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5반, 최순옥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찌릿했었지만, 그 뒤에 선생님과 얽힌 모든 일들은 모두
나에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시작이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5반의 친구 대여섯 명 정도를 불러서, 방과 후 댁에서 공부 지도를 시작하셨다.
불려온 친구들은 이준호, 이동만, 이병석, 문현숙, 그리고 나, 이렇게 대 여섯 명이었다.
선생님 댁은 김상윤 집 근처 어디 쯤에 있었는데, 선생님이 퇴근하시어 식사를 마치신 후의
시간에 맞춰 친구들과 어울려 찾아갔던 터라, 가끔 그 근처에 갈 때마다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만,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어느 날인가는, 선생님 자제분들이 미처 준비할 새 없이, 우리가 댁에 들이닥치는 바람에,
고등학교에 다니는 형은 교련복 차림으로 가방을 들고 형님 방으로 황급히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있었고,
동생인 중학생 누님도 책가방을 들고 이동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었다.
먼저 자습을 하도록 하고, 때로는 선생님께서 준비하신 시험지를 나눠주고 풀도록 하기도 하셨다.
선생님은 따로 독서를 하시거나, 우리가 질문하는 내용에 답을 해 주시는 정도로 학습풍토를 만들어 주셨다.
약 1~2개월 그러기를 반복하면서, 인원이 줄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때는 철이 없어, 나는 언제 빠질 수 있나, 친구가 줄어들 때 마다, 안 오는 친구가 부럽다는 생각도 했었다.
이준호, 문현숙, 나, 이렇게 셋이 남았고, 날이 갈 수록 귀가하는 시간도 늦춰지게 된 것 같다.
대략 7시쯤에 갔다가, 늦게는 11시경에 집에 오는 경우도 있었다.
집에 오던 그 시간에 셋이서 손 잡고, 머리 위의 달을 보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친구가 좋아서 그랬을 수도 있고, 셋이지만 무서워서 그랬을 수도 있었다. 선생님 댁이 뾰쪽집 근처라서 이런저런
무서운 소문과 관련된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엄습했을 것이다.
달걀귀신이 있다고 믿었던 나이었으니까...
그 때의 문현숙 얼굴은, 아직도 내 기억에 또렷이 있다. 흰색 블라우스에 흰 타이즈와 검은색 구두를 신고 다녔다.
발등 쪽이 둥그럽게 파이고, 가느다른 끈이 발목을 동여 맨, 당시의 교과서 삽화에 자주 등장하는, 그런 구두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현숙이 딸이 있다면, 그 아이가 그 나이의 엄마를 닮았는지 충분히 가려낼 수 있을 정도랄까...
하기야, 졸업사진 속의 문현숙이나 2학년 때의 문현숙이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은 꺼냈지만, 영양가가 높지 않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셋이서 다른 반 친구들과 함께, 정읍에서 열리는 3군(정읍,부안,고창) 학력경시대회에 참가한다는
통보를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다. 여러 선생님이 인솔하셔서, 버스를 타고 정읍에 있는 어느 국민학교로 가서
시험을 보게 되었다. 그 동안의 선생님 댁에서의 노력이 모두 이 날을 위함이었던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름 비장한 마음으로 시험을 치뤘다.
결과가 궁금하지? 친구들...
4반 김수경 우수상, ... 나 장려상, 그리고, 준호와 현숙 중, 한 사람이 장려상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 중, 최우수상이 없었다는 것은, 3군 중 부안군이 수위는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하여, 상은 받았지만
선생님께 죄를 지은 마음이 들었었다. 그리고, 그 것으로 김수경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으며,
공부 잘하는 여자 애가 있구나 라고 생각했고, 경쟁심이라는 것도 내 마음 속에 싹트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궁금한 것 한가지.
그 때, 우리집은 잡화상점을 했었는데, 벌이가 신통찮았던 시절이었고,
이유야 어찌되었건, 지금 기준으로 봐서는, 선생님께 개인과외를 받은 것인데,
우리 부모님이 사례를 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고등학교에 다닐 쯤엔가 어머니께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전혀 기억을 못 하셨다.
나에게는 공부하는 습관을 들게 해주신 구세주 같은 선생님이고,
아무리 생각해도 대한민국에 이런 선생님 또 있으면 나와 보라고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이제는 선생님께 뭐라도 해 드릴 수 있는 입장이 되었는데,
어디 계신지도 모르고 ...
어찌 나는 이러고 사나 싶어, 안타깝기만 하다.
첫댓글 좋은~~~ 인생의 중요한 선생님이셨네.....그래 친구.....
나도 같은 반이었는디 그때 공부를 워낙 못해서 개인과외를 안해줬지 ㅎㅎ 초등학교 때 난 한번도 우등상 탄적없으 -~ 병석 동만은 공부하기 싫어서 도망가고,,, 그때 아마 병석이네 집에 놀러 갔을 때 큰 기와집 으로 기억,, 자전거 혼자만 타고 우리 안태워줘서 삐진 사람들이 많앗지. 병석아 넌 기억 안나지? 나쁜짓 한 당사자는 기억 못하는 법이야,,, 준호는 그때 전파사 준호 맞냐? 경환아?
맞아. 준호 이야기는 희망라디오에 실어서 따로 적을까 했었어. 사거리 쪽에서부터 칠흥자전거 옆에 기름집이 있었고 기름집 옆이 준호네 전파사 였네. 가게 앞에서 왼쪽으로 돌면 뒤안으로 가는 좁은 골목이 있었어. 한동안 내 집처럼 지나다니던 곳이라... 기억에 남아 있지. 작년에 보고 용이는 얼굴보기 함드네그랴. 자주 얼굴 좀 보여주시게나.
준호네집 갔던 기억난다. 좁은 건물 틈새 같은데로 들어가면 뒷마당있었지,, 아마 그 마당에 여러 잡동사니들이 좀 있었던 기억이다. 준호는 잘사나? 경환아 암튼 나중에 내 조금 시간 여유있을 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