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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이 아니어도
민수기 34:17〜19 유장춘 목사(법학박사 ‧ 철학박사)
〇 하나님은 큰 그릇 작은 그릇, 귀하게 사용하는 막 사용하는 그릇을 만드십니다. 눈이 귀하다고 모두 눈이 되면 아니 되고, 손이 발보다 영광스럽다고 모두 손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때 보다 영혼의 때에 하나님께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의 사람 갈렙을 통해서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축복합니다.
〇 본문말씀
- 가나안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낼 때 각 지파에서 지도자 한사람씩 보내라는 말씀에 따라서 유다 지파에서 여분네의 아들 갈렙 , 에브라임 지파에서 눈의 아들 호세아, 모세는 눈의 아들 호세아에게 여호수아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민13: 6, 8, 16.)
- 정탐꾼들이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에게 보고하면서 가나안 땅의 열매를 보여 주었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이 “당신께서 우리를 보내신 그 땅에 우리가 들어갔는데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여기 거기서 나는 열매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거기 사는 사람들은 힘이 세고 그 성들은 튼튼한 데다 엄청나게 큽니다. 게다가 거기서 아낙 자손들을 보았습니다” 고 보고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10명의 정탐꾼의 보고에 동조하였습니다.
회중의 분위기가 부정적으로 기울어 졌을 때 갈렙이 민 13:30)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믿음의 발언을 했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더 강하게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다고 강하게 부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 하나님의 갈렙에 대한 평가는『14:24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갈렙이 아니라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선택하시고, (민 27:22) 여호수아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수1:1〜6)
○ 갈렙의 삶의 원칙을 3가지로 정리
① 갈렙은 리더십을 인정하였습니다. 갈렙이 여호수아의 지도력에 레임-덕이 올 수 있을 때 요단 서편정복에서 가장 걸림돌인 아낙자손의 땅을 정복하겠다고 나선 사건에서 확실하게 들어납니다. 헤브론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신앙의 정통성과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이라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갈렙이 건강한 이유도 출애굽공동체가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위해서 자신이 해야 할 사명을 감당하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② 갈렙은 하나님 중심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은 그니스(Kenizzite) 사람입니다. 그니스(겐) 사람이란 에서의 자손 중 그나스 족장의 자손입니다(창36: 11/15). 그들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다 출애굽 때 함께 떠난 잡종이었습니다(출 12:48). 갈렙은 이스라엘에 귀화할 때 유다 지파에 속하였고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두 정탐꾼을 보낼 때 유다 지파의 대표로 선발되었습니다.
즉 갈렙은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근거로 자신의 가족과 행동을 과감하게 바꾸었기 때문에 겸손할 수 있었고, 용기를 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③ 갈렙지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의 지도자이었고, 갈렙은 유다지파의 지도자이었습니다. 역사가 흐른 후 성전을 중심으로 나라를 지키느냐, 성전을 떠나서 사느냐의 선택에서 에브라임지파를 중심으로 북조이스라엘로 분열되었고, 유다지파를 중심으로 남조 유다를 유지했습니다. 남조유다에서 다윗왕이 나오고, 구세주 예수그리스도가 태생하셨습니다.
정리하면, 여러분! 인간적으로 여호수아보다 더 열심히 사역했음에도 지도자로 선택받지 못했을 지라도, 여호수아의 리더십을 반격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존중하였습니다.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민족을 선택하고, 약속을 근거로 가나안의 상황을 해석하여 흔들리는 민심을 잠재우려고 했고, 약속을 근거로 헤브론을 점령하였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앞에서 출애굽의 인물중 최고로 복을 받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인간적인 평가는 찰나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가를 위하여 약속에 근거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〇 적용
① 꼴찌에게도 박수를 성공한 사람에게 아부하는 것 보다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을 멸시하지 마시고, 격려하면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② 찰나적인 세상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평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언약을 중심으로 신앙생활과 가정생활 그리고 사회생활의 목표를 점검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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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이 아니어도
민수기 34:17〜19 유장춘 목사(법학박사 ‧ 철학박사)
〇 하나님은 큰 그릇 작은 그릇, 귀하게 사용하는 막 사용하는 그릇을 만드십니다. 눈이 귀하다고 모두 눈이 되면 아니 되고, 손이 발보다 영광스럽다고 모두 손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때 보다 영혼의 때에 하나님께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올림픽에서 은메달 10개 보다도 금메달 1개가 더 앞선 순위를 차지하는 것처럼, 세상은 승자가 독식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판단과 다른 기준으로 판단하십니다. 그리고 세상판단은 찰나적인 것이고 하나님의 판단이 최종 결과입니다. 믿음의 사람 갈렙을 통해서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축복합니다.
〇 본문말씀
- 가나안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낼 때 각 지파에서 지도자 한사람씩 보내라는 말씀에 따라서 유다 지파에서 여분네의 아들 갈렙 , 에브라임 지파에서 눈의 아들 호세아, 모세는 눈의 아들 호세아에게 여호수아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민13: 6, 8, 16.)
-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에게 보고하면서 가나안 땅의 열매를 보여 주었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이 “당신께서 우리를 보내신 그 땅에 우리가 들어갔는데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여기 거기서 나는 열매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거기 사는 사람들은 힘이 세고 그 성들은 튼튼한 데다 엄청나게 큽니다. 게다가 거기서 아낙 자손들을 보았습니다” 고 보고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10명의 정탐꾼의 보고에 동조하였습니다.
회중의 분위기가 부정적으로 기울어졌을 때 갈렙이 『민 13:30)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믿음의 발언을 했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더 강하게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다고 더 강하게 부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불평이 하늘을 찌를 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옷을 찢으며 온 회중에게 『민 14: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자 온 회중들이 돌로 치려고 하였습니다.
- 하나님의 갈렙에 대한 평가는『14:24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고 인정하셨습니다.
〇 후계자 여호수아
- 하나님께서는 갈렙이 아니라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선택하시고, (민 27:22) 『수 1: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는 능력까지 주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요단을 건너는 과정, 아이성 공격과 기브온에게 속아서 조약을 맺는 일에 실수를 했습니다.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틈을 타서 갈렙이 여호수아의 리더십에 공격을 했다면 수습하기 어려운 혼란이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여호수아의 리더십을 흔드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 갈렙의 삶의 원칙을 3가지로 정리
① 갈렙은 리더십을 인정하였습니다. 갈렙이 여호수아의 지도력에 레임-덕이 올 수 있을 때 요단 서편정복에서 가장 걸림돌인 아낙자손의 땅을 정복하겠다고 나선 사건에서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해서 넘어야 할 최고로 어려운 곳인 헤브론을 공격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헤브론은 산지에 있는 요새로 더욱 아낙자손이 거주하는 곳이었습니다. 가장 강력한 지파의 수장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내 나이 40세에 가데스바네아에서 한 충성된 보고를 당신도 알 것이다. 그 때 여호와께서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45년이 지나 내가 85세가 되었는데 여전히 강건하여 능히 싸움에 나갈 수 있으니 약속하신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허락을 구했습니다. (수14:6〜63)
- 헤브론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신앙의 정통성과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이라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갈렙이 건강한 이유도 출애굽공동체가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위해서 자신이 해야 할 사명을 감당하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② 갈렙은 하나님언약(경륜)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은 그니스(Kenizzite) 사람입니다. 그니스(겐) 사람이란 에서의 자손 중 그나스 족장의 자손입니다(창36: 11/15). 그들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다 출애굽 때 함께 떠난 잡종이었습니다(출 12:48). 갈렙은 불평의 선구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흐름을 붙잡고 이스라엘에 귀화하였습니다. 유다 지파에 속하였고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두 정탐꾼을 보낼 때 유다 지파의 대표로 선발되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헤브론을 공격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할 때에도 『신 1:3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는 약속을 근거로 요청하였습니다.
즉 갈렙은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근거로 자신의 가족과 행동을 과감하게 바꾸었기 때문에 겸손할 수 있었고, 용기를 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③ 갈렙지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의 지도자이었고, 갈렙은 유다지파의 지도자이었습니다. 역사가 흐른 후 성전을 중심으로 나라를 지키느냐, 성전을 떠나서 사느냐의 선택에서 에브라임지파를 중심으로 북조이스라엘로 분열되었고, 유다지파를 중심으로 남조 유다를 유지했습니다. 남조유다에서 다윗왕이 나오고, 구세주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하셨습니다.
정리하면, 여러분! 인간적으로 여호수아보다 더 열심히 사역했음에도 지도자로 선택받지 못했을지라도, 여호수아의 리더십을 반격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존중하였습니다.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민족을 선택하고, 약속을 근거로 가나안의 상황을 해석하여 흔들리는 민심을 잠재우려고 했고, 약속을 근거로 헤브론을 점령하였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앞에서 출애굽의 인물중 최고로 복을 받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인간적인 평가는 찰나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가를 위하여 약속에 근거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〇 적용
1] 꼴찌에게도 박수를 성공한 사람에게 아부하는 것 보다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을 멸시하지 마시고, 오히려 격려하면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박완서씨의 「꼴찌에게도 박수」를 소개합니다.
- 가끔 별난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치고 싶은 충동 같은 것 말이다. 마음속 깊이 잠재한 환호에의 갈망 같은 게 이런 충동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요샌 좀처럼 이런 갈망을 풀 기회가 없다. 환호가 아니라도 좋으니 속이 후련하게 박장대소라도 할 기회나마 거의 없다. 의례적인 미소 아니면 조소 냉소 고소가 고작이다. 이러다가 얼굴 모양까지 얄궂게 일그러질 것 같아 겁이 난다. 환호하고픈 갈망을 가장 속 시원하게 풀 수 있는 기회는 뭐니 뭐니 해도 잘 싸우는 운동 경기를 볼 때가 아닌가 싶다.
특히 국제 경기에서 우리편이 이기는 걸 텔레비젼을 통해서나마 볼 때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일이 신이 나서 마음껏 환성을 지를 수 있었던 기억이 아득하다. 아마 박신자 선수가 전성기 때, 여자 농구를 보면 그렇게 신이 났고, 그렇게 즐거웠고, 다 보고 나선 그렇게 속이 후련했던 것 같다.
요즈음 내가 그 방면에 무관심해져서 모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때처럼 우리를 흥분시키고 자랑스럽게 해 주는 국제 경기도 없는 것 같다.
지는 것까지는 좋은데 지고 나서 구정물 같은 후문에 귀를 적셔야 하는 고역까지 겪다 보면 운동 경기에 대한 순수한 애정마저 식게 된다. 이렇게 점점 좋은 플레이가 귀해지는 건 비단 운동 경기 분야뿐일까. 사람이 살면서 부딪치는 타인과의 각종 경쟁, 심지어는 의견의 차이에서 오는 사소한 언쟁에서 까지 그 다툼의 당당함, 깨끗한, 아름다움이 점점 사라져 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아무리 눈에 불을 밝히고 찾아도 내부에 가둔 환호와 갈채에의 충동을 발산할 장소를 못 차는지도 모르겠다. 요전에 시내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의 일이다. 집을 다 와서 버스가 정류장 못 미쳐 서서 도무지 움직이지를 않았다. 고장인가 했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앞에도 여러 대의 버스가 밀려 있었고 버스뿐 아니라 모든 차량이 땅에 붙어 버린 듯이 꼼짝을 못 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아침부터 괜히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 있었다. 그래서 버스가 정거장도 아닌 데 서 있다는 사실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요?”
나는 부끄럽게도 안내양에게 짜증을 부렸다. 마치 이 보잘 것 없는 소녀의 심술에 의해서 이 거리의 온갖 차량이 땅에 붙어버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러나 안내양은 탓하지 않고 시들하게 말했다.
“아마 마라톤이 끝날 때 가진 못 가려나 봐요”
그러니까 저 앞 고대에서 신성동으로 나오는 삼거리쯤에서 교통이 차단된 모양이고 그 삼거리를 마라톤의 선두 주자가 달려오리라. 마라톤의 선두 주자! 생각만 해도 우울하게 죽어 있던 내 온몸의 세포가 진저리를 치면서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선두 주자를 꼭 보고 싶었다. 아니 꼭 봐야만 했다.
나는 차비를 내고 나서 내려 달라고 했다. 안내양이 정류장이 아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마음이 급한 김에 어느 틈에 나는 안내양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정류장이 아니기 때문에 못 내려 주겠다구? 그럼 정류장도 아닌데 왜 섰니? 응 왜 섰어?”
“ 이 아주머니가, 정말 〜.”
안내양은 나를 험상궂게 째려 보더니 획 돌아서서 바깥은 내다보며 상대도 안 했다. 그래도 나는 선두로 달려오는 마라토너를 보고 싶다는 갈망을 단념할 수가 없었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아내양의 어깨를 쳤다.
“아가씨, 내가 화장실이 금해서 그러나 잠깐만 문을 열어줘요, 응”
“아주머니도 진작 그러시지, 신경질 먼저 부리면 어떡해요.”
안내양은 마음씨 좋은 여자였다. 문을 빠끔히 열고 먼저 자기 고개를 내밀어 이쪽저쪽을 휘휘 살피더니 재빨리 등을 길바닥으로 떠다 밀어 주었다. 나는 치마를 펄럭이며 삼거리 쪽으로 달렸다. 삼거리엔 인파가 겹겹이 진을 치고 있으리라. 그 인파는 저만치서 그 모습을 드러낸 선두 주자를 향해 폭죽 같은 환호를 터뜨리리라.
아아, 신나라. 오늘 나는 얼마나 재수가 좋은가. 오랫동안 가두었던 환호를 터뜨릴 수 있으니 군중의 환호, 자기 개인적인 이해관계와 전혀 상관없는 환호, 그 자체의 파열인 군중의 환호에 귀청을 떨 수 있으니, 잘하면 나는 겹겹의 군중을 그 맨 앞으로 나설 수도 있으리라.
그러면 제일 큰 환성을 지르고 제일 큰 박수를 쳐야지, 나는 삼거리 쪽으로 달음질치며 나의 내부에서 거대한 환호가 삼거리까지 갈 동안 미처 못 참고 웅성웅성 아우성을 치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숨을 헐떡이며 당도한 삼거리에 군중은 없었다. 할 일이 없어 여기 이렇게 빈둥거리고 있을 뿐이라는 듯 곧 하품이라도 할 것 같은 남자가 여남은 명 그리고 장난꾸러기 아녀석들이 대여섯 명 몰려 있을 뿐이었고, 아무 데서고 마라토너가 나타나기 직전의 흥분은 엿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호루라기를 입에 문 순경은 차량의 통행을 금하고 있었다. 세 갈래 길에서 밀리고 밀린 채 기다리다 지친 차량들이 짜증스러운 듯이 부릉부릉 이상한 소릴 내고 바퀴를 조금씩 들먹이는 게 곧 삼거리의 중심을 향해 맹렬히 돌질할 것처럼 보이고 그럴 때 마다 순경은 날카로운 호루라기를 불어 댔다. 그때 나는 내가 전혀 예기치 않았던 방향에서 쏟아지는 환호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내 뒤쪽 조그만 라디오방 스피커에서 나는 환호 소리였다.
선주 주자가 드디어 결승점 전방 십미터, 오 미터, 사 미터, 삼 미터, 골인! 하는 아나운서의 숨막히는 소리가 들리고 군중의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들렸다. 비로서 일 등을 한 마라토너는 이미 삼거리를 지난 지가 오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삼거리에서 골인 지점까지는 몇 킬로미터나 되는지 자세히는 몰라도 상당한 거리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통행이 금지된 걸 보면 후속 주자들이 남은 모양이다. 꼴찌에 가까운 주자들이〜
그러나 나는 그만 맥이 빠졌다. 나는 영광의 승리자의 얼굴을 보고 싶었던 것이지 비참한 꼴찌의 얼굴을 보고 싶었던건 아니었다.
또 차들이 부르릉대며 들먹이기 시작했다. 차들도 기다리기가 지루해서 짜증을 내고 있었다. 다시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를 들리고 저만치서 푸른 유니폼을 입은 마라토너가 나타났다.
삼거리를 지켜 보고 있던 여남은 구경꾼조차 라디오방으로 몰려 우승자의 골인 광경, 세운 기록 등에 귀를 기울이느라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도
무감동하게 푸른 유니폼이 가까이 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은 몇 등쯤일까? 이십등? 삼십등? 〜
저 사람이 세운 기록도 누가 자세히 기록이나 해 줄까? 대강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이십 등, 아니면 삼신 등의 선수가 조금쯤 우습고, 조금쯤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푸른 마라토너는 점점 더 나와 가까워 졌다. 드디어 나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런 표정을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느꼈다. 여태껏 그렇게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그렇게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가슴이 뭉클하더니 심하게 두근거렸다. 그는 이십 등, 삽십 등을 초월해서 위대해 보였다. 지금 모든 환호와 영광은 우승자에게 있고, 그는 환호 없이 달릴 수 있기에 위대해 보였다.
나는 그를 위해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좀 전에 그 이십 등, 삼십 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도 자기의 이십 등, 삼십 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옛다 모르겠다 하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버리면 어쩌나, 그래서 내가 그걸 보게 되면 어떠나 싶어서였다.
어떡하든 그가 이십 등, 삽심 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느끼자 말아야지 느끼기만 하면 나는 당장 주저앉게 돼 있었다. 그는 지금 그가 괴롭고 고독하지만 위대 하다는 걸 알아야 했다.
나는 용감하게 인도에서 차도로 뛰어내리며 그를 향해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환성을 질렀다. 나는 그가 주저 않은 걸 보며 안 되었다. 나는 그가 주저앉는 걸 봄으로써 내가 주저앉고 말듯한 어떤 미신적인 연대감마저 느끼며 실로 열렬하고도 우렁찬 환영을 했다.
내 고독한 환호에 딴 사람들도 합세를 해 주었다. 푸른 마라토너 뒤에도 또 그 뒤에도 주자는 잇따랐다. 꼴찌 주자까지를 그렇게 열렬하게 성원하고 나니 손바닥이 붉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러나 뜻밖의 정소에서 환호하고픈 오랜 갈망을 마음껏 풀 수 있었던 내 몸은 날 듯이 가벼웠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마라톤이란 매력 없는 우직한 스포츠라고 밖에 생각 안 했었다. 그러나 앞으로 그것을 좀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것은 조금도 속임수가 용납 안 되는 정직한 운동이기 때문에 또 끝까지 달려서 골인한 꼴찌 주자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을 이긴 의지력 때문에 나는 아직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의 참 맛을 알고 있지 못하다.
왜 그들이 그들의 체력으로 할 수 있는 하고 많은 이들 중에서 그 일을 택했을까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내가 이십등, 삼십 등에서 꼴찌 주자에게까지 보낸 열심스러운 발수 갈채는 몇 년전 박신자 선수한테 보낸 환호만큼이나 신나는 것이었고, 더 깊이 감동스러운 것이었고, 더 육친애적인 것이었고, 전혀 새로운 희열을 동반한 것었다.
2] 언약을 중심으로 설교자가 신앙과 가정생활을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 설교자는 이 건물을 신축할 때 3,000명의 성도가 모이는 교회를 계획하고 신축했습니다. 건축관련 소송을 6년 이상 하면서 외적인 숫자는 포기하고, 매주 가장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설교를 하겠다고 목표를 수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은퇴 또는 죽더라도 새소망교회가 돈 걱정 없이 하나님의 심정을 정확하게 선포하는 교회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 설교자는 비록 세상에서 성공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가정을 위해서도 세가지 노력을 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각자 가정을 위해서와 직장과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목표를 정하고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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