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늬 가방 / 이임순
까치문학 회원이 부친상을 당했다. 96세의 아버지와 다시는 이을 수 없는 고리를 놓아야 한다.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 하는 헤어짐이 숙연하다. 문상을 마치고 나온 회원들이 다음 주말에 있을 나들이 이야기를 한다. 벚꽃축제로 도로가 붐빌 것에 대비하여 가는 경로를 의논한 것이다.
가로수가 만개한 꽃길 터널을 걸으며 무르익은 봄 속에 안길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붕 뜬다. 문득 꽃무늬 가방이 떠오른다. 지인한테서 선물 받아 한두 번 사용한 후 한켠에 모셔둔 장롱 지킴이다.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내 글을 읽고 가게 앞을 지나다 생각나서 마련한 것이라 했다.
30년 지기인 지인과의 인연은 문학이 맺어주었다. 그녀는 매사에 빈틈이 없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안다. 평소와 달리 서두르거나 행동이 굼뜨면 금세 알아차리고 평정을 찾을 수 있도록 조언한다. 몇 해 전이었다. 일기예보에 모처럼 저녁부터 비가 올 것이라 했다. 고구마 심을 밭에 두둑을 지어야 하는데 광주에서 모임이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학교에 간 후 채비를 서둘렀다. 9시 버스를 타야 늦지 않게 참석할 수 있는데 집에서 터미널까지 가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출발시간에 맞추느라 혼이 반쯤 나갔다. 휴식 시간에 지인이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서두르는 이유를 물었다. 모임을 마무리 짓고 식당으로 가면서 몇 시 버스를 탈 것이냐고 했다. 서둘러 식사를 하는데 체하겠다며 콩자반은 천천히 씹어 먹어야 더 고소하다며 눈을 씽긋거린다. 먼저 가겠다고 인사를 하니 그녀도 학교에 가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택시 승강장에서 걸음을 멈추니 터미널 부근에 볼일이 있으니 내려주겠다는 것이다. 천천히 식사해도 강의 시간은 여유가 있었는데 나를 배려한 그녀의 마음씀이다.
그녀가 자랄 때의 환경은 기본욕구를 채우기에 턱없이 모자랐다. 그런데도 도움 줄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 오로지 자신이 헤쳐 나가야 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기댈 생각보다 어떻게 부딪친 일을 풀어갈 것인지 어려서부터 실마리를 찾았다. 주변에서 난감한 일을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면 조언했을 뿐이라며 본인의 선행을 드러내지 않았다.
노력 없는 결실이 어디 있을까. 하나를 얻기 위해 가지고 있는 것을 잃기도 했다. 그것을 지키면서 다른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눈물겨운 노력을 한 후에 대가를 얻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강단에 설 수 있는 것도 피나는 극복이 자신에게 준 선물이다. 여린 듯하면서도 강한 정신력은 그에게서 배우고 싶은 장점이자 자산이다.
강단진 힘은 누구나 갖기를 원한다. 그런데 아무나 가질 수 없는데 그녀에게는 있다. 조금만 거들어주면 허둥대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는 안목을 보는 눈이 있는 것이다. 말보다 실천하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준다. 노력하지 않고 입으로만 떠버리면 힘을 남용하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것이 당장은 아픔일 수 있으나 시일이 지나면 당사자에게 득이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한테는 냉정하다. 최소한의 도리도 모르는 이에게 뻗는 손길은 그릇에서 흘러넘치는 물과 같다고 했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제대로 하려면 그의 대한 모든 상항을 파악하고 때로는 그 주변 인물과 환경까지도 알아야 할 경우도 있다.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경계 짓기가 막연한 것은 마음이 변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요물에 비교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꽃무늬 가방이 곁에 있다. 그 속에는 손에 잡히지 않고 눈으로 볼 수도 없는 그녀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다. 문학기행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것이 불현듯 생각난 것은 왜였을까? 며칠 전에 전해 들은 그녀의 말이 울림이었나 보다. 4월에 경상도 고령에서 세미나가 있는데 어떻게 갈 것이냐고 물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몇 번 갈아타는 번거로움이 있으나 기차를 타겠다고 했다. 그녀가 이왕 가는 길이니 중간에 만나 함께 가자는 것이다. 좋긴 한데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장거리인데 돌아서 가는 만큼 지인은 차를 더 타기 때문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본인의 수고가 따라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얼마 전에도 그녀의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탄 적이 있다. 부부만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으나 무척 고마웠다.
매번 받기만 한다. 손을 내미는 지인이 고맙기 그지없다. 그녀만큼은 아니라도 나도 작은 나눔이라도 실천하고 싶다. 비록 보잘것없어도 누구에겐가는 필요한 것이 있을 것이다. 벚꽃이 만개한 거리에 꽃가방이 잘 어울릴 것 같다. 그 속에 지인처럼 예쁜 내 마음을 가득 담고 싶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연둣빛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동행하는 회원들의 가슴에도 스며들면 좋으련만.
꽃가방 메고 즐겁게 문학기행 다녀와 내 마음을 글로 옮겨 그녀에게 전해줘야겠다.
첫댓글 내 마음을 읽은 듯, 손을 내미는 따스한 지인이 있어 행복하시겠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훈훈한 바람을 일으켜주는 지인이 늘 고맙지요. 감사합니다.
꽃가방 궁금합니다.
꽃가방 속에 선생님의 예쁜 마음 가득 담아드리고 싶습니다.
꽃가방에는 예쁜 꽃만 가득 차길 바랍니다.
예, 그러고 싶습니다. 예쁜 마음이 함께하면 더 좋구요.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지인 분이 정말 좋아하시겠어요.
예, 좋아할 것입니다.
언제나 저에게 격려와 용기를 주는 마음이 따뜻한 분입니다.
꽃무늬 가방 메고 문학 기행 다녀 오신 이야기 우리에게도 들려 주실 거죠?
기회가 있으면 들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사람 옆에는 좋은 사람이 있다. 제 생각입니다. 하하.
글써요. 보살핍이 필요한 사람 옆에 좋은 사람이 있는 것 아닐까요?
역지사지 잘하는 그분이 누군지 짐작이 갑니다.
그런 분이셨군요.
꽃무늬 가방 메고 문학기행 가면 또 한 편의 글이 탄생하겠지요?
예, 글도 쓰고 마음도 닮도록 하려고합니다.
짐작 하셨다니 저 마음이 더 따뜻해지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
그날 꼭 메고 오실거죠. 그 가방을 보면 선생님의 글에서 느꼈던 마음을 바로 느낄 것 같습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당연히 메고 가야지요. 그래야 글의 실마리도 풀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