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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 나라 / 시 96:1-13, 눅 17:20-21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 연휴기간이다. 수석을 한가위 또는 중추절이라고 하나. 봄에서 여름동안 가꾼 곡식과 과일들을 수확하는 날이자 가장 큰 만월(보름달)이라 마음이 풍족해지는 날이다. 여럼처럼 덥지도 않고 겨울처럼 춥지도 않아서 살기가 가장 좋다하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 하여라’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추석의 유래는 삼국시대 초기로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유리와 때에 도읍안의 부녀자를 왕녀가 두패로 나눠 각기 거느리고 7월 15일부터 8월 한가위 날까지 한달동안 두레 삼기를 했다. 마지막 날에 심사를 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한턱을 내고 ‘희소곡’을 부르며 놀았다고 한다. 추석이 되면 선물이 오고간다. 제가 어릴 때 친척간에 주고 받는 선물을 보면 쌀 1-2말, 설탕, 정종, 과일바구니, 쇠고기나 돼지고기 등이었다. 이렇게 고마움과 정성을 다하는 명절 선물은 시대에 따라 변해 왔다. 이는 생활수준과 산업발전의 정도에 따라 인기 품목이 변했다. 지금은 상점마다 선물세트들이 즐비하다. 6.25전쟁이 끝난 50년 대에는 달걀, 생닭, 햅쌀, 나일론 양말 등이었는데 나일론 양말은 워낙 귀해서 서민은 엄두도 못냈다. 60년대는 설탕이 주종을 이루었고, 70년대에는 공업화로 미원 등의 조미료가 인기가 있었으며, 여기에 치약, 비누, 그릇 등 생활용품도 인기가 있었다. 80년대는 갈비가 인기가 있었다. 여기에 영광굴비, 재주옥돔과 전통 술 세트도 많이 나갔다. 90년대에 들어서는 다양성과 개성이 중시되면서 선물을 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물건을 골라 선물하는 추세이다. 화장품, 건강식품, 노인들을 위한 의료기기(안마기, 혈압계), 이밖에 북한술도 인기를 끌고 있으며 상품권이 생기면서 가장 받고 싶어하는 선물 가운데 하나가 됐다. 추석에 하는 또 하나의 행사가 있다면 조상의 묘에 성묘하는 일이다. 성묘하면 또 천국과 지옥이 연상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자리에 묻힌 분은 과연 천국에 있을까 아니면 지옥에 있을까 궁금하기에 그렇다. 그래서 흔히 생각하기를 우리 조상은 천국에 잘 계시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천국 곧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바리새인들이 묻고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문 마지막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는 말씀을 읽었다. 이제 이 말씀을 바탕으로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 나라’라는 제목으로 본문의 뜻을 새기도록 하겠다. 본문의 줄거리는 퍽 간단하다. 바리새인들, 곧 예수님 당시 조상적부터 전해 내려오던 신앙의 전통을 엄격히 지키느라 애쓰는 생활로 사람들이 존경을 한 몸에 받아오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나사렛이란 동네에서 자라나 유대 전국을 다니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던 예수께 묻는다. ‘예수, 당신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우리 보기에는 아주 엉뚱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이같은 본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는 앞으로 이 세상에 올 것이라는 전제 아래 그때가 언제인가를 예수께 물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은 사람이 볼 수 없고, 그 누가 여기 저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고 할 수도 없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벌써 사람들 가운데 와 있다고 답하신 것이다. 이처럼 바리새인들과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할 때, 오늘 우리로서는 두편의 생각을 보다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먼저 바리새인들이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 말씀드리겠다. 구약과 그에 뒤이어 발전한 유대교의 전통에 서 있던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던 하나님의 나라는 이른바 그들의 메시야 사상과 통한다. 곧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세력들을 하나님께서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이 겪는 고생을 끝내게 하시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평화의 세계에서 살도록, 하나님께서 새로운 통치자를 보내실 것을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 메시야가 와서 이스라엘을 모든 얽매임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다스림만 받고 살도록 하는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온 때로 보았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의 해방과 자유와 주로 관계되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바리새인들의 생각이었다. 또한 그런 일이 있기에 앞서 어떤 징조들이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이렇게 볼 때,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옵니까?’라고 예수께 물었을 때.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하신 것이 전혀 엉뚱한 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어떤 징조들이 있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곧 옴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를 물으면서, 사실은 어떤 징조가 하나님의 나라가 곧 올 것을 가리키는가를 넌지시 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징조로서만 따질 것이 아니라는 뜻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게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듯하다. 여기서 우리는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 그리 틀린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볼 때 그것은 예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완전히 이루신다는 신약의 가르침과도 비슷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막 13장을 보면 예수님 자신이 마지막 때와 징조에 대해서 몸소 말씀하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징조를 보고 하나님 나라가 오기 전의 마지막 때를 분별한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는 식으로 오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신 예수님의 답변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말씀 다음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진다. 첫째,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저기라는 어떤 장소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이요, 둘째,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현재 사람들 가운데 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앞서 말씀드린대로 앞으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는 유대인들의 생각과는 다른 뜻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만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나라임을 밝히시는 동시에 그 나라는 예수님 자신을 통해서 이미 이 세상 사람들 사이에 와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곧, 앞으로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다음 하늘에 오르신 후 나중에 다시 오셔서 이루실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성서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바로 오늘 본문 다음에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와 관계되는 말씀들이 나온다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 뿐만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심으로 이미 시작되어, 나중에 예수께서 다시 오시면 완성이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와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알지 못하고 앞으로 올 하나님의 나라만 기다리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