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여름,
방학을 맞아 기숙사에서 집으로 돌아온 자유분방한 세실은,
바람둥이 홀애비인 아버지 레이몽과, 아버지의 애인인
29세의 젊고 아름다운 엘자와 함께 남 프랑스의 별장을
빌려 바캉스를 즐긴다.
머무는 별장과 가까운 곳에, 26세의 법과대학생인
시릴이 그의 어머니와 함께 바캉스를 즐기고 있었는데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어느 날 세실 어머니의 친구인 40대 초반 이혼녀 안느가
찾아와 같이 휴가를 보내게 되고, 레이몽에 대한 엘자와
안느의 미묘한 애정싸움이 있게 되나, 레이몽이 안나와
결혼하려하자 엘자는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떠난다.
아버지가 오랜동안 다른 여성들과 가벼운 사귐은 자주
있어서 세실에게 큰 영향을 미칠 변화는 없는 편안한
생활이었지만, 아버지가 이번에는 우아하고 교양이 있고
이지적이며 아름다운 안느를 보고 마음이 끌려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한다.
겉으로는 평안하지만 모두의 생활이 긴장 상태에 놓인다.
세실은 안나를 완벽한 여성으로 생각하고 그녀와 얼굴을
대할 때는 그녀를 존경하게 되지만, 그녀가 없는 곳에서는
아버지를 빼앗기는 상실감, 간섭으로 오는 구속감등의
환경변화와, 안느의 질서정연한 생활 방식에 반항 의식이
싹트면서 그녀를 증오하는 이중적인 성향을 보인다.
세실은 엘자, 시릴과 짜고 안느를 몰아낼 음모를 꾸며
아버지가 엘자와 다시 몰래 만나는 장면을 안느가 목격하게
만든다.
안느는 실망하고 배신에 따른 슬픔과 좌절을 안고 떠나자
아버지와 세실은 뒤쫓지만 붙잡지 못하고,
얼마 후 안느가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세실은 비로소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뉘우침과
슬픔이란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 슬픔이여 안녕 -
“슬픔이라는 거창하고도 아름다운 이름을 붙이기가
망설여지는 알 수 없는 우울함이 나를 감싸고 있다.
전에는 슬픔을 연상하면 언제나 마음이 매료되곤 했지만.
지금은 그 철저한 이기심에 부끄러움마저 느끼고 있다.
나는 권태라든가 후회 그리고 어쩌다 회한 같은 것을
경험하기는 했어도 슬픔은 겪어 보질 못했다.
오늘은 무언가 비단 망사처럼 연약하고 보드라운 것이
나를 휘감아 외부와 단절시키고 있다.
다만 새벽에 침대 속에 누워 저 아래 파리의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 기억이
나를 배신한다.
그 해 여름이 모든 추억을 간직한 채 내게 찾아온다.
안느, 안느... 어둠 속에서 나는 나지막한 소리로
몇 번이고 거듭해서 불러 본다.
그러면 두 눈을 감은 채 이름을 불러 맞이하는
무엇인가가 마음 속에서 솟아 오른다.
슬픔이여 안녕!”
(프랑수와즈 사강의 소설 “슬픔이여 안녕”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의 번역.)
[슬픔이여 안녕] 은 사강이 18세인 1953년 소르본느 대학 재학 중 교양과정 시험에서 떨어진 후
파리의 한 구석진 아파트에서 2개월 동안 지나면서 탈고한 작품인데
출간되자 마자 사강에게 세계적인 명성과 부를 가져다 준다.
[슬픔이여 안녕]이란 말은 이 소설의 끝에 마지막으로 딱 한번 나와 소설의 제목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 말은 시인 “폴 엘뤼아르(Paul Eluard 1895-1952)의 시
"목전의 생명(La vie immediate)”에서 따 온 것으로 되어있다.
후에 프랑수와즈 사강은
신경 쇠약, 노이로제, 수면제 과용, 마약 복용, 정신병원 입원,
술과 도박 등 무절제한 생활로 일관한다.
그러면서도 많은 소설 및 기타 문학작품을 끊임없이 발표하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설로는
[어떤 미소(1956)],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슬픔은 강물처럼(1972)] 등이 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Aimez-vous Brahms?)]도
1961년 잉그리드 버그만과 이브 몽땅 주연의 “Goodbye again”라는 영화로 나왔다.
6~70년대의 한국에서 이 소설과,
전혜린의 자서전적 에세이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1966]와 함께 센세에션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당시 젊은이들의 감성에...
진 세버그 (Jean Seberg)
1938년 미국 아이오와 마샬타운에서 출생.
1979년약물과다로 사망(barbiturate overdose).
18세때 오토플래밍거 감독의 대작 <잔다르크/Saint Joan (1957)>의
오디션에서 무려 만명이 넘는 경쟁자를 물리치고 캐스팅되는
행운을 얻었다. 그 오디션에서 마지막으로 경쟁했던 인물은
대배우 헨리폰다의 딸인 제인폰다였다고...
(진 세버그보다 한살 많은 제인폰다는 3년뒤<Tall Story>로 데뷔한다)
하지만 촬영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각종 언론에서 과다하게 기대를 불러
일으켰던 탓인지 <잔다르크>는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혹평과 더불어
흥행마저 참패하게 된다.
그로서 진세버그에 대한 관심도 차츰 시들해진다.
하지만 전작으로 진 세버그의 가능성을 간파한 오토플래밍거 감독은
그녀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준다.
그렇게해서 1958년 그녀는 오토플래밍거감독의 다음 작품
<슬픔이여 안녕 Bonjour tristesse>에서 데보라카 데이빗 니븐등
대스타들과 함께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녀가 맡은 세실역은 어리지만 팜므파탈적 요소를 지진 복잡한
캐릭터였고 진 세버그는 어려운 캐릭터를 나름대로 잘 소화해내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기 시작한다.
(일설에 의하면 이 영화의 오디션에서 마지막까지 경쟁했던 배우중에
오드리헵번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때 이미 서른이 가까웠던 오드리가
맡기엔 십대 소녀인 세실역은 좀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다)
얼마후
장 뤽 고다르 감독(Jean-Luc Godard)과의 20세기 영화사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은 영화 <네 멋대로 해라 (A Bout De Souffle)>에 주연.
자국인 미국보다 프랑스에서 더욱 더 유명해진 진 세버그는 몇년 동안
< LET Epitaph My Write Man No >, < RECREATION, La >,
< AMANT L jours, cinq de>, < Congo vivo>, < In the French Style >등
의 프랑스 영화에 출연하게 되면서 '프랑스의 연인'으로 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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