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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선생님의 젊은 날의 투쟁에서 배운다
사제에 살아라!
불멸의 정예10만 결집!②
이누보사키의 ‘수호회’와 ‘야외연수회’(下-2)
등대와 같이 민중에게 빛을 주어라
미래영겁까지 잊을 수 없는 날
식사가 끝나고 둥글게 둘러앉은 중앙에 준비된 장작에 불을 지폈다. 불은 혁혁하게 불탔다. 예정대로 캠프파이어로 이어졌다
여기에서 이사실 간부가 잇따라 인사를 위해 일어섰다. 그들 자신, 신심의 자세를 진심으로 사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960년 7월 30일은 영원히 잊지 못할 날이 되었습니다.
7월 30일은 제가 입회한 날이자, 이 날은 제 인생에 미래영겁에 잊지 못할 날이 되었습니다.”
“수호회 출신이지만 청년부를 졸업한 후 마음까지 멀어져 버렸습니다.
오늘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앞으로 수호회라는, 청년부라는 기개로 목숨 걸고 선생님 슬하에서 광포에 매진하겠습니다.”
“일찍이 도다 선생님에게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엄하게 야단맞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만큼 섬뜩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 그때를 떠올리며 제 모습을 반성했습니다.”
이누보사키를 선택한 것은 나입니다
장작불이 어두운 밤을 밝게 비췄다. 수호회 멤버들은 진지한 표정이었다.
이케다 SGI 회장은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하늘에 한 줄기 빛을 쏘는 등대를 가리키며 지도했다.
“도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에 열리는 수호회 야외연수 장소로 이누보사키를 고른 사람은 나입니다. 등대가 있는 이누보사키를 골랐습니다.
이는 깊이 생각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이곳에는 등대가 있습니다.
등대는 아무리 바다에서 성난 파도가 소용돌이쳐도 미동도 하지 않고 어두운 밤, 몇십 해리나 떨어진 앞바다를 항해하는 배를 바른 항로로 인도하도록 빛을 보냅니다.
우리도 또한 이 등대와 같이 모든 민중에게 빛을 보내야 합니다.
이 등대가 바로 ‘수호회’입니다. 그리고 배는 민중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수호회가 있으면 안심할 수 있다.’ 라고 모든 학회원과 모든 민중에게 신뢰받는 인재가 되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전 민중을 이끌 등대가 되십시오.”
당시 이야기 - 이와다테 마모루
선생님의 지도를 생명에 새기려고 진검으로 임했습니다. 지금도 선생님의 대사자후는 귓전에 남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왜 이누보사키 땅을 선택했는가’에 대한 지도는 잊을 수 없습니다.
“수호회야말로 등대이지 않으면 안 된다. 제군에게는 인류의 미래를 짊어질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라고.
저에게 있어 “서민의 등대이어라!”라는 지도는 실로 인생의 지침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이야기 - 아이자와 타케히코
선생님께서는 등대를 가리키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저 바다 저편에는 미국이 있다. 제군들은 저 등대와 같이 세계를 비추어 가는 세계의 지도자로 성장하라!” 라고.
홋카이도에서 상경하여 세이쿄신문 기자로서 나날의 일에 쫓기고 있던 때였습니다. 우수한 후배가 눈부시게 성장해 오는 속에 어쩐지 폐색(閉塞)함에 빠져있던 시기였던 만큼 눈앞이 확 열리는 듯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작은 껍질에 갇히려고 하는 자신의 신심을 깊이 반성했습니다.
장작불을 계속 불태우자!
이케다 SGI 회장은 ‘장작불’에 담긴 의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수호회 야영 때 전등을 사용하지 않고 이렇게 장작불을 피우는 것은 도다 선생님 시절부터 내려온 전통입니다. 또 거기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 타오르는 장작은 우리입니다. 불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이는 또 신심의 불꽃입니다. 이 장작불이 타오르는 곳에 학회정신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학회원과 세계의 민중이 이 장작불을 향해 모여드는 날까지 절대로 불꽃을 꺼뜨려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비로소 진정한 인생의 길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날까지 계속 타올라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장작불처럼 끝까지 불꽃같은 정열을 불태우며 광포를 위해 목숨을 바치십시오!”
당시 이야기 - 다다 쇼고
선생님께서는 ‘등대’와 ‘장작불’을 예로 들어 ‘수호회’가 인류평화와 행복을 위해 싸우는 리더라는 것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 지도를 듣고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의미, 그리고 자신의 사명의 깊음에 몸이 긴장되었습니다. 선생님의 훈련은 그러한 사명을 자각하려고 하지 않는 제자에 대한 엄애의 훈련이었던 것입니다
광선유포는 반드시 됩니다
이케다 SGI 회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단언하건대, 광선유포는 반드시 됩니다. 그러나 삼장사마가 다투어 일어난다는 것은 성훈에 비추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때 힘이 되는 존재가 수호회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수호회를 가장 신뢰하셨습니다. 그 까닭은 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호회 대표로서 저를 신뢰하셨습니다.
나도 도다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을 신뢰하고 싶습니다.
나는 어본존에게 도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것만을 기원해 왔습니다. 내 숙명은 도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나는 지금 그 사명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저 유연하게 광포를 위해 투쟁하자는 심경입니다. 어차피 한 번은 죽을 몸입니다. 나는 지금 어본존에게 목숨을 바치고 있습니다.”
이케다 SGI 회장은 이렇게 지도를 끝맺었다.
당시 이야기 - 미나미자와 이와오
“내가 있었기 때문에 신뢰해 주신 것입니다” -불을 토하는 듯한 이케다 선생님의 확신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도다 선생님과 이케다 선생님의, 실로 사제불이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한 마디였습니다. 일염부제 광선유포의 대지도자로서 일어서신 선샘님의 대 확신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대지도자 슬하에서 투쟁할 수 있다. 얼마나 과보자(果報者)인가 라고 결의를 새롭게 했습니다.
부탁할 것이 있다네
회장의 지도는 이렇게 맺었다.
“도다 선생님은 지금부터 6년 전에 히카와에서 열린 ‘수호회’ 제1회 야외연수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10년 후에 다시 이곳에서 모였으면 좋겠네. 여러분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네.’
그 ‘10년 후’는 바로 선생님의 7주기를 맞이하는 4년 후 입니다. 부디 그때까지 한 사람도 퇴전하지 말고 훌륭한 인재가 되어 모이기 바랍니다. 나도 광선유포를 달성할 때까지 100배, 1000배의 힘을 내어 투쟁하겠습니다.”
당시 이야기 - 츠치야 마코토
도다 선생님께서 “10년 후에 제군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라고 말씀하신 히카와 야외 훈련에 저도 참석했습니다.
그전까지와는 느낌이 다른, 굉장히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모두 함께 그 “10년 후란 무엇이었을까” 하고 몇 번이나 서로 이야기 했습니다. ‘뭔가 커다란 움직임이 있는 것은 아닐까. 큰 광선유포의 전망이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다는 결론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알고 계셨던 것은 이케다 선생님 단 한분이었습니다. 선생님만이 이 말씀을 스승으로부터 받은 어유명으로서 진검으로 과악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10년 일검(一劍)을 갈고 닦아
‘10년 후’라는 약속에 대해서 <수필 신·인간혁명>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사제 간의 약속이다. 감동이 전류가 되어 흘렀다.
생각하면 지금부터 10년 전, 군부정부의 탄압으로 선생님은 옥중에 있었고 고령인 마키구치 초대 회장은 옥사했다. 그 선사의 원수를 갚겠다고 맹세한 도다 선생님이 출옥하여 여기까지 10년.
유명한 신겐과 겐신의 가와나카지마 전투에 부친 라이산요의 시(詩)에 ‘유한(遺恨)이로다 10년 일검(一劍)을 갈고 닦아…’라고 있다.
지금 선생님이 연마하는 광선유포의 ‘보검’은 다름 아닌 청년이다.
‘10년 후에 모이자!’고 하신 진의를 나는 명백히 알았다.
선생님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본격적인 정치개혁과 교육개혁을 위한 원대한 구상을, 나를 비롯한 청년에게 맡기려고 하셨다.”
당시 이야기 - 와타베 이치로
이케다 선생님에게 ‘10년 후’라고 한 도다 선생님 말씀에 담긴 의미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0년 후의 모든 뒷일을 청년에게 맡긴다는 말씀입니다. 고뇌하는 세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경제·문화·정치·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생명철학에 바탕을 둔 혁명이 필요합니다.
학회원이 지역과 사회 등에서 힘을 발휘하여 존경받을 때에 세계가 바뀝니다. 도다 선생님이 천명하신 핵무기 폐기도 완수할 수 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도다 선생님에게 부탁받은 광선유포를 향해 새롭게 출발하는 자리로 이누보사키를 정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선생님의 장대한 구상을 알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이 얼마나 낙담하고 개탄하셨을까.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한심한 우리조차 껴안듯이 하며 신심을 단련시키셨습니다. “무책임한 ‘오합지졸’은 광선유포를 할 수 없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종교의 배척은 정신의 황폐를 초래한다
회장 중심의 원진(圓陣)
이케다 회장의 엄한 지도의 의미를 참가자는 이해해 갔다. 그 결의에 불타는 청년들의 표정을 본 회장은 말했다.
“자, 지금부터 질문을 받겠습니다. 모두 앞으로 오세요.” 라고.
모두 일제히 회장 겉으로 모였다. 지금까지 장작불을 중심으로 원진(圓陣)이 되어있었지만, 이번에는 이케다 회장을 중심으로 원진이 형성되었다.
“불법에서 설하는 자계반역의 난에 대해” “광선유포 시점에서 본 미국의 역할” 둥 다양하고 활달한 질문이 나왔다. 어떤 질문에도 회장은 명쾌하게 답해 갔다.
한 사람의 수호회원이 “광선유포 신진(神毆) 속에서 크리스트교, 공산주의가 방해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렀습니다만……” 이라고 질문했다.
회장은 즉좌에서 대답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크리스트교는 도덕에 독실한 종교입니다. 공산주의는 하나의 경제사상입니다. 조금도 정면에서 적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성인의 불법은 그러한 사상, 종교를 지도해 가는 입장에 있습니다. 수호회 여러분은 크리스트교도 유물사상도 착실히 공부해 가세요.”
당시 이야기 - 다나카 미쓰요시
당시 선생님 바로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손을 들었습니다.
“<간효팔번초>에 ‘해는 동에서 나오니 일본의 불법이 월지(月氏)로 돌아갈 서상이니라.’(어서 589쪽)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불법이 중국과 인도로 돌아간다는 의미라고 생각하는데, 현실적으로는 미국 광포가 이제 막 추진되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이 어서를 어떻게 배견하면 좋겠습니까?”
선생님은 이렇게 지도하셨습니다.
“좋은 질문이군요. <개목초>에는 ‘무지(無智) 악인이 국토에 충만할 때는 섭수(攝受)를 우선으로 하니 안락행품과 같으며, 사지(邪智) 방법(謗法)의 자가 많을 때는 절복(折伏)을 우선으로 하니 상불경품과 같으니라.’(어서 235쪽)는 말씀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절복이지만 대성인 불법에 무지한 해외에서는 섭수를 우선으로 한다는 말입니다. 세계광포라는 원대한 구상을 대성인이 밝히신 부분입니다. 내가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이어서 “종교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공산주의 국가나 종교의 자유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것은 광선유포에 가장 큰 장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여쭤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이번에도 명쾌하게 대답하셨습니다.
“괜찮습니다! 긴 안목으로 본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종교를 인정하게 됩니다. 어떤 나라도 진정으로 사회 발전을 생각한다면 인간의 ‘마음’이라는 문제와 맞닥뜨립니다.
국가 발전이라 해도 궁극적으로는 인간 한 사람 한사람이 지닌 마음의 자세, 정신성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제도나 환경을 정비해도 인간의 괴로움을 극복하거나 자율성과 향상심을 길러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만약 종교를 끝까지 배척한다면 정신은 막다른 곳에 부딪히고 황폐해집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연마하고 고양할지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진실한 종교의 필요성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나는 그를 위해서도 각국의 지도자와 대화를 나누는 일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대화를 통해 신뢰와 공감이 생기면 자연히 불법에 대한 눈을 뜨게 됩니다.
30년쯤 지나면 지금 내가 한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제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셨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세계로 가겠습니까? 당신 회사명에는 ‘동양’이라는 말이 붙어 있네요. 자, 동양으로 갑시다.”
“네.” 하고 저는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정규 고등학교를 중퇴한 제가 해외로 간다니, 꿈만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그 후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타이완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수호회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배제하라 ‘불평의 마음’
다른 수호회 멤버가 “부처의 이름을 부르고 경권(經卷)을 읽고 … 공덕선근(功德善根)이라고 신심을 취해야 할지니라.”(어서 383쪽) 하는 <일생성불초>의 구절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배독해야 하는지 질문했다.
회장은 답했다.
“그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같은 일을 해도 불평하면서 하는 것과 기뻐하며 하는 것은 일념의 문제에서 전혀 다릅니다. 이것은 개개인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모두 복운이 된다. 공덕이 된다고 확신하는 자세가 신심입니다.
옛날에는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기차를 타지 못하고 자전거를 타고 홍교하러 다녔습니다. 지금이라면 모두 투덜투덜 불평을 했겠지요. 불평하는 마음이 아니라 무엇이든 기뻐하며 하는 마음이 공덕선근을 쌓습니다.”
당시 이야기 - 오바리 케이조
“부처의 이름을 부르고……”의 어문에 대해 질문을 한 것은 저입니다. 큰 규모의 신문사에서 교열(校閱)맨으로서 일하고 있던 제가 세이쿄 신문사로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주위는 대간부 뿐이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일을 해 갈 자격이 있을까라는 불안이었던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따뜻하게 이렇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인생은 장기와 같은 것입니다. 강한 장기말이 있으면 약한 장기말도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 가지로 싸워 가는 속에서 뺏기도 하며 빼앗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승리했을 때는 어떤 장기말도 귀착할 곳에 귀착합니다.
신심을 착실히 관철해 가면 인생도 최종적으로는 반드시 최선(最善)인 곳에 귀착합니다. 초조해 하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분발해 가세요.”
사자가 짖으면 주위는 바뀐다
회중전등을 손에
오후 8시를 넘어 질문회는 종료되었다.
이날 참석자의 폐부를 찌르는 이케다 SGI 회장의 사자후로 캠프파이어는 ‘사제 간의 맹세’를 나누는 장으로 바뀌었다.
회장 앞에서 청년부 간부는 피를 토할 듯한 기세로 결의를 피력했다.
“이케다 선생님 슬하에서 목숨을 걸고 광포를 위해 투쟁하겠습니다!”
광포는 사제에서 출발해야 전진한다. 학회는 사제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캠프파이어를 끝내고 멤버는 각자 자신의 숙소인 방갈로와 텐트로 돌아갔다. 이케다 회장은 회중전등을 손에 들고 그들의 방갈로를 향해 발을 옮겼다.
당시 이야기 - 후기 카즈오
이케다 선생님께서 돌연 “무엇을 하고 있나요”라고 하시며 저희방갈로에 와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지도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답하자 선생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꽤 사람이 많군요. 모두 잘 수 있겠습니까?”라고 걱정해 주셨습니다.
“안쪽이 넓어서 괜찮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작은 방갈로였지만 선생님의 진심에 무심코 그렇게 말해버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미소를 띠우시며 “잘 자세요”라고 하시며 다음 방갈로를 둘러보러 가셨습니다.
방갈로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방갈로를 둘러본 이케다 SGI회장은 마지막으로 바다를 멀리까지 볼 수 있는 절벽에 위에 섰다.
등대의 광선(光線)이 침흑의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태평양 저편에는 미국 대륙이 펼쳐져 있다.
이 이누보사키를 연수의 땅으로 고른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회장의 스케줄에는 이 시기, 이미 첫 북남미 지도가 구성되어 있었다.
세계광포는 은사와 나눈 맹세였다.
그때 근처의 방갈로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다른 젊은이 그룹이 소란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이야기 - 모리타 야스오
밤, 캠프장에서 소란을 피우는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큰 목소리로 떠들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희들은 참고 있었습니다.
그 때 수호회 2, 3명의 멤버가 “젊은이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때 문득 생각났습니다. 도다 선생님께서 계실을 때. 만약 이러한 소란이 있었다면 이케다 선생님께서는 곧장 스승을 지키는 행동을 하셨을 겁니다.
저희들 청년부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솔선수범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쪽이 기세가 있다면
조금도 진정되지 않는 비상식 적인 소리는 방갈로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되고 있었다.
회장은 주위에 있던 수호희원에게 말했다
“활기차게 학회가를 부르세요.”
상쾌한 학회가 합창이 울렸다. 학회가가 끝나자 소란스러운 소리는 그쳐있었다.
당시 이야기 - 히라코 아키라
방갈로에서 술을 마시며 소란이 진정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태평양을 향해 학회가를 부르세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불렀습니다.
“마음을 담아 힘차게 부르세요”라고 말씀하시어 저희들은 진검으로 불렀습니다.
그러자 소란은 뚝 멈추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쪽이 기세가 있으면 반대편은 물러나지 않을 수 없다. 싸움은 기세입니다.”
투쟁의 요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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