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춘천 이야기6
여성들의 한풀이 화전놀이
<장구와 물박장단이 어울린 신명의 장소>
“오늘 갈른지 내일 갈른지 정수정막 없는데 울타리 밑에 줄 봉숭아는 왜 심어놨나~”
대룡산 수레간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계곡에는 진달래가 활짝 피고 따스한 봄기운이 가득했다. 어느새 한겨울의 추위는 사라졌다. 정말 꽝꽝 언 얼음과 키를 넘기는 장설(壯雪)은 녹지 않을 것 같았는데, 봄 햇살에는 견디지 못했는가 보다.
졸졸 흐르는 눈물[雪水] 위로 자갈이 곱게 깔린 수레간 장광(場廣)에 고운 목청을 맘껏 뿜어내는 여인이 있었다. 아마도 그 여인은 시집살이가 힘들었는가 보았다. 다른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심정을 정선아라리에 담아내었다. 정든 남편과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으니 어찌하라.
“둥둥둥둥~, 당당당당~”
어떤 여인은 장구를 치며 옷소매를 날리고, 어떤 여인은 물동이 물 위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손바닥으로 물박장단을 쳤다. 그 앞과 옆에는 조선옷 치마저고리와 양장을 곱게 입은 여인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집안에서 살림하고 베 짜고 김만 매던 투박하게 느껴졌던 여인들이 어찌 이런 재주를 가졌단 말인가.
<이상향을 꿈꾼 떡 화전(花煎)>
“지글지글~”
찹쌀가루 반죽 위에는 분홍빛 참꽃[진달래]이 놓였다. 꽃전[화전]이었다. 상큼한 맛이 일품이다. 음식은 눈으로 먼저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꽃전은 진정 눈으로 먹고 혀로 맛보고 입으로 삼키는 떡이었다. 꽃전 옆에는 며칠 전부터 준비한 막걸리가 동이 째 놓였다. 아무래도 해방의 순간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은 술이었다. 얼큰하게 취하여 놀아보자는 뜻이니, 막걸리 또한 그 얼마나 맛난 음식일까. ‘화전놀이도 식후경’이라 어찌 흥취를 돋우는 술과 안주가 없을까. 눈만 녹으면 올라온다는 얼러지 나물무침에 닭백숙도 보인다.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로다.
그 가운데 화전놀이의 핵심 음식은 꽃전이다. 그 옛날 시집살이 설움과 여인들의 한을 씻고 싶은 마음이 꽃전에는 담겨 있다. 평소 먹기 힘든 입쌀에 봄을 알리는 꽃이 놓였으니, 그 뜻을 알만하다.
<설움을 달래는 한풀이>
“니나노 늴리리야 늴리리야 니나노 얼싸 좋아 얼씨구나 좋다~,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하루 내내 여인들의 놀이는 이어졌다. 소리 못하면 벌주(罰酒)를 마셔야 했고, 소리를 잘하면 상주(賞酒)를 마셔야 했다. 얼큰하게 취한 여인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피었다. 아니 좋을 수가 없다. 편을 갈라 진달래 꽃술을 따서 꽃싸움도 했다. 꽃싸움에서 지면 또 벌주를 마셨다.
누가 뭐라 하든지 화전놀이는 여인들만이 즐기는 놀이였다. 남성들로부터 떠난 여인 천국이었다. 남성들은 여인들의 화전놀이에 일절 간섭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화전놀이의 현장을 엿봐서도 안 된다. 일 년에 딱 하루 정말 여인들만의 시공이다. 그렇게 우리 할머니, 어머니, 누님, 누이는 살아가면서 쌓인 한을 화전놀이로 풀었다. 그러니 화전놀이는 한풀이였다. 가슴에 응어리진 화병을 씻는 순간이었다. 여인들은 그렇게 한풀이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건강한 삶을 이어갔다.
아직도 대룡산 수레간을 비롯한 마을 계곡에는 화전놀이 하던 여인들의 맑은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