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시편은 고라 자손의 찬송시, 헤만의 마스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헤만은 고라 자손으로서 성전 문을 지키고 찬양을 인도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에 공동체로 모였을 때 불렀던 노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할랏르안놋은 멜로디 입니다.
우리가 찬송시라고 하면 즐겁고 감사하고 희망에 찬 노래를 생각하기 쉬운데 오늘 시편 말씀을 보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좀 어둡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찬송은 우리가 좋고 즐거울 때나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어둠의 깊은 밤을 지날 때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내용은 조금 다릅니다. 오늘 말씀을보시면 먼저 시인은 자기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부르며 시작합니다. 그는 아침 저녁으로 부르짖었습니다. 2절에 보면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께 이르게 해 달라고 하고 하나님의 귀에 들리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이유가 3절에 등장합니다. 3절을 보시면 자신의 영혼에 재난이 가득하고 자신의 생명이 거의 죽을 위기에 있으며, 또 4절을 보시면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고 5절을 보면 죽은 자 중에 던져진 자 같고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죽고 나면 하나님께서 아무런 간섭도 하실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시인은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거의 죽을 지경에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시인이 죽을 병에 걸려서 오랫동안 고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죽음 일보직전까지 가는 상황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밤낮으로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깊은 웅덩이과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고 계십니다. 이렇게 아픈 것이, 혹은 이렇게 극심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로 느껴지고 하나님께서 치시는 파도와 같이 느껴 지기 때문에 괴로운 상황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8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자기가 아는 사람들, 친구들, 친척들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보기에 자신이혐오할 정도로 싫게 만들어서 밖에 나갈 수 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합니다. 아마도 병에 걸린 것이라면 전염병이나 피부병 같은 것이 걸려서 심한 고통 중에 격리 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치 욥과 같습니다. 온 몸에 욕창이 나서 가려워 긁을 때 아내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으라고 하며, 친구들도그런 욥의 모습을 보고 상당히 놀랄 정도 였습니다. 그런 것 같이 헤만, 시편의 기자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너무 아프고 괴로운데 외롭기까지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시편의 기자는 하나님께 또 부르짖습니다. 9절을 보면 매일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 부르짖음의 내용이 10절에 나오는데 고상하지 않습니다. 미사여구로 포장된 말이 아닙니다. 아주 직설적이고 원망도 섞여있습니다. 죽은 자들은 하나님을 찬송할 수 없다고 합니다. 자신이 죽게 되면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없는데 이렇게 계속 두실 것이냐고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성전에서 찬송하는 자신의 직무를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회복을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시인은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하나님께 드리는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14절을 보시면 하나님을 향한 원망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왜 이렇게 지금까지 버려두시고 간섭하지 않으시고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지 답답하고 원망스러운 마음도 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셨습니다. 낫게 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버린 것 같이 느껴지도록 하셨고, 하나님의 얼굴을 숨기시는 것 같이 느끼지도 한 것입니다. 하루 이틀 기도한 것이 아니고 어려서 부터 고난을 당했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혹은 젊었을 때부터 어떤 병이 있었던 것 같고 점점 더 심해졌던 것 같습니다. 계속 그것을 위해서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낫게 해주지 않으셨고, 마침내 지금은거의 죽음을 직면하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두려움이 자신의 모든 희망을 끊어 낼 만큼 강하고 홍수 물에 압도 되는 것 같고 사랑하는 사람도 친구도 다 떠나게 만드셨다고 하나님께 원망 섞인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시편과는 달리 오늘 시편은 기도의 응답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가 없이 그대로 끝이 납니다.
오늘 말씀은 상당히 읽는 독자를 당황하게 만들고 어떤 면에서는 불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대드는 것 같이 보이고, 또 기도에 그토록 오랫동안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이해가 잘 되지도 않습니다. 가장 어두운 시편입니다.
하지만 오늘 시편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분명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하나님과 관계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떠나지도 않았고 지금까지 기도하고 있었고, 지금도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은 오랫동안 어려움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기도 응답이 더디다고 여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도 응답이 더디고 때로 우리의 바람대로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실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을떠나서는 안되고 기도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욥과 같이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그분 곁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두번째로,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날카로운 말도 들으신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어떤 말도 들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신 분이십니다. 좋은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실함과 솔직함에서 나오는 표현들도 하나님은 듣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기도를 예쁘게 잘 해야 하나님께서들으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기도를 배우고 형식을 갖춰서 기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 마음 속에 답답함과 극심한 어려움과 고통가운데 있을 때, 부르짖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있는 것 그대로 하나님께 쏟아 내고 내어 놓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포장하기를 좋아합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말씀드리기 보다 잘 포장한 말들을 기도에서 조차 내어 놓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외로움과 고독함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 외롭고 힘들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때로 왜 기도에 응답을 아직 안 해 주시냐고 물어도 괜찮습니다. 마음의 괴로움을 토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말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잘 포장 된 자신을 내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깊은 곳도 아십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당신의 깊은 곳에 있는 갈등과 어려움과 두려움을 토로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다 쏟아 놓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지기를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속에 있는 것을 다 토로한 후에 비로소 참되게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올 한해도 어떤 상황 속에서 하나님과 관계의 끈, 기도의 끈을 놓지 마시고, 응답되지 않을 때에도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포장하지 않고, 정직하고 솔직하게 기도함으로 아버지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