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사상 중한사상
러시아의 동아시아 학자 U.M. 푸틴은 ‘동북아 고대사에서 단군조선을 제외하면 아시아 역사는 이해될 수 없다. 그런데 일본이나 중국은 없는 역사도 만들어내는데 한국은 어째서 그처럼 중요한 고대사에 관심이 없고 심지어 있는 역사도 없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본과 중국은 동북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며 자신들이 최고의 역사를 가진 우월국가라고 착각한다. 이런 역사의 증거를 위하여 그들은 역사의 날조(捏造)와 왜곡(歪曲)이란 범죄를 저질렀다. 남의 역사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날조에 혈안이 되었고 자기네에 없던 역사를 있는 것처럼 꾸미는 왜곡에 국력을 낭비하고 있다. 안으로는 미래 세대들에게 자국의 자존심을 높이고 밖으로는 세계 우월국가로서의 위상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이미 지나온 과거 역사적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의 날조와 왜곡이 만들어낸 일본 역사관이 화혼양재론이며 중국은 중화사상이다. 화혼양재론(和魂洋才論)은 기술을 들여와도 일본정신은 잃지 말자는 뜻으로 남의 기술을 마치 일본의 것으로 바꾸겠다는 비양심적 발상이다. 중화사상(中華思想)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뜻으로 모든 역사는 중국 중심으로 이해하고 처리하겠다는 역사적 폭거다. 자기중심적 역사해석이 만들어낸 거짓의 산물이다.
이에 비해 진정 우월한 역사를 가진 한국은 이들과 역사의식이 다르다. 이미 우월한 역사를 가진 민족만의 여유이다. 그런데 그런 여유를 부리고 있는 동안 어느 새 이 두 나라들의 날조와 왜곡의 자기중심적 역사관이 점점 미래 세대에게 진리로 둔갑하는 해괴망측(駭怪罔測)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중화사상에 밀려 당당하게 할 말도 제대로 못한 우리의 처지가 한편 아쉬울 따름이다. 사대주의(事大主義)에 물들었던 우리는 고조선 이후 중국과 일본의 침략을 받으며 고단한 세월을 살아왔다. 경술년(1910년)에 강제병합을 저지른 일본의 패륜적 경술국치(庚戌國恥) 사건으로 우리 역사는 송두리째 일본역사에 짜 맞춰진 식민사관으로 철저하게 왜곡날조 되었고 그 잔재는 아직도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 우리 사회 곳곳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도 식민사관의 늪을 빠져나와 철저하게 우리 중심으로 기술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런 역사의 핵심이 중한사상(中韓思想)이다. 중한사상(中韓思想)은 곧 역사는 대한민국 중심이라는 이념을 깨우쳐 세계와 우리 후손에게 광명의 역사를 알리는 슬로건이고 우리의 외침이다. 이는 곧 중한사상에 입각한 우리의 찬란한 역사를 후세에 남겨 놓아야 할 시대적 사명이다. 대(大)한민국은 곧 세계에서 큰 나라요 민족이라는 뜻이다. 크다는 뜻은 반드시 영토의 넓이나 경제규모, 인구수에 비례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품을 마음의 분량이다. 실로 우리 역사는 모든 나라를 품었던 역사다. 아시아 대륙의 극동(極東)에 위치해 있는 우리나라는 대륙과 해양의 이질적 문화가 만나는 통로였다. 추위에 떨던 대륙 국가들은 부동(不凍)의 항구가 있는 따뜻한 대한민국을 부러워했다. 해양국가 섬나라 일본은 대륙을 그리워하며 대륙의 관문인 대한민국을 시기했다. 이렇다 보니 대륙과 해양은 우리나라에서 자주 충돌했다. 1894년의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이 결정적 사건이었다. 그동안 식민사관의 영향 하에 있던 우리 역사는 이 전쟁을 약소국가였기에 강대국의 침략을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중한사상의 핵심인 민족사관은 대륙과 해양민족들을 그대로 수용하다가 일어난 전쟁이요 큰 나라가 감수해야 할 숙명적 사건이었음을 말한다. 이는 대한민국이 대륙보다 크고 해양보다 넓은 국가라는 뜻이다.
실제로 대(大)한민국과 대국이라고 자처하는 여러 국명들을 비교해 보자. 대한민국 앞에서 중국(中國)은 중간(中間) 밖에 안 되는 나라다. 15개국 사회주의 국가로 구성된 구 소비에트연방국 소련(蘇聯)은 大韓보다 작은 小聯이다. 미국(美國)은 대한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나라(微國)이다. 영국(英國)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제로(0)의 나라, 빵점짜리 나라(零國)이다. 일본(日本)은 근본이라고 내세울 것은 하나밖에 없는 초라한 一本이다. 프랑스(佛蘭西)는 난초하나 제대로 키울 수도 없는 서방의 가난한 나라 불란서(不蘭西)다. 독일(獨逸)은 오로지 하나에 목숨 걸고 있는 형편없는 나라 獨壹이다. 어디 대한민국 앞에서 이런 나라들이 땅만 넓다고 큰 소리 칠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는 동네마다 중국의 자부심이라 여기는 만리장성이 있고 작은 시골 동네에도 중국의 수도 북경(北京)이 수두룩하다. 상호(商號) 하나에도 대한의 자부심이 녹아 있다. 중국 중앙방송국(CCTV)은 길거리 마다 널려 있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자칭 대국에게 대해 이놈 저놈이라고 야단치는 유일한 국가다. 미국 사람에게 양키 놈, 중국 사람을 떼국놈, 일본 사람을 왜놈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라다. 대신 큰 자답게 가난하고 작은 나라들은 존중해 준다.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필리핀 놈들이라 하지 않으며 인도네시아 사람들, 태국 사람들, 베트남 사람들이라고 한다. 품을 수 있는 마음이 진정 큰 자의 모습이다. 남의 것을 자기 것이라고 떼쓰는 떼국놈들과 왜놈들 하고는 그 근본부터가 다르다. 더 나가 현재 세계영혼을 품고 전 세계에 선교사들을 파송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대한민국이야말로 진정 큰 나라다. 이것이 곧 크신 예수님의 마음이다. “너희는 만 족속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마태복음 2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