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문묘와 국자감 / 김석수
아내와 딸은 하롱베이 현지 가이드가 하노이 관광에서 꼭 가봐야 할 곳으로 ‘문묘와 국자감’을 추천하더라고 했다. 호안끼엠에서 그랩(Grab: 택시를 부르는 인터넷 앱)으로 택시를 불러서 갔더니 10여 분 정도 걸렸다. 문묘(文廟)는 공자를 모신 사당이며 국자감(國子監)은 유학을 가르쳤던 교육 기관이다. 우리나라 성균관 같은 곳이다. 차에서 내리니 2층에 커다란 종이 달린 문묘문이 눈에 띄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야 들어갈 수 있다. 옛날에는 왼쪽은 문관, 오른쪽은 무관 그리고 가운데는 왕만이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대부분 서양 사람이다. 꽤 넓은 정원에 아름드리나무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다. 공자의 고향인 중국 곡부에 있는 문묘를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가운데는 대중문(大中門)이 있고 옆에는 달재문(達才門)과 성덕문(成德門)이 있다. 대중문은 그냥 커다란 가운데 문이란 뜻이 아니고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에서 앞 글자를 따온 것이다. 유교 경전인 두 책을 열심히 공부해서 잘 깨우치기 바라는 뜻에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두 번째 정원으로 들어가면 잘 가꾸어진 잔디밭이 있다. 작은 나무에 빨간 꽃이 듬성듬성 피어있다. 작은 연못에 연꽃이 예쁘게 올라오고 있다. 마당 끝에 네 개의 기둥이 있는 전각이 있다. 10만 동 베트남 지폐에 나와 있는 규문각(奎文閣)이다. 1805년에 지어졌다. 독특한 건축 양식 때문에 하노이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 유명하다. 규문(奎文)이란 학문(文)으로 찬란히 빛나는 별(奎)을 뜻한다. 우리나라 규장각(奎章閣)과 비슷한 의미다. 2층에는 동그란 구멍을 부챗살 모양의 열여섯 개 받침대가 감싸고 있다. 그 안에 동종(銅鐘)이 매달려 있다고 한다.
규문각을 지나면 크고 너른 연못이 있다. 천광정(天光井)이다. 하늘의 빛을 담아낸 우물이란 뜻이다. 태극과 음양을 나타내려고 만들었다. 유교의 세계관을 잘 드러내는 곳이다. 연못 옆에는 여러 개의 비석이 있는 전각이 있다. 과거 시험 합격자 명단을 새겨놓은 곳이다. 레와 막 왕조 사이(1442년부터 1779년)에 치러졌던 백 열여섯 번의 과거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2,313명이다. 그중에 82개의 비석에 1,307명의 이름만이 있다. 수많은 전란으로 많은 비석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예전에 베트남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비석 밑에 거북이를 만지며 시험을 잘 치기를 기원했다. 지금은 비석을 보존하려고 울타리가 쳐져서 접근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시험 철이 다가오면 많은 사람이 이곳에 와서 기도한다.
천광정을 지나 대성문(大聖門)으로 들어가면 문묘의 가장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대성전(大聖殿)이 있다. 공자를 모신 곳이다.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건물에 72명의 베트남 유학자 위패가 있었지만 1947년 프랑스군의 포격으로 없어졌다. 지금은 복원해서 관광객에게 기념품을 파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다. 앞뒤 두 전각으로 이루어진 대성전은 지붕에 두 마리 용이 마주보고 있다. 앞 전각은 제례를 올리는 곳이고 뒤 전각은 공자와 그 제자를 모신 곳이다.
앞쪽 전각에 봉황 한 마리가 거북이 위에 서 있는 청동상이 있다. 그 뒤 하얀 도자기에는 용이 그려져 있다. 모두 베트남 사람이 귀하게 여기는 신령스러운 동물이다. 뒤쪽 전각에 공자 동상을 중심으로 그 제자인 안회, 증자, 자사, 맹자 동상이 있다. 전각 중앙에 금으로 장식한 ‘만세사표(萬世師表: 학식과 덕행이 높아 영원히 모범이 된 스승)’ 현판이 눈에 띄었다. 청나라 강희제가 공자를 평(評)한 말이다.
대성문을 지나 다섯 번째 마당으로 들어서면 국자감이다. 베트남 최초의 국립 대학이다. 1946년 프랑스군의 폭격으로 파괴됐지만 2000년에 다시 복원했다. 지금은 국자감과 관련된 역대 군주와 교수의 위패가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크고 시커먼 동상이 있다. 국자감 교수이자 책임자였던 주문안(朱文安)이다. 그는 베트남에서 유명한 유학자였다. 2층에는 문묘를 세운 리 왕조의 성종과 국자감을 세운 인종 동상이 있다. 그리고 진사제명비(進士題名碑)를 세운 레 왕조의 성종 동상이 있다. 여기에도 거북이 위에 봉황이 있다. 그것들은 나라와 국민을 지켜 주는 상징물이다.
문묘와 국자감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베트남의 속살을 들여다보았던 느낌이다. 베트남은 왜 가족 중심 문화가 뿌리 깊은지 알 수 있었다. 지배층은 유교와 한자에 익숙했다. 호찌민이 중국 감옥에서 한시(漢詩)를 짓고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즐겨 읽었던 것도 이해가 되었다. 잘 알다싶이 이 책은 관리의 바른 몸가짐이나 행동을 다룬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그 제목만 알고 나중에 한글 번역판을 읽은 적이 있다. 내게는 한글로 읽어도 어려웠다. 호찌민이 한문 원서로 읽었다고 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더욱이 우리보다 우리 것을 더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실천했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나도 언젠가 그 책을 원서로 다시 읽고 싶다.
첫댓글 호찌민이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었다니 어깨가 으쓱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만 아는 책인 줄 알았는데 베트남 국부가 읽었다니요.
고맙습니다.
베트남 구경을 공짜로 잘 하고 있습니다. 매번 재미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작년에 베트남 갔을 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네요. 저도 글을 쓸 걸 그랬어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매주 베트남 여행 잘하고 있습니다.
책의 힘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저는 주먹구구식 베트남 여행이었는데 세세한 얘기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처럼 이제 여행하면 꼭 글을 써야겠어요. 안 쓰니까 여행한 곳이 어디인지도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잘 읽고 많이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베트남 이야기 정말 재미 있습니다. 선생님에게 베트남도 배우고, 글쓰기도 배우고 여행의 방법도 배웁니다. 많은 것들이 새롭게 다가 옵니다. 고맙습니다.
재미있게 읽었다니 다음 번에도 베트남 이야기를 쓰야겠네요. 고맙습니다.
저도 분명 여길 갔었는데 좀 시시했었다는 것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똑같이 봤는데 이렇게 다르군요.
생생한 여행기, 잘 읽고 있습니다.
교장 선생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