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를 미워했던 것에 대한 변명 / 박선애
태풍 힌남노가 이 지역에서는 예상했던 것보다 가볍게 지나갔다. 그래도 어머니 혼자 계신 집은 괜찮은지 아침 일찍 전화했다. 어머니는 사촌 언니네 나락이 대목이라 걱정했는데 별 피해 없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 마당은 난리 났다고 하신다. 짐작대로 옆집 은행나무 때문이다. 잎사귀는 말할 것도 없고 꺾인 가지까지 날아와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화가 났다. 경상도에서는 사람도 죽고 피해가 어마어마한데 마당 좀 어질러진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했더니, 그건 그렇다고 누그러진다. 치우려다 넘어지면 요양원 가야 하니 가만 놔두라고 당부했다.
옆집은 우리 동네뿐 아니라 이웃 마을까지 걸쳐 좋은 농토와 산 등을 가진 우리 면에서는 제일가는 부자였다. 지금이야 농지의 가치가 떨어져 그저 그렇지만 옛날에는 영향력이 대단했다. 부잣집답게 넓은 터에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이 갖춰져 있고 나무도 종류별로 여러 그루가 있다. 우리와는 먼 친척이면서 오랫동안 좋은 이웃으로 지내왔다. 지금은 60대 중반이 된, 8남매 중 막내아들이 혼자 내려와 집을 지키고 있다. 그 오빠는 우리 어머니를 모시고 교회도 같이 가고 살펴 드린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어디 가는지, 밥 안 먹고 술만 마시는 것은 아닌지, 지켜보며 따뜻한 잔소리로 챙기신다. 우리 가족이 모이면 계속 같이 지낼 만큼 친근하게 지내는 사이다.
몇 년 전부터 곤란한 문제가 생겼다. 은행나무 때문이다. 그 집 할아버지가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하필 우리 집과 경계에 있다. 그분의 아들이었던, 오빠의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약 백열 살쯤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나무도 백 년은 넘었을 것 같다. 위로 쭉 뻗은 나무는 둥치도 굵지만 키가 엄청나게 크다. 우리 동네에서 그렇게 큰 나무는 산에도 드물 것이다. 동쪽을 향한 채 우리 집은 남쪽에 옆집은 북쪽에 나란히 있다. 꽃이 지는 5월이나 낙엽 지는 늦가을엔 북풍 따라 셀 수 없이 많은 꽃송이와 잎이 우리 집으로 다 날아와 우리 어머니의 큰 골칫거리가 된다.
우리 어머니의 성격도 좀 유별나기는 하다. 지저분한 것을 못 참는다. 집안일을 해 주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웬만하면 청소는 꼭 해 놓고 들에 나갔다. 가마솥에 밥해 먹던 시절에도 솥을 바로 닦지 않고 물 부어놓아 밥알이 퉁퉁 불어 있는 것을 큰 흉으로 생각했다. 마당 가에 있는 감나무도 잎사귀와 땡감이 떨어져 지저분하다고 아들을 졸라 가지를 거의 베어 버렸다. 꽃은 예뻐하면서도 나무는 집 어지럽힌다고 별로 안 좋아한다. 꽃밭도 곡식처럼 솎아 주고, 모종해서 일정한 간격으로 잡초 없이 가꾼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주저앉을 것 같다고 하면서도 집 뒤꼍, 모퉁이 등 빈 땅에 풀이 자라는 꼴을 못 보니 어떻게든 뽑아 없앤다. 심지어는 쓰레기를 모아서 풀이 많은 곳을 옮겨 다니며 그 위에서 태운다. 참 독하다고 놀리면 민망한 듯 웃으며 변명한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은행나무는 컸고, 곡식을 널어놓으면 그 위에 떨어지곤 했다. 그래도 어머니가 젊으니 말없이 치우셨다. 아버지 계실 때까지는 어머니가 모으면 아버지가 버려 주시니 수북하게 쌓이는 은행잎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제는 어머니가 힘이 없다. 지팡이 없으면 걷지도 못하니 낙엽을 쓰는 것이 힘들다. 그걸 치우는 건 할 수 없는 일이다. 마당이 어지러운 것은 볼 수 없는데 몸이 안 따라 주니 불만이 쌓인다. 나무를 저주하고, 심은 분을 원망한다. 가을이면 낙엽 밟는 것이 좋아서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그냥 놔두고 즐기라는 말은 하면서도 씨알도 안 먹힐 줄 알다. 주말에 가서 치워 줄 테니 걱정 말고 있으라고 해도 못 참는다. 얌전하고 순하던 우리 어머니가 나이 들어가면서 변했다. 자기 고집만 내세운다. 어찌해서든지 가마니에 담아 놓는다.
나뭇잎이 마당에만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붕에 떨어져 물받이에 쌓인다. 오빠가 치우러 올라가면 지켜보는 우리는 가슴이 조마조마해진다. 재작년에 건너뛰었더니 작년 장맛비에 물이 못 빠지고 안으로 스며들어 곤욕을 치렀다. 뒤꼍의 나무 아래, 꽃밭 꽃나무 사이, 장독대 틈새 등 구석구석 들어갔다가 겨울바람이 휘도는 날에는 다 나와서 어머니를 불편하게 한다. 옆집 오빠에게 몇 년 전부터 이런 어려움을 조심스럽게 말하지만 공감하고 걱정만 할 뿐이다. 너무 커서 베는 것이 위험해서 곤란하다고 한다. 알아보기는 했는지 의심스럽다. 주변에서는 나무 밑동에 구멍을 뚫고 제초제 한 병 부으면 된다는 둥, 아래에 소금을 묻으면 끝난다는 둥 끔찍한 조언을 해 준다. 주인이 있으니 우리 마음대로 할 수도 없지만 허락한다 할지라도 차마 못할 일이다.
지난주 나무에도 영혼이 있다는 최 선생님 글을 읽으며 은행나무가 생각났다. 없어지기를 바라는 어머니 말에 동조했던 것이 찔렸다. 멀리서 봐도 우리 집을 금방 찾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그 나무다. 언제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우뚝 서 있는 그 나무를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랐기 때문에 그 나무가 없어진 우리 집은 상상이 안 된다. 그동안 나무가 준 것은 다 잊어버리고 낙엽을 떨궈 귀찮게 한 것만 생각하며 미워했던 것이 미안해진다. 올가을에는 더 자주 가서 치우며 어머니와 나무 사이를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 보려 한다.
첫댓글 그래도 다행히 수나무인가 봅니다. 암그루였더라면 지독한 냄새까지 풍겼을 테지요. 은행나무 있는 집이 부러웠는데 그런 어려움이 있군요.
컸을 때를 생각하면 집 부근에는 나무 함부로 심으면 안될 것 같아요.
백년 넘게 큰 은행나무에 단풍이 들면 장관이겠어요. 낙엽이 귀찮겠지만 그렇다고 베어 버리면 안되겠죠.
장독 등 쓸어 내기 어려운 곳에 망을 씌워두면 좋을 것 같아요.
가을이 깊어가는 것을 은행나무 물드는 것을 보며 느끼고 좋아했는데 막상 생각해보지 않은 어려움이 있네요. 좋은 글을 쓰니 아이디어도 올라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