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뒤란 / 정선례
어릴 적 우리 집 뒤란은 앞마당 못지않게 널찍했다. 울울한 소나무 숲 아래로 친구 집과 산밭으로 이어지는 뒤안길이 있었다. 겨우 한 사람 정도 다닐 수 있는 좁은 길이었지만 하루에도 서너 번은 그곳으로 다녔다. 맏이였던 나는 열 살 무렵부터 학교에 가지 않는 일요일이나 방학에는 잔꽃무늬 수놓아진 포대기에 막내 남동생을 업고 밭으로 젖을 먹이러 다녀오는 일이 일과였다. 동생은 한 손으로 내 머리칼을 손가락에 감고 배가 고픈지 다른 손 어미 손가락을 빨며 잠투정했다. 산벚나무와 무화과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이 시원하다. '섬집아기'와 '잘 자라 우리 아가' 노래를 나직하게 불러주며 고즈넉한 뒤꼍을 왔다 갔다 하면 등 뒤에서 스르륵 잠이 들곤 했다. 아버지께서 겨우내 볕짚으로 짠 멍석 위에서 옆으로 누워 조심스럽게 눕히고 깰까 봐 다독여 주면 한 번 눈을 떴다가는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드디어 자유다. 옆집 은경이를 불러 땅따먹기 게임을 했다. 흙 마당에 나무가지로 여덝칸을 만들어 커다랗게 번호를 매긴 판이다. 1번에다 먼저 돌을 놓는다. 8번까지 금을 밟지 않고 돌을 발로 차서 되돌아오는 게임이다. 금을 밟았을 때는 그 번호에서부터 시작해서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도란도란 잘 놀다가도 지기 싫어하는 둘의 비슷한 성격때문에 곧잘 다퉜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우기며 일굴을 붉히다 급기야는 울컥하여 두손으로 머리카락 잡고 싸운것도 부지기수이다. 지금도 내 얼굴에 지워지지 않은 손톱자국은 그 아이가 할켜서다. 앙칼지게 싸우고 들어온 날이면 어머니는 손톱 자국은 지워지지 않는다며 내 얼굴을 만지며 속상해서 은경이에게 몹쓸년이라며 욕을 해댔다.
아무도 놀러오지 않는 날은 두 살 터울 여동생과 아카시아 줄기 잎새를 따는 가위바위보 놀이를 했다. 친구가 놀러 온다, 안온다에 답하며 작은 잎새를 하나씩 따서 점치는 놀이다. 그것도 지루해지면 아카시아 잎새를 훑어 내고 줄기를 반으로 접어 동생의 단발머리에 파마를 해준다며 머리카락을 감아 고정해서 한동안 놔두었다 풀면 살짝 곱슬한 형태가 되었다. 연두색에서 짙은 녹색으로 산이 바뀔 때쯤이면 어머니는 비료 포대를 뒤집어 손에 들고 보자기를 허리에 질끈 두르고 고사리를 꺾으러 산에 올랐다.
낮은 산 아래 우리 집 뒤란에는 봄이면 키 작은 아카시아가 있어 할머니 새하얀 버선코 닮은 꽃송이를 치렁하게 매달아 향기를 내뿜었다. 고목인 산벚나무도 귀퉁이 한자리를 차지해서 바람 불면 영화의 한 장면인 듯 흩뿌려져 손으로 꽃잎을 받으며 놀았다. 우리 형제들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나무는 무화과이다. 장독대 옆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고목으로 서 있던 무화과는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오가며 나무에 올라가 따먹었다. 부드럽고 달콤해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즐겨 먹는 과일이 되었다. 밭 주변마다 심었더니 벌레도 청하지 않고 잘 자란다. 밭일하다 허기지면 잎새 사이 가지에 바짝 붙어 속살을 드러내는 잘 익은 무화과를 서너 개 따먹고 나면 새참으로 그만이다. 꽃이 없는 과일이라 해서 무화과(無花果)란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은 속에 먹는 붉은 부분이 꽃이다.
흙마당이 질척거릴 때는 섬돌에 신발을 올려놓고 쪽마루에 발을 걸치고 앉아 헛간의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었다. 그런 날이면 부엌에서는 솥뚜껑에 전을 부치느라 지글지글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면 침이 고여 고개가 자꾸 그쪽으로 돌아갔다. 집 둘레를 빙 둘러쌓은 돌담으로 타고 오르는 호박 넝쿨에서 애호박을 따고 부추를 베어왔다. 학독에 감자를 톡톡 깨서 쓱쓱 문질러 함께 섞어 만든 누름적은 그 당시 최고의 별미여서 젓가락이 몇 번 오가지 않았는데도 게 눈 감추듯 사라져 버렸다. 어머니가 또 가져오기를 기다리며 젓가락을 그대로 들고 입맛을 다시며 기다렸다.
어머니는 비가 와서 들에 못 나갈 때면 사카린 녹인 물을 조금씩 쳐가며 가마솥에 통보리를 볶았는데 타닥타닥 튀겨지는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콩도 자주 볶아 내놓았다. 부지런한 어머니 덕분에 우리집에는 사시사철 주전부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 추억 때문인지 나는 비 오는 소리를 좋아한다. 그런 날이면 콩을 볶아 남편에게 안기고 나는 부침개에 막걸리를 한 잔 마셔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겨울을 제외하고는 다섯마리 남짓되는 닭을 풀어놓고 키웠다. 앞마당과 뒤란을 멋대로 돌아다니며 댓돌에 벗어놓은 신발에 똥을 싸놓아 모르고 밟았던게 한두번이 아니다.
"저놈의 달구새끼들 다 잡아 먹어버릴테다"
욕을 해대며 저리 가라고 손사래를 쳐보지만 내 입만 거칠어질뿐 그것들이 알아들을리 만무하다. 그렇게라도 해야 뒤틀린 심사가 풀렸다. 그래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알을 낳아 우리들에게 영양 보충을 해준 고마운 존재들이다. 이른 아침 알을 꺼내오는 일은 언제나 오빠 몫이었다. 어머니가 툇마루에 꺼내놓은 박 바가지를 들고 변소가 딸린 헛간에서 닭이 방금 알을 낳아 따끈한 계란을 담아 부엌에 내밀었다.
그러고는 동네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샘에서 물을 길어 마루 귀퉁이 통에 채워놓고 학교 갈 준비를 했다. 나는 그 물로 설거지와 세수를 하고 학교에 갔다. 이른 아침 밭에서 일을 하다 돌아온 어머니는 노란 양푼에 계란을 탁 깨서 대파를 송송 썰어 가마솥 밥 위에 얹어 익혀 언제나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었다. 나는 주로 앞마당의 대문으로 드나들지 않고 뒤로 나 있는 좁은 길을 이용 집에 들어왔다. 골목에 들어서기 전 도랑 옆에 커다란 백 오동나무 한 그루가 큰 키를 자랑하며 서 있었다. 그 아래에는 마을 어른들이 묘여서 하릴없이 오가는 이들에게 말을 시키는 게 싫었는지도 모른다.
봄이면 아버지는 겨우내 손수 만든 촘촘한 싸릿대 바지게에 쑥을 한가득 베어와 뒤란 산벚나무 아래에 부려놓았다. 어머니는 손과 손톱에 퍼런 물을 들이며 명절이나 제사에 쓸 좋은 쑥을 우선 다듬어 소다 넣고 데쳐 할랑할랑 씻어 비닐봉지에 넣은 후 바싹 말려놓았다. 나머지 쑥은 된장국도 끓이고 데쳐내서 담가놓은 쌀과 함께 돌절구에 곱게 찧어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조물조물 치대고 주물러서 동글납작하게 개떡을 만들었다. 달지 않고 쫀득한 맛이다. 지금의 어떤 주전부리도 그때 먹었던 쑥개떡 맛을 따를 수가 없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음식 만드는 게 취미가 있었는지 불 때서 막걸리 술빵을 곧잘 만들어 내갔다.
"맏딸은 살림 밑천이야"
고구마밭을 매는 품앗이꾼들의 말이다.
은경이를 보지 않은 세월이 어느덧 40년도 넘었다. 한동네 오빠와 결혼하여 우리집을 사들여 모두가 떠난 뒤에도 유일하게 고향을 지키며 산다는 걸 소문으로 들었다. 집 번지를 지금도 외우고 있다. 인터넷 항공 사진으로 봤더니 마을 형태나 집이 거의 그대로이고 달라진 건 도로가 새로 뚫리고 대형 축사가 들어서 있다. 내가 학교 다닐 무렵 시골에는 차는 물론이거니와 경운기도 없었다. 리어카로 물건을 실어나르는 게 고작이었다. 나이 들수록 고향에서 유년을 보냈던 그 시절 추억이 잊혀지지 않고 아슴아슴 떠오른다. 고향 곳곳을 두 발로 걸어 풍경을 눈과 마음에 담아 오자고 형제들에게 한 번더 말해야겠다.
첫댓글 세월이 많이 흘러도 늘 꿈을 꾸는 고향, 선생님 글 읽으며 마음은 또다시 고향으로 달려갑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아름다운 고향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부지런한 엄마 덕분에 맛난 음식을 많이 먹었겠네요.
고향은 누구에게나 그리운 곳이지요. 잘 읽었습니다.
이건 잘난 척인데요. 하하! 아카시아가 아니라 아카시입니다. 원산지와 학명도 다르구요.
정선례 선생님의 감수성의 원천은 고향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열 살 소녀가 동생을 재우고 있는 어른스런 모습이 짠합니다. 비 오는 날 어머니가 보리와 콩을 볶아 주던 풍경은 우리집에도 있었지요. 그때는 마른 유채대로 불을 땠던 것 같아요. 고향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우리 집 뒤안에도 아름드리 무화과와 대추, 감, 앵두나무가 있었어요. 각종 채소도요. 선생님이 쓰시는 문장들은 아름답네요.
친정집을 연상케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동생을 재우던 모습이 어른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잘 쓰여진 동화 같습니다,
추억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는 고향이네요. 너무 부러워요. 재미난 표현이 많아 즐겁게 읽었어요.
동생을 업고 젖먹이로 가던 기억, 저도 있습니다.
그때의 맏이는 다 그랬지요.
'고향' 글감으로 뭘 쓸까 고민하다가 겨우 글을 썼는데, 막상 쓰고 보니 남은 이야기도 많더라고요.
선생님도 그러셨군요.
은경이와의 만남은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되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