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도넛 트럭=황금 마차’ 병사들 사기 높이다
1917년 프랑스에 파병된 구세군 장교 헬렌 프루비안스가 최초 운영
갓 만든 도넛 한 개 덕분에 병사들은 전쟁터서 피로 풀며 향수 달래
이동식 PX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도 황금 마차에 대한 병사들의 정서는 공감할 수 있다. 충성 이동클럽과는 거리가 먼 현역 장병뿐만 아니라 요즘 군대 좋아졌다고 주장하는 예전의 부모와 형님 세대, 군대와는 거리가 먼 누나, 여동생, 여자 친구까지도 느낌을 안다.
황금 마차가 가져다주는 기쁨은 잠시 잠깐, 입안을 자극하는 달콤한 간식 맛 때문만은 아니다. 마차 오기를 고대하는 기다림의 미학일 수도 있고, 입대 전 사회에 대한 맹목적 향수일 수도 있다. 혹은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기분 좋은 일탈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름도 상징적이다. 차량 색깔이 노란색이어서 황금 마차가 아니라 병사에게는 황금 같은 가치를 잔뜩 싣고 오기 때문에 황금 마차라는 것이다. 이런 황금 마차를 최초로 만들어 운영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인 1917년, 프랑스 전선에 배치된 미군 부대에 작은 트럭 한 대가 나타났다. 트럭에는 작은 화덕이 하나 실려 있었고 크지 않은 냄비에는 튀김 기름이, 또 다른 한편에는 밀가루 반죽이 놓여 있었다.
구세군(Salvation Army) 장교로 프랑스에 파병돼 종군하던 헬렌 프루비안스 여사가 몰고 온 트럭이었다. 동료 구세군 장교였던 마거릿 쉘던과 함께 프랑스 전선에서 고생하는 병사들에게 어머니가 집에서 만들어 주던 것과 같은 신선한 도넛을 만들어 주기로 뜻을 모은 후 개조해 만든 트럭이다.
갓 튀겨낸 도넛 냄새에 진흙과 빗물로 범벅된 병사들이 참호에서 빠져나와 순식간에 트럭 앞에 길게 줄을 섰다. 두 구세군 장교는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온종일 좁은 트럭 안에서 무릎을 꿇은 채 밀가루를 반죽하고 냄비에다 도넛을 튀겼지만 첫째 날은 겨우 150개를 만드는 데 그쳤다. 프라이팬이 작아 한 번에 7개씩밖에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병사가 낙담한 채 참호로 돌아가야만 했다.
“줄을 선 병사들의 얼굴을 봤어야 했어요.” 헬렌 프루비안스 여사가 1976년 미국의 한 지역신문과 인터뷰한 기사의 한 마디가 당시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진흙투성이 참호에서 빠져나와 집에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던 것과 같은 도넛이 익기를 기다리는 병사의 표정은 말로 전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첫날의 대성공에 힘입어 도넛 트럭은 계속 이어졌다. 부대를 찾아다니며 병사들에게 도넛을 만들어 주었는데 나중에는 최대 하루 9000개까지 만들었다. 그만큼 인기가 높았던 것인데 갓 만든 도넛 한 개 덕분에 병사들은 전쟁터에서의 피로를 풀 수 있었고 향수를 달래며 사기를 높일 수 있었다.
약 20년 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이번에는 1차 대전의 경험을 살려 미군 당국에서 적십자사에 이동식 도넛 트럭을 운영해 줄 것을 제안했다. 적십자사에서는 트럭을 개조해 도넛을 만들 수 있는 크기의 주방과 커피를 끓일 수 있는 조리시설을 갖췄다. 그리고 트럭 한편에는 휴식공간을 만들어 최신 레코드판과 휴대용 문고판 책을 갖춰 도넛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음악도 듣고 책도 읽으며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적십자사에는 처음 영국 런던과 부근의 미군 주둔지역에서 이동클럽(Club mobile)이라는 이름으로 도넛 트럭을 운영했다. 이름도 우리의 충성 이동클럽과 비슷하다. 그런데 미군에게는 도넛과 커피를 모두 공짜로 제공했지만,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 병사들에게는 돈을 받고 팔았다. 다른 나라 병사들이 반발하자 결국 전체를 유료로 전환했다.
1944년 6월, 연합국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하면서 전선은 유럽 전역으로 넓어졌다. 유럽 전선에 직접 봉사단을 파견해도 문제가 되지 않겠다고 판단한 적십자는 10개의 이동클럽을 파견한다. 1개의 이동클럽은 모두 8개의 이동식 도넛 트럭과 영화 상영관, 그리고 각종 식재료 등을 싣고 갈 3대의 보급 트럭으로 구성됐다.
각각의 이동클럽은 전장에서 돌아와 후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병사들에게 커피·도넛 그리고 영화 상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서비스했다. 유럽 전선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도넛 트럭을 기반으로 한 이동클럽은 프랑스·벨기에·룩셈부르크·독일까지 유럽 전역에서 활동했다.
이동클럽은 6·25전쟁 때도 활동했다.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미군 당국은 적십자사에 요청해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때처럼 도넛과 커피 그리고 가벼운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이동식 클럽과 식당을 운영한다. 1950년 11월부터였으니 전쟁 초기부터 운영한 것인데 24시간 체제로 가동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전선에서 직접 만든 도넛과 커피 한 잔이 병사들의 사기에 끼치는 효과가 생각보다 훨씬 컸던 모양이다.
1917년 프랑스의 한 전선에서 시작된 도넛 트럭이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계속 확대 운영되면서 발전해 왔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우리의 황금 마차 역시 단순한 이동식 PX가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