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객관화의 중요성 / 이훈
자신을 별먼지와 잔가지라고 인식하는 것은 자기 객관화에도 도움이 됩니다. 자기 평가를 냉철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외부의 시선으로 자신을 볼 수 있어서 균형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장단점을 인정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러한 인식은 자신을 지나치게 과대 평가하거나 과소 평가하는 것을 방지하게 해 줍니다. 메타인지 능력이 상승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자기 객관화는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지지요. 자연스럽게 공감과 이해가 높아집니다. 자신이 별먼지면 다른 사람도 소중한 별먼지일 것입니다. 자신이 잔가지면 다른 사람도 고귀한 잔가지일 것입니다. 모두 비슷한 존재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사람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만 특별한 일이 생길 확률은 아주 낮을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될 것입니다. 보편성에 대한 인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명현, <사례 연구, 이명현>, 이명현, 장대익, <<별먼지와 잔가지의 과학 인생 학교>>, 2023, 사이언스북스,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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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 능력을 글쓰기의 효과로 꼽으며 다음처럼 얘기한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글쓰기는 자기 객관화의 능력을 키워 준다. 요즘 여기저기서 상담을 많이 한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같은 모임도 인기를 끈다. 그만큼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다. 삶이 고통의 바다(苦海)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이런 자리에서 내놓는 조언이나 지혜로운 말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너 자신을 알라’다. 이 격언을 실천하면 쓸데없는 자기 비하나 자아도취에서 벗어나 마음이 튼튼해진다. 자기 객관화가 바로 이것이다.
글을 왜 쓸까? 자신을 잘 알려고 쓴다. 자기 밖의 세계를 다룰 때도 궁극적으로는 자신으로 되돌아온다. 누구를 비판하면서도 과연 나는 그런 문제에서 자유로운지를 나에게도 물어야 좋은 글이 된다. 이런 과정에서 나를 남 보듯 하는 능력을 키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사람은 이렇게 자기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산다.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글은 이런 걸 조금씩이나마 줄여 주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글을 쓰다 보면 내 머리에서 나온 것인데도 문장이 주인이 되어 스스로 제 길을 찾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런 놀라운 현상도 자기 객관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뛰어난 소설가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을 인형처럼 마음대로 조종하지 않고 그의 자유를 존중한다. 심지어는 처음 의도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가치관과 어긋나더라도 기꺼이 그렇게 한다.
앞에서 글쓰기를 씨앗과 나무, 열매에 비유했다. 글이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이유는 씨앗이나 나무처럼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근성이 있기 때문이다. 날마다 애를 써도 식물의 성질을 무시하면 잘 자라지 않는다. 글에도 이런 게 있다. 아무리 멋진 내용이라고 해도 문법에 어긋나면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치에 맞지 않는 내용을 늘어놓으면 아예 읽지 않는다. 그러므로 글도 내 분신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존재로 대접해야 한다. 이러면서 차츰차츰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자유는 필연성의 인식’이라는 멋진 말이 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려면 자연의 질서(법칙)인 중력을 잘 활용해야 한다. 글쓰기에도 이런 진리가 어김없이 해당된다. 잘 쓰자면 문법을 포함한 말은 물론이고 내가 다룰 대상의 성질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런 걸 갖추는 것이 자기 객관화로 나아가는 길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고 한다. 전쟁이란 말이 들어가서 섬뜩하지만 이 지피지기야말로 사람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경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를 완전히 객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가 나를 비판하면 여전히 아프다. 상대방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흥분할 일이 아닌데도 그렇다. 글은 이 지나친 반응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워 준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끊임없는 수양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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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현의 글에서 ‘보편성’이라는 말에 특히 밑줄을 긋고 싶다. 나는 윤석열 대통령을 무식하다고 단정짓는데 그 이유로 보편성의 감각을 완전히 결여한 것을 든다. 한 가지 예만 들면, 그가 늘상 입에 올리는 자유를 그를 반대하는 사람에게 두루 적용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그는 유아론자(唯我論者)다. 그가 같은 당에서 나온 비판조차 내부 총질이라고 공격하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잔혹하기 이를 데 없고 같은 편, 예를 들어 아내 김건희를 무조건 감싸고도는 것도 이런 마음의 작용이다. 그가 대화하면서 혼자만 말한다고 하는데 이러지 말고 자기 객관화 능력을 키워 주는 글을 써 보면 어떨까?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져서 바뀔 것 같지는 않지만. 보편성에 둔감한 주관은 기괴한 고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