(신하)이 생각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야말로‘자연의 이법(理法)에 따르는 삶’을 존중할 줄 아는 현명하고 어진 아내와, 충직하고 훌륭한 공직자들이 간절히 그리워지는 시대라 아니할 수 없다. (2023.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